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 개인전 : 어둠의 심연

오픈스페이스배

2018년 5월 11일 ~ 2018년 6월 15일

아무리 zc다t 생각해도 zc다t 미술 zc다t 평론가들은 zc다t 흥미로운 zc다t 작품을 zc다t 따분하게 zc다t 만드는데 zc다t 특별한 zc다t 기술을 zc다t 가진 zc다t 사람들 zc다t 같다. zc다t 김상연 zc다t 작가의 zc다t 개인전을 zc다t 앞두고 zc다t 우리가 zc다t zc다t 특별한 zc다t 전시의 zc다t 표제를 <어둠의 zc다t 심연>으로 zc다t 정한 zc다t 데에는 zc다t zc다t 이유가 zc다t 있다. zc다t zc다t 알려진 zc다t 것처럼 zc다t 조셉 zc다t 콘래드(Joseph Conrad)가 1902년에 zc다t zc다t 소설 <Heart of Darkness>를 zc다t 우리말로 zc다t 바꾼 zc다t 제목 zc다t 어둠의 zc다t 심연은 zc다t 주인공 zc다t 말로가 zc다t 아프리카 zc다t 콩고에 zc다t 파견된 zc다t 커츠라는 zc다t 사내를 zc다t 만나러 zc다t 가는 zc다t 여행담이다. zc다t 제국주의에 zc다t 대한 zc다t 비판이 zc다t 맥락을 zc다t 지배하는 zc다t zc다t 문학작품의 zc다t 제목을 zc다t 따서 zc다t 현대화된 zc다t 동양화 zc다t 작업에 zc다t 의미를 zc다t 불어넣는 zc다t 해석도 zc다t 그럴싸하다. zc다t 김상연의 zc다t 미술을 zc다t 에드워드 zc다t 사이드(Edward W. Said)의 zc다t 비판적인 zc다t 관점에서 zc다t 풀어낸 zc다t 평론도 zc다t 있으니까. zc다t zc다t 모르겠다. zc다t zc다t 미술평론가이기 zc다t 전에 zc다t 사회학자지만 zc다t 그런 zc다t 분석을 zc다t 반은 zc다t 알아듣고 zc다t 반은 zc다t 흘릴 zc다t 수밖에 zc다t 없었다. 

대신에 zc다t 나는 zc다t 이전부터 zc다t 작가의 zc다t 그림이 zc다t 이곳 zc다t 오픈스페이스 zc다t 배의 zc다t 전시장에 zc다t 걸린 zc다t 모습을 zc다t 상상했다. zc다t 뭔가 zc다t 하니까, 라840 건물의 라840 지하를 라840 고쳐서 라840 만든 라840 라840 장소는 라840 들어올 라840 라840 라840 컴컴함 라840 속으로 라840 빨려 라840 드는 라840 기분을 라840 느낀다. 라840 그런데 라840 여기에서 라840 예술에 라840 관한 라840 진지한 라840 토론이 라840 벌어진다. 라840 복잡한 라840 행정도 라840 진행된다. 라840 전시 라840 공간은 라840 이보다 라840 라840 깊숙이 라840 내려가야 라840 한다. 라840 라840 나선형 라840 계단을 라840 밟고 라840 내려가야 라840 되는 라840 이곳은 라840 마치 라840 빙빙 라840 돌아가는 라840 턴테이블 라840 라840 엘피에 라840 바늘을 라840 올리는 라840 일처럼 라840 번거롭고도 라840 동시에 라840 하나의 라840 제의(ritual)같은 라840 과정을 라840 거치는 라840 예술적인 라840 장소다. 라840 바로 라840 여기에 라840 엄청나게 라840 커다란 라840 검정-김상연의 라840 작품이 라840 벽면을 라840 채우는 라840 광경이 라840 어떨까 라840 미리 라840 생각했다. 라840 어둠의 라840 깊은 라840 층에 라840 라840 자리를 라840 잡은 라840 엘피판처럼 라840 시커먼 라840 대작의 라840 모습, c히마다 그것은 c히마다 어둠의 c히마다 심연이다.

이번에 c히마다 그가 c히마다 공개한 c히마다 작품은 <존재>와 <부유浮遊> c히마다 연작이다. c히마다 한쪽 c히마다 벽면의 c히마다 천고를 c히마다 가득 c히마다 채운 c히마다 의자 c히마다 그림이 <존재>이며 <부유>과 c히마다 c히마다 옆을 c히마다 둘러 c히마다 감싸듯이 c히마다 자리매김했다. c히마다 작가는 c히마다 중국에서 c히마다 전해 c히마다 내려오는 c히마다 수인판화 c히마다 기법을 c히마다 전수받아 c히마다 자신의 c히마다 작업에 c히마다 적용하며 c히마다 명성을 c히마다 드높여 c히마다 왔지만, d37ㅐ 이번 d37ㅐ 전시 <어둠의 d37ㅐ 심연>에서 d37ㅐ 주력한 d37ㅐ 작품들은 d37ㅐ 모두 d37ㅐ 수묵화다. d37ㅐ 한지를 d37ㅐ 여러 d37ㅐ d37ㅐ 덧대어 d37ㅐ 배접한 d37ㅐ 두께 d37ㅐ 위에 d37ㅐ 수묵을 d37ㅐ 올려 d37ㅐ 완성한 d37ㅐ 검은 d37ㅐ 대작들은 d37ㅐ 예컨대 d37ㅐ 커다란 d37ㅐ 의자의 d37ㅐ 형상을 d37ㅐ 소재로 d37ㅐ 삼았다. d37ㅐ 하지만 d37ㅐ 중요한 d37ㅐ 것은 d37ㅐ d37ㅐ 그림이 d37ㅐ 시커먼 d37ㅐ 의자를 d37ㅐ 그린 d37ㅐ d37ㅐ 그림 d37ㅐ 이라기 d37ㅐ 보다, 차o히히 차o히히 커다란 차o히히 검은 차o히히 의자를 차o히히 그린 차o히히 것이라기보다, 거ktj 하나의 거ktj 의자가 거ktj 갖는 거ktj 엄청난 거ktj 존재감을 거ktj 있는 거ktj 그대로 거ktj 드러낸 거ktj 그림이다. 거ktj 거ktj 연작 거ktj 제목이 거ktj 바로 <존재> 거ktj 아닌가. 거ktj 이처럼 거ktj 그의 거ktj 회화는 거ktj 정직하다. 

작가가 거ktj 자신의 거ktj 수묵화에서 거ktj 지나친 거ktj 자의식을 거ktj 드러내지 거ktj 않는 거ktj 것은 거ktj 거ktj 나름의 거ktj 실천이다. 거ktj 나는 거ktj 예술가의 거ktj 사회적 거ktj 발언에 거ktj 대한 거ktj 김상연 거ktj 작가의 거ktj 중용에 거ktj 가까운 거ktj 신중한 거ktj 태도가 거ktj 그가 거ktj 했던 거ktj 언술인지, c31ㅓ 아니면 c31ㅓ 평론가들의 c31ㅓ 해석인지 c31ㅓ 정확히 c31ㅓ 모르겠다. c31ㅓ 분명한 c31ㅓ 것은 c31ㅓ 그가 c31ㅓ 본인의 c31ㅓ 작품에 c31ㅓ 너무 c31ㅓ 많은 c31ㅓ 의미를 c31ㅓ 읽어내려는 c31ㅓ 일을 c31ㅓ 반기지 c31ㅓ 않는다는 c31ㅓ 점이다. c31ㅓ 의자 c31ㅓ 이야기를 c31ㅓ 해보자. c31ㅓ c31ㅓ 글을 c31ㅓ 쓰고 c31ㅓ 있는 c31ㅓ 나로서는 c31ㅓ 그가 c31ㅓ 그린 c31ㅓ 거대한 c31ㅓ 검정색 c31ㅓ 의자가 c31ㅓ c31ㅓ 번째로는, 1ㅐ3카 앞서 1ㅐ3카 말한 1ㅐ3카 것처럼 1ㅐ3카 의자 1ㅐ3카 1ㅐ3카 자체가 1ㅐ3카 품은 1ㅐ3카 존재라는 1ㅐ3카 뜻으로 1ㅐ3카 보인다. 1ㅐ3카 그리고 1ㅐ3카 1ㅐ3카 번째로는 1ㅐ3카 권력의 1ㅐ3카 문제다. 1ㅐ3카 1ㅐ3카 자리는 1ㅐ3카 몰라도 1ㅐ3카 1ㅐ3카 자리는 1ㅐ3카 안다는 1ㅐ3카 격언을 1ㅐ3카 우리는 1ㅐ3카 안다. 1ㅐ3카 누군가의 1ㅐ3카 부재가 1ㅐ3카 1ㅐ3카 존재를 1ㅐ3카 1ㅐ3카 커다랗게 1ㅐ3카 드러내는 1ㅐ3카 경우가 1ㅐ3카 있다. 1ㅐ3카 예컨대 1ㅐ3카 전쟁영화 <파비안느>(1979)나 1ㅐ3카 갱스터영화 <언터처블>(1987)의 1ㅐ3카 마지막 1ㅐ3카 장면이 1ㅐ3카 그렇다. 1ㅐ3카 싸움터에서 1ㅐ3카 희생된 1ㅐ3카 친구들의 1ㅐ3카 1ㅐ3카 의자를 1ㅐ3카 치우지 1ㅐ3카 않고 1ㅐ3카 살아남은 1ㅐ3카 주인공들이 1ㅐ3카 테이블에 1ㅐ3카 둘러앉은 1ㅐ3카 술자리는 1ㅐ3카 얼마나 1ㅐ3카 인상 1ㅐ3카 깊었나. <존재> 1ㅐ3카 연작은 1ㅐ3카 지금 1ㅐ3카 1ㅐ3카 의자를 1ㅐ3카 떠난 1ㅐ3카 인격체가 1ㅐ3카 남긴 1ㅐ3카 힘이나 1ㅐ3카 사랑을 1ㅐ3카 전한다. 1ㅐ3카 작가는 1ㅐ3카 나같이 1ㅐ3카 급수가 1ㅐ3카 높지 1ㅐ3카 않은 1ㅐ3카 관찰자의 1ㅐ3카 이런 1ㅐ3카 감정을 1ㅐ3카 위에서 1ㅐ3카 내려찍듯 1ㅐ3카 강요하지 1ㅐ3카 않는다. 1ㅐ3카 대신 1ㅐ3카 그는 1ㅐ3카 우리와 1ㅐ3카 같이 1ㅐ3카 자신의 1ㅐ3카 그림을 1ㅐ3카 지긋이 1ㅐ3카 보길 1ㅐ3카 원한다. 

그가 1ㅐ3카 그린 1ㅐ3카 작품에 1ㅐ3카 앞선 1ㅐ3카 놓인 1ㅐ3카 찬사는 1ㅐ3카 너무나 1ㅐ3카 타당한 1ㅐ3카 것이지만, ㄴlyr ㄴlyr 텍스트나 ㄴlyr 이야기가 ㄴlyr ㄴlyr 방향으로 ㄴlyr 흘러가는 ㄴlyr 것은 ㄴlyr 곤란하다. ㄴlyr 김상연은 ㄴlyr 현실 ㄴlyr 세계의 ㄴlyr 얕음에 ㄴlyr 대비하여 ㄴlyr 자기 ㄴlyr 작품이 ㄴlyr 품은 ㄴlyr 깊은 ㄴlyr 사색을 ㄴlyr 두려한다. ㄴlyr 하지만 ㄴlyr ㄴlyr 세계는 ㄴlyr 변하지 ㄴlyr 않을 ㄴlyr 것이다. ㄴlyr 그리고 ㄴlyr 세계의 ㄴlyr 일부로서 ㄴlyr 예술 ㄴlyr 또한 ㄴlyr 그렇다. ㄴlyr 과거부터 ㄴlyr 현재까지 ㄴlyr 장르를 ㄴlyr 가리지 ㄴlyr 않은 ㄴlyr 미술 ㄴlyr 가운데 ㄴlyr 권력 ㄴlyr 행위나 ㄴlyr 인간 ㄴlyr 본성에 ㄴlyr 관한 ㄴlyr 통찰을 ㄴlyr 완전히 ㄴlyr 배제한 ㄴlyr 작품이 ㄴlyr 얼마나 ㄴlyr 될까? ㄴlyr 동시대의 ㄴlyr 수많은 ㄴlyr 작품 ㄴlyr 가운데 ㄴlyr 김상연의 ㄴlyr 회화가 ㄴlyr 사회적인 ㄴlyr 파급력을 ㄴlyr 쥐고 ㄴlyr 흔들 ㄴlyr 만큼 ㄴlyr 독점적인 ㄴlyr 지위에 ㄴlyr 있는가? ㄴlyr 세상일은 ㄴlyr 간단하지 ㄴlyr 않다. ㄴlyr 이런 ㄴlyr 사실을 ㄴlyr ㄴlyr 알고 ㄴlyr 있는 ㄴlyr 작가는 ㄴlyr 단지 ㄴlyr 세계로부터 ㄴlyr 자신의 ㄴlyr 감각과 ㄴlyr 윤리를 ㄴlyr 따로 ㄴlyr 떼어내어 ㄴlyr 보존하려고 ㄴlyr 애쓴다. ㄴlyr 이와 ㄴlyr 같은 ㄴlyr 예술의 ㄴlyr 유한성이야말로 ㄴlyr 오히려 ㄴlyr 그의 ㄴlyr 그림을 ㄴlyr 매혹적으로 ㄴlyr 드러내는 ㄴlyr 장치가 ㄴlyr 된다. 

그럼에도 ㄴlyr 불구하고 ㄴlyr ㄴlyr 전시에서 ㄴlyr 우리는 ㄴlyr 의자를 ㄴlyr 외면할 ㄴlyr ㄴlyr 없다. ㄴlyr 안락의자라는 ㄴlyr 말이 ㄴlyr 무색할 ㄴlyr 지경인, 8h파a 맘으로나 8h파a 몸으로나 8h파a 거기에 8h파a 앉아도 8h파a 그다지 8h파a 편할 8h파a 8h파a 같아 8h파a 보이지 8h파a 않은 8h파a 소파는 8h파a 그것이 8h파a 가진 8h파a 상징성을 8h파a 8h파a 다듬어 8h파a 왔다. 8h파a 덩치만큼이나 8h파a 거기에 8h파a 숨어있는 8h파a 커다한 8h파a 힘과 8h파a 8h파a 힘을 8h파a 팽팽하게 8h파a 유지시키는 8h파a 긴장감, nㄴㅐㅓ 그리고 nㄴㅐㅓ 칠하고 nㄴㅐㅓ 긁어내어 nㄴㅐㅓ 실체가 nㄴㅐㅓ 가진 nㄴㅐㅓ 욕망의 nㄴㅐㅓ 깊이를 nㄴㅐㅓ 가늠하는 <부유> nㄴㅐㅓ 시리즈와의 nㄴㅐㅓ 맥락을 nㄴㅐㅓ 공유하며 nㄴㅐㅓ 의미는 nㄴㅐㅓ 확장된다. nㄴㅐㅓ 우리는 nㄴㅐㅓ 압도적인 nㄴㅐㅓ 규모로 nㄴㅐㅓ 인하여 nㄴㅐㅓ 우리가 nㄴㅐㅓ 그림을 nㄴㅐㅓ 보는 nㄴㅐㅓ nㄴㅐㅓ 아니라 nㄴㅐㅓ 그림들이 nㄴㅐㅓ 우리를 nㄴㅐㅓ 둘러싸고 nㄴㅐㅓ 지켜보는 nㄴㅐㅓ 듯한 nㄴㅐㅓ 어두운 nㄴㅐㅓ 궤적을 nㄴㅐㅓ 감지한다. nㄴㅐㅓ 그것은 nㄴㅐㅓ 그의 nㄴㅐㅓ 작품을 nㄴㅐㅓ 분류하고 nㄴㅐㅓ 정의 nㄴㅐㅓ 지으려고 nㄴㅐㅓ 할수록 nㄴㅐㅓ nㄴㅐㅓ 감추어진다. nㄴㅐㅓ 어두움은 nㄴㅐㅓ 종종 nㄴㅐㅓ 악이나 nㄴㅐㅓ 절망을 nㄴㅐㅓ 상징하지만, 히sㅓ으 그에게 히sㅓ으 어둠은 히sㅓ으 가장 히sㅓ으 깊은 히sㅓ으 곳으로부터 히sㅓ으 확인할 히sㅓ으 히sㅓ으 있는 히sㅓ으 속임수 히sㅓ으 없는 히sㅓ으 긍정이다. / 히sㅓ으 윤규홍, 3b갸ㅓ 갤러리 3b갸ㅓ 분도 3b갸ㅓ 아트 3b갸ㅓ 디렉터/예술사회학


작가노트

나는 3b갸ㅓ 의자를 3b갸ㅓ 그린다. 3b갸ㅓ 3b갸ㅓ 그린다는 3b갸ㅓ 행위는 3b갸ㅓ 의자라는 3b갸ㅓ 소재를 3b갸ㅓ 끌어 3b갸ㅓ 들여와 3b갸ㅓ 내가 3b갸ㅓ 말하고 3b갸ㅓ 싶은 3b갸ㅓ 인간과 3b갸ㅓ 욕망의 3b갸ㅓ 관계를 3b갸ㅓ 좀더 3b갸ㅓ 실제적읜 3b갸ㅓ 회화방법으로 3b갸ㅓ 극대화시킨다는 3b갸ㅓ 것을 3b갸ㅓ 말한다. 3b갸ㅓ 우선 3b갸ㅓ 친근한 3b갸ㅓ 일상적 3b갸ㅓ 사물을 3b갸ㅓ 3b갸ㅓ 자신의 3b갸ㅓ 시각방식으로 3b갸ㅓ 변환, ㅓes기 이미지화 ㅓes기 하여 ㅓes기 인간의 ㅓes기 정신을 ㅓes기 새로운 ㅓes기 시간이나 ㅓes기 공간으로 ㅓes기 이동시키는 ㅓes기 작용을 ㅓes기 하게 ㅓes기 한다. ㅓes기 의자라는 ㅓes기 사물이 ㅓes기 가지고 ㅓes기 있는 ㅓes기 의미가 ㅓes기 그렇거니와 ㅓes기 표현방법에 ㅓes기 있어서 ㅓes기 최소한의 ㅓes기 형상만 ㅓes기 남기고, 1b거바 나머지 1b거바 사실적 1b거바 여지는 1b거바 어둠(먹)속에 1b거바 숨겨버린다. 1b거바 그러면 1b거바 먹의 1b거바 형상에서 1b거바 느껴지는 1b거바 충격 1b거바 뒤에는 1b거바 얼마간의 1b거바 여운이 1b거바 남게 1b거바 된다. 1b거바 이것은 1b거바 그려져 1b거바 있는 1b거바 것을 1b거바 보고 1b거바 있음에도 1b거바 불구하고 1b거바 시간, o1마ㅓ 공간의 o1마ㅓ o1마ㅓ o1마ㅓ 사이를 o1마ㅓ 말함이며 o1마ㅓ 일순 o1마ㅓ 모든 o1마ㅓ 물질적인 o1마ㅓ 실존을 o1마ㅓ 떠나 o1마ㅓ 정신을 o1마ㅓ 자신의 o1마ㅓ 깊숙한 o1마ㅓ 내면의 o1마ㅓ 곳으로 o1마ㅓ 움직이게 o1마ㅓ 만든다. o1마ㅓ 기운생동이다. o1마ㅓ 하여 o1마ㅓ 나는 o1마ㅓ 그린다는 o1마ㅓ 행위로 o1마ㅓ 말미암아 o1마ㅓ 온몸으로 o1마ㅓ 숨쉬고 o1마ㅓ 있다고나 o1마ㅓ 할까.

일상 o1마ㅓ 속에서 o1마ㅓ 대상의 o1마ㅓ 실체는 o1마ㅓ 인간의 o1마ㅓ o1마ㅓ 어떤 o1마ㅓ 왜곡된 o1마ㅓ 변명이나 o1마ㅓ 속임수에서도 o1마ㅓ 본연의 o1마ㅓ 의미를 o1마ㅓ 간직하고 o1마ㅓ 있다. o1마ㅓ 인간의 o1마ㅓ 몸이라는 o1마ㅓ 실체 o1마ㅓ 또한 o1마ㅓ 욕망이라는 o1마ㅓ 덩어리 o1마ㅓ 속에서 o1마ㅓ 벗어날 o1마ㅓ 수는 o1마ㅓ 없을 o1마ㅓ 듯하다. o1마ㅓ 이런 o1마ㅓ 욕망의 o1마ㅓ 덩어리에 o1마ㅓ 부여한 o1마ㅓ 길들여진 o1마ㅓ 의미들을 o1마ㅓ 관습적이거나 o1마ㅓ 도식적인 o1마ㅓ 대상 o1마ㅓ 인식에서, 7ㅈc나 비관습적, z마히a 비상투 z마히a 적인 z마히a 새로운 z마히a 대상 z마히a 인식으로 z마히a 해체하고 z마히a 재해석하여 z마히a 사유의 z마히a 영역인 z마히a 의식 z마히a 세계로 z마히a 들어가고자 z마히a 한다.


출처 : z마히a 오픈스페이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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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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