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개인전: 공간의 다섯가지 형태

온수공간

2021년 11월 23일 ~ 2021년 12월 8일

공간의 다섯 가지 형태에서 공간의 다섯 가지 형태로
정윤석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 당신이 그리게 될 동선과 시선을 따라 평면이 접히고 있다. 펼쳐지면서 접히고 있는 것들이 당신을 맞이하고 있다. 때로는 입체물로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영상 속 텍스트로 때로는 거울 속 이미지로 때로는 온수공간이라는 전시장으로 형태를 바꿔가면서. 당신은 움직이고 있다. 당신이라는 만화경을. 형태들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의아해 한다. 바뀌는 형태들이 보이지 않아서. 바뀐 형태들만 보이고 있어서. 작가는 당신에게 텍스트를 쓰고 있다. 당신이 움직이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형태들이 바뀌고 있다고. 타자기로 쓰고 있다. 건물의 일부를 묘사하는 문장이 평면 위에 찍히고 있다. 종이가 한 줄씩 올라가면서 문장 위에 문장이 쌓이고 있다. 자판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의 속도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타자기 소리가 온수공간에 울려퍼지고 있다. 영상의 제목은 〈공간의 다섯 가지 형태〉. 그것은 영상을 포함한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면의 프레임 안에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노트를 한 장씩 넘기며 문장들을 적어 가는 장면을 촬영한 〈Nyginoiu street 333 building 1〉(2014)과 달리. 문장들에는 작가의 필적이 사라져 있다. 제목에는 작가의 이름이 사라져 있다. Nyginoiu은 작가의 이름을 독일어로 표기한 뒤 철자를 섞어서 만든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무엇이 사라진 곳에서 당신이 움직이고 있다. 작가의 눈치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가상의 건물 B를 다녀온 I씨, N씨, T씨, R씨, U씨, D씨, E씨, R씨와의 인터뷰를 전시한 〈건물 B의 숨겨진 공간 X02호〉(2016)에서였다면 당신은 불청객intruder이 되었을 것이다.

당신의 바뀐 위상이 거울에 반영되어 있다. 〈1층 세 번째 복도 오른쪽 열다섯 번째 문〉(2018)에서 거울이 처음 등장했을 때 거울은 자신만을 반영했었다. 책상 양 끝에 서로를 마주 보게 세워진 두 개의 거울 사이로 양면 거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각각의 거울면 위에 새겨진 문장들만 무한히 증식되고 있었다. 〈인공 파편〉(2019)에서 거울은 전시장 귀퉁이와 바닥과 벽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공간의 다섯 가지 형태〉에서 귀퉁이에 놓였던 거울과 벽에 걸렸던 거울은 하나가 되어 벽면을 뒤덮는다. 바닥에 깔린 거울은 그 자체로 좌대가 되거나 합판으로 만든 좌대의 윗면 또는 옆면에 부착된다. 그것들은 좌대에 올려졌거나 기대어 있는 입체물과 벽에 걸린 사진과 온수공간을 증식시킨다. 당신을 배제하지 않은 채로.

거울의 확장된 반영성은 좌대와 입체물의 경계를 사라지게 한다. 좌대 속 텅 빈 공간으로 입체물이 들어간 듯한 환영을 당신에게 일으킨다. 좌대와 입체물의 차이를 사라지게 한다. 좌대 위에 올려진 좌대는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거울의 반영성은 계속 확장되어 입체물과 사진의 근본적인 차이도 사라지게 한다. 3차원과 2차원이라는 차이를. 흰색으로 통일된 입체물의 표면이 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도드라지게 하지만 그것은 사진 속 흰색 공간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와 검은색 기둥과 계단을 당신에게 연상시킬 뿐이다. 그 결과 거울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 거울의 반영성이 당신에게 나타난다. 거울이 부착되지 않은 좌대의 표면이, 합판으로 된 온수공간의 벽과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에 반영된 것처럼 느껴진다. 온수공간이 거대한 좌대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온수공간 속으로 거울 속 이미지와 입체물과 사진과 영상 속 텍스트가 들어간 것은 환영이 아니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들은 차이가 사라진다. 당신이 마음대로 접을 수 있는 평면이 된다. 당신이 그리는 동선과 시선을 따라 공간이 펼쳐진다.

참여작가: 김영진
글:정윤석
사진: 정지필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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