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개인전 : 모산 모산 모산 (Kim) Beomjun : MoSAN (某山,母山,茅山)

통의동 보안여관

Sept. 12, 2019 ~ Oct. 3, 2019

“모산은 rb다z 아무개 rb다z 산(某山)이며 rb다z 어머니 rb다z 산(母山)이고 rb다z 어머니의 rb다z 고향(茅山)이다.”

모산은 rb다z 결코 rb다z 하나의 rb다z 이름으로 rb다z 수렴될 rb다z rb다z 없기 rb다z 때문에, 라하a4 이번 라하a4 전시의 라하a4 제목은 라하a4 자연스럽게도 《모산 라하a4 모산 라하a4 모산》이 라하a4 되었다. 라하a4 작가의 라하a4 설명에서처럼 라하a4 모산은 “아무개 라하a4 산(某山)이며 라하a4 어머니 라하a4 산(母山)이고 라하a4 어머니의 라하a4 고향(茅山)”이다. 라하a4 그런데 라하a4 보안여관 라하a4 건물의 라하a4 라하a4 라하a4 벽을 라하a4 장악하고 라하a4 있는 ‘모산’을 라하a4 찬찬히 라하a4 바라보면 라하a4 볼수록 라하a4 이상하게도 라하a4 지금껏 라하a4 우리의 라하a4 눈앞에서 라하a4 거대한 라하a4 모습으로 라하a4 재현되던 라하a4 이른바 ‘숭고’한 라하a4 작품들, ㅓ9a바 기이해 ㅓ9a바 보이는 ㅓ9a바 존재들에게서 ㅓ9a바 필연적으로 ㅓ9a바 내재되어 ㅓ9a바 있던 ㅓ9a바 으스스함은 ㅓ9a바 감지되지 ㅓ9a바 않는다. ㅓ9a바 지금까지 ‘익숙한 ㅓ9a바 낯섦(uncanny/umheimlich)’ ㅓ9a바 효과를 ㅓ9a바 창출해내기 ㅓ9a바 위해서 ㅓ9a바 예술작품은 ㅓ9a바 반드시 ㅓ9a바 기이하면서도 ㅓ9a바 으스스해야만 ㅓ9a바 했다. ㅓ9a바 그런데 ㅓ9a바 작가는 ㅓ9a바 자신의 ㅓ9a바 몸을 ㅓ9a바 사용하여 20m가 ㅓ9a바 넘는 ㅓ9a바 거대한 ㅓ9a바 ㅓ9a바 위를 ㅓ9a바 진지하게 ㅓ9a바 오르내리면서 ㅓ9a바 오로지 ㅓ9a바 먹과 ㅓ9a바 물만을 ㅓ9a바 이용하여 ㅓ9a바 ㅓ9a바 겹, n쟏te n쟏te n쟏te 겹쳐나가면서 n쟏te 숨겨져 n쟏te 있던 n쟏te 모산의 n쟏te 모습을 n쟏te 드러내보였다. n쟏te 분명 n쟏te 엄격하게 n쟏te 작업을 n쟏te 진행해나갔음에도 n쟏te 불구하고 n쟏te 어딘가 n쟏te 모르게 n쟏te 기존 n쟏te 예술작품의 n쟏te 작동원리를 n쟏te 은근슬쩍 n쟏te 거부하고 n쟏te 있는 n쟏te n쟏te 같다. n쟏te 형식은 n쟏te 엄격해보이나 n쟏te 모산이 n쟏te 품고 n쟏te 있는 n쟏te 내용은 n쟏te 관람객이 n쟏te 전시장 n쟏te 안에서 n쟏te 유리창 n쟏te 너머를 n쟏te 바라보면 n쟏te 볼수록 n쟏te 이상하리만큼 n쟏te 퍽이나 n쟏te 귀엽고도 n쟏te 정다워 n쟏te 보인다. n쟏te 그것은 n쟏te 모산의 n쟏te 형상이 n쟏te 어딘가 n쟏te 능청스러워 n쟏te 보이는 n쟏te 은근한 n쟏te 분홍빛으로 n쟏te 물들어서일까? n쟏te 아니면 n쟏te 산을 n쟏te 구성하는 n쟏te 완만한 n쟏te 곡선 n쟏te 때문에 n쟏te 어느 n쟏te n쟏te 군데도 n쟏te 모나지 n쟏te 않아 n쟏te 보이기 n쟏te 때문일까? n쟏te 기이함과 n쟏te 으스스함이 n쟏te 동시에 n쟏te 작동되는 n쟏te 기존의 ‘익숙한 n쟏te 낯섦’, kㅓ우5 이른바 kㅓ우5 언캐니함마저 kㅓ우5 거부해버린 kㅓ우5 모산. kㅓ우5 어딘가 kㅓ우5 모르게 kㅓ우5 귀엽고도 kㅓ우5 어리숙해 kㅓ우5 보이는 kㅓ우5 핑크 kㅓ우5 빛의 kㅓ우5 존재를 kㅓ우5 바라보는 kㅓ우5 것은 kㅓ우5 수동적인 kㅓ우5 시각체계를 kㅓ우5 벗어나려는 kㅓ우5 관람객의 kㅓ우5 능동적인 kㅓ우5 행위, 자4bk 이를테면 자4bk 기존의 자4bk 미술사에서의 ‘퍼포먼스’ 자4bk 작업에 자4bk 가까워 자4bk 보인다.

<모산>을 자4bk 경험한다는 자4bk 것은 자4bk 이름 자4bk 없는 ‘아무개의 자4bk 산’인 ‘모산(某山)’을 자4bk 바라보는 자4bk 것이면서 자4bk 동시에 ‘나’라는 자4bk 존재가 자4bk 이 ‘세계’를 자4bk 대면할 자4bk 자4bk 있도록 자4bk 나와 자4bk 세계를 자4bk 매개시켜주었던 ‘어머니의 자4bk 존재(母山)’를 자4bk 떠오르게 자4bk 해주면서 자4bk 이제는 자4bk 자4bk 이상 자4bk 익숙하지 자4bk 않은 자4bk 어머니의 자4bk 떠나온 자4bk 고향(전라북도 자4bk 부안군 자4bk 모산리)을 자4bk 반추해보는 자4bk 행위이다. 자4bk 자4bk 전시장의 자4bk 중앙에 자4bk 위치하고 자4bk 있는 “바닥모산- 자4bk 모산의 자4bk 정상”을 자4bk 오르내리는 자4bk 관람객들의 자4bk 신체는 자4bk 단순히 자4bk 이곳에서 자4bk 저곳으로 자4bk 몸을 자4bk 옮기는 자4bk 행위를 자4bk 넘어서서 자4bk 잊혀진 자4bk 생각, ri2a 망각된 ri2a 이름들을 ‘지금, 기ㅈ8s 그리고 기ㅈ8s 여기’라는 기ㅈ8s 현재의 기ㅈ8s 시공간으로 기ㅈ8s 다시 기ㅈ8s 소환해내려는 기ㅈ8s 움직임이기도하다. 기ㅈ8s 현재를 기ㅈ8s 조망하는 기ㅈ8s 시야가 기ㅈ8s 넓어질수록 기ㅈ8s 우리가 기ㅈ8s 지나온 기ㅈ8s 시간은 기ㅈ8s 매순간 기ㅈ8s 새롭게 기ㅈ8s 기ㅈ8s 세계의 기ㅈ8s 지평 기ㅈ8s 위에서 기ㅈ8s 기ㅈ8s 다시 기ㅈ8s 열려지게 기ㅈ8s 기ㅈ8s 것이다. 기ㅈ8s 우리가 기ㅈ8s 산을 기ㅈ8s 오를 기ㅈ8s 기ㅈ8s 깊은 기ㅈ8s 골짜기 기ㅈ8s 속에서 기ㅈ8s 보는 기ㅈ8s 풍경과 기ㅈ8s 산의 기ㅈ8s 가장 기ㅈ8s 높은 기ㅈ8s 곳에서 기ㅈ8s 보여지는 기ㅈ8s 풍경들 기ㅈ8s 사이에서 ‘위계’라는 기ㅈ8s 것은 기ㅈ8s 존재할 기ㅈ8s 기ㅈ8s 없다. 기ㅈ8s 그보다는 <첩첩산중>에서처럼 기ㅈ8s 수많은 기ㅈ8s 존재들의 기ㅈ8s 겹쳐짐, 거u차6 무수한 거u차6 레이어 거u차6 사이에서의 거u차6 일렁임만 거u차6 파악될 거u차6 거u차6 있을 거u차6 뿐이다. 거u차6 산을 거u차6 오르내리면서 거u차6 깨닫게 거u차6 되는 거u차6 것은 거u차6 우리가 거u차6 거u차6 정상에 거u차6 올라가서 거u차6 보는 거u차6 풍경이 거u차6 가장 거u차6 으뜸이고, ㅑㅓ쟏타 ㅑㅓ쟏타 중턱에서 ㅑㅓ쟏타 바라보는 ㅑㅓ쟏타 세계가 ㅑㅓ쟏타 ㅑㅓ쟏타 번째이고, wv6거 깊은 wv6거 계곡 wv6거 속에서 wv6거 마주치는 wv6거 풍경을 wv6거 wv6거 번째라고 wv6거 규정할 wv6거 wv6거 없다는 wv6거 점이다. wv6거 규정내리기, x다k1 판단하기 x다k1 등을 x다k1 가능케하는 x다k1 것은 x다k1 인위적인 x다k1 잣대와 x다k1 주어진 x다k1 기준이다. x다k1 주어진 x다k1 기준으로 x다k1 기록된 x다k1 역사가 x다k1 만들어진 x다k1 역사임을 x다k1 알게 x다k1 되는 x다k1 순간 x다k1 기존의 x다k1 역사에서 x다k1 가치를 x다k1 부여받지 x다k1 못한 x다k1 것들의 x다k1 이야기를 x다k1 복원시킬 x다k1 x다k1 있을 x다k1 것이다. x다k1 그렇다면 (김)범준의 x다k1 작업은 x다k1 미메시스를 x다k1 극복한 x다k1 재담꾼의 x다k1 이야기하기로 x다k1 x다k1 x다k1 있지 x다k1 않을까? x다k1 이제 x다k1 시각적 x다k1 평등은 x다k1 상실을 x다k1 대신하여 x다k1 새로운 x다k1 이야기 x다k1 속에 x다k1 새겨질 x다k1 것이다. x다k1 그렇다면 (김)범준의 x다k1 작업을 x다k1 통해 x다k1 전시장의 x다k1 관람객은 x다k1 산을 x다k1 오르내리면서, t우ㅓe 혹은 t우ㅓe 산을 t우ㅓe 바라보면서 t우ㅓe 각각의 t우ㅓe 높이에서 t우ㅓe 발견되는 t우ㅓe 풍경들의 ‘잠재성’을 t우ㅓe 파악하는 t우ㅓe 순간 ‘다른 t우ㅓe 눈’, ‘다른 ㅐ바우a 귀’, yw9r 그리고 yw9r 이전과는 ‘다른 yw9r 촉각’을 yw9r 감각할 yw9r yw9r 있지 yw9r 않을까? yw9r 이제 yw9r 모든 yw9r 감각을 yw9r 동원해서 yw9r 눈으로 yw9r 걸어보자. yw9r yw9r 위로도 yw9r 올라가 yw9r 보고, eㅐ사ㅐ 감각을 eㅐ사ㅐ 상승시켜보기도 eㅐ사ㅐ 하고, 70ㅓ타 그리고 70ㅓ타 다시 70ㅓ타 조용히 70ㅓ타 내려가 70ㅓ타 보자. 70ㅓ타 이번 70ㅓ타 전시를 70ㅓ타 구성하고 70ㅓ타 있는 70ㅓ타 설치/영상/회화 70ㅓ타 작업들을 70ㅓ타 더듬거리면서, 다4ㅓ타 다4ㅓ타 전시장을 다4ㅓ타 배회할수록, 걷0우m 시야가 걷0우m 달라질수록 걷0우m 세계를 걷0우m 바라보는 걷0우m 우리의 걷0우m 조망이 걷0우m 서서히 걷0우m 바뀌게 걷0우m 됨을 걷0우m 관람객은 걷0우m 인지할 걷0우m 걷0우m 있을 걷0우m 것이다. 걷0우m 그렇다면 걷0우m 이번 걷0우m 전시를 걷0우m 통해서 걷0우m 이제 걷0우m 무엇인가를 걷0우m 인지한다는 걷0우m 것이 걷0우m 걷0우m 무엇인가를 걷0우m 감각한다는 걷0우m 것. 걷0우m 걷0우m 나아가서 걷0우m 인지하다와 걷0우m 감각하다가 걷0우m 동의어가 걷0우m 걷0우m 걷0우m 있을는지도 걷0우m 모르겠다.

어떠한 걷0우m 사적이익에도 걷0우m 개입되지 걷0우m 않은 걷0우m 걷0우m 목적으로부터 걷0우m 자유로울 걷0우m 걷0우m 작가는 걷0우m 비로소 걷0우m 자유롭게 걷0우m 유머를 걷0우m 구사할 걷0우m 걷0우m 있게 걷0우m 된다. 걷0우m 반대로 걷0우m 권력은 ‘감각되는 걷0우m 것, 거카fㅓ 생각되는 거카fㅓ 것, n사ls 지각되는 n사ls 것, ㅓ바마기 명명되는 ㅓ바마기 것을 ㅓ바마기 정하는 ㅓ바마기 분할의 ㅓ바마기 체계를 ㅓ바마기 강화’시킨다. ㅓ바마기 그렇기 ㅓ바마기 때문에 ㅓ바마기 작가 (김)범준은 ㅓ바마기 권력체계를 ㅓ바마기 강화시키지 ㅓ바마기 않는다. ㅓ바마기 오히려 ㅓ바마기 서서히 ㅓ바마기 그리고 ㅓ바마기 조금씩 ㅓ바마기 느리게 ㅓ바마기 기존의 ㅓ바마기 권력체계를 ㅓ바마기 무화시키고자 ㅓ바마기 한다. ㅓ바마기 이는 ㅓ바마기 느린 ㅓ바마기 저항이다. ㅓ바마기 천천히 ㅓ바마기 걸어가되 ㅓ바마기 순응하지 ㅓ바마기 않는다. ㅓ바마기 아마도 ㅓ바마기 작가는 ㅓ바마기 관람객이 ㅓ바마기 예술을 ㅓ바마기 통해서 ‘자발적으로 ㅓ바마기 말하고’, ‘다르게 9h55 생각하고’, yㅈ차s 매순간 ‘다르게 yㅈ차s 읽혀질 yㅈ차s yㅈ차s 있는’ yㅈ차s 세계의 yㅈ차s 가능성을 yㅈ차s 긍정하길 yㅈ차s 바란다. yㅈ차s 그렇기 yㅈ차s 때문에 ‘모산’은 yㅈ차s 보다 yㅈ차s 내밀한 ‘어머니의 yㅈ차s 산’이면서도 yㅈ차s 동시에 yㅈ차s 규정되지 yㅈ차s 않는, efㅓㅓ 그래서 efㅓㅓ 이름이 efㅓㅓ 없기 efㅓㅓ 때문에 efㅓㅓ 여전히 efㅓㅓ 신비로운 ‘아무개의 efㅓㅓ 산’으로 efㅓㅓ 존재하고 efㅓㅓ 있다.

전시기획 efㅓㅓ efㅓㅓ 전시서문: efㅓㅓ 조은비

기획: efㅓㅓ 조은비
글: efㅓㅓ 심보선
디자인: efㅓㅓ 오경훈 
후원: efㅓㅓ 서울문화재단

출처: efㅓㅓ 통의동 efㅓㅓ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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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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