강미선 개인전 : 관심 觀心

아트사이드갤러리

2019년 5월 16일 ~ 2019년 6월 23일

마음을 보다, 마음을 그리다 : 강미선의 <관심(觀心)>
김이순 (홍익대학교 교수)

강미선의 화면을 채우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소재들이다. 밥그릇, 주전자, 찻잔, 꽃병 같은 일상의 사물, 혹은 창을 통해 본 듯한 한옥의 지붕이나 나무 등이 전부이다. 가끔 꽃병에 한두 송이의 꽃이 꽂히기도 하고, 때로는 길상적(吉祥的) 의미를 지닐 법한 감, 석류 같은 소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림 속 사물들은 수묵 실루엣으로 단순하고 간일하게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은 상징적 내용보다는 형식에 매료된다. 전체적으로 소재의 평범함, 표현의 간일함, 먹의 담담함을 특징으로 하는 강미선의 작품은, 음악에 비유하자면 푸근하면서도 묵직한 첼로의 음률을 닮아 있다. 

그는 꽤 오랫동안 ‘관심(觀心)’이라는 명제(命題)에 천착하고 있다. ‘관심(觀心)’은 특정 사물이나 사람을 향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관심(關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관심(觀心)은 말 그대로 마음을 봄, 즉 자신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똑똑히 살피는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지관(止觀)’수행(‘마음챙김’이라고도 한다), 즉 쉼 없이 흘러가는 마음의 상태를 ‘지켜보는’수행을 통해 집착과 분별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는데, 강미선의 ‘관심’역시 이런 의미의 마음수행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불좌상(佛座像), 불두(佛頭), 탑 등 불교적인 모티프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하고, 수행하듯이 반복되는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추상적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물이나 풍경이다. 그렇다면 강미선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수행을 한다는 것일까.

2015년에 출판한 화집의 첫머리에서, 강미선은 자신의 작품제작 과정을 무던함과 과묵함으로 무명 이불 호청을 손질하던 어머니의 마음에 빗대어 설명한 바 있다. 이 비유대로, 그에게는 작업과정 자체가 수행이고 작업하는 시간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강미선의 작품은 정물화든 풍경화든 소재가 간략한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물의 형태보다도 사물을 둘러싼 여백 혹은 바탕이다. 그런 만큼 작가는 무엇인가를 그려 넣기 이전에 행하는 밑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에게 바탕은 단순히 소재의 배경이나 그림의 지지체(support)가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작품의 근간인 것이다. 때문에 그의 밑작업은 그다지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오랜 시간에 걸친 작업과 인내를 요한다. 

우선 거친 질감의 닥종이를 준비한 후, 그 위에 두세 장의 한지를 배접하여 지지체를 만든다. 강미선은 원주에 있는 한지공장을 방문하여 제작 과정을 체험하고 손수 닥으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로 한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한지에 대한 이런 관심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한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던 한국 화단의 전반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 권영우 같은 동양화가들은 물론 박서보나 정창섭 같은 서양화가들도 한지의 가치에 주목하고 한지 원료인 닥의 물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했으며, 강미선의 작품에서도 거친 마티에르의 닥종이는 지지체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강미선은 닥종이의 역할이 너무 강한 것을 억제하기 위해 매끈한 한지를 두세 겹 덧발라 거친 마티에르를 조절한다. 

강미선은 닥종이가 지나치게 거친 느낌을 주는 것을 완화한 후에 담묵에서 농묵에 이르는 다양한 먹의 표정을 담아낸다. 수많은 갈필을 중첩한 화면은 오래된 화강암과도 같은 맛이 나며 때로는 회색빛의 투박한 질감은 얼핏 박수근의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강미선이 의도한 것은 박수근의 그림과 같은 질감 그 자체가 아니다. 수많은 붓질을 반복하여 화면에 먹을 올리는 작업 그 자체다. 강미선 작품에서 바탕은 단순히 소재를 그려 넣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행위의 흔적으로서, 이 작업 자체가 하나의 수행(修行)이다. 특별한 효과를 의도하지 않은 채, 한 획 한 획 쌓아올리는 무목적적인 행위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보게(觀心)’되는 것이다.   

강미선의 작품에서 또한 주목할 것은 먹이라는 매체다. 강미선의 먹에 대한 애착은 이미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가 대학을 다닌 1980년대 전반기는 그의 스승인 남천 송수남을 중심으로 수묵화운동이 한창이었다. 남천과 그의 제자들은 수묵을 단순한 표현재료라기보다는 정신개념으로 인식하고 수묵을 통해 한국인의 고유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현대수묵화전》을 필두로 매년 크고 작은 수묵화 관련 기획전이 열렸고, 이러한 기획전을 통해 수묵화운동은 1980년대 크게 확산되어 한국화단의 주류로 자리잡게 된다. 강미선 역시 수묵화운동에 동참하여 1985년 미술회관에서 열린 《한국화동향전》, 1986년 관훈미술관에서 열린 《지묵의 조형전》, 그리고 1990년 미술회관에서 열린 《90년대 한국화전망전》에 이르기까지 수묵화 관련 기획전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선염과 농묵을 이용하여 한지에 먹이 스며드는 표현을 즐겨 구사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강미선의 작품은 다른 수묵화운동 작가들의 작품과는 차별화된다. 1998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심상풍경(心像風景)>에서 알 수 있듯이, 먹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심상을 담아내고자 했다. <나의 방> 연작에서 항아리, 그릇, 꽃병, 소반, 배, 감, 호박, 복숭아, 해바라기 등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을 간일하게 그리면서 그만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절제미가 부각되며 일상의 사물에 시선을 두게 된다. 이후 그가 다루는 소재나 간일한 표현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지 대신 도판(陶板)에 작업을 하여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는가 하면, 한지에 생옻을 발라 일반 안료가 아닌 자연에서 채취한 물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창출하는 등, 실험을 지속한다. 

‘무기교의 기교’라 할까, 창작의 과정이나 태도의 치열함과는 별개로 강미선의 작품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표현의 담담함과 간일함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체질적인 것이든 체득된 것이든 강미선 작품의 특징이며, 그의 치열한 조형작업의 수고를 감싸안고 있다. 흔히 말하는 ‘한국적인 미’가 간취된다. 국제화시대가 되면서, 화가들이 한국적인 것만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미선의 작품에서 ‘한국적인 미’가 느껴지는 것은 그의 삶과 철학이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기 위해 의식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모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업이 그러하듯이, 그저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담담히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작가가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강미선은 일상 사물뿐 아니라 한옥을 다루기도 한다. 이는 그가 바라보는 관심사가 확장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조형언어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한옥을 그리더라도 한옥의 형태 역시 정물처럼 간일한 실루엣으로 담담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주로 방안의 기물을 그렸듯이 풍경이라 하더라도 집 안에서 창을 통해 본 지붕이나 벽면을 주로 그린다. 정물과 마찬가지로 한옥 그림 역시 추체험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서촌 작업실을 오가며 바라본 풍경이다. 요컨대, 그에게는 사물을 보는 것이 곧 마음을 보는 것이요,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마음을 마주하는 수행의 과정이다. 그의 그림이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관객 역시 그 그림에서 ‘마음을 보았기(觀心)’때문일 것이다.

출처: 아트사이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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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강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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