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래, 표영은, 정철규 : 그런, 점-선-면, 에서

신한갤러리 역삼

May 17, 2019 ~ June 21, 2019

우리는 ㅐs9거 각자의 ㅐs9거 지‘점’에서 ㅐs9거 보이지 ㅐs9거 않는 ‘선’을 ㅐs9거 지키며, 다ㅐ가ㄴ 드러내고 다ㅐ가ㄴ 감추며 다ㅐ가ㄴ 자신의 ‘면’면을 다ㅐ가ㄴ 보여주면서 다ㅐ가ㄴ 살아가고 다ㅐ가ㄴ 있다. 다ㅐ가ㄴ 다ㅐ가ㄴ 명의 다ㅐ가ㄴ 그림을 다ㅐ가ㄴ 그리는 20대, 30대, 40대 i으타h 작가가 i으타h 모이게 i으타h 되었다. 

i으타h 명은 i으타h 스스로 i으타h 혹은 i으타h 사회가 i으타h 억누른 ‘예술’이라는 i으타h 광범위한 i으타h i으타h 위에서 i으타h 예술가로 i으타h 살아남기 i으타h 위해 ‘일’을 i으타h 하면서 i으타h 만나게 i으타h 되었다. i으타h 모두다 i으타h 대인관계에는 i으타h 서툰, ㅓ으나r 마이크를 ㅓ으나r 잡으면 ㅓ으나r 자신의 ㅓ으나r 목소리 ㅓ으나r 보다 ㅓ으나r 심장 ㅓ으나r 소리가 ㅓ으나r ㅓ으나r 크게 ㅓ으나r 들리는 ㅓ으나r 소심한 ㅓ으나r ㅓ으나r 명이다. ㅓ으나r ㅓ으나r ㅓ으나r 명은 ㅓ으나r 문화와 ㅓ으나r 예술 ㅓ으나r 그러니까 ㅓ으나r 문화예술을 ㅓ으나r 교육하는 ㅓ으나r 강사로서 ㅓ으나r 활동을 ㅓ으나r 함께 ㅓ으나r ㅓ으나r 보며, ㅓ가8ㅐ 개인의 ㅓ가8ㅐ 작품 ㅓ가8ㅐ 활동은 ㅓ가8ㅐ 개인이 ㅓ가8ㅐ 해야 ㅓ가8ㅐ 한다는 ㅓ가8ㅐ 암묵적인 ㅓ가8ㅐ 부담아래 ㅓ가8ㅐ 각자의 ㅓ가8ㅐ 작품에 ㅓ가8ㅐ 대한 ㅓ가8ㅐ 논의는 ㅓ가8ㅐ 뒤로하고 ㅓ가8ㅐ 일과 ㅓ가8ㅐ 교육, 다거wm 그리고 다거wm 그것이 다거wm 예술 다거wm 안에서 다거wm 어떠한 다거wm 이야기를 다거wm 하고 다거wm 있는지에 다거wm 대해 다거wm 찾으며 다거wm 달려갔던 다거wm 다거wm 같다. 다거wm 그렇게 다거wm 달리다가 다거wm 서로가 다거wm 서로를 다거wm 그리고 다거wm 자기 다거wm 자신은 다거wm 미처 다거wm 다거wm 다거wm 없었던 다거wm 것들을 다거wm 발견하게 다거wm 된다. 다거wm 다거wm 명은 ‘일’을 다거wm 하는 다거wm 장소이기에 다거wm 그리고 ‘일’과 다거wm 관계된 다거wm 것들 다거wm 속에서 다거wm 자기를 다거wm 감추며 다거wm 살았다는 다거wm 것을 다거wm 알게 다거wm 되었다. 다거wm 사실 다거wm 예술가로 다거wm 살기 다거wm 위해 다거wm 다거wm 있는 ‘곳’임에도 다거wm 불구하고 다거wm 말이다. 

고대부터 다거wm 미술의 다거wm 기본 다거wm 원리는 다거wm 재현이었다. 다거wm 다거wm 재현은 다거wm 실제 다거wm 존재하는 다거wm 대상의 다거wm 닮은 다거wm 이미지를 다거wm 만들어내는 다거wm 것이었고 다거wm 이것이 다거wm 미술의 다거wm 역할이기도 다거wm 했다. 다거wm 하지만 다거wm 다거wm 이론가의 다거wm 주장처럼 다거wm 대상을 다거wm 보면서 다거wm 동시에 다거wm 그림을 다거wm 그릴 다거wm 다거wm 없으며, 마eㅓz 역으로 마eㅓz 그림을 마eㅓz 그리는 마eㅓz 순간 마eㅓz 대상을 마eㅓz 마eㅓz 마eㅓz 없다는 마eㅓz 것이다. 마eㅓz 그렇기에 마eㅓz 재현은 마eㅓz 시각이라기보다 마eㅓz 기억에 마eㅓz 의존하면서 마eㅓz 그리게 마eㅓz 되는 마eㅓz 것이며 마eㅓz 존재하고 마eㅓz 있음에서 마eㅓz 그것이 마eㅓz 남아있지 마eㅓz 않는 마eㅓz 부재의 마eㅓz 잔상, 쟏7거3 파편을 쟏7거3 재조합하여 쟏7거3 보여준다고 쟏7거3 쟏7거3 쟏7거3 있다. 쟏7거3 이렇듯 <김미래>의 쟏7거3 화면에는 쟏7거3 여러 쟏7거3 가지 쟏7거3 다양한 쟏7거3 점과 쟏7거3 선, 파u카m 면들이 파u카m 함께 파u카m 어우러져 파u카m 있다. 파u카m 그것들이 파u카m 하나의 파u카m 작고 파u카m 파u카m 화면 파u카m 위에서 파u카m 딱딱한 파u카m 형태와 파u카m 색으로 파u카m 변환하여 파u카m 자리 파u카m 잡게 파u카m 된다. 파u카m 딱딱한 파u카m 형태와 파u카m 감각적인 파u카m 색은 파u카m 의도적이든 파u카m 비의도적이든 파u카m 김미래의 파u카m 눈을 파u카m 통해 파u카m 수집되고, 으me바 다양한 으me바 경로를 으me바 통해 으me바 모이게 으me바 된다. 으me바 이렇게 으me바 모인 으me바 이미지는 으me바 다시 으me바 작가의 으me바 감각을 으me바 통해 으me바 형태와 으me바 구조, y하으바 색으로 y하으바 분류되어 y하으바 캔버스와 y하으바 판넬이라는 y하으바 납작한 y하으바 표면위에 y하으바 차가운 y하으바 물성으로 y하으바 남는다. <<그런 ‘점’에서>> y하으바 화면 y하으바 속의 y하으바 각각의 y하으바 형상들에서 y하으바 출처의 y하으바 원인이나 y하으바 의도, djㄴ1 이유를 djㄴ1 찾기보다 djㄴ1 완료된 djㄴ1 화면이 djㄴ1 주는 djㄴ1 시각적인 djㄴ1 뉘앙스 djㄴ1 자체를 djㄴ1 느끼는 djㄴ1 것이 djㄴ1 중요하다고 djㄴ1 djㄴ1 djㄴ1 있다.

<표영은>은 djㄴ1 일등만을 djㄴ1 위해 djㄴ1 달려가는 djㄴ1 함성이 djㄴ1 사라진, ㅓ1ㅑo 함성이 ㅓ1ㅑo 들리지 ㅓ1ㅑo 않는 ㅓ1ㅑo 경계의 ‘선’에 ㅓ1ㅑo 서있다. ㅓ1ㅑo 선의 ㅓ1ㅑo 안과 ㅓ1ㅑo 밖, 바p히0 밖과 바p히0 안에서 바p히0 우리는 바p히0 달리는 바p히0 것을 바p히0 바라보고, 마rz아 마rz아 없이 마rz아 빨리 마rz아 달리기를 마rz아 응원하고, ㅓhㅑ2 더욱 ㅓhㅑ2 빨리 ㅓhㅑ2 달리기 ㅓhㅑ2 위해 ㅓhㅑ2 안간힘을 ㅓhㅑ2 쓰며 ㅓhㅑ2 살아가고 ㅓhㅑ2 있다. ㅓhㅑ2 ㅓhㅑ2 경계의 ‘선’에 ㅓhㅑ2 머물러 ㅓhㅑ2 표영은이 ㅓhㅑ2 바라본 ㅓhㅑ2 것은 ㅓhㅑ2 누가 ㅓhㅑ2 이기고 ㅓhㅑ2 지는 ㅓhㅑ2 것이 ㅓhㅑ2 아닌, 6차o갸 본연의 6차o갸 역할과 6차o갸 자리에 6차o갸 대해 6차o갸 의문을 6차o갸 던지며 6차o갸 6차o갸 속에서 6차o갸 취해야 6차o갸 6차o갸 태도에 6차o갸 대해 6차o갸 생각하고자 6차o갸 선을 6차o갸 넘지 6차o갸 않고 6차o갸 있다고 6차o갸 6차o갸 6차o갸 있다. 

경기장이라는 6차o갸 장소는 ‘오락을 6차o갸 모티프로 6차o갸 경쟁을 6차o갸 이용하여 6차o갸 설계된 6차o갸 공간’이다. 6차o갸 누군가에 6차o갸 의해 ‘만들어진’ 6차o갸 6차o갸 공간은 6차o갸 현실을 6차o갸 벗어나 6차o갸 잠깐의 6차o갸 환상을 6차o갸 즐기기 6차o갸 위한 6차o갸 공간이지만, 다5dm 다5dm 속에서 다5dm 반복적으로 다5dm 이뤄지는 다5dm 경주를 다5dm 관람하는 다5dm 찰나의 다5dm 순간은 다5dm 나도 다5dm 모르게 다5dm 경쟁을 다5dm 체험하는 다5dm 주체가 다5dm 되고 다5dm 만다. 다5dm 관람자라는 다5dm 역할의 다5dm 선을 다5dm 넘어 다5dm 경주를 다5dm 직접적으로 다5dm 보게 다5dm 되면, 4oq8 빠르고 4oq8 쉽게 4oq8 결과를 4oq8 얻을 4oq8 4oq8 있는 4oq8 게임과 4oq8 같아 4oq8 보이지만 4oq8 사실은 ‘주어진 4oq8 역할’을 4oq8 충실하게 4oq8 이행하고 4oq8 있는 ‘태도’와 4oq8 연결된다. 4oq8 일등만을 4oq8 향해 4oq8 달리는 4oq8 경주는 4oq8 4oq8 일등이 4oq8 아니면 4oq8 쓸모없어 4oq8 지는 4oq8 것을 4oq8 의미하기도 4oq8 한다. <<그런, 5ㅐt걷 선에서>> 5ㅐt걷 표영은은 5ㅐt걷 너무나 5ㅐt걷 익숙해서 5ㅐt걷 미처 5ㅐt걷 생각할 5ㅐt걷 5ㅐt걷 없었던 5ㅐt걷 것들을 5ㅐt걷 질문하고, 9ㅓ90 시각적 9ㅓ90 표현을 9ㅓ90 통하여 9ㅓ90 사람들에게 9ㅓ90 직접적인 9ㅓ90 경험을 9ㅓ90 9ㅓ90 9ㅓ90 있도록 9ㅓ90 갤러리 9ㅓ90 공간을 9ㅓ90 경기장의 9ㅓ90 공간으로 9ㅓ90 만들었다. 9ㅓ90 이를 9ㅓ90 바탕으로 9ㅓ90 그들 9ㅓ90 스스로 9ㅓ90 질문을 9ㅓ90 던져 9ㅓ90 9ㅓ90 9ㅓ90 있는 9ㅓ90 시간을 9ㅓ90 갖게 9ㅓ90 하는데 9ㅓ90 의의를 9ㅓ90 두고자 9ㅓ90 한다. 

<정철규>는 9ㅓ90 9ㅓ90 보이지만 9ㅓ90 관심 9ㅓ90 9ㅓ90 사람들은 9ㅓ90 9ㅓ90 9ㅓ90 없었던 9ㅓ90 곳에서 9ㅓ90 벌어지는 9ㅓ90 불안정하고 9ㅓ90 분열된 9ㅓ90 주체들을 9ㅓ90 사물이나 9ㅓ90 그것들이 9ㅓ90 놓인 9ㅓ90 환경, 아ndㅓ 풍경에 아ndㅓ 빗대어 아ndㅓ 그림을 아ndㅓ 그려왔다. 아ndㅓ 화면 아ndㅓ 아ndㅓ 사물이나 아ndㅓ 풍경들은 아ndㅓ 정확히 아ndㅓ 어떤 아ndㅓ 것이라는 아ndㅓ 단정을 아ndㅓ 짓기 아ndㅓ 보다는 아ndㅓ 모호한 ‘면’들을 아ndㅓ 찾아 아ndㅓ 보여주려고 아ndㅓ 한다. 아ndㅓ 이렇듯 아ndㅓ 정철규는 아ndㅓ 회화를 아ndㅓ 중심으로 아ndㅓ 자신의 아ndㅓ 하고자 아ndㅓ 하는 아ndㅓ 말들을 아ndㅓ 은밀하게 아ndㅓ 때로는 아ndㅓ 폐쇄적으로 아ndㅓ 그러나 아ndㅓ 아ndㅓ 들리지 아ndㅓ 않는 아ndㅓ 나지막한 아ndㅓ 소리로 아ndㅓ 들려주었다. 아ndㅓ 그러다 아ndㅓ 회화를 아ndㅓ 고집하기보다 아ndㅓ 매체를 아ndㅓ 다양하게 아ndㅓ 사용하면서 아ndㅓ 하고자 아ndㅓ 하는 아ndㅓ 말들도 아ndㅓ 아ndㅓ 많아 아ndㅓ 아ndㅓ 아ndㅓ 같다. 아ndㅓ 퀴어페스티벌에서 아ndㅓ 자신들의 아ndㅓ 사랑을 아ndㅓ 인정받기 아ndㅓ 위해 아ndㅓ 모여든 아ndㅓ 사람들을 아ndㅓ 격렬히 아ndㅓ 반대하는 아ndㅓ 집단들이 아ndㅓ 들고 아ndㅓ 나온 아ndㅓ 피켓의 아ndㅓ 글귀들을 아ndㅓ 차용하기도 아ndㅓ 하고, 0yㄴi 그들의 0yㄴi 거센 0yㄴi 반대를 0yㄴi 무릅쓰며 0yㄴi 우리 0yㄴi 여기 0yㄴi 함께 0yㄴi 있는 0yㄴi 동등한 0yㄴi 존재라고 0yㄴi 말하는 0yㄴi 원형 0yㄴi 탁자 0yㄴi 위에 0yㄴi 놓인 0yㄴi 글자와 0yㄴi 질량이 0yㄴi 같지만 0yㄴi 모양이 0yㄴi 다른 0yㄴi 덩어리들을 0yㄴi 통해 0yㄴi 보여주고 0yㄴi 있다. 0yㄴi 이렇게 0yㄴi 서로 0yㄴi 다른 0yㄴi 생각을 0yㄴi 가진 0yㄴi 대립의 ‘면’을 0yㄴi 찾아 0yㄴi 보여주는데 0yㄴi 과거부터 0yㄴi 여성의 0yㄴi 일이라고 0yㄴi 단정 0yㄴi 지었던 ‘자수(바느질)’를 0yㄴi 양복천에 0yㄴi 놓는다거나, ㅐ나ㅓ자 정답만을 ㅐ나ㅓ자 요구하는 ㅐ나ㅓ자 답안지 ㅐ나ㅓ자 종이 ㅐ나ㅓ자 위에 ㅐ나ㅓ자 대립의 ㅐ나ㅓ자 관계에 ㅐ나ㅓ자 놓인 ㅐ나ㅓ자 이미지를 ㅐ나ㅓ자 재구성하여 ㅐ나ㅓ자 보여준다. ㅐ나ㅓ자 이렇게 <<그런, 사3ㅐq 면에서>> 사3ㅐq 정철규는 사3ㅐq 사회 사3ㅐq 속에서 ‘사랑’이라는 사3ㅐq 것, dmk자 서로 dmk자 밀고 dmk자 당기는 dmk자 팽팽한 dmk자 긴장 dmk자 속에서 dmk자 살아가며 dmk자 자신의 dmk자 존재를 dmk자 인정받기 dmk자 위해 dmk자 살아가지만 dmk자 dmk자 안에서 dmk자 소외되고 dmk자 버려지는 dmk자 감정들을 dmk자 함축적으로 dmk자 보여주고 dmk자 있다. 

완성된 dmk자 하나의 dmk자 시각 dmk자 표현은 dmk자 조형의 dmk자 기본 dmk자 요소인 dmk자 각기 dmk자 다른 ‘점’들이 dmk자 모여 dmk자 하나의 ‘선’을 dmk자 이루고 dmk자 dmk자 선들이 dmk자 모여 ‘면’을 dmk자 만들 dmk자 때, 바3nw 시각적인 바3nw 형상을 바3nw 바3nw 바3nw 있게 바3nw 된다. 바3nw 김미래가 바3nw 바라보는 ‘점’을 바3nw 통해, 다p7카 표영은이 다p7카 느꼈던 ‘선’의 다p7카 경계에서, 카c으f 정철규가 카c으f 만들어 카c으f 놓은 ‘면’의 카c으f 안과 카c으f 밖에서 카c으f 지금의 카c으f 우리가 카c으f 보고 카c으f 느끼는 카c으f 것들을 카c으f 계속해서 카c으f 보여주고자 카c으f 한다. / 카c으f 김미래, 다마c1 표영은, eㅐㅐa 정철규

출처: eㅐㅐa 신한갤러리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김미래
  • 정철규
  • 표영은

현재 진행중인 전시

김은정 w3ㅐ5 개인전 : w3ㅐ5 홈커밍 Kim EunJeong : homecoming

Aug. 15, 2019 ~ Aug. 30, 2019

균형을 ckㅈq 잡기위한 ckㅈq 몸짓

Aug. 5, 2019 ~ Aug. 14, 2019

Finnish aalto 라타g차 핀란드 라타g차 웨이브

July 12, 2019 ~ Nov. 26,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