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 BE KIND REWINDED

대안공간눈

2016년 6월 3일 ~ 2016년 6월 16일




워크맨_가변크기_12분_2015


애니메이션 ‘워크맨’ 은 공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한낮,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노인들은 장기를 두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나무 그늘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공원의 풍경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 흥미를 느낀 주변의 노인들이 가까이 모여 이야기를 거들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마다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 찾기가 이렇게 힘들지만 전쟁 끝나고는 괜찮았지......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했어. 일제 때? 그땐 철도 공사하고 새로 짓는 것도 많아서 일용직으로 많이 다녔어. ”

“결혼? 열여덟에 했어. 얼굴도 모르고 했지. 그땐 일본 놈들이 여자들을 위안부에 끌고 가니까 색시 집에서 서둘러서 결혼하고 그랬어.”

“ 마을에 내시들이 부자였어. 결혼하고 양자도 들이고 살았지.”


영상은 빽빽한 아파트 숲이 노인의 격자무늬 옷으로 치환되면서 시작된다. 영상 속 주인공인 90대 노인은 여느 때처럼 공원에 나간다. 공원에서 젊은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데, 세대가 다른 이 노인에게는 끼어들 틈 을 주지 않는다. 구경만 하던 주인공 노인은 옆 벤치에 앉았다가 그 옆에 놓인 ‘워크맨’ 을 발견한다. 그는 잠시 망 설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꾸로 된 모양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갑자기 노인은 거꾸로 행동하기 시작 하면서 삶과 세상이 되감기된다.


노인은 시대의 이끌림에 몸을 맡겨야 했던 소시민적 삶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일본의 교육을 받고 해방 후 전쟁에 나가고 빠른 경제성장을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여야 했던,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의 삶을 살았다. 노인의 기억 속 전쟁과 가난, 일제강점기의 슬픔과 고통은 사적인 추억들과 섞여 지리적 기반과 함께 애니메이션으 로 구현된다. 빠르게 진화하는 도시와 그 안에서의 삶은 어느새 빛바랜 사진 같은 기억이 되고, 조소 섞인 농담처럼 과거의 기억들을 내뱉는 노인의 구술은 선명한 색채의 그림으로 재구성된다.


애니메이션 속 노인의 삶이 과거로 되감아지는 동안, 관객에게는 반대로 과거가 미래로 펼쳐지게 된다. 시간이라는 타임라인 안에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세계는 순환된다. 원화의 주 재료는 어릴 때부터 친숙한 오일 파스텔이다. 두터운 질감이 느껴지는 동화는 디지털 방식이 주는 효율성에서 조금 벗어나 하나하나 손으로 그리는 아날로그적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 자체로 시간성을 내포하는 제작 과정은 이야기 속 과거와 맞닿아 있으며, 현재의 테크놀 로지와 결합해 현재와 과거의 공간을 하나로 묶어 세계의 순환성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장면은 과천의 보통학교에서 일본 선생님의 지휘 아래 단체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사진을 찍자 뿌옇게 뭉개져버린 장면 뒤로 다시 중첩되는 이미지들처럼 기억은 희미해지고, 미화되고, 편집되어 뒤죽박 죽 엉킨다. 마침내 과거로의 여행이 끝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은 젊은 날 마당에 심어놓은 자두나무 꽃 잎들처럼 소멸된다.




안양산책_가변크기_ 7분18초_ 2013



오랫동안 안양에서 거주하였지만 안양이란 지역은 학교를 다녔던 동네, 돌아와서 쉬는 잠자리 이상의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관양동에서 과천을 거쳐 서울로 오가는 생활이 반복되는 일상에 안양의 원도심인 만안구는 효자동의 골목길 보다 심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러한 동네의 구석구석을 걷는 일은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관찰과 더불어 일상의 패턴에서 벗어난 짧은 여행이었다.


여러 양식들이 뒤죽박죽 섞인 원도심의 마을은 현대의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스펙타클한 아름다움을 주진 않았지만 자연의 풍파를 함께한 세월 속에 특유의 어울림이 있었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 끝에 자리한 녹이 슬은 작은 대문과 골목 밖에 나온 집안 살림살이들의 풍경은 오래전 잊혀 진 기억들을 다시 되살렸으며, 사각형 모양의 땅에 지어진 집이 아닌 언덕위에 비틀게 지어진 집과 골목의 사이에 자리해 두개의 골목을 만드는, 뾰족하고 긴 건물 형태의 새로움에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오래된 도시에는 이야기들이 많아 보인다. 사람들의 축적된 삶의 패턴들이 외부로 드러나고 때로는 그 모습이 어울림과는 상관없는 형태로 웃음을 자아내며 위트 있는 삶의 노하우들을 발견한다. 그 아이러니한 웃음 속에 유행이 있고 문화가 있다. 작업은 이러한 삶의 기지가 모인 문화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며 재해석이다.


작가와의 만남 : 2016. 6. 4 (토) pm 4:00


출처 - 대안공간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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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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