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는 2025년 6월 26일부터 7월 26일까지 기민정 작가와 김호정 작가의 2인 전시인 『가만히 그리고 비로소 담긴 것들: 레이어 위 레이어』을 개최합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스며들고, 비로소 쌓인다.
그렇게 한 겹 한 겹, 우리의 감정과 감각도 층을 이루며 흔적이 된다.’
시간, 감정, 감각은 비물질적이고 일시적이지만,분명히 물질의 표면 위에, 혹은 그 어딘가에 남아있다. 기민정(b.1986) 김호정(b.1988)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재료와 기술을 통해 감각과 시간의 물질화를 시도하지만, 이번 2인 전시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 또는 ‘그것들이 축적된 어떠한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기민정(b.1986) 한지와 먹, 유리와 에폭시를 결합하며 여백의 감각을 새롭게 탐색해온 작가로, 전통 동양화의 정서와 여성적 감수성을 동시대 조형언어로 확장시켜왔다. 그녀의 작업은 긋고, 오려내고, 스며들게 하는 일련의 수행적 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질료로서의 공기의 흔적, 몸의 리듬 등을 감각화한다. ‘그리는 회화’가 아니라 ‘남기는 회화’라 할 수 있으며, 이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자 동시대적 회화 실천의 확장이다.
김호정(b.1988) 작업은 도자라는 전통적 매체 위에 회화적 감각과 추상의 깊이를 실어 나르는 시도이다. 그녀는 도자의 표면을 캔버스처럼 다루되, 불과 안료, 시간과 촉각의 개입을 통해 촉각적 시각성(tactile vision)을 구현한다. 특히 파란색은 그녀 작업의 정서적 중심축으로, 하늘과 바다, 위로와 침잠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색채이다. 도자의 둥근 형상과 깊은 안료층은 기억과 감정의 층위를 품고 있으며, 반복적 제작 행위 속에 침전된 손의 감각은 도자의 표면 위에 시간의 결로 드러난다.
이 전시에서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레이어(layer)’라는 조형적 개념을 통해 감각의 축적을 시도한다. 한지의 결, 유리의 투과성, 도자의 표면 질감과 곡선은 모두 시간과 감정이 스며든 층으로 읽히며, 관람자는 그것을 시각적으로 인지함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촉각적으로도 경험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들 (한지, 유리, 도자) 모두 쉽게 파손되거나 변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재료적 연약함은 오히려 이들의 작업에 강한 감정적 밀도와 기억의 응집력을 부여한다. 깨지기 쉬운 물성이 오히려 감정의 깊이와 시간의 무게를 더 분명히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동시대 여성 작가들이 전통적 재료를 다루는 방식의 재정의이자, 약함을 통한 단단함의 역설적인 미학이다.
《가만히 그리고 비로소 담긴 것들: 레이어 위 레이어》는 두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구축해 온 감각의 지층들을 한 공간에 포개어 놓는다. 그것은 단지 조형 언어의 병치가 아니라,
감정이 쌓이고, 시간이 스며들며, 감각이 기억되는 ‘보이는 침전물’로서의 예술’에 대한 탐색이다.
참여작가: 기민정, 김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