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작가들이 이번 전시 주제 ‘절망적’, ‘비관적’, ‘낙천적’이라는 회화를 대하는 세 가지 태도는 회화의 가능성이라는 열린 결말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절망적
2017년을 살고 있는 젊은 화가가 캔버스 앞에서 처음 마주하는 감정은 절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회화시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이미 쌓여 있는 선례들을 피해 새로운 지점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새로운 미디엄보다 더욱 힘들어 보이는 상황인데다 물감이라는 물성을 다루기에는 오랜 숙련이 필요하니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이러한 환경을 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어디로 가는가?
비관적
회화가 더 이상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기에는 너무 낡아버렸다.
언어와 이미지 사아의 오류는 늘 만연한 질병처럼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언어는 늘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권위를 차지한다. 미술에서도 예외란 없다.
논리적이지 못한 회화는 늘 천덕꾸러기이고 논리적인 회화를 페인터럴리하게 그리기는 무척 어렵다.
무엇보다 싸워야할 이미지들이 공기분자처럼 많이 날아다닌다.
낙천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좋다. 행위와 물성에 기반을 둔 회화는 그 특유의 고유성이 숨 쉬고 있다. 이미지가 너무 많다고 해도 결국 새로운 이미지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어디에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회화라고해서 사정이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미디엄이 가지는 전통이 맛을 살려준다. 포스트 모던함이 붕괴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포스트 장인- 포스트 페인터로서의 위치는 매혹적이다. 무엇보다 이미지의 힘은 여전히 직접적이다.
출처 : 세움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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