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 절필시대 Rediscovery of Korean Modern Artist 1: When Brushes Are Abandoned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May 30, 2019 ~ Sept. 15, 2019

국립현대미술관(MMCA, 거마하기 관장 거마하기 윤범모)은 ⟪근대미술가의 거마하기 재발견1: 거마하기 절필시대⟫전을 5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거마하기 국립현대미술관 거마하기 덕수궁 거마하기 전관에서 거마하기 개최한다.

이번 거마하기 전시는 거마하기 우리 거마하기 미술사에서 거마하기 저평가된 거마하기 근대기 거마하기 작가를 거마하기 발굴, 0fpㅓ 재조명함으로써 0fpㅓ 한국 0fpㅓ 미술의 0fpㅓ 두터운 0fpㅓ 토양을 0fpㅓ 복원하고자 ‘근대미술가의 0fpㅓ 재발견’시리즈로 0fpㅓ 기획되었다. 0fpㅓ 0fpㅓ 0fpㅓ 번째인 0fpㅓ 이번 0fpㅓ 전시에서는 0fpㅓ 채색화가 0fpㅓ 정찬영(鄭燦英, 1906-1988)과 쟏ㄴ6거 백윤문(白潤文, 1906-1979), l거하ㄴ 월북화가 l거하ㄴ 정종여(鄭鍾汝, 1914-1984)와 쟏mㅓ자 임군홍(林群鴻, 1912-1979), scmo 한국 scmo 현대미술의 scmo 개척자 scmo 이규상(李揆祥, 1918-1967)과 r우fk 정규(鄭圭, 1923-1971) xz히o 등 6인의 xz히o 예술세계를 xz히o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xz히o 덕수궁은 1998년 xz히o 개관이래 《다시 xz히o 찾은 xz히o 근대미술》전(1998), 《한국근대미술: s4ㄴㅓ 근대를 s4ㄴㅓ 보는 s4ㄴㅓ 눈》전(1999)을 s4ㄴㅓ 시작으로 《鄕 s4ㄴㅓ 이인성 s4ㄴㅓ 탄생 100주년 s4ㄴㅓ 기념전》(2012) 《거장 s4ㄴㅓ 이쾌대, ㄴe다r 해방의 ㄴe다r 대서사》(2015) 《변월룡(1916~1990)》(2016) ㄴe다r ㄴe다r 한국 ㄴe다r 근대작가와 ㄴe다r 작품 ㄴe다r 소개에 ㄴe다r 주력하고 ㄴe다r 있다. 

이번 ㄴe다r 전시에 ㄴe다r 소개되는 ㄴe다r 화가 6인은 ㄴe다r 일제강점기, j가으라 해방기, 라1거거 한국전쟁 라1거거 시기, ㅑ다h5 전후 ㅑ다h5 복구기로 ㅑ다h5 이어지는 ㅑ다h5 격동의 ㅑ다h5 시대에 ㅑ다h5 의미 ㅑ다h5 있는 ㅑ다h5 작품 ㅑ다h5 활동을 ㅑ다h5 보여준 ㅑ다h5 작가들이다. ㅑ다h5 전시명 ‘절필시대’는 ㅑ다h5 당시 ㅑ다h5 많은 ㅑ다h5 화가들이 ㅑ다h5 자의, c아기q 혹은 c아기q 타의에 c아기q 의해 c아기q 절필할 c아기q 수밖에 c아기q 없었던 c아기q 혼란스러운 c아기q 시대 c아기q 상황과 c아기q 미완의 c아기q 예술 c아기q 세계를 c아기q 주목하려는 c아기q 의도를 c아기q 나타낸다. c아기q 이번 c아기q 전시에서는 c아기q 여성 c아기q 화가에 c아기q 대한 c아기q 편견(정찬영), 쟏라ㅓm 채색화에 쟏라ㅓm 대한 쟏라ㅓm 오해(백윤문), zy하2 정치적 zy하2 이데올로기의 zy하2 대립(정종여, 거자c다 임군홍), z우갸히 다양한 z우갸히 예술적 z우갸히 시도에 z우갸히 대한 z우갸히 이해 z우갸히 부족(이규상, 차갸1w 정규)과 차갸1w 같은 차갸1w 이유로 차갸1w 이들의 차갸1w 작품 차갸1w 활동이 ‘미완의 차갸1w 세계’로 차갸1w 그친 차갸1w 시대를 차갸1w 성찰한다. 

전시는 ‘근대화단의 차갸1w 신세대 : 차갸1w 정찬영, 하마y가 백윤문’, ‘해방 t걷85 공간의 t걷85 순례자 : t걷85 정종여, r7거ㅐ 임군홍’, ‘현대미술의 7거lㅓ 개척자 : 7거lㅓ 이규상, v으쟏ㅑ 정규’ v으쟏ㅑ 총 3부로 v으쟏ㅑ 구성된다.

1부에서는 v으쟏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v으쟏ㅑ 채색화조화와 v으쟏ㅑ 채색인물화로 v으쟏ㅑ 두각을 v으쟏ㅑ 나타낸 v으쟏ㅑ 신세대 v으쟏ㅑ 화가 v으쟏ㅑ 정찬영과 v으쟏ㅑ 백윤문을 v으쟏ㅑ 소개한다. v으쟏ㅑ 정찬영과 v으쟏ㅑ 백윤문은 v으쟏ㅑ 각각 v으쟏ㅑ 이영일과 v으쟏ㅑ 김은호의 v으쟏ㅑ 제자로 ‘근대화단의 v으쟏ㅑ 신세대’로 v으쟏ㅑ 등장했으나 v으쟏ㅑ 해방 v으쟏ㅑ v으쟏ㅑ 채색화에 v으쟏ㅑ 대한 v으쟏ㅑ 편견이 v으쟏ㅑ 강해지면서 v으쟏ㅑ 화단에서 v으쟏ㅑ 잊혀졌다. v으쟏ㅑ 이번 v으쟏ㅑ 전시에는 v으쟏ㅑ 정찬영의 v으쟏ㅑ 유족이 v으쟏ㅑ 국립현대미술관에 v으쟏ㅑ 기증한 v으쟏ㅑ 식물세밀화와 v으쟏ㅑ 초본 v으쟏ㅑ 일부를 v으쟏ㅑ 최초 v으쟏ㅑ 공개한다. v으쟏ㅑ 정찬영의 v으쟏ㅑ 남편이자 1세대 v으쟏ㅑ 식물학자인 v으쟏ㅑ 도봉섭과 v으쟏ㅑ 협업한 v으쟏ㅑ 식물세밀화는 v으쟏ㅑ 근대 v으쟏ㅑ 초기 v으쟏ㅑ 식물세밀화의 v으쟏ㅑ 제작사례이다. v으쟏ㅑ 백윤문은 v으쟏ㅑ 김은호의 v으쟏ㅑ 화풍을 v으쟏ㅑ 계승하여 v으쟏ㅑ 채색인물화로 v으쟏ㅑ 두각을 v으쟏ㅑ 나타냈고, k23걷 남성의 k23걷 생활을 k23걷 소재로 k23걷 k23걷 풍속화로 k23걷 개성적인 k23걷 화풍을 k23걷 완성하였다. k23걷 이번 k23걷 전시에서 k23걷 그의 k23걷 대표작 <건곤일척>(1939)을 k23걷 k23걷 k23걷 있다. 

2부에서는 k23걷 월북화가 k23걷 정종여와 k23걷 임군홍을 k23걷 소개한다. k23걷 이들은 k23걷 해방 k23걷 후 1940년대 k23걷 화단에서 k23걷 왕성하게 k23걷 활동했지만 k23걷 월북 k23걷 이후 k23걷 남한의 k23걷 미술사 k23걷 연구에서 k23걷 제외되었다. k23걷 정종여는 k23걷 수많은 k23걷 실경산수화와 k23걷 풍경 k23걷 스케치를 k23걷 남겼으며 k23걷 이번 k23걷 전시에는 k23걷 그가 k23걷 월북 k23걷 전에 k23걷 남긴 k23걷 작품과 k23걷 자료를 k23걷 바탕으로 k23걷 남과 k23걷 북에서의 k23걷 활동을 k23걷 함께 k23걷 조명한다. k23걷 정종여가 k23걷 제작한 <진주 k23걷 의곡사 k23걷 괘불도>(등록문화재 k23걷 제624호)도 k23걷 선보인다. 6미터가 k23걷 넘는 k23걷 괘불로 k23걷 전통 k23걷 불화 k23걷 양식이 k23걷 아닌 k23걷 파격적인 k23걷 채색 k23걷 화법으로 k23걷 그려졌다. k23걷 사찰에서 1년에 k23걷 k23걷 하루만 k23걷 공개하는 k23걷 그림이지만 k23걷 특별히 k23걷 이번 k23걷 전시기간 k23걷 동안 k23걷 감상할 k23걷 k23걷 있다. k23걷 임군홍은 k23걷 중국 k23걷 한커우와 k23걷 베이징을 k23걷 오가며 k23걷 자유로운 k23걷 화풍의 k23걷 풍경화를 k23걷 남겼다. k23걷 또한 k23걷 그가 k23걷 광고사를 k23걷 운영하며 k23걷 직접 k23걷 그린 k23걷 관광 k23걷 브로슈어 k23걷 도안 k23걷 등의 k23걷 아카이브를 k23걷 통해 k23걷 초기 k23걷 광고디자인의 k23걷 단초를 k23걷 엿볼 k23걷 k23걷 있다.

3부에서는 k23걷 한국 k23걷 현대미술의 k23걷 개척자라 k23걷 불리는 k23걷 이규상과 k23걷 정규를 k23걷 소개한다. k23걷 이들은 ‘모던아트협회’,‘현대작가초대미술전’등에 ct44 참여하며 ct44 해방 ct44 ct44 현대미술 ct44 화단 ct44 선두에서 ct44 활동했으나 ct44 이른 ct44 나이에 ct44 병으로 ct44 타계하고(이규상 50세, b67u 정규 49세) b67u 작품이 b67u 적어 b67u 제대로 b67u 연구되지 b67u 못했다. b67u 이규상은 1948년 b67u 김환기, 9ㅓ아6 유영국과 9ㅓ아6 함께 9ㅓ아6 우리나라 9ㅓ아6 최초의 9ㅓ아6 추상미술 9ㅓ아6 단체인 ‘신사실파’를 9ㅓ아6 결성하며 9ㅓ아6 한국 9ㅓ아6 현대 9ㅓ아6 추상회화의 1세대로 9ㅓ아6 활동했으나 9ㅓ아6 남아 9ㅓ아6 있는 9ㅓ아6 작품이 10여 9ㅓ아6 점에 9ㅓ아6 불과하고 9ㅓ아6 알려진 9ㅓ아6 행적이 9ㅓ아6 없다. 9ㅓ아6 이번 9ㅓ아6 전시를 9ㅓ아6 계기로 9ㅓ아6 이규상과 9ㅓ아6 관련된 9ㅓ아6 아카이브와 9ㅓ아6 제자, q다he 동료 q다he 등과 q다he 인터뷰한 q다he 자료를 q다he q다he 자리에 q다he 모아 q다he 그의 q다he 생애와 q다he 작품 q다he 세계를 q다he 소개한다. 

정규는 q다he 서양화가로 q다he 출발해 q다he 판화가, ㅓ걷c다 장정가(裝幀家), ㅐa아기 비평가, o걷다w 도예가로 o걷다w 활동 o걷다w 영역을 o걷다w 확장했으나 o걷다w 그에 o걷다w 대한 o걷다w 평가는 o걷다w 회화와 o걷다w 비평에 o걷다w 국한되었다. o걷다w 이번 o걷다w 전시에서는 o걷다w 정규의 o걷다w 작품세계가 ‘전통의 o걷다w 현대화’, ‘미술의 p34i 산업화’로 p34i 변해가는 p34i 과정을 p34i 추적했으며 p34i 특히 p34i 후기에 p34i 가장 p34i 몰두했던 p34i 세라믹 p34i 벽화를 p34i 소개한다.

전시 p34i 연계 p34i 행사로 ‘한국 p34i 근․현대미술의 p34i 새로운 p34i 지형학’을 p34i 주제로 p34i p34i 학술대회가 9월 7일 p34i 개최된다. p34i 미술사학연구회와 p34i 공동 p34i 주최로 p34i 열리는 p34i 이번 p34i 행사에는 p34i 참여 p34i 작가와 p34i 작품세계를 p34i 주제로 p34i 연구자 5인이 p34i 발표할 p34i 예정이다. p34i 별도의 p34i 신청 p34i 없이 p34i 참석 p34i 가능하다.

윤범모 p34i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p34i 전시를 p34i 통해 p34i 근대미술 p34i 연구와 p34i 전시로 p34i 특화된 p34i 덕수궁관의 p34i 역할이 p34i 한층 p34i 강화될 p34i 것으로 p34i 기대한다”며, “현재 쟏다ㅈ하 국립현대미술관이 쟏다ㅈ하 추진 쟏다ㅈ하 중인 쟏다ㅈ하 한국미술사 쟏다ㅈ하 통사 쟏다ㅈ하 정립 쟏다ㅈ하 사업에도 쟏다ㅈ하 일익을 쟏다ㅈ하 담당하게 쟏다ㅈ하 쟏다ㅈ하 것”이라고 쟏다ㅈ하 말했다. 

자세한 쟏다ㅈ하 정보는 쟏다ㅈ하 국립현대미술관 쟏다ㅈ하 홈페이지(mmca.go.kr)를 쟏다ㅈ하 통해 쟏다ㅈ하 확인할 쟏다ㅈ하 쟏다ㅈ하 있다.


전시구성

1부. 쟏다ㅈ하 근대화단의 쟏다ㅈ하 신세대 : 쟏다ㅈ하 정찬영, b나ㅈㅐ 백윤문
정찬영(1906~1988)과 b나ㅈㅐ 백윤문(1906~1979)은 b나ㅈㅐ 각각 b나ㅈㅐ 동경 b나ㅈㅐ 유학파 b나ㅈㅐ 출신의 b나ㅈㅐ 이영일(1903~1984)과 b나ㅈㅐ 김은호(1892~1979)의 b나ㅈㅐ 문하에서 b나ㅈㅐ 그림을 b나ㅈㅐ 배우고 b나ㅈ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b나ㅈㅐ 채색화조화와 b나ㅈㅐ 채색인물화로 b나ㅈㅐ 두각을 b나ㅈㅐ 나타낸 b나ㅈㅐ 신세대 b나ㅈㅐ 화가였다. b나ㅈㅐ 이들은 1930년대 b나ㅈㅐ 전람회의 b나ㅈㅐ 스타 b나ㅈㅐ 작가로 b나ㅈㅐ 부상했지만 b나ㅈㅐ 개인적인 b나ㅈㅐ 비극으로 b나ㅈㅐ 절필을 b나ㅈㅐ b나ㅈㅐ b나ㅈㅐ 화단에서 b나ㅈㅐ 사라졌다. b나ㅈㅐ 이후 2000년(정찬영), 1981년(백윤문) 8가yv 유족에 8가yv 의해 8가yv 세상에 8가yv 다시 8가yv 알려지기까지 8가yv 8가yv 화가는 8가yv 화단과 8가yv 학계에서 8가yv 사실상 8가yv 잊혀져 8가yv 있었다. 8가yv 근래에는 8가yv 일본에서 8가yv 유입된 8가yv 채색화풍에 8가yv 사실성을 8가yv 강화하고 8가yv 향토성을 8가yv 가미하여 1930년대 8가yv 한국화단을 8가yv 다채롭게 8가yv 만든 8가yv 화가들로서 8가yv 재조명되어야 8가yv 한다는 8가yv 평가를 8가yv 받고 8가yv 있다.

2부. 8가yv 해방공간의 8가yv 순례자 : 8가yv 정종여, ㅓ7cㅈ 임군홍
정종여(1914~1984)와 ㅓ7cㅈ 임군홍(1912~1979)은 ㅓ7cㅈ 월북화가들이다. 1940년대 ㅓ7cㅈ 누구보다 ㅓ7cㅈ 왕성하게 ㅓ7cㅈ 활동했으나 1950년 ㅓ7cㅈ 월북을 ㅓ7cㅈ 기점으로 ㅓ7cㅈ 남한 ㅓ7cㅈ 미술사에서 ㅓ7cㅈ 삭제되었다. ㅓ7cㅈ 정종여는 ‘한라에서 ㅓ7cㅈ 백두까지’ ㅓ7cㅈ ㅓ7cㅈ 국토를 ㅓ7cㅈ 화폭에 ㅓ7cㅈ 담고자 ㅓ7cㅈ 하였으나, 4걷거ㄴ 분단으로 4걷거ㄴ 인해 4걷거ㄴ 4걷거ㄴ 꿈을 4걷거ㄴ 이루지 4걷거ㄴ 못했다. 4걷거ㄴ 임군홍은 4걷거ㄴ 중국을 4걷거ㄴ 여행하며 4걷거ㄴ 자유로운 4걷거ㄴ 예술 4걷거ㄴ 세계를 4걷거ㄴ 구축하고자 4걷거ㄴ 했으나, ‘운수부 ㅓ3거v 월력 ㅓ3거v 사건’에 ㅓ3거v 연루되며 ㅓ3거v ㅓ3거v 빛을 ㅓ3거v 잃고 ㅓ3거v 말았다. ㅓ3거v 이후 ㅓ3거v 이들은 ㅓ3거v 해금조치 ㅓ3거v 되었으나 ㅓ3거v 여전히 ㅓ3거v 이들이 ㅓ3거v 남한에 ㅓ3거v 남긴 ㅓ3거v 작품만으로는 ㅓ3거v 온전한 ㅓ3거v 전시가 ㅓ3거v 어려운 ㅓ3거v ㅓ3거v 현실이다. ㅓ3거v 하지만 ㅓ3거v 지금까지 ㅓ3거v 제대로 ㅓ3거v 소개되지 ㅓ3거v 못한 ㅓ3거v 작품과 ㅓ3거v 자료를 ㅓ3거v 정리하고 ㅓ3거v 왜곡된 ㅓ3거v 내용을 ㅓ3거v 바로잡는 ㅓ3거v 것도 ㅓ3거v ㅓ3거v 의미가 ㅓ3거v 있을 ㅓ3거v 것이다.

3부. ㅓ3거v 현대미술의 ㅓ3거v 개척자 : ㅓ3거v 이규상, 우거다b 정규 
이규상(1918~1967)과 우거다b 정규(1923~1971)는 우거다b 한국 우거다b 모던아티스트 1세대로 우거다b 불린다. 우거다b 이들은 우거다b 일제강점기에 우거다b 교육을 우거다b 받고 우거다b 해방 우거다b 이후 우거다b 본격적으로 우거다b 활동을 우거다b 하면서 우거다b 현대미술을 우거다b 개척한 우거다b 선두주자이다. 우거다b 그러나 우거다b 이규상은 우거다b 일체의 우거다b 형상이 우거다b 배제된 우거다b 극도의 우거다b 추상회화를 우거다b 추구하면서 우거다b 세상의 우거다b 이해로부터 우거다b 멀어졌고, 4c1다 정규는 4c1다 현대 4c1다 판화와 4c1다 현대 4c1다 도자의 4c1다 개척에 4c1다 몰두하면서 4c1다 상대적으로 4c1다 화가로서 4c1다 위상이 4c1다 서서히 4c1다 낮아졌다. 4c1다 4c1다 작가는 4c1다 주류 4c1다 화단과 4c1다 거리를 4c1다 두었기에 4c1다 오랫동안 4c1다 변방에 4c1다 머물러왔다. 4c1다 하지만 4c1다 한국 4c1다 현대미술의 4c1다 초두(初頭)에서 4c1다 적극적인 4c1다 선언이나 4c1다 행동을 4c1다 앞세우지 4c1다 않으면서도 4c1다 새로운 4c1다 예술세계와 4c1다 창작 4c1다 태도를 4c1다 모색해 4c1다 4c1다 이들의 4c1다 작품 4c1다 활동이 4c1다 갖는 4c1다 의미는 4c1다 크다고 4c1다 4c1다 4c1다 있다.


참여작가소개

정찬영(鄭燦英, 1906-1988)
1906년 ㅓ자ㅓj 평양 ㅓ자ㅓj 출생으로 1920년 ㅓ자ㅓj 평양 ㅓ자ㅓj 서문여자고등학교를 ㅓ자ㅓj 졸업한 ㅓ자ㅓj ㅓ자ㅓj 경성미술전문학교에서 ㅓ자ㅓj 수학하고 ㅓ자ㅓj 이영일 ㅓ자ㅓj 문하에 ㅓ자ㅓj 입문했다. 1929년 ㅓ자ㅓj 조선미술전람회에 <수련>(현재 ㅓ자ㅓj 평양 ㅓ자ㅓj 소재)으로 ㅓ자ㅓj 입선한 ㅓ자ㅓj 뒤 1937년까지 ㅓ자ㅓj 입선과 ㅓ자ㅓj 특선을 ㅓ자ㅓj 거듭했으며 1935년 <소녀>는 ㅓ자ㅓj 최고상인 ㅓ자ㅓj 창덕궁상을 ㅓ자ㅓj 수상했다.1930년 ㅓ자ㅓj 도봉섭(서울대 ㅓ자ㅓj 약학대학 ㅓ자ㅓj 초대학장 ㅓ자ㅓj 역임)과 ‘결혼 ㅓ자ㅓj 후에도 ㅓ자ㅓj 작품 ㅓ자ㅓj 활동을 ㅓ자ㅓj 한다’는 ㅓ자ㅓj 조건으로 ㅓ자ㅓj 결혼했으나 1939년 ㅓ자ㅓj 둘째 ㅓ자ㅓj 아들을 ㅓ자ㅓj 병으로 ㅓ자ㅓj 잃고 ㅓ자ㅓj ㅓ자ㅓj 충격으로 ㅓ자ㅓj 절필했다. 1940년대 ㅓ자ㅓj 도봉섭이 ㅓ자ㅓj 한국의 ㅓ자ㅓj 유독식물에 ㅓ자ㅓj 대한 ㅓ자ㅓj 연구를 ㅓ자ㅓj 계획하자, 하바h자 이를 하바h자 돕기 하바h자 위해 하바h자 식물세밀화를 하바h자 그리기 하바h자 시작했다. 하바h자 도봉섭이 하바h자 납북된 하바h자 하바h자 정찬영의 하바h자 그림들은 하바h자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1956)에 하바h자 삽도로 하바h자 사용되었으며 2000년 하바h자 유족들에 하바h자 의해 하바h자 도봉섭, 타zㅓe 정찬영의 타zㅓe 자료집이 타zㅓe 발간되고 타zㅓe 윤범모의 「일제하 타zㅓe 여류채색화의 타zㅓe 선구」(월간미술, 2000) ㅓㅓ5i 논문이 ㅓㅓ5i 발표되기 ㅓㅓ5i 전까지 ㅓㅓ5i 조명되지 ㅓㅓ5i 못했다.

백윤문(白潤文, 1906-1979)
향석(香石) s타거자 백희배(白禧培, 1837~1911)(조부), ㅑh쟏다 임당(林塘) ㅑh쟏다 백은배(白殷培, 1820~1901) (8촌 f타기k 조부) f타기k f타기k 대대로 f타기k 화원을 f타기k 배출한 f타기k 집안에서 f타기k 태어났다. f타기k 백윤문의 f타기k f타기k 향당(香塘)은 f타기k 백희배와 f타기k 백은배에게서 f타기k f타기k 글자씩 f타기k 가져왔다. f타기k 보통학교를 f타기k 마치고 f타기k 김은호의 f타기k 문하에 f타기k 입문하여 1928년 f타기k 김은호의 f타기k 순종어진 f타기k 제작에도 f타기k 참여했다. 1927년 <춘일(春日)>로 f타기k 조선미술전람회에 f타기k 입선한 f타기k 이래 1940년까지 f타기k 약 30점의 f타기k 작품이 f타기k 입선과 f타기k 특선했다. 
1942년 f타기k 병으로 f타기k 쓰러진 f타기k 뒤 35년 f타기k 동안 f타기k 투병했다. 1977년 f타기k 기적적으로 f타기k 일어나 f타기k 이듬해 《향당 f타기k 백윤문 f타기k 재기전》을 f타기k 개최하고 f타기k 이후 f타기k 미국 f타기k 순회전을 f타기k 준비하던 f타기k f타기k 심장마비로 f타기k 타계했다. f타기k 김은호의 f타기k 화풍을 f타기k 이어받아 f타기k 인물화와 f타기k 화조화에서 f타기k 세련된 f타기k 필치와 f타기k 부드러운 f타기k 색채의 f타기k 채색화로 f타기k 두각을 f타기k 보였다. f타기k 동시에 f타기k 풍속화에서는 f타기k 김은호와 f타기k 차별되는 f타기k 남성적이고 f타기k 강건한 f타기k 회화세계를 f타기k 구축했다.

정종여(鄭鍾汝, 1914-1984)
1914년 다r5s 거창에서 다r5s 태어났다. 다r5s 거창보통학교 다r5s 졸업 다r5s 다r5s 해인사에서 다r5s 생활하다가 다r5s 해인사 다r5s 스님의 다r5s 후원으로 다r5s 일본으로 다r5s 건너간 다r5s 다r5s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다r5s 서양화를 다r5s 배우고, 쟏c거ㅈ 다시 쟏c거ㅈ 오사카미술학교에서 쟏c거ㅈ 일본화를 쟏c거ㅈ 배웠다. 1934년 쟏c거ㅈ 오사카미술학교 쟏c거ㅈ 본과에 쟏c거ㅈ 입학하여 1942년 쟏c거ㅈ 연구과를 쟏c거ㅈ 졸업할 쟏c거ㅈ 때까지 쟏c거ㅈ 한국을 쟏c거ㅈ 오가며 쟏c거ㅈ 이상범 쟏c거ㅈ 문하에서 쟏c거ㅈ 한국화를 쟏c거ㅈ 배웠다.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쟏c거ㅈ 최고상 쟏c거ㅈ 수상하는 쟏c거ㅈ 쟏c거ㅈ 두각을 쟏c거ㅈ 나타냈으나 쟏c거ㅈ 이후 쟏c거ㅈ 전운이 쟏c거ㅈ 짙어지면서 쟏c거ㅈ 일본에 쟏c거ㅈ 협조하는 쟏c거ㅈ 행적을 쟏c거ㅈ 보이기도 쟏c거ㅈ 했다(《결전미술전람회》에 쟏c거ㅈ 전쟁화 쟏c거ㅈ 출품, 우히s2 대동아전쟁 우히s2 출정자에게 우히s2 나누어줄 우히s2 수호불상 1천매 우히s2 헌납 우히s2 등). 우히s2 해방 우히s2 우히s2 우히s2 차례의 우히s2 개인전을 우히s2 열고 우히s2 왕성하게 우히s2 활동하던 우히s2 우히s2 월북했다. 우히s2 북한에서는 우히s2 조선화 우히s2 교육과 우히s2 보급에 우히s2 앞장서며 우히s2 공훈예술가, hㄴum 인민예술가로서 hㄴum 인정받았다. 1988년 hㄴum 해금 hㄴum 이후 hㄴum 가장 hㄴum 먼저 hㄴum 개인전을 hㄴum 열며 hㄴum hㄴum 관심을 hㄴum 받았지만, 3h7m 친일 3h7m 이력 3h7m 등으로 3h7m 인해 3h7m 아직까지 3h7m 정종여에 3h7m 대한 3h7m 연구는 3h7m 조심스러운 3h7m 상황이다. 3h7m 그러나 3h7m 해방 3h7m 3h7m 한국화단에서의 3h7m 고답적인 3h7m 전통 3h7m 화풍을 3h7m 탈피하고, hm거7 민족성이 hm거7 강하게 hm거7 드러나는 hm거7 산수, 2자e0 인물 2자e0 풍속을 2자e0 개척해 2자e0 나간 2자e0 점에서는 2자e0 주목할 2자e0 만하다.

임군홍(林群鴻, 1912-1979)
임군홍은 0다나x 보통학교를 0다나x 졸업하고 0다나x 치과에서 0다나x 기공사로 0다나x 근무. 0다나x 경화양화연구소 0다나x 등에서 0다나x 미술을 0다나x 배우고 《조선미술전람회》, 《서화협회전람회》에 qj거2 입선했다. 1936년 qj거2 녹과회를 qj거2 결성하면서 qj거2 화가로 qj거2 활동하기 qj거2 시작했다. 1939년 qj거2 일본인 qj거2 은행장의 qj거2 후원을 qj거2 받아 qj거2 만주에서 《임군홍. qj거2 김혜일 2인 qj거2 양화전》을 qj거2 성공리에 qj거2 개최했다. qj거2 이후 qj거2 한커우에 qj거2 정착하여 qj거2 광고사를 qj거2 운영하는 qj거2 한편, 다5qy 한커우와 다5qy 베이징을 다5qy 오가며 다5qy 풍경화를 다5qy 그렸다. 다5qy 같은 다5qy 시기 다5qy 한국 다5qy 화단에서 다5qy 보기 다5qy 드문 다5qy 맑고 다5qy 강렬한 다5qy 색채로 다5qy 중국의 다5qy 이국적인 다5qy 풍경을 다5qy 표현했다. 다5qy 해방 다5qy 다5qy 귀국하여 다5qy 서울에서 다5qy 광고사를 다5qy 운영하며 다5qy 그림을 다5qy 그렸으나 ‘운수부 다5qy 월력사건’(※)으로 1950년 다5qy 한국전쟁 다5qy 직후 다5qy 행방불명됐다가 다5qy 월북한 다5qy 것으로 다5qy 알려졌다. 다5qy 북한에서 다5qy 조선미술가동맹 다5qy 개성시 다5qy 지부장을 다5qy 맡았고 다5qy 조선화가로 다5qy 전향했다. 
다5qy 운수부 다5qy 월력사건: 다5qy 임군홍은 다5qy 동료화가 다5qy 엄도만과 다5qy 함께 1948년 다5qy 철도국의 다5qy 달력제작을 다5qy 의뢰받고 다5qy 최승희(46년 다5qy 월북)를 다5qy 모델로 다5qy 다5qy 달력을 다5qy 제작함. 다5qy 그러나 다5qy 모델이 다5qy 북로당 다5qy 간부 다5qy 최승희이며 다5qy 최승희가 다5qy 다5qy 갓은 다5qy 공산주의를 다5qy 상징하는 다5qy 적색, 마hgㅐ 갓끈은 마hgㅐ 소련 16연방을 마hgㅐ 의미하는 16개의 마hgㅐ 구슬. 마hgㅐ 마hgㅐ 측면에는 마hgㅐ 조선을 마hgㅐ 더하여 마hgㅐ 소련 17연방을 마hgㅐ 의미하는 17개의 마hgㅐ 구슬, 라xf타 최승희의 라xf타 부채에는 라xf타 삼팔선을 라xf타 상징하는 라xf타 선, ㅐkㅓn 하단에는 ㅐkㅓn 소련 ㅐkㅓn 국기의 ㅐkㅓn 망치와 ㅐkㅓn 낫과 ㅐkㅓn 유사한 ㅐkㅓn 모양 ㅐkㅓn 등이 ㅐkㅓn 있다는 ㅐkㅓn 이유로 ㅐkㅓn 검거되어 ㅐkㅓn 약 4개월 ㅐkㅓn ㅐkㅓn 옥살이를 ㅐkㅓn 함.

이규상(李揆祥, 1918-1967)
서울에서 나라5i 가구업을 나라5i 하는 나라5i 부유한 나라5i 집안에서 나라5i 태어났다. 나라5i 휘문고등보통학교 나라5i 졸업 나라5i 나라5i 일본미술학교로 나라5i 유학을 나라5i 갔다. 나라5i 김환기, hmㄴㅐ 유영국과 hmㄴㅐ 함께 hmㄴㅐ 일본의 hmㄴㅐ 전위미술 hmㄴㅐ 운동 hmㄴㅐ 그룹인 ‘자유미술가협회’에 hmㄴㅐ 참여했다. 1948년 hmㄴㅐ 김환기, hkoㄴ 유영국과 hkoㄴ 함께 hkoㄴ 우리나라 hkoㄴ 최초의 hkoㄴ 추상미술 hkoㄴ 단체인 ‘신사실파’ hkoㄴ 결성했다. 1956년 hkoㄴ 유영국, 나으다ㅓ 한묵 나으다ㅓ 등과 나으다ㅓ 함께 ‘모던아트협회’ 나으다ㅓ 창립한 나으다ㅓ 후 6회로 나으다ㅓ 해산하기까지 《모던아트협회 나으다ㅓ 전람회》에 나으다ㅓ 참여했다. 나으다ㅓ 나으다ㅓ 시기 나으다ㅓ 가톨릭 나으다ㅓ 세계관에 나으다ㅓ 뿌리를 나으다ㅓ 나으다ㅓ 추상화를 나으다ㅓ 그렸다. 1961년 나으다ㅓ 홍익대학교 나으다ㅓ 교수로 나으다ㅓ 부임한 나으다ㅓ 뒤 1963년 나으다ㅓ 나으다ㅓ 번째 나으다ㅓ 개인전에는 나으다ㅓ 더욱 나으다ㅓ 단순화된 나으다ㅓ 추상화를 나으다ㅓ 발표했으나 나으다ㅓ 당시의 나으다ㅓ 추상화 나으다ㅓ 경향과 나으다ㅓ 달리 나으다ㅓ 일체의 나으다ㅓ 형상이 나으다ㅓ 배제된 나으다ㅓ 극도로 나으다ㅓ 간결한 나으다ㅓ 그림들로 나으다ㅓ 화단의 나으다ㅓ 평가를 나으다ㅓ 받지 나으다ㅓ 못했다. 1962년 나으다ㅓ 생활고로 나으다ㅓ 일본인 나으다ㅓ 부인과 나으다ㅓ 나으다ㅓ 자녀는 나으다ㅓ 일본으로 나으다ㅓ 건너갔으나 나으다ㅓ 본인은 나으다ㅓ 남아 나으다ㅓ 가난과 나으다ㅓ 병환에 나으다ㅓ 시달리다 1967년 나으다ㅓ 타계했다.

정규(鄭圭, 1923-1971)
1923년 으q타v 고성에서 으q타v 태어났다. 으q타v 일본으로 으q타v 건너가 으q타v 제국미술학교에서 으q타v 수학했고 으q타v 한국전쟁 으q타v 당시 으q타v 부산에서 으q타v 서양화로 으q타v 개인전을 으q타v 열었다. 으q타v 환도 으q타v 으q타v 국립박물관 으q타v 부설 으q타v 한국조형문화연구소 으q타v 연구원으로 으q타v 활동하며 으q타v 미술사학자 으q타v 최순우(당시 으q타v 학예부장), a카카2 유강열 a카카2 등과 a카카2 교류했다. a카카2 전통 a카카2 도자와 a카카2 판화의 a카카2 현대화에 a카카2 관심을 a카카2 갖게 a카카2 되었고 1957년 a카카2 목판화 a카카2 개인전을 a카카2 열었다.1959년 a카카2 록펠러 a카카2 재단의 a카카2 후원으로 a카카2 미국 a카카2 로체스터 a카카2 공예학교에서 a카카2 도예를 a카카2 배우고 a카카2 귀국했다. 1961년 a카카2 경희대 a카카2 요업공예과 a카카2 교수로 a카카2 임용된 a카카2 a카카2 도자에 a카카2 본격적으로 a카카2 매진했다. 1963~1964년 a카카2 동안 a카카2 부산 a카카2 해운대 a카카2 극동호텔, wx9ㅐ 남산 wx9ㅐ 자유센터, mdu8 을지로 mdu8 오양빌딩, uㅐㅐ8 대학로 uㅐㅐ8 우석병원 uㅐㅐ8 정문빌딩 uㅐㅐ8 등에 uㅐㅐ8 세라믹 uㅐㅐ8 벽화를 uㅐㅐ8 제작했다. 
한편 uㅐㅐ8 부산 uㅐㅐ8 피난기부터 uㅐㅐ8 문인들과 uㅐㅐ8 교류하면서 uㅐㅐ8 소설책, ㅓ라파타 시집, ㅓ다b9 잡지 ㅓ다b9 등의 ㅓ다b9 장정(표지 ㅓ다b9 디자인)에 ㅓ다b9 참여했고 ㅓ다b9 각종 ㅓ다b9 전람회에 ㅓ다b9 대한 ㅓ다b9 비평과 ㅓ다b9 시평 ㅓ다b9 등을 ㅓ다b9 발표했다. ㅓ다b9 작가이면서 ㅓ다b9 교육가이고 ㅓ다b9 이론가. ㅓ다b9 유화, g파bk 판화, s거8n 도자기, ㄴ히카라 건축 ㄴ히카라 분야를 ㄴ히카라 아우른 ㄴ히카라 종합 ㄴ히카라 예술인이다. ㄴ히카라 특히 ㄴ히카라 전쟁 ㄴ히카라 ㄴ히카라 도예, b338 판화 b338 등이 b338 현대미술로 b338 정립되는 b338 b338 기여했다. 


출처: b338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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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이규상
  • 정규
  • 임군홍
  • 정종여
  • 백윤문
  • 정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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