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시간은 비스듬히 흘러간다. 전시의 제목 ‹Oblique Afternoons : 비스듬한 오후›는 그가 공간에 따라 다르게 느낀 시간이 하나의 장소에 모이며 서로 교차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가 여러 장소와 시간을 담은 영상과 수집한 소리가 한 공간에 모인다. 작가는 지나간 상황을 반추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평행하게 흘러가는 시간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김태윤은 그동안 시간의 상대적인 성질과 움직임을 주제로 영상, 사운드 작품을 선보여왔다. 작가가 수집한 일상의 이미지는 물리적인 움직임이 변형되어 시공간이 모호해진 채 되풀이되고 기시감을 준다. 작가는 지난 3년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간단한 장비들로 작업을 위한 푸티지와 소리를 채집했다. 그리고 이번 개인전에서는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에 집중한다. 그가 바라본 도시의 이미지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도심 속에 보행자의 시선 바깥에 위치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선택한 이미지 외에도 영상의 편집 방식이 주는 시간의 감각이다. 번쩍이며 변하는 장면은 오랜 기억의 저장 방식과 비슷하며, 천천히 소용돌이치는 물은 영상이 정방향으로 재생되는 건지 반대로 흐르고 있는 건지 모호하다. 영상의 속도와 맞추어 시선을 움직이다 보면 전자기기 특유의 파형과 글리치가 드러나며 현실의 시간과 동떨어져 있던 감각이 잠시 돌아온다.
과거에는 작가가 영상에 질감을 얹기 위해 사운드를 활용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사운드 작품을 중심으로 그동안 모아온 풍경을 펼쳐 놓았다. 전시와 동명의 사운드 작품 ‹비스듬한 오후›(2022)는 전시장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 작품에서 들리는 일상의 소리와 박자가 설치된 영상과 교차하며 새로운 공간감을 생성한다. 이는 그의 예전 작업 자동 생성 영상 ‹Drifters›(2019–2020)와 개념을 잇는 것으로 코딩을 통해 끝없이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듯이 사운드와 여러 영상이 불규칙하게 엇갈리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영상 작품 ‘완곡한 시간’, ‘임시 각도’, ‘가상 규칙’, ‘느슨한 소용돌이’ 등의 작품 제목을 보면 각 명사를 추상화하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작가가 정한 수식어는 그의 시간관념을 엿보게 한다. 그만의 시간성으로 다시 정의한 작업의 소재들은 완곡하고 느슨한 무빙이미지로 나열되었다.
그는 영상 작업의 연장으로 모니터에 잔상처럼 남아있는 이미지를 종이 위에 얹었다. 종이 한 면을 빼곡하게 채운 이미지는 그가 평소 작업에 집중하며 목격한 임의의 패턴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드로잉들은 시청각과 시간의 감각이 섞이며 발생하는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도형의 반복과 색의 조합으로 추상화시키려는 작가의 시도다. 작가가 선택한 브리스톨지와 색연필은 그의 디지털 작업 환경과 매우 대비되는 재료로 손끝의 압력에 따라 작업의 결이 쉽게 드러난다. 이 행위는 끝없이 고사양으로 향해가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충족되지 않는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탐구와 목마름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감각은 스크린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하기 때문이다.
로베르트 발저는 그의 산문‹산책›에서 산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역설한다. 산책은 발저에게 글을 쓰는 일에 영감을 주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고 경이로운 일이자 삶을 유지하는 힘이었다. 발저는 산책을 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아주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하며, “사물에 대한 완전한 관조”로써 산책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산책자는 모든 특이하고 독특한 현상을 환영하고… 그런 형상들을 형체가 있는, 본체를 갖춘 형상으로 만들어, 형상들이 그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가르쳤던 것처럼 형태와 영혼을 부여해야 한다.”고 산책과 창작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김태윤은 그의 작업 노트에서 “나의 일상은 반복되는 우연을 마주하는 경험의 연속”이라는 말을 했다. 작가의 말이 권태롭게 느껴지진 않는다. 발저가 길을 걸으며 목격한 세상의 모든 것이 글의 원천이 되었다. 김태윤은 일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의 작품은 전시장에 우리의 시선보다 조금 낮게 또는 높게 설치되어 있다. 산책자의 자세로 다시 영상에 집중해보자. 매일 스스로 움직이는 도시와 그의 걸음을 잡는 새로운 모습이 계속해서 생산된다.
글 김수현(휘슬, 큐레이터)
참여작가: 김태윤
출처: 휘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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