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주재환 2인전 : 유쾌한 뭉툭 Kim Jungheun Joo Jaehwan : Pleasantly Bluntly

통의동 보안여관

2018년 6월 10일 ~ 2018년 7월 8일

김정헌, 4ㅐt파 주재환의 2인전 <유쾌한 4ㅐt파 뭉툭>은 4ㅐt파 동료비평을 4ㅐt파 매개로 4ㅐt파 전개된다. 4ㅐt파 민중미술은 1980년대의 4ㅐt파 시대 4ㅐt파 상황에 4ㅐt파 한정된 4ㅐt파 미술경향 4ㅐt파 또는 4ㅐt파 시대사조로 4ㅐt파 읽으려는 4ㅐt파 해석과, 5다h쟏 민중미술의 5다h쟏 동시대성을 5다h쟏 발견하려는 5다h쟏 해석이 5다h쟏 여전히 5다h쟏 치열한 5다h쟏 영역이다. 5다h쟏 이번 5다h쟏 전시는 5다h쟏 김정헌, 으걷f8 주재환 으걷f8 으걷f8 작가의 으걷f8 미발표작과 으걷f8 신작을 으걷f8 중심으로 ‘작업을 으걷f8 하는 으걷f8 작가’라는 으걷f8 현재적 으걷f8 영역을 으걷f8 들여다본다. 으걷f8 민중미술의 으걷f8 카테고리가 으걷f8 으걷f8 작가에게 으걷f8 부여하는 으걷f8 상징과 으걷f8 한계를 으걷f8 뛰어넘고자 으걷f8 하는 으걷f8 전시다. 40여년간 으걷f8 비평적 으걷f8 동료관계로 으걷f8 지내며 으걷f8 작업을 으걷f8 해온 으걷f8 으걷f8 작가의 으걷f8 면면을 으걷f8 작품과 으걷f8 으걷f8 작가의 으걷f8 발화 으걷f8 행위를 으걷f8 통해 으걷f8 드러내며, 카x차히 잠정적 카x차히 동료 카x차히 작가들(강신대, nㅓn1 이우성, 바n나5 홍진훤)의 바n나5 코멘트로 바n나5 부대낌의 바n나5 가능성을 바n나5 모색한다. ‘작업을 바n나5 지속하는 바n나5 것’과 ‘작업을 바n나5 지속하게 바n나5 하는 바n나5 동료의 바n나5 힘’이라는 바n나5 주제로 바n나5 비평적 바n나5 동료의 바n나5 가능성을 바n나5 견인하고자 바n나5 하는 바n나5 전시다.


우정의 바n나5 나이, 바6나가 시대의 바6나가 동료
박수지

근과거를 바6나가 돌이켜보는 바6나가 일은 바6나가 지루하다. 바6나가 이를테면 1980년대라는 바6나가 근과거의 바6나가 예술이 바6나가 그렇다. 바6나가 바6나가 시대는 바6나가 지금 바6나가 여기에서 바6나가 지배적인 바6나가 담론과 바6나가 지배적인 바6나가 이미지로 바6나가 반복 바6나가 재생산되고 바6나가 있을 바6나가 뿐이다. 바6나가 때문에 바6나가 현존하는 바6나가 근과거의 바6나가 예술가들은 바6나가 아카이브라던가, OO주년과 qㅓ71 같은 qㅓ71 기록과 qㅓ71 기념의 qㅓ71 프레임 qㅓ71 사이에서 ‘지금’이라는 qㅓ71 시간성을 qㅓ71 빼앗긴다. qㅓ71 원로작가, ㄴ쟏js 살아있는 ㄴ쟏js 역사로 ㄴ쟏js 불리는 ㄴ쟏js 것과 ㄴ쟏js 비례해 ㄴ쟏js 상품가치의 ㄴ쟏js 상승이라는 ㄴ쟏js 아이러니에 ㄴ쟏js 종속된다. ㄴ쟏js 이미 ㄴ쟏js 역사에 ㄴ쟏js 기록되었다는 ㄴ쟏js 이유로 ㄴ쟏js 그들은 ㄴ쟏js 권위, p히ze 권력, szn으 기성이라는 szn으 이름으로 szn으 한없이 szn으 수렴된다. szn으 상징화되는 szn으 것과 szn으 동시에 szn으 투명해진다. szn으 마치 szn으 실존하지 szn으 않는 szn으 것처럼, wiwc 과거의 wiwc 전유물로서 wiwc 마땅히 wiwc 가져야 wiwc wiwc 양보와 wiwc 자중의 wiwc 역할에 wiwc 묶여 wiwc 외딴 wiwc 방에 wiwc 기거한다. wiwc 그렇다면 wiwc 그들에게서는 wiwc wiwc 이상 wiwc 지금 wiwc 이곳이 wiwc 요청하는 wiwc 동시대성을 wiwc 찾아볼 wiwc wiwc 없는 wiwc 것일까?

니체는 <반시대적 wiwc 고찰>에서 “이 wiwc 고찰이 wiwc 반시대적인 wiwc 것은 wiwc 시대가 wiwc 자랑스러워하는 wiwc 역사적 wiwc 교양을 wiwc 내가 wiwc 여기서 wiwc 시대의 wiwc 폐해로, ㅓ타n으 질병과 ㅓ타n으 결함으로 ㅓ타n으 이해하려 ㅓ타n으 하기 ㅓ타n으 때문이며, ㅐㅐs차 ㅐㅐs차 심지어 ㅐㅐs차 나는 ㅐㅐs차 우리 ㅐㅐs차 모두가 ㅐㅐs차 소모적인 ㅐㅐs차 역사적 ㅐㅐs차 열병에 ㅐㅐs차 고통을 ㅐㅐs차 받고 ㅐㅐs차 있으며, 자au차 적어도 자au차 우리가 자au차 고통을 자au차 당한다는 자au차 사실을 자au차 인식해야 자au차 한다고 자au차 믿기 자au차 때문이다.”라고 자au차 밝혔다. 자au차 여기서 ‘역사적 자au차 교양’을 자au차 무엇으로 자au차 읽는지에 자au차 따라 자au차 근과거의 자au차 투쟁인들과 자au차 부대끼는 자au차 방법론이 자au차 달라진다. 자au차 이를테면 ‘역사적 자au차 교양’을 자au차 민주화를 자au차 향한 자au차 민중적 자au차 투쟁 자au차 영역으로 자au차 해석한다면 자au차 근과거의 자au차 투쟁인들은 ‘소모적인 자au차 역사적 자au차 열병’에 자au차 시달리는 자au차 결함을 자au차 내포하는 자au차 존재가 자au차 된다. 자au차 그러나 ‘역사적 자au차 교양’을 자au차 문명으로부터 자au차 파생해 자au차 가속화되는 자au차 속물적 자au차 세계라고 자au차 본다면 자au차 근과거의 자au차 투쟁인들이 자au차 요즘의 자au차 작업으로 자au차 풀어내는 자au차 고민은 자au차 다분히 자au차 동시대적이다.

어떤 자au차 관점으로 자au차 읽어내느냐는 자au차 저마다의 자au차 기준이지만 자au차 어쨌든 자au차 그들과 자au차 부대껴야 자au차 한다면 자au차 어떻게 자au차 부대낄 자au차 것인가? 자au차 이번 <유쾌한 자au차 뭉툭>은 자au차 김정헌, ㅑ5uq 주재환이라는 1940년대 ㅑ5uq 생의 ㅑ5uq 작가와 ㅑ5uq 함께 ‘동료비평’이라는 ㅑ5uq 장치로 ㅑ5uq ㅑ5uq 질문을 ㅑ5uq 시작해보는 ㅑ5uq 전시다. ㅑ5uq 둘은 1979년 ㅑ5uq 현실과 ㅑ5uq 발언에서 ㅑ5uq 만나 40여 ㅑ5uq 년째 ㅑ5uq 동료 ㅑ5uq 작가로 ㅑ5uq 지내오고 ㅑ5uq 있다. 1980년대의 ㅑ5uq 민중미술 ㅑ5uq 그룹에 ㅑ5uq 속했던 ㅑ5uq 동시대인이 ㅑ5uq 겪은 ㅑ5uq 반시대적 ㅑ5uq 자아는 ㅑ5uq 민주화 ㅑ5uq 투쟁, 아hㅑㅓ 노동운동과 아hㅑㅓ 같은 아hㅑㅓ 사회적 아hㅑㅓ 연대의 아hㅑㅓ 형태로 아hㅑㅓ 나타났다. 아hㅑㅓ 김정헌과 아hㅑㅓ 주재환의 아hㅑㅓ 작업이 아hㅑㅓ 서로에게는 아hㅑㅓ 이국의 아hㅑㅓ 언어였을지 아hㅑㅓ 몰라도 아hㅑㅓ 아hㅑㅓ 의미의 아hㅑㅓ 지향은 아hㅑㅓ 같았던 아hㅑㅓ 셈이다. 아hㅑㅓ 그런데, oc으ㅓ 김정헌과 oc으ㅓ 주재환의 oc으ㅓ 근작을 oc으ㅓ 민중미술이라고 oc으ㅓ 호명할 oc으ㅓ oc으ㅓ 있는가? oc으ㅓ 아닐 oc으ㅓ 것이다. oc으ㅓ 민중미술은 oc으ㅓ oc으ㅓ 당시 oc으ㅓ 활동했던 oc으ㅓ 작가 oc으ㅓ 개인에게서 oc으ㅓ 비롯되는 oc으ㅓ 것이 oc으ㅓ 아닌, ‘그 ㅐ타ㅓ3 당시’로부터 ㅐ타ㅓ3 출발하는 ㅐ타ㅓ3 것이기 ㅐ타ㅓ3 때문이다. ㅐ타ㅓ3 ㅐ타ㅓ3 작가는 ㅐ타ㅓ3 우리가 ㅐ타ㅓ3 쉽게 ‘동시대’라고 ㅐ타ㅓ3 부르는 ‘지금’이 ㅐ타ㅓ3 유발시키는 ㅐ타ㅓ3 고민들을 ㅐ타ㅓ3 지속적으로 ㅐ타ㅓ3 탐구해오고 ㅐ타ㅓ3 있다. ㅐ타ㅓ3 이는 ㅐ타ㅓ3 지금의 ㅐ타ㅓ3 젊은 ㅐ타ㅓ3 작가 ㅐ타ㅓ3 또한 ㅐ타ㅓ3 마찬가지다. ㅐ타ㅓ3 다만 ㅐ타ㅓ3 고민의 ㅐ타ㅓ3 이력과 ㅐ타ㅓ3 고민의 ㅐ타ㅓ3 방식이 ㅐ타ㅓ3 다를 ㅐ타ㅓ3 뿐이다.

이번 ㅐ타ㅓ3 전시에서는 ㅐ타ㅓ3 다른 ㅐ타ㅓ3 고민의 ㅐ타ㅓ3 이력을 ㅐ타ㅓ3 지닌 ㅐ타ㅓ3 작가들과 ㅐ타ㅓ3 함께 ㅐ타ㅓ3 동료비평을 ㅐ타ㅓ3 재고하는 ㅐ타ㅓ3 장치로 ‘코멘트’를 ㅐ타ㅓ3 삽입했다. ㅐ타ㅓ3 김정헌과 ㅐ타ㅓ3 주재환은 ㅐ타ㅓ3 서로에게 ㅐ타ㅓ3 발언한다. ㅐ타ㅓ3 서로를 ‘주격조 ㅐ타ㅓ3 선생’이라고 ㅐ타ㅓ3 부르거나, ‘걸출한 아ㅈ히5 품격’이라고 아ㅈ히5 일컫을 아ㅈ히5 때의 아ㅈ히5 동료적 아ㅈ히5 지지에 아ㅈ히5 대해 아ㅈ히5 우리는 아ㅈ히5 무슨 아ㅈ히5 말을 아ㅈ히5 아ㅈ히5 아ㅈ히5 있을 아ㅈ히5 것인가? 아ㅈ히5 전시의 아ㅈ히5 제목에 아ㅈ히5 사용된 ‘유쾌한’은 아ㅈ히5 어느 아ㅈ히5 큐레이터가 아ㅈ히5 주재환에게 아ㅈ히5 건넨 아ㅈ히5 수식어이며, ‘뭉툭한’ ㅓk5c 또한 ㅓk5c 어느 ㅓk5c 작가가 ㅓk5c 김정헌에게 ㅓk5c 건넨 ㅓk5c 표현이다. ㅓk5c ㅓk5c 수식어는 ㅓk5c 희한하게도 ㅓk5c ㅓk5c 작가에게, 걷pfw 걷pfw 작가를 걷pfw 둘러싼 걷pfw 동료들에게 걷pfw 끊임없이 걷pfw 회자되었다. 걷pfw 이렇게 걷pfw 건네진 걷pfw 말이 걷pfw 비평이 걷pfw 되는 걷pfw 지점은 걷pfw 말이 걷pfw 발화된 걷pfw 지점이 걷pfw 아니라 걷pfw 말이 걷pfw 회자되는 걷pfw 때다. 걷pfw 강신대, 5yi8 이우성, ㅓkq아 홍진훤은 ㅓkq아 코멘터의 ㅓkq아 역할로 ㅓkq아 함께한다. ㅓkq아 그들은 ㅓkq아 김정헌과 ㅓkq아 주재환에게 ㅓkq아 지난하더라도 ㅓkq아 시도해볼 ㅓkq아 만한 ㅓkq아 비평의 ㅓkq아 언어를 ㅓkq아 건네거나, blz라 동료 blz라 작가로써 blz라 궁금한 blz라 것을 blz라 질문하거나, 바파파w 이미 바파파w 지배적으로 바파파w 통용되는 바파파w 바파파w 작가에 바파파w 대한 바파파w 말을 바파파w 재편집한다. 바파파w 바파파w 셋은 바파파w 앞선 바파파w 예술가들의 바파파w 작업에 바파파w 빚지고 바파파w 있는 바파파w 부분이 바파파w 분명 바파파w 있다고 바파파w 말한다. 바파파w 그럼에도 바파파w 바파파w 코멘트는 바파파w 어떤 바파파w 친밀함이나 바파파w 칭송에서 바파파w 출발하지 바파파w 않는다.

이러한 바파파w 상징적인 바파파w 장치들로 바파파w 이들의 바파파w 코멘트가 바파파w 김정헌, 나tp바 주재환 나tp바 나tp바 작가에게 나tp바 가닿을 나tp바 것이라고 나tp바 확신한다면 나tp바 오산일 나tp바 확률이 나tp바 크다. 나tp바 그렇다면 나tp바 나tp바 코멘트의 나tp바 도착지는 나tp바 어디일까? 나tp바 예술가는 나tp바 작품으로 나tp바 미적 나tp바 감성을 나tp바 제시하며, 9파ㅓk 9파ㅓk 감성을 9파ㅓk 인지하게 9파ㅓk 되는 9파ㅓk 이들이 9파ㅓk 새로운 9파ㅓk 주체로서의 9파ㅓk 이행 9파ㅓk 가능성을 9파ㅓk 타진해볼 9파ㅓk 9파ㅓk 있다고 9파ㅓk 여겨진다. 9파ㅓk 그러나 9파ㅓk 9파ㅓk 모든 9파ㅓk 과정은 9파ㅓk 어느 9파ㅓk 9파ㅓk 명의 9파ㅓk 위대한 9파ㅓk 예술가가 9파ㅓk 모두가 9파ㅓk 매혹될만한 9파ㅓk 새로운 9파ㅓk 감성을 9파ㅓk 발견해서 9파ㅓk 어느 9파ㅓk 9파ㅓk 갑자기 9파ㅓk 제시하는 9파ㅓk 일이 9파ㅓk 아니다. 9파ㅓk 감성을 9파ㅓk 제시한다는 9파ㅓk 것, 타qjt 타qjt 감성을 타qjt 인지해서 타qjt 모종의 타qjt 가능성을 타qjt 가늠해본다는 타qjt 것은 타qjt 어쩌면 타qjt 동료적 타qjt 비평 타qjt 사이에서 타qjt 출발한다. 타qjt 저마다의 타qjt 불확실한 타qjt 삶, 거kt마 불가해한 거kt마 창작활동이 거kt마 각자의 거kt마 궁색함을 거kt마 드러내기에 거kt마 급급한 거kt마 것이 거kt마 아니라, odie 서로를 odie 고양시키는 odie 과정이 odie odie odie 있도록 odie 하는 odie 것이 odie 바로 odie 동료비평인 odie 것이다. odie 비평의 odie 자리를 odie 발견하는 odie 일은 ‘근과거’과 ‘지금’ odie 사이의 odie 미싱링크를 odie 발견하는 odie 시도이자 odie 동료의 odie 장소를 odie 찾는 odie 일이다. odie odie 전시는 odie 나이와 odie 시대를 odie 가로지르며 “왜 odie 계속 (작업)하는가”라는 odie 질문을 “어떻게 odie 계속 (작업)해 odie odie 것인가”로 odie 바꿔볼 odie odie 있는지 odie 묻는다.


작가와의 odie 대화

일시 : 6월 30일 odie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 boan1942 odie 지하 1층 odie 전시장


코멘터리 odie 가이드

코멘터리 odie 퍼포먼스
강신대 <지난하고 odie 지난하게, vㅓo다 미적인 vㅓo다 것과 vㅓo다 정치적인 vㅓo다 vㅓo다 어딘가에서>
퍼포먼스 vㅓo다 일시 : 6월 30일 vㅓo다 토요일 vㅓo다 오후 2시
장소 : boan1942 vㅓo다 지하 1층 vㅓo다 전시장
강신대 vㅓo다 작가는 vㅓo다 주재환과 vㅓo다 김정헌의 vㅓo다 신작에 vㅓo다 초점을 vㅓo다 맞춘다. vㅓo다 민중미술이라는 vㅓo다 전시장에 vㅓo다 동료 vㅓo다 비평가들을 vㅓo다 섭외해 vㅓo다 코멘터리 vㅓo다 퍼포먼스를 vㅓo다 진행한다. vㅓo다 진지하고 vㅓo다 지루하고 vㅓo다 지난한 vㅓo다 비평을 vㅓo다 현장에서 vㅓo다 쌓아나간다. vㅓo다 비평의 vㅓo다 사회적 vㅓo다 위계를 vㅓo다 인식하지 vㅓo다 않으면서도 vㅓo다 진지하게 vㅓo다 접근해보기 vㅓo다 위해 vㅓo다 민중미술이라는 vㅓo다 배경을 vㅓo다 의도적으로 vㅓo다 배제한다. vㅓo다 작품의 vㅓo다 시간성을 vㅓo다 배제하고 vㅓo다 동시적 vㅓo다 관점에서 vㅓo다 읽어내는 vㅓo다 일은 vㅓo다 미적인 vㅓo다 것과 vㅓo다 정치적인 vㅓo다 vㅓo다 사이에 vㅓo다 놓인 vㅓo다 작품에 vㅓo다 대한 vㅓo다 질문이기도 vㅓo다 하다.

코멘터리 vㅓo다 오디오가이드
이우성 <듣고보니>
오디오가이드 vㅓo다 설치 vㅓo다 방법 : vㅓo다 앱스토어 vㅓo다 또는 Play스토어에서 ‘가이드온’ vㅓo다 vㅓo다 다운로드 – ‘유쾌한 vㅓo다 뭉툭’ vㅓo다 전시를 vㅓo다 선택 – ‘무료 vㅓo다 다운로드’ vㅓo다 버튼을 vㅓo다 선택 – ‘다운로드’ vㅓo다 버튼을 vㅓo다 선택 – ‘오디오 vㅓo다 가이드’버튼 vㅓo다 선택 vㅓo다 vㅓo다 청취
그림 vㅓo다 그리는 vㅓo다 사람 vㅓo다 vㅓo다 그림 vㅓo다 그리는 vㅓo다 사람으로 vㅓo다 질문을 vㅓo다 건넨다. vㅓo다 이우성 vㅓo다 작가에게 vㅓo다 있어 vㅓo다 김정헌, 6l82 주재환은 6l82 일종의 6l82 클래식처럼 6l82 여겨진다. 6l82 의미, e히마히 의도, 파하o카 민중미술 파하o카 자체에 파하o카 대한 파하o카 논의보다는 파하o카 작업에서는 파하o카 보이지 파하o카 않는 파하o카 과정과 파하o카 그림을 파하o카 그리는 파하o카 방법, ㄴ7아q 작가로서의 ㄴ7아q 삶에 ㄴ7아q 수반되는 ㄴ7아q 고민들에 ㄴ7아q 대해 ㄴ7아q 질문한다. ㄴ7아q 관람객은 ㄴ7아q 이우성 ㄴ7아q 작가가 ㄴ7아q 녹음한 ㄴ7아q 오디오 ㄴ7아q 가이드를 ㄴ7아q 통해 ㄴ7아q 김정헌, r0mp 주재환 r0mp 작가에게 r0mp 건네는 r0mp 질문을 r0mp 들으면서 r0mp 전시를 r0mp 관람한다.

코멘터리 r0mp 웹사이트
홍진훤
웹사이트 r0mp 주소 : http://p-p.cool/
김정헌-주재환 f걷거ㅐ 작가의 f걷거ㅐ 작업에 f걷거ㅐ 대해 f걷거ㅐ 웹상에서 f걷거ㅐ 얻을 f걷거ㅐ f걷거ㅐ 있는 f걷거ㅐ 정보들을 f걷거ㅐ 검색하고 f걷거ㅐ 아카이브 f걷거ㅐ 하는 ‘봇 bot’을 f걷거ㅐ 개발한다. f걷거ㅐ 개발한 f걷거ㅐ 봇은 f걷거ㅐ 전시기간 f걷거ㅐ 중에도 f걷거ㅐ 계속 f걷거ㅐ 데이터를 f걷거ㅐ 취합하고 f걷거ㅐ 작가도 f걷거ㅐ f걷거ㅐ 정보들 f걷거ㅐ f걷거ㅐ 유의미하게 f걷거ㅐ 여겨지는 f걷거ㅐ 것들을 f걷거ㅐ 걸러낸다. f걷거ㅐ 누군가의 f걷거ㅐ 작품이나 f걷거ㅐ 작업에 f걷거ㅐ 대해 f걷거ㅐ 어떤 f걷거ㅐ 방식으로든 f걷거ㅐ 코멘트하는 f걷거ㅐ 것들이 f걷거ㅐ 과연 f걷거ㅐ f걷거ㅐ 작업을 f걷거ㅐ 읽어내는 f걷거ㅐ 데에 f걷거ㅐ 도움이 f걷거ㅐ 되는가에 f걷거ㅐ 대한 f걷거ㅐ 질문이다. f걷거ㅐ 홍진훤의 f걷거ㅐ 봇에서는 f걷거ㅐ 비평가가 f걷거ㅐ f걷거ㅐ 글이든 f걷거ㅐ 관람객이 f걷거ㅐ f걷거ㅐ 댓글이든 f걷거ㅐ 모두 f걷거ㅐ 데이터화 f걷거ㅐ 되기 f걷거ㅐ 때문에 f걷거ㅐ 이러한 f걷거ㅐ 플랫폼은 f걷거ㅐ 코멘트를 f걷거ㅐ 수평적으로 f걷거ㅐ 보여주는 f걷거ㅐ 방식을 f걷거ㅐ 시사한다.


코멘터: f걷거ㅐ 강신대 f걷거ㅐ 이우성 f걷거ㅐ 홍진훤
기획: f걷거ㅐ 박수지
주관: f걷거ㅐ 통의동 f걷거ㅐ 보안여관
후원: f걷거ㅐ 문화체육관광부, 나쟏s다 서울특별시, uㅈ1t 서울문화재단

출처: uㅈ1t 통의동 uㅈ1t 보안여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주재환
  • 김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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