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라 개인전 : A Groaning Table 만반진수 滿盤珍羞

사이아트스페이스

2016년 4월 26일 ~ 2016년 5월 2일


굳어진 시점을 흔들어 놓는 식탁 위의 사물들에 대하여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표현하거나 심지어 같은 직장 사람들마저 한 식구라는 말 할 정도로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의 정서적 의미는 크다. 김한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만반진수(滿盤珍羞)라는 주제를 통해 식탁을 중심으로 한 우리 삶에 있어서 다양한 가치관과 시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작가가 그려내는 것은 식탁과 그 위에 놓여진 사물들이지만 가치관이나 시각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는 보이는 사물을 통해 화면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위치나 관계 등을 유추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식탁이라는 장소는 작가에 의하면 사회적 생존을 위해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는 곳이고 학습된 욕망이 나타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식탁이라는 장소는 축소된 사회의 다른 형태이며 인간을 좀 더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진채기법의 한국화 작업방식이고 전통 민화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사물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작품을 자세히 보면 식사에 참여한 사람의 위치를 고려하여 사물을 뒤집어서 그리거나 같이 식사하는 사람의 시점을 개입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화면 속에서는 이상해 보이는 상황들을 발견하게 된다. 똑 같은 과일에 접시의 크기 차이를 극대화하거나 가위 날 길이가 달라서 사용할 수 없는 상황도 보인다. 그리고 먹는 음식에 이물질을 등장시키고, 식탁을 덮는 보자기에는 음식과 그릇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서구의 관찰자 중심의 원근법적 단일 시점을 깨뜨려 그림을 그릴 때 참여했을 법한 사람들의 시점을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의 데뻬이즈망 기법에 비견되는 작업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이성적 차원의 시각을 전복하고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인간의 내부의 세계와 사회 안에 노출되는 그 관계망에 있어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기호와 상징을 부각시키거나 왜곡시킴으로써 이성의 껍질을 드러내고 남겨진 인간의 내적 상황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적인 상황들을 직시해서 보도록 만든다.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각기 다른 시선 방식들인데 그것들이 나열되고 충돌하고 교란되면서 이성과 합리의 시각으로 알려진 일관된 단일 시점에만 익숙해져 있는 관찰자의 위치가 한편 불안정하고 의심스러울 수도 있음을 발견하도록 굳어진 시점들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관점이 이미 동양의 정신 속에 녹아 있었고 그것이 비합리나 비이성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또 다른 깊은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이야기하듯 던져주고 있는 그의 작업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다양하고 특이한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이야기들이 일부는 숨어 있는 것 같고 일부는 강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서구적 교육과 관습에 익숙해지면서 둔감해져 있던 이성과 합리를 초월한 동양적 지혜와 사유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밥을 먹는 장소인 식탁 위에서 음식이나 사물처럼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대상들로부터 그곳 감춰져 있는 인간 내면 속의 이야기를 특이한 사물들의 특성들을 통해 꺼내 놓기도 하고 혹은 일상에서 당연해 보이는 사물의 관계들을 하나 둘 씩 빗나가게 함으로써 현대인의 시각, 특별히 서구적 시각방식에 대해 일견 잔잔해 태도로 보이지만 오히려 강한 어조로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서구화되고 과학에 의해 물질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명료하고 정확해졌다고 굳게 믿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의문이며 그 시각 뒤편에 위치하고 있을 수 있는 맹점 때문일 것이며 동양적 사유가 갖고 있는 인간의 내면의 깊은 통찰력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확고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생선, 멸치, 장지에 분채 석분 물감, 68.5×100cm, 2014


여유롭지 못한 마음, 장지에 분채 석분 물감, 25.8×17.9cm, 2014


넉넉하지 못한 마음, 장지에 분채 석분 물감, 25.8×17.9cm, 2014



먹을 수 없는 것이 끼어있다_2, 장지에 분채 석분 물감, 112.1×145.5cm, 2013



출처 -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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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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