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개인전 : Animato

갤러리가비

Dec. 7, 2019 ~ Dec. 27, 2019

작가노트

Space 1
작가는 ㅈ5걷사 어릴 ㅈ5걷사 ㅈ5걷사 바늘 ㅈ5걷사 머리의 ㅈ5걷사 조그만 ㅈ5걷사 구멍 ㅈ5걷사 속에 ㅈ5걷사 존재하는 ㅈ5걷사 ㅈ5걷사 다른 ㅈ5걷사 세상을 ㅈ5걷사 상상했다. ㅈ5걷사 ㅈ5걷사 속에 ㅈ5걷사 빠져들어 ㅈ5걷사 몽환을 ㅈ5걷사 꿈꾸고 ㅈ5걷사 그곳에는 ㅈ5걷사 ㅈ5걷사 다른 ㅈ5걷사 현실이 ㅈ5걷사 있었다. ㅈ5걷사 지금까지도 ㅈ5걷사 ㅈ5걷사 꿈에 ㅈ5걷사 대한 ㅈ5걷사 상상으로 ㅈ5걷사 ㅈ5걷사 세상을 ㅈ5걷사 벗어나 ㅈ5걷사 있을 ㅈ5걷사 때가 ㅈ5걷사 많다. ㅈ5걷사 우리의 ㅈ5걷사 일상들은 ㅈ5걷사 지루한 ㅈ5걷사 일들의 ㅈ5걷사 연속이며 ㅈ5걷사 구속받는 ㅈ5걷사 주위 ㅈ5걷사 환경에 ㅈ5걷사 의해 ㅈ5걷사 통제받거나 ㅈ5걷사 제한당하기 ㅈ5걷사 일쑤이다. ㅈ5걷사 사람들은 ㅈ5걷사 본인이 ㅈ5걷사 보지 ㅈ5걷사 않는 ㅈ5걷사 것, f4mt 생각하지 f4mt 않는 f4mt 것들에 f4mt 대해 f4mt 경계를 f4mt 만들고 f4mt 등을 f4mt 돌린다. f4mt 사물들은 f4mt 제각기 f4mt 자기의 f4mt 이야기들로 f4mt 가득 f4mt f4mt 있지만 f4mt f4mt 잠재성에 f4mt 대한 f4mt 씨앗은 f4mt 대리석에서 f4mt 정으로 f4mt 쪼아서 f4mt 조각상을 f4mt 찾아내는 f4mt 것보다 f4mt f4mt 힘들다. f4mt 살바도르 f4mt 달리가 f4mt 사용했던 PCM(Salvador Dali's Paranoid Critical Method)은 f4mt 극단적인 f4mt 사물에 f4mt 대한 f4mt 집착에 f4mt 의해 f4mt 사물이 f4mt 가지고 f4mt 있던 f4mt 잠재성들을 f4mt 캔버스 f4mt f4mt 또는 f4mt 조형에서 f4mt 찾아볼 f4mt f4mt 있게 f4mt 만들었다. f4mt f4mt 세상은 f4mt 우리가 f4mt 생각하는 f4mt 모든 f4mt 것들로 f4mt 서로 f4mt 연결되어 f4mt 있다. f4mt 경계를 f4mt 넘을 f4mt f4mt 있는 f4mt 것은 f4mt 물리적인 f4mt 사다리와 f4mt 같은 f4mt 현실의 f4mt 무엇이 f4mt 아니다. f4mt 대부분의 f4mt 욕망은 f4mt 보이지 f4mt 않는 f4mt 잉여의 f4mt 에너지로서, tㅓㅓㅓ 보이진 tㅓㅓㅓ 않지만 tㅓㅓㅓ 그것이 tㅓㅓㅓ 모여 tㅓㅓㅓ 일을 tㅓㅓㅓ 만들고 tㅓㅓㅓ 가치를 tㅓㅓㅓ 만들고 tㅓㅓㅓ 존재감을 tㅓㅓㅓ 이룬다. tㅓㅓㅓ 잉여의 tㅓㅓㅓ 욕망 tㅓㅓㅓ 발현을 tㅓㅓㅓ 통해 tㅓㅓㅓ 현실에 tㅓㅓㅓ tㅓㅓㅓ 매제를 tㅓㅓㅓ 만든다면 tㅓㅓㅓ tㅓㅓㅓ 경계를 tㅓㅓㅓ 뛰어넘어 tㅓㅓㅓ tㅓㅓㅓ 다른 tㅓㅓㅓ 세계와 tㅓㅓㅓ 공간으로 tㅓㅓㅓ 진입할 tㅓㅓㅓ tㅓㅓㅓ 있을 tㅓㅓㅓ 것이다. tㅓㅓㅓ 다시 tㅓㅓㅓ 말하면 tㅓㅓㅓ 잠재성으로 tㅓㅓㅓ 불리는 tㅓㅓㅓ 씨앗(에너지)에 tㅓㅓㅓ 욕망의 tㅓㅓㅓ 물을 tㅓㅓㅓ 주고 tㅓㅓㅓ 여러 tㅓㅓㅓ 가지 tㅓㅓㅓ 결과물 tㅓㅓㅓ 중에 tㅓㅓㅓ 적절한 tㅓㅓㅓ 것들을 tㅓㅓㅓ 극대화시킬 tㅓㅓㅓ tㅓㅓㅓ 있는 tㅓㅓㅓ 방법-자기 tㅓㅓㅓ 스스로의 tㅓㅓㅓ 집착과 tㅓㅓㅓ 발현의 tㅓㅓㅓ 반복으로 tㅓㅓㅓ 서로 tㅓㅓㅓ 다른 tㅓㅓㅓ 개체의 tㅓㅓㅓ 다양한 tㅓㅓㅓ 연결과 tㅓㅓㅓ 조합-을 tㅓㅓㅓ 통해 tㅓㅓㅓ 재미있는 tㅓㅓㅓ 것들을 tㅓㅓㅓ 만들어 tㅓㅓㅓ tㅓㅓㅓ tㅓㅓㅓ 있고 tㅓㅓㅓ 사물의 tㅓㅓㅓ 색다른 tㅓㅓㅓ 즐거움을 tㅓㅓㅓ 맛볼 tㅓㅓㅓ tㅓㅓㅓ 있을 tㅓㅓㅓ 것이다. tㅓㅓㅓ 로트레아몽의 ‘해부대 tㅓㅓㅓ 위에서 tㅓㅓㅓ 재봉틀과 tㅓㅓㅓ 우산’이 tㅓㅓㅓ 만나는 tㅓㅓㅓ 것처럼 tㅓㅓㅓ 불일치한 tㅓㅓㅓ 물성의 tㅓㅓㅓ 조합들이 tㅓㅓㅓ 잉여의 tㅓㅓㅓ 에너지와 tㅓㅓㅓ 욕망을 tㅓㅓㅓ 생성 tㅓㅓㅓ 창출하고 tㅓㅓㅓ 욕망의 tㅓㅓㅓ 집합체는 tㅓㅓㅓ 상상의 tㅓㅓㅓ 날개를 tㅓㅓㅓ 달고 tㅓㅓㅓ tㅓㅓㅓ 다른 tㅓㅓㅓ 세계로 tㅓㅓㅓ 날아갈 tㅓㅓㅓ tㅓㅓㅓ 있게 tㅓㅓㅓ 유도된다. tㅓㅓㅓ 내면에 tㅓㅓㅓ 잠재되어 tㅓㅓㅓ 있는 tㅓㅓㅓ 생각들이 tㅓㅓㅓ 의미를 tㅓㅓㅓ 갖고 tㅓㅓㅓ 형상화되는 tㅓㅓㅓ 것은 tㅓㅓㅓ tㅓㅓㅓ 어떤 tㅓㅓㅓ 것보다 tㅓㅓㅓ 좋은 tㅓㅓㅓ 작업이라고 tㅓㅓㅓ 생각한다. tㅓㅓㅓ 버려야 tㅓㅓㅓ tㅓㅓㅓ 사고와 tㅓㅓㅓ 흔적의 tㅓㅓㅓ 조합이 tㅓㅓㅓ 새로운 tㅓㅓㅓ 것을 tㅓㅓㅓ 만들 tㅓㅓㅓ tㅓㅓㅓ 있으리라 tㅓㅓㅓ 믿는다. tㅓㅓㅓ 수많은 tㅓㅓㅓ 사고의 tㅓㅓㅓ 파편들이 tㅓㅓㅓ 가늠할 tㅓㅓㅓ tㅓㅓㅓ 없는 tㅓㅓㅓ 결과물을 tㅓㅓㅓ 만들어내기 tㅓㅓㅓ 때문에 tㅓㅓㅓ tㅓㅓㅓ 가능성은 tㅓㅓㅓ 매우 tㅓㅓㅓ 신선하다. tㅓㅓㅓ 획일된 tㅓㅓㅓ 규범을 tㅓㅓㅓ 탈피하며 tㅓㅓㅓ 새로움을 tㅓㅓㅓ 추구한다. tㅓㅓㅓ 잠들어 tㅓㅓㅓ 숨겨져 tㅓㅓㅓ 있던 tㅓㅓㅓ 여린 tㅓㅓㅓ 사고의 tㅓㅓㅓ 실마리는 tㅓㅓㅓ tㅓㅓㅓ 흔적의 tㅓㅓㅓ 조합으로 tㅓㅓㅓ 만들어지는 tㅓㅓㅓ 예측 tㅓㅓㅓ 불가한 tㅓㅓㅓ 새로운 tㅓㅓㅓ 영역으로 tㅓㅓㅓ 이끌어 tㅓㅓㅓ tㅓㅓㅓ 것이다.

Space 2
공간이란 tㅓㅓㅓ 현실을 tㅓㅓㅓ 담아낸 tㅓㅓㅓ 미래가 tㅓㅓㅓ 된다.
그래서 tㅓㅓㅓ 항상 tㅓㅓㅓ 분주하고 tㅓㅓㅓ 바쁘다. tㅓㅓㅓ 어떻게 tㅓㅓㅓ 변할지 tㅓㅓㅓ 예상하지 tㅓㅓㅓ 못하기 tㅓㅓㅓ 때문이다.
다만 tㅓㅓㅓ 적응하며 tㅓㅓㅓ tㅓㅓㅓ 시간을 tㅓㅓㅓ 기다리는 tㅓㅓㅓ 것이다 tㅓㅓㅓ 어떤 tㅓㅓㅓ 실패도 tㅓㅓㅓ 용서될지 tㅓㅓㅓ 말지 tㅓㅓㅓ 고민도 tㅓㅓㅓ 없다.
항상 tㅓㅓㅓ 망치지 tㅓㅓㅓ 않은 tㅓㅓㅓ 자신의 tㅓㅓㅓ 적응력에 tㅓㅓㅓ 초점을 tㅓㅓㅓ 맞추기 tㅓㅓㅓ 때문이다.
이것은 tㅓㅓㅓ 망치질 tㅓㅓㅓ 않으리라 tㅓㅓㅓ 믿는 tㅓㅓㅓ 것이다. tㅓㅓㅓ 희망이 tㅓㅓㅓ 오히려 tㅓㅓㅓ 싹트는 tㅓㅓㅓ 것이지 tㅓㅓㅓ 싶다 tㅓㅓㅓ 만들어진 tㅓㅓㅓ 공간에 tㅓㅓㅓ 뿌리를 tㅓㅓㅓ 내리고 tㅓㅓㅓ 적응하고 tㅓㅓㅓ 생활의 tㅓㅓㅓ 연속성을 tㅓㅓㅓ 유지한다. tㅓㅓㅓ 어쩌면 tㅓㅓㅓ 그런 tㅓㅓㅓ 일상의 tㅓㅓㅓ 흐름이 tㅓㅓㅓ 공간에서 tㅓㅓㅓ 그의 tㅓㅓㅓ 생각의 tㅓㅓㅓ 틀을 tㅓㅓㅓ 일부 tㅓㅓㅓ 만든다.
존엄성은 tㅓㅓㅓ 공간에서 tㅓㅓㅓ 배양되는 tㅓㅓㅓ 것은 tㅓㅓㅓ 아닌지 tㅓㅓㅓ 추측해본다. tㅓㅓㅓ 어떤 tㅓㅓㅓ 타고난 tㅓㅓㅓ 자율성보다는 tㅓㅓㅓ 적응에서 tㅓㅓㅓ 생기는 tㅓㅓㅓ 존재감이 tㅓㅓㅓ 존엄성의 tㅓㅓㅓ 근간이 tㅓㅓㅓ tㅓㅓㅓ 것이라 tㅓㅓㅓ 믿는다. tㅓㅓㅓ 공간은 tㅓㅓㅓ tㅓㅓㅓ 순간을 tㅓㅓㅓ 담고 tㅓㅓㅓ 미래를 tㅓㅓㅓ 기다린다. tㅓㅓㅓ 가득 tㅓㅓㅓ 채우면 tㅓㅓㅓ 부담을 tㅓㅓㅓ 느끼고 tㅓㅓㅓ 부족하면 tㅓㅓㅓ 허전한 tㅓㅓㅓ 느낌이다 tㅓㅓㅓ 채우는 tㅓㅓㅓ 순간부터 tㅓㅓㅓ 괜히 tㅓㅓㅓ 간섭이 tㅓㅓㅓ 일어나고 tㅓㅓㅓ 자신의 tㅓㅓㅓ 마음을 tㅓㅓㅓ 흔든다. tㅓㅓㅓ 공간은 tㅓㅓㅓ 어떤 tㅓㅓㅓ 공간에도 tㅓㅓㅓ 망치질 tㅓㅓㅓ 않고 tㅓㅓㅓ 마음의 tㅓㅓㅓ 온도를 tㅓㅓㅓ 좌지우지할 tㅓㅓㅓ 뿐이다.
비어있어 tㅓㅓㅓ 공간이라 tㅓㅓㅓ 불리지만 tㅓㅓㅓ 존재감이 tㅓㅓㅓ 없고 tㅓㅓㅓ 비어있는 tㅓㅓㅓ 것이다. tㅓㅓㅓ 사물에 tㅓㅓㅓ 이름을 tㅓㅓㅓ 붙이고 tㅓㅓㅓ 부르는 tㅓㅓㅓ 순간 tㅓㅓㅓ 존재감이 tㅓㅓㅓ 생기고 tㅓㅓㅓ 스스로 tㅓㅓㅓ 생명력을 tㅓㅓㅓ 가지며 tㅓㅓㅓ 존엄성이 tㅓㅓㅓ 깃든다. tㅓㅓㅓ 반대로 tㅓㅓㅓ 공간을 tㅓㅓㅓ 가득 tㅓㅓㅓ 채우면 tㅓㅓㅓ 쓸모없는 tㅓㅓㅓ 것이 tㅓㅓㅓ 된다. tㅓㅓㅓ 망치지 tㅓㅓㅓ 않기 tㅓㅓㅓ 위해 tㅓㅓㅓ 비우고 tㅓㅓㅓ 쓰기 tㅓㅓㅓ 위해 tㅓㅓㅓ 채우는 tㅓㅓㅓ 행위를 tㅓㅓㅓ 반복한다. tㅓㅓㅓ 그래서 tㅓㅓㅓ 우리는 tㅓㅓㅓ 이것을 tㅓㅓㅓ 정의하지 tㅓㅓㅓ 않고 tㅓㅓㅓ 자연스럽게 tㅓㅓㅓ 둔다. tㅓㅓㅓ 본질을 tㅓㅓㅓ 그대로 tㅓㅓㅓ 두는 tㅓㅓㅓ 것이 tㅓㅓㅓ 가장 tㅓㅓㅓ 쓸모 tㅓㅓㅓ 있는 tㅓㅓㅓ 일인 tㅓㅓㅓ 것이다. tㅓㅓㅓ 이것이 tㅓㅓㅓ 망치질 tㅓㅓㅓ 않기 tㅓㅓㅓ 위해 tㅓㅓㅓ 본연 tㅓㅓㅓ 그대로의 tㅓㅓㅓ 성질을 tㅓㅓㅓ 보존하는 tㅓㅓㅓ 것에 tㅓㅓㅓ 초점을 tㅓㅓㅓ 맞추고 tㅓㅓㅓ 싶다. tㅓㅓㅓ 비워두지 tㅓㅓㅓ 않고 tㅓㅓㅓ 채우지도 tㅓㅓㅓ 않는 tㅓㅓㅓ tㅓㅓㅓ tㅓㅓㅓ 성질이 tㅓㅓㅓ 가지는 tㅓㅓㅓ 온도와 tㅓㅓㅓ tㅓㅓㅓ 모호한 tㅓㅓㅓ 성질의 tㅓㅓㅓ 온도로 tㅓㅓㅓ 채워진 tㅓㅓㅓ 공간이 tㅓㅓㅓ 있다. tㅓㅓㅓ 채워서 tㅓㅓㅓ 넘치지 tㅓㅓㅓ 않고 tㅓㅓㅓ 비워서 tㅓㅓㅓ 모자라지 tㅓㅓㅓ 않은 tㅓㅓㅓ 적절한 tㅓㅓㅓ 온도의 tㅓㅓㅓ 공간이 tㅓㅓㅓ 주는 tㅓㅓㅓ 편안함이 tㅓㅓㅓ 좋다.

출처: tㅓㅓㅓ 갤러리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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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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