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진가 3인의 군인 The Soldiers

사진위주 류가헌

2019년 12월 3일 ~ 2019년 12월 15일

군사기밀은 사라지고, 군대의 추억은 남았다

숲을 배경으로 군모를 옆구리에 낀 자세로 서 있거나, 군번줄을 목에 건 채 상의를 벗은 청년들의 초상. 잔뜩 기합이 든 채 차렷 자세를 하고 있거나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끼고 쪼그려 뛰기를 하는 내무반 풍경. 군복과 군모의 표식들, 배경으로 선 나무들이 아열대 이국 품종이라는 점 등을 제외하면 어딘가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이다.

장 량이 Liang I Chang, 티엔 위후아 Tien Yu Hua, 항 다펑 Hang Dah-perng, 세 명의 대만 사진가가 찍은 <군인 The Soldiers>. 1990년대 대만의 ‘군대사진’이지만, 입성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차이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군대사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유사하다. 두 나라가 똑같이 분단국가라는 현실 속에서 ‘징병제’로 모병을 하고, 엄혹한 독재의 시기를 거쳤다는 역사적 공통점을 배경으로 지니고 있다. 군대 내부와 군인들의 생활상이 ‘군사기밀’처럼 여겨지며 촬영이 금지되었던 시절에 찍혔다는 점에서도 기 발표된 우리나라의 군대 사진과 겹친다. 사진속의 군인들은 ‘군인’을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하는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의 공통된 초상이기도 한 것이다.

“세 가지 관점을 담은 세 대의 카메라는 주관성이 사라진 시공간과 그 시공간 속 군인들의 태도를 기록했다. 징병제를 담은 이 사진들은 지나간 역사를 상상하고 탐색할 수 있는 수단이다.”

대만의 존경받는 원로 사진가 장자오탕이, <군인 The Soldiers>을 두고 한 말이다.

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사진에 열광하던 20대 청년 세 명이 입영한 뒤 ‘군대 내 촬영 금지’라는 제한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도를 찾은 것이 <군인 The Soldiers>의 시작이었다. 셋 모두 부대와 막사가 달랐지만, ‘세 가지 관점을 담은 세 대의 카메라’로 저마다의 직접적인 경험이 담긴 사진들을 기록한 것이다.

대만에서 1949년 말에 선포된 의무 징병제는 2018년 폐지되기까지 68년간이나 지속되었으나, 이와 관련한 흥미롭거나 진실된 사진들은 외부에 보여진 바가 없었다. 무려 40년간이나 계엄과 독재가 지속되는 동안 군대 내부의 생활상에 대한 촬영이나 공개가 금지된 까닭이었다. 우선 그 희소성의 측면에서 주목받기에 충분한 <군인 The Soldiers>은, 오늘날 대만의 주요 언론 매체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이 활발한 사진가 세 명의 초기 작업이라는 데서도 주목할 만 하다. 관찰자로서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각자 징집병으로서 내부의 시선으로 찍은 사진이라는 점도 각별하다.

<군인 The Soldiers>은 2017년 대만에서 사진집으로 발간되어 첫 선을 보인이래, 2018년부터 홍콩, 타이페이, 키룽, 까오슝, 타오위안 등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순회전을 이어왔다. 한국에는 지난 11월 수원국제사진축제에 대만 사진가 센차오량이 큐레이터로, 한국 사진가 강제욱이 협력 큐레이터로서 한국 사진가들이 찍은 군대사진과 함께 일부를 선보였다.

바다 건너 대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의 초상이기도 한 <군인 The Soldiers>은 12월 3일(화)부터 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린다.

서문

분단이 조각한 우리들의 자화상, 군인 The Soldiers 
글 강제욱(사진가, 협력 큐레이터)

2018년 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전문인력 양상사업(NEXT)의 지원으로 기획자로서 대만의 대표적인 아티스트/기획자 레지던시인 Bamboo Curtain Studio에 입주하여 6주간 대만 사진계와 미술계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양국간의 수교 단절 이후 그리고 우리의 경제가 대만을 앞선 이후 점차 잊혀 갔던 나라였다. 공산주의와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 후퇴한 장제스(장개석)라는 인물이 세운 나라 정도가 대만에 대한 인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6주라는 시간동안 너무나도 명백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대만의 근현대사와 마주하게 되었다. 대만 근현대사는 여러모로 대한민국과  닮아 있었다. 같은 역사,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국가였으나 이념적 대립으로 분단이 된 국가. 공식 명칭은 중화민국(대만은 섬 이름이다)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1949년 갈라져 장제스, 장징궈 부자가 무려 약 40년간 계엄상태로 독재를 하였다. 이 시기를 대만인들은 ‘백색테러’시기라 부른다. (1947년 2.28사건으로 2주간 2만 8천여 명이 희생되었고 이때 계엄이 이미 시작되었다.) 대만 민주화의 역사는 바로 국민당과 맞서고 계엄을 해제하고자 하고자 하는 투쟁의 역사이다. 100년 전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였던 장제스, 한때 냉전시대에 민주주의를 수호하였던 영웅으로 기억되었으나 사실 대만 민주화를 억합하였던 악명높은 독재자의 이름일 뿐이었다.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과 대만 양국의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각자의 독재자들과 싸워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기록하였던 대만의 사진가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보석 같은 사진가들, 작품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만의 존경받는 원로 사진가인 장자오탕 선생의 지도로 시작되었던 <The Soldiers>였다. 2017년 12월 사진집이 발간되었고 2018년부터 홍콩, 타이페이, 키룽, 까오슝, 타오위안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순회전을 하고 있었다. (대만의 징병제는 2018년 12월 26일로 67년 만에 종료되었다. 이는 2008년 마잉주 총통의 대선공약이었다.) 비슷한 시기 대한민국 청년들의 군 생활을 기록하였던 사진가 이한구의 <군용>, 이규철의 <군인, 841의 휴가>, 강재구의 <사병증명> 작업이 바로 연상되었다. 이렇게 분단은 양국(나아가 4국) 청년들과 젊음 그리고 목숨과 희생을 담보로 힘겹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들의 초상이야말로 대만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풍경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전장의 이글거리는 스팩터클이 아닌 막사의 무료한 일상에서 때론 치열한 훈련 속에서 무쇠처럼 단련된 근육과 억압적인 질서 속에서 또 교육된 애국심 사이에서 사회의 평균적인 성인으로 다듬어져가는 청년들과 만난다. 분단이 조각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한편 분단 저 너머 청춘들의 삶은 어찌하였을까 궁금해진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9년, 소수의 왕과 귀족이 아닌 진정 국민이 주인이 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국경을 가르면서까지 싸웠던 지난 한 세기를 되돌아본다. 이제 고단하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관계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작가소개

장 량이 Liang I Chang
1968년에 태어난 장 량이는 대만의 대표적인 포토저널리스트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대만의 중앙뉴스 대행사인 China Times와 일간신문 매체인 Apple daily 등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 일했고, 사진으로 여러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의미 있는 단체전에 일원으로 참여했다. <Love Deeply>와 <The Soldiers>라는 사진집을 출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티엔 위후아 Tien Yu Hua 
1970년 대만 중리 구 타오 위안시에서 태어났다. 중국문화대학에서 다큐멘터리사진과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94년 중국 문화 대학을 졸업 한 후 군대에 합류했다. 1995년 말, 부대 내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고 이때 예기치 않은 선물인 카메라를 사령관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그 사진기로 부대의 일상을 찍기 시작했다. 

항 다펑 Hang Dah-perng
1969년에 태어났으며 1987년 중국문화대학의 포토저널리즘 학과에 입학했다. 신입생 시절 첫 번째 카메라를 구입하여 사진을 자기탐사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대학 시간의 대부분을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암실에서 인화하며 보냈다. 대학 졸업 후 기자로 활동하다 입대했고, 1993년 제대 후 Independent Morning Post, 2003년부터 현재까지 대만 Apple Daily신문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를 의식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포토 저널리스트의 사명’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출처: 사진위주 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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