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영 : The Light of a Combined Substance

갤러리도스

2020년 3월 25일 ~ 2020년 3월 31일

잘 보이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예술가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 그려내는 사물과 풍경은 타인의 눈에는 박제된 시간처럼 멈춰져 있기도 하다. 과거의 순간을 차갑게 재구성하기 보다는 그 당시에 개인이 느꼈던 감정들과 지난 이야기를 다시금 화면에 재현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발생하는 감정이 물감처럼 혼합되어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은 관객에게 있어 어렴풋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내용이라고 전달되지만 이미지에 적극 공감하고 화면속의 세계에 다가서기에는 모호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순간도 개개인에게 진정으로 편안히 다가오기 위해서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 이유를 고민해 볼 수 있다. 동시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일상이라 불리는 사건들은 온전히 개인적이라고 불리기에는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수치화된 시간과 좌표가 아닌 함께했던 소중한 이와의 사건과 감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재영의 그림은 정지되고 접근 불가능한 단절된 세계가 아니다. 또한 드라마틱하고 거창한 순간과 장소를 선보이지도 않는다. 평범하고 대단치 않은 장소와 순간이며 빈자리가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여기서 빈자리란 관람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유동적이고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살아있는 세계의 성질이다. 화면 속의 풍경은 구체적이지만 동시에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장소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체험이 아니더라도 공감하며 쉽게 다가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풍경 속에 보이는 인물들 역시 세밀하게 그려졌지만 인물의 정체와 행위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이동하며 무심하게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특정지어지지 않고 보편적인 이미지가 주는 분위기는 작품에 사용된 투명한 재료들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가벼운 무게감과 더불어 아이러니 하게도 화면을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작가는 표현에 있어서 자신이 그린 인물의 표정, 행동이나 장소가 제공하는 시각적 정보를 넘어서서 관객으로 하여금 거리에서 들리는 특별하지 않은 소음이나 굳이 인식하지 않았던 숨을 쉴 때 들어온 공기의 냄새와 온도까지도 재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수성재료와 색연필로 그려진 이미지에서 사람의 신체구조와 속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수많은 획들의 중첩이 느껴진다. 때로는 희미하게 보이는 표현은 언제든지 보기 편한 디지털화면으로 이루어진 사진첩이 아닌 오랜만에 우연히 꺼내보게 된 비닐사이에 끼워져 있는 인화된 사진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더 깊고 오래가는 울림을 지니고 있다.

작가가 그려낸 광경은 주인공 없이 조연들로만 이루어진 무대처럼 가득 채워진 장면이 아니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얼굴을 집어넣는 포토존처럼 화면 속에 자신이나 지인의 모습을 넣을 수 있다. 이는 각자의 경험과 기억이 어우러지며 공감대를 형성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길재영은 이번 전시를 통해 소셜 미디어와 행복 보여주기에 강박적으로 취하고 지쳐있는 오늘날의 관객에게 진정한 행복은 손바닥 위의 작은 화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갈지언정 자신의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이었음을 되새기게 한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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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길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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