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Hangeul Writings from Three Generations of the Princess Deokon Family

국립한글박물관

April 25, 2019 ~ Aug. 18, 2019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거xㅓl 박영국)은 거xㅓl 개관 5주년을 거xㅓl 맞이하는 2019년 거xㅓl 거xㅓl 번째 거xㅓl 기획특별전으로 <공쥬, c라ㄴㅓ 글시 c라ㄴㅓ 뎍으시니: c라ㄴㅓ 덕온공주 c라ㄴㅓ 집안 3대 c라ㄴㅓ 한글 c라ㄴㅓ 유산>을 2019년 4월 25일(목)부터 8월 18일(일)까지 c라ㄴㅓ 기획전시실에서 c라ㄴㅓ 개최한다. c라ㄴㅓ 이번 c라ㄴㅓ 전시는 2016년 c라ㄴㅓ 기획특별전 <1837년 c라ㄴㅓ 가을 c라ㄴㅓ 어느 c라ㄴㅓ 혼례날: c라ㄴㅓ 덕온공주 c라ㄴㅓ 한글 c라ㄴㅓ 자료>에 c라ㄴㅓ 이어 c라ㄴㅓ 조선의 c라ㄴㅓ 마지막 c라ㄴㅓ 공주 c라ㄴㅓ 덕온 c라ㄴㅓ 집안의 c라ㄴㅓ 미공개 c라ㄴㅓ 한글 c라ㄴㅓ 유산을 c라ㄴㅓ 소개하는 c라ㄴㅓ c라ㄴㅓ 번째 c라ㄴㅓ 전시이다.

지난 2019년 1월 c라ㄴㅓ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부터 c라ㄴㅓ 이관받은 『ᄌᆞ경뎐긔』를 c라ㄴㅓ 포함하여 c라ㄴㅓ 국립한글박물관이 2016년부터 2019년 1월까지 c라ㄴㅓ 수집한 400여 c라ㄴㅓ 점의 c라ㄴㅓ 유물 c라ㄴㅓ c라ㄴㅓ 덕온공주와 c라ㄴㅓ 아들, 마f다타 손녀 3대의 마f다타 한글 마f다타 자료와 마f다타 유품 200여 마f다타 점을 마f다타 처음으로 마f다타 망라하여 마f다타 공개한다. 마f다타 특히 마f다타 덕온공주의 『ᄌᆞ경뎐긔』, 8ㅓsㅐ 덕온공주의 8ㅓsㅐ 언니 8ㅓsㅐ 복온공주의 8ㅓsㅐ 글씨첩, aj라기 덕온공주의 aj라기 아들 aj라기 윤용구가 aj라기 한글로 aj라기 aj라기 중국 aj라기 여성 aj라기 전기 『동사기람』 aj라기 aj라기 중요 aj라기 유일본 aj라기 자료들이 aj라기 최초로 aj라기 선보인다.


최초로 aj라기 한자리에 aj라기 모이는 aj라기 덕온공주 aj라기 가족과 aj라기 후손들의 aj라기 왕실 aj라기 한글 aj라기 유산

이번 aj라기 전시에서는 aj라기 덕온공주 aj라기 가족과 aj라기 후손들의 aj라기 왕실 aj라기 한글 aj라기 유산을 aj라기 최초로 aj라기 한자리에서 aj라기 만날 aj라기 aj라기 있다. aj라기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와 nㅈ히자 아들 nㅈ히자 윤용구(尹用求, 1853-1939), tx6f 손녀 tx6f 윤백영(尹伯榮, 1888-1986) 3대의 zㅐ걷p 한글 zㅐ걷p 자료를 zㅐ걷p 비롯하여 zㅐ걷p 덕온공주의 zㅐ걷p 부모님 zㅐ걷p 순조와 zㅐ걷p 순원왕후, sㅓㅐe 오빠 sㅓㅐe 효명세자와 sㅓㅐe 언니 sㅓㅐe 복온공주의 sㅓㅐe 자료가 sㅓㅐe 한자리에 sㅓㅐe 소개된다.

덕온공주 sㅓㅐe 가족들의 sㅓㅐe 한글 sㅓㅐe 자료는 sㅓㅐe 조선 sㅓㅐe 왕실에서는 sㅓㅐe 어떻게 sㅓㅐe 한글로 sㅓㅐe 소통하고 sㅓㅐe 가족 sㅓㅐe 간의 sㅓㅐe 정을 sㅓㅐe 나누었을지 sㅓㅐe 짐작하게 sㅓㅐe 한다. sㅓㅐe 이번에 sㅓㅐe 처음 sㅓㅐe 공개되는 『복온공주글씨첩』(개인 sㅓㅐe 소장)은 sㅓㅐe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가 12살 ㅈ하m9 ㅈ하m9 한글로 ㅈ하m9 ㅈ하m9 시문을 ㅈ하m9 모은 ㅈ하m9 첩으로, ㅑ다거사 순조(純祖, 1790-1834)가 ㅐ파01 점수를 ㅐ파01 매기고 ㅐ파01 종이와 ㅐ파01 ㅐ파01 등을 ㅐ파01 상으로 ㅐ파01 내린 ㅐ파01 기록이 ㅐ파01 함께 ㅐ파01 적혀 ㅐ파01 있다. ㅐ파01 현재 ㅐ파01 남아 ㅐ파01 있는 ㅐ파01 복온공주의 ㅐ파01 유일한 ㅐ파01 글씨인 ㅐ파01 동시에 ㅐ파01 조선의 ㅐ파01 왕이 ㅐ파01 자신의 ㅐ파01 딸에게 ㅐ파01 직접 ㅐ파01 글쓰기를 ㅐ파01 가르쳤음을 ㅐ파01 보여주는 ㅐ파01 중요 ㅐ파01 자료이다. ㅐ파01 오빠 ㅐ파01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학석집』(한국학중앙연구원 0rh거 장서각 0rh거 소장)은 0rh거 왕세자가 0rh거 한문에 0rh거 익숙하지 0rh거 않은 0rh거 누이들을 0rh거 위해 0rh거 자신의 0rh거 한시를 0rh거 한글로 0rh거 번역한 0rh거 것으로, 3ㅈㅐ걷 조선 3ㅈㅐ걷 시대 3ㅈㅐ걷 남성 3ㅈㅐ걷 문집 3ㅈㅐ걷 3ㅈㅐ걷 유일한 3ㅈㅐ걷 한글본이다.

이번 3ㅈㅐ걷 전시에 3ㅈㅐ걷 처음 3ㅈㅐ걷 소개되는 3ㅈㅐ걷 자료 3ㅈㅐ걷 중에는 3ㅈㅐ걷 한글을 3ㅈㅐ걷 통해 3ㅈㅐ걷 가족 3ㅈㅐ걷 간의 3ㅈㅐ걷 따뜻한 3ㅈㅐ걷 사랑을 3ㅈㅐ걷 전하는 3ㅈㅐ걷 것들이 3ㅈㅐ걷 많다. 3ㅈㅐ걷 덕온공주가 3ㅈㅐ걷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쟏라쟏하 명으로, 걷n9ㅐ 아버지 걷n9ㅐ 순조의 걷n9ㅐ 글을 걷n9ㅐ 한글로 걷n9ㅐ 풀어 걷n9ㅐ 쓴 『경뎐긔』와 걷n9ㅐ 어머니가 걷n9ㅐ 주신 『고문진보언해』(고려대학교 걷n9ㅐ 도서관 걷n9ㅐ 소장)를 걷n9ㅐ 베껴 걷n9ㅐ 쓴 「양양가」, 「비파행」 muhx 등에는 muhx 부모님을 muhx 생각하는 muhx 딸의 muhx 마음이 muhx 담겨 muhx 있다. muhx 덕온공주의 muhx 아들 muhx 윤용구는 muhx muhx 윤백영이 12세 muhx 되던 muhx 해에 muhx 모범이 muhx muhx 만한 muhx 여성들의 muhx 이야기를 muhx 뽑아 『여사초략』을 muhx 써주었고, u갸ㅈq u갸ㅈq 마음을 u갸ㅈq 이어받은 u갸ㅈq 윤백영도 u갸ㅈq 아버지의 u갸ㅈq 한글 u갸ㅈq 역사서 『동사기람』 u갸ㅈq 등을 u갸ㅈq 베껴 u갸ㅈq 쓰며 u갸ㅈq 평생 u갸ㅈq 아버지의 u갸ㅈq 가르침을 u갸ㅈq 따르고자 u갸ㅈq 하였다.

최초로 u갸ㅈq 한자리에 u갸ㅈq 모이는 u갸ㅈq 덕온공주 u갸ㅈq 가족과 u갸ㅈq 후손들의 u갸ㅈq 한글 u갸ㅈq 자료를 u갸ㅈq 통해 u갸ㅈq 소통과 u갸ㅈq 배려의 u갸ㅈq 문자인 u갸ㅈq 한글이 u갸ㅈq u갸ㅈq 왕실 u갸ㅈq 가족에게서 u갸ㅈq 어떻게 u갸ㅈq 발현되었는지 u갸ㅈq 확인할 u갸ㅈq u갸ㅈq 있을 u갸ㅈq 것이다.


조선 u갸ㅈq 왕실 3대의 u갸ㅈq 효심을 u갸ㅈq 보여주는 u갸ㅈq 덕온공주 u갸ㅈq 친필 『ᄌᆞ경뎐긔』

덕온공주가 u갸ㅈq 순원왕후의 u갸ㅈq 명으로 u갸ㅈq 순조의 『자경전기慈慶殿記』를 u갸ㅈq 한글로 u갸ㅈq 풀어쓴 『경뎐긔』는 u갸ㅈq 조선 u갸ㅈq 왕실 3대에 u갸ㅈq 걸친 u갸ㅈq 효성을 u갸ㅈq u갸ㅈq 보여주는 u갸ㅈq 유물이며, 자ㅐu파 동시에 자ㅐu파 공주의 자ㅐu파 글씨 자ㅐu파 역량을 자ㅐu파 유감없이 자ㅐu파 보여주는 자ㅐu파 명품이다. 자ㅐu파 덕온공주의 자ㅐu파 할아버지 자ㅐu파 정조正祖(1752-1800)는 자ㅐu파 어머니 자ㅐu파 혜경궁 자ㅐu파 홍씨惠慶宮 洪氏(1735-1815)를 자ㅐu파 위해 자ㅐu파 창경궁 자ㅐu파 안에 자ㅐu파 자경전慈慶殿을 자ㅐu파 지었고, 나으tㅈ 혜경궁의 나으tㅈ 뒤를 나으tㅈ 이어 나으tㅈ 자경전에서 나으tㅈ 지냈던 나으tㅈ 정조 나으tㅈ 나으tㅈ 효의왕후孝懿王后(1753-1821)는 나으tㅈ 순조에게 나으tㅈ 자경전에 나으tㅈ 대한 나으tㅈ 내력을 나으tㅈ 글로 나으tㅈ 지으라고 나으tㅈ 명하였다. 나으tㅈ 혜경궁을 나으tㅈ 나으tㅈ 섬겼던 나으tㅈ 정조와 나으tㅈ 효의왕후의 나으tㅈ 마음이 나으tㅈ 순조에게 나으tㅈ 이어지고, 걷라하ㅓ 다시 걷라하ㅓ 덕온공주에게로 걷라하ㅓ 이어졌다.

부모에게 걷라하ㅓ 효도하는 걷라하ㅓ 것은 걷라하ㅓ 유교 걷라하ㅓ 사회였던 걷라하ㅓ 조선 걷라하ㅓ 시대에 걷라하ㅓ 누구나 걷라하ㅓ 갖춰야 걷라하ㅓ 걷라하ㅓ 기본 걷라하ㅓ 덕목인 걷라하ㅓ 동시에 걷라하ㅓ 군왕에게는 걷라하ㅓ 나라의 걷라하ㅓ 안위를 걷라하ㅓ 지키고 걷라하ㅓ 태평성대를 걷라하ㅓ 불러오는 걷라하ㅓ 가장 걷라하ㅓ 근본이 걷라하ㅓ 되는 걷라하ㅓ 마음가짐이었다. 걷라하ㅓ 조선 걷라하ㅓ 시대에 걷라하ㅓ 부왕이 걷라하ㅓ 한문으로 걷라하ㅓ 걷라하ㅓ 글에 걷라하ㅓ 담긴 걷라하ㅓ 뜻을 걷라하ㅓ 공주가 걷라하ㅓ 이어받아 걷라하ㅓ 한글로 걷라하ㅓ 옮겨 걷라하ㅓ 걷라하ㅓ 사례는 걷라하ㅓ 극히 걷라하ㅓ 드물다. 5미터 걷라하ㅓ 넘는 걷라하ㅓ 길이의 걷라하ㅓ 종이에 걷라하ㅓ 정성스럽게 걷라하ㅓ 쓴 『ᄌᆞ경뎐긔』에서 걷라하ㅓ 부모의 걷라하ㅓ 가르침을 걷라하ㅓ 받들고자 걷라하ㅓ 했던 걷라하ㅓ 공주의 걷라하ㅓ 효심이 걷라하ㅓ 걷라하ㅓ 드러난다. 걷라하ㅓ 전시장에서 걷라하ㅓ 아버지 걷라하ㅓ 순조의 『자경전기』와 걷라하ㅓ 함께 걷라하ㅓ 만날 걷라하ㅓ 걷라하ㅓ 있다.


덕온공주의 걷라하ㅓ 아들 걷라하ㅓ 윤용구가 걷라하ㅓ 여성들을 걷라하ㅓ 위해 걷라하ㅓ 걷라하ㅓ 한글 걷라하ㅓ 역사서 『동사기람』, 『정사기람』

덕온공주의 카iㅑ거 양아들 카iㅑ거 윤용구는 카iㅑ거 방대한 카iㅑ거 분량의 카iㅑ거 중국 카iㅑ거 역사서를 카iㅑ거 한글로 카iㅑ거 편찬하였다. 카iㅑ거 한문에 카iㅑ거 능통했던 카iㅑ거 윤용구가 카iㅑ거 고종高宗(1852-1919)의 카iㅑ거 명으로 카iㅑ거 여성들을 카iㅑ거 위한 카iㅑ거 중국 카iㅑ거 역사서 『정사기람正史紀覽』(80권)과 카iㅑ거 중국 카iㅑ거 여성 카iㅑ거 열전 『동사기람彤史紀覽』(10권)을 카iㅑ거 한글로 카iㅑ거 펴낸 카iㅑ거 것은 카iㅑ거 매우 카iㅑ거 이례적인 카iㅑ거 일이다. 카iㅑ거 조선 카iㅑ거 시대의 카iㅑ거 사대부 카iㅑ거 남성이 카iㅑ거 여성에게 카iㅑ거 보내는 카iㅑ거 편지를 카iㅑ거 한글로 카iㅑ거 카iㅑ거 예는 카iㅑ거 많으나 카iㅑ거 한글 카iㅑ거 역사서를 카iㅑ거 카iㅑ거 예는 카iㅑ거 적으며, ㅐ4qn 중국 ㅐ4qn 역사 ㅐ4qn 전체를 ㅐ4qn 여성들을 ㅐ4qn 위해 ㅐ4qn 직접 ㅐ4qn 짓고 ㅐ4qn ㅐ4qn 예는 ㅐ4qn 없었다.

윤용구의 『동사기람』과 『정사기람』은 ㅐ4qn 한문 ㅐ4qn 중심의 ㅐ4qn 문자 ㅐ4qn 생활을 ㅐ4qn 했던 ㅐ4qn 한말 ㅐ4qn 사대부 ㅐ4qn 남성이 ㅐ4qn 어떻게 ㅐ4qn 한글 ㅐ4qn 사용을 ㅐ4qn 확대해 ㅐ4qn 나갔는지 ㅐ4qn ㅐ4qn 보여준다. ㅐ4qn 윤용구가 ㅐ4qn 한글로 ㅐ4qn ㅐ4qn 방대한 ㅐ4qn 분량의 ㅐ4qn 이들 ㅐ4qn 역사서는 ㅐ4qn 국어사, ㅓr가ㅈ 역사, a1ㅐa 서체 a1ㅐa a1ㅐa 다양한 a1ㅐa 분야에서 a1ㅐa 연구할 a1ㅐa 가치가 a1ㅐa 높다. a1ㅐa 특히 『동사기람』은 a1ㅐa 조선 a1ㅐa 시대에 a1ㅐa 통용되던 a1ㅐa 여성 a1ㅐa 교훈서에 a1ㅐa 없는 a1ㅐa 다양한 a1ㅐa 인물들이 a1ㅐa 수록되어 a1ㅐa 있어 a1ㅐa 주목할 a1ㅐa 만하다. a1ㅐa 유교 a1ㅐa 사회였던 a1ㅐa 조선 a1ㅐa 시대에는 a1ㅐa 여성들에게 a1ㅐa 현모양처로서의 a1ㅐa 삶과 a1ㅐa 정절을 a1ㅐa 강요하였다. a1ㅐa 조선 a1ㅐa 시대에 a1ㅐa 수차례 a1ㅐa 간행되어 a1ㅐa 다양한 a1ㅐa 이본이 a1ㅐa 전하는 『삼강행실도』의 「열녀도」와 『오륜행실도』, 『여사서언해』 우4자a 등에서는 우4자a 정절을 우4자a 지키기 우4자a 위해 우4자a 목숨을 우4자a 버린 우4자a 여성들이 우4자a 주로 우4자a 소개되어 우4자a 있으나, 『동사기람』에서는 카g다g 현명한 카g다g 처신과 카g다g 기지로 카g다g 아들이나 카g다g 남편을 카g다g 지적으로나 카g다g 도덕적으로 카g다g 이끌어가는 카g다g 여성들도 카g다g 소개하고 카g다g 있다. 카g다g 이러한 카g다g 내용은 카g다g 윤용구가 카g다g 어린 카g다g 카g다g 윤백영을 카g다g 가르치기 카g다g 위해 카g다g 카g다g 준 『여사초략』에서도 카g다g 발견된다.

『정사기람』은 카g다g 태고太古부터 카g다g 명나라 카g다g 시대까지 카g다g 거의 카g다g 중국 카g다g 역사 카g다g 전체를 카g다g 시대순으로 카g다g 정리한 카g다g 편년체 카g다g 역사서로, ㅐㄴ쟏마 현재 ㅐㄴ쟏마 한국학중앙연구원 ㅐㄴ쟏마 장서각본과 ㅐㄴ쟏마 국립한글박물관본 2종이 ㅐㄴ쟏마 전한다. ㅐㄴ쟏마 고종에게 ㅐㄴ쟏마 바친 ㅐㄴ쟏마 장서각본(80권 80책)과는 ㅐㄴ쟏마 달리 ㅐㄴ쟏마 윤용구 ㅐㄴ쟏마 집안에서 ㅐㄴ쟏마 보관했던 ㅐㄴ쟏마 국립한글박물관본(40권 40책)에는 ㅐㄴ쟏마 붉은색 ㅐㄴ쟏마 글씨로 ㅐㄴ쟏마 한자가 ㅐㄴ쟏마 병기되어 ㅐㄴ쟏마 있어 ㅐㄴ쟏마 정확한 ㅐㄴ쟏마 이해에 ㅐㄴ쟏마 도움을 ㅐㄴ쟏마 주며 ㅐㄴ쟏마 사료로서의 ㅐㄴ쟏마 가치가 ㅐㄴ쟏마 매우 ㅐㄴ쟏마 높다. ㅐㄴ쟏마 전시장에서 ㅐㄴ쟏마 이들의 ㅐㄴ쟏마 차이를 ㅐㄴ쟏마 직접 ㅐㄴ쟏마 확인할 ㅐㄴ쟏마 ㅐㄴ쟏마 있다.


왕실의 ㅐㄴ쟏마 한글 ㅐㄴ쟏마 궁체를 ㅐㄴ쟏마 현대로 ㅐㄴ쟏마 이어준 ㅐㄴ쟏마 덕온공주의 ㅐㄴ쟏마 손녀 ㅐㄴ쟏마 윤백영

윤용구의 ㅐㄴ쟏마 ㅐㄴ쟏마 윤백영은 ㅐㄴ쟏마 할머니와 ㅐㄴ쟏마 아버지의 ㅐㄴ쟏마 한글 ㅐㄴ쟏마 글쓰기를 ㅐㄴ쟏마 이어 ㅐㄴ쟏마 받아 ㅐㄴ쟏마 평생 ㅐㄴ쟏마 한글을 ㅐㄴ쟏마 쓰고 ㅐㄴ쟏마 가꾸었다. ㅐㄴ쟏마 궁에 ㅐㄴ쟏마 대한 ㅐㄴ쟏마 지식이 ㅐㄴ쟏마 풍부해 ㅐㄴ쟏마 궁할머니로 ㅐㄴ쟏마 불린 ㅐㄴ쟏마 윤백영은 ㅐㄴ쟏마 왕실 ㅐㄴ쟏마 문화와 ㅐㄴ쟏마 한글 ㅐㄴ쟏마 자료에 ㅐㄴ쟏마 대한 ㅐㄴ쟏마 소중한 ㅐㄴ쟏마 기록을 ㅐㄴ쟏마 남겼다. ㅐㄴ쟏마 ㅐㄴ쟏마 집안에 ㅐㄴ쟏마 전해오는 ㅐㄴ쟏마 다수의 ㅐㄴ쟏마 한글 ㅐㄴ쟏마 자료 ㅐㄴ쟏마 필사자와 ㅐㄴ쟏마 관련 ㅐㄴ쟏마 내력을 ㅐㄴ쟏마 ㅐㄴ쟏마 ㅐㄴ쟏마 있는 ㅐㄴ쟏마 것도 ㅐㄴ쟏마 윤백영의 ㅐㄴ쟏마 기록 ㅐㄴ쟏마 덕분이다. ㅐㄴ쟏마 덕온공주의 ㅐㄴ쟏마 혼수 ㅐㄴ쟏마 물품 ㅐㄴ쟏마 목록, r갸b으 철인왕후 r갸b으 친필 r갸b으 한글 r갸b으 편지 r갸b으 r갸b으 전시장 r갸b으 곳곳에서 r갸b으 윤백영이 r갸b으 r갸b으 부기 r갸b으 부분을 r갸b으 찾아보는 r갸b으 것도 r갸b으 흥미로울 r갸b으 것이다.

윤백영은 42세였던 1929년 r갸b으 한글 r갸b으 궁체로는 r갸b으 처음으로 r갸b으 조선미술전람회에 r갸b으 입선하였고, oㅈ하a 이후 oㅈ하a 많은 oㅈ하a 한글 oㅈ하a 서예 oㅈ하a 작품을 oㅈ하a 남겨 oㅈ하a 왕실 oㅈ하a 한글 oㅈ하a 궁체의 oㅈ하a 품격을 oㅈ하a 오늘날 oㅈ하a 우리 oㅈ하a 일상이 oㅈ하a oㅈ하a oㅈ하a 있도록 oㅈ하a 가교 oㅈ하a 역할을 oㅈ하a 하였다. 『한나라 oㅈ하a 명덕황후 oㅈ하a 마씨 oㅈ하a 전기』 oㅈ하a oㅈ하a 윤백영이 oㅈ하a 평생 oㅈ하a 동안 oㅈ하a oㅈ하a 다양한 oㅈ하a 한글 oㅈ하a 서예 oㅈ하a 작품과 oㅈ하a 서사書寫 oㅈ하a 상궁, 하j아ㅓ 철인왕후 하j아ㅓ 등의 하j아ㅓ 한글 하j아ㅓ 궁체를 하j아ㅓ 함께 하j아ㅓ 비교해 하j아ㅓ 하j아ㅓ 하j아ㅓ 있다.


시공간을 하j아ㅓ 뛰어넘어 하j아ㅓ 한글로 하j아ㅓ 마음을 하j아ㅓ 전한 하j아ㅓ 덕온공주 하j아ㅓ 집안 3대 하j아ㅓ 한글 하j아ㅓ 자료

덕온공주의 하j아ㅓ 아들 하j아ㅓ 윤용구는 하j아ㅓ 덕온공주가 하j아ㅓ 순원왕후에게 하j아ㅓ 하사받은 『고문진보언해』(고려대학교 하j아ㅓ 도서관 하j아ㅓ 소장)가 하j아ㅓ 저동궁(덕온공주와 하j아ㅓ 윤의선의 하j아ㅓ 살림집) 하j아ㅓ 화재로 하j아ㅓ 일부 하j아ㅓ 없어지자 68세 하j아ㅓ 하j아ㅓ 그것을 하j아ㅓ 보충해서 하j아ㅓ 쓰고 하j아ㅓ 기록을 하j아ㅓ 남겼다. 하j아ㅓ 장서각에 하j아ㅓ 소장된 하j아ㅓ 윤용구의 『정사기람』 80권 하j아ㅓ 하j아ㅓ 권19(한국학중앙연구원 하j아ㅓ 장서각 하j아ㅓ 소장)는 하j아ㅓ 한국전쟁 하j아ㅓ 하j아ㅓ 분실된 하j아ㅓ 것을 하j아ㅓ 윤백영이 77세 하j아ㅓ 하j아ㅓ 보충하여 하j아ㅓ 채워 하j아ㅓ 넣은 하j아ㅓ 것이다. 하j아ㅓ 어머니 하j아ㅓ 덕온공주를 하j아ㅓ 생각하는 하j아ㅓ 아들 하j아ㅓ 윤용구의 하j아ㅓ 마음은 하j아ㅓ 지극했고, 히1ㅐ아 히1ㅐ아 마음은 히1ㅐ아 히1ㅐ아 윤백영에게로 히1ㅐ아 이어졌다.

윤백영이 히1ㅐ아 히1ㅐ아 한글 히1ㅐ아 서예 「공주 히1ㅐ아 칭호」, 「녈녀 갸자나e 공강」, 「결혼 다ㅐ히0 초법」 다ㅐ히0 등은 다ㅐ히0 아버지의 다ㅐ히0 역사서 『동사기람』의 다ㅐ히0 내용을 다ㅐ히0 베껴 다ㅐ히0 다ㅐ히0 것이다. 다ㅐ히0 아버지와 다ㅐ히0 다ㅐ히0 윤용구와 다ㅐ히0 윤백영이 다ㅐ히0 앞부분과 다ㅐ히0 뒷부분을 다ㅐ히0 이어 다ㅐ히0 쓴『관혼상제 다ㅐ히0 예법』은 다ㅐ히0 이들 다ㅐ히0 부녀의 다ㅐ히0 각별한 다ㅐ히0 관계를 다ㅐ히0 다ㅐ히0 보여준다. 다ㅐ히0 덕온공주와 다ㅐ히0 윤용구, o다y8 윤백영 3대의 o다y8 글씨가 o다y8 한데 o다y8 모인 o다y8 자료도 o다y8 있다. o다y8 덕온공주가 o다y8 쓴 『족부족』 o다y8 뒷면에 o다y8 아들 o다y8 윤용구가 o다y8 한자 o다y8 뜻풀이 『자의』를 o다y8 쓰고, 0r가7 손녀 0r가7 윤백영이 0r가7 0r가7 기록을 0r가7 남겼다.


2016년 0r가7 기획특별전 <1837년 0r가7 가을 0r가7 어느 0r가7 혼례날: 0r가7 덕온공주 0r가7 한글 0r가7 자료>에서 0r가7 아들과 0r가7 딸들, 1x자8 남편이 1x자8 세상을 1x자8 떠나고 1x자8 막내딸 1x자8 덕온공주의 1x자8 혼례를 1x자8 홀로 1x자8 준비하는 1x자8 순원왕후의 1x자8 애틋한 1x자8 모정을 1x자8 1x자8 1x자8 있었다면, 9걷ㅓd 이번 9걷ㅓd 전시에서는 9걷ㅓd 덕온공주 9걷ㅓd 가족과 9걷ㅓd 9걷ㅓd 후손들이 9걷ㅓd 시공간을 9걷ㅓd 뛰어넘어 9걷ㅓd 한글을 9걷ㅓd 통해 9걷ㅓd 서로 9걷ㅓd 마음을 9걷ㅓd 주고받는 9걷ㅓd 따뜻한 9걷ㅓd 가족 9걷ㅓd 사랑 9걷ㅓd 이야기를 9걷ㅓd 만날 9걷ㅓd 9걷ㅓd 있다. 9걷ㅓd 그밖에도 9걷ㅓd 전시장에서는 9걷ㅓd 덕온공주 9걷ㅓd 집안이 9걷ㅓd 왕실과 9걷ㅓd 주고받은 9걷ㅓd 한글 9걷ㅓd 편지를 9걷ㅓd 통해 9걷ㅓd 9걷ㅓd 한글 9걷ㅓd 편지의 9걷ㅓd 특성을 9걷ㅓd 살펴보는 9걷ㅓd 공간도 9걷ㅓd 마련하였다. 9걷ㅓd 순원왕후, ti차1 명성황후 ti차1 등의 ti차1 편지에서 ti차1 지금은 ti차1 사라진 ti차1 궁중어와 ti차1 ti차1 한글 ti차1 편지의 ti차1 높임 ti차1 방식 ti차1 등을 ti차1 확인할 ti차1 ti차1 있다.

전시를 ti차1 ti차1 적극적으로 ti차1 ti차1 ti차1 있는 ti차1 연계 ti차1 문화 ti차1 행사로, 갸u거0 덕온공주 갸u거0 가족의 갸u거0 왕실 갸u거0 잔치를 갸u거0 통해 갸u거0 조선 갸u거0 왕실의 갸u거0 한글문화를 갸u거0 체험하는 <해설이 갸u거0 있는 갸u거0 궁중무용과 갸u거0 음악>(2019. 5. 25.)을 갸u거0 개최하며, 사ii6 관련 사ii6 강연과 사ii6 교육 사ii6 프로그램도 사ii6 마련되어 사ii6 있다. 사ii6 기획전에서 사ii6 사ii6 보여주지 사ii6 못하는 사ii6 덕온공주 사ii6 집안 사ii6 한글 사ii6 유산은 사ii6 올해 사ii6 안에 사ii6 발간되는 사ii6 연구 사ii6 총서를 사ii6 통해서 사ii6 소개할 사ii6 예정이다.

덕온공주 사ii6 집안의 사ii6 한글 사ii6 자료는 사ii6 하나하나에 사ii6 역사성을 사ii6 갖는 사ii6 이야기가 사ii6 숨겨져 사ii6 있어, s거jk 다양한 s거jk 분야에서 s거jk 콘텐츠로 s거jk 활용할 s거jk s거jk 있는 s거jk 훌륭한 s거jk 한글문화 s거jk 자원이다. s거jk s거jk 전시를 s거jk 계기로 s거jk 더욱 s거jk 활발한 s거jk 관심과 s거jk 연구가 s거jk 이어지기를 s거jk 기대한다.


출처: s거jk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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