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Ever Flowing - the harmonious world

갤러리도스

2021년 3월 31일 ~ 2021년 4월 5일

얇은 가닥들이 모여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살아가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생각하는 순간에도 눈을 깜박이며 호흡을 한다. 무언가를 보는 것이 지겨워 눈을 감아도 세상을 가리는 눈꺼풀의 어둡고 붉은 장막은 촘촘히 짜인 핏줄을 타고 흐르는 맥동에 따라 화려한 얼룩을 보여준다. 가슴을 들썩이게 하는 깊은 숨결과 저 멀리 어딘가 뒤집힌 채 몸을 떠는 벌레의 발버둥까지 우리가 밟고 있는 땅과 그 세상을 감싼 모든 공기에 생명이 흐르고 고여 있다. 김보경이 이야기하는 흐름은 살결을 타고 흔적을 남기는 바람이나 물결 그 자체일 수도 있고 그 모든 스침을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간 각질을 적셨다 사라진 입김일 수도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서 나왔는지 막연히 글자로 알고 있지만 제시간에 목격한 적이 없는 생명의 모습을 그리기위해 팔을 휘젓는다.

화면을 가득 채울 듯 그려진 검은 덩어리는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한다. 풍성히 엉키고 쌓인 군체에 손가락을 펼치고 집어넣으면 허무하게 흐트러질 연약한 구조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혹은 보는 이가 상상하는 무언가 그 덤불 안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땀에 젖거나 종이도 못 날리는 약한 바람에 흘러내려 이마를 간질이는 머리칼은 사람이 흠뻑 젖은 채 태어나서부터 바짝 메말라 육신의 끝을 가지게 되는 순간까지 뽑아낼 실타래이다. 아무리 잘라내고 빗어내도 시간이 흘러 잊었던 존재를 깨닫게 할 만큼 느리고 꾸준하게 자라는 힘은 지독하기도 하다. 가장 강인할 시기에는 윤기와 탄력을 지닌 채 어깨 위를 아름답게 빛내지만 그 은은한 검은 광택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며 음산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시간에 걸쳐 인내를 담아 그려낸 획의 모임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기에 잔잔한 물의 표면처럼 고요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리드미컬하게 휘어진 굴곡과 농도의 차이로 인해 반짝이는 햇빛의 반사에 가려 수면 아래 품은 생물의 움직임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색이 사용된 작품의 경우 지구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수많은 삶의 충돌과 조화처럼 서로 다른 모양의 붓질은 합의되지 않은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각자의 속도를 지닌 채 화면을 침범한다. 높은 채도로 칠해진 넓은 표면 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겨진 검고 짧은 획들은 긴 시간에 걸쳐 느리게 변하는 환경을 짧게 살다 떠나는 작은 생물들처럼 꿈틀거리며 작품에 소음을 만들어낸다. 

김보경이 느끼고 그려내는 세상을 채운 생명은 사람의 생을 아득히 초월하는 길고 먼 시간이 아니다. 작가는 평범하고 대단치 않은 하루의 일부를 얕고 가벼이 채우는 관계가 주고받는 소소하고 소중한 감각을 그려낸다. 드라마틱한 사건과 공감하기 어려운 감동에서 비롯된 영감이 아닌 숨을 쉬는 평범한 모두의 시간에 깃든 사사로운 감정이 도리어 고민에 깊은 선택을 새긴다. 그리고 그 허한 무게로 인해 붓질은 날갯짓처럼 자유롭고 획은 물처럼 미끄럽게 꿈틀거릴 수 있다. 김보경은 생명의 흔적을 흐름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헤아릴 수 없는 굴곡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다.

참여작가: 김보경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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