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개인전: 에코의 초상 The Portrait of Ec(h)o

김희수아트센터

2022년 8월 1일 ~ 2022년 8월 29일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
물결처럼

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

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길을 걷다가 무심코 밟아버린 풀들이 떠오른다. 발바닥 모양으로 뭉개진 자리에 까딱까딱 고개를 흔들며 살아 있는 풀들. 이 시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인가? -예언 혹은 저주처럼- 불가항력으로 ‘사랑’에 빠지리라 외치는 목소리들. 떠나는 이의 뒤통수를 향해 밤이 늦도록 울려 퍼진다.  

그런데 ‘우리’가 수상하다. 밟은 것은 나이고 밟힌 것은 그들이지만, ‘우리’라는 말은 이 차이를 초월한다. ‘깊고 부서지기 쉬운’ 것은 나이고 풀들이다. 우리는 모두 휩쓸린다. 물결처럼, 터져버린 둑을 넘어 밀려오고 밀려간다.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가 겪는 시간은 변화의 시간이다. 그러한 시간의 ‘한가운데’란, 어떤 사태의 한복판처럼 들끓고 있을 수도, 태풍의 눈처럼 고요할 수도 있다. 언제나 변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 우왕좌왕 할수록 시야에서 북극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향(指向)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김효진 개인전 《에코의 초상》**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여준다. 가느다란 붓으로 촘촘히 그려낸 풀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 다른 몸짓으로 제 몫의 삶을 살아낸다. 풍경을 그렸음에도 ‘초상’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이들이 다른 누군가의 삶을 받쳐주는 배경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김효진의 화폭에서 풀들은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그동안 볼품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얼굴이 시선의 빛을 받아 환히 밝혀진다. 가려졌던 품위가 드러난다. “거센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임을 아는(疾風知勁草)” 것처럼.   

멀찌감치 물러나서 보면 벽면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읽힌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각각의 생이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저기 튀기고 흩뿌려진 색깔들- 빗방울이라 불러도 좋고 빛방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온몸으로 맞서는 존재들이 여기 있다.

바람의 방향을 감지하며 전시장을 한바퀴 돌아보자. 느닷없이 난기류를 만난 풀들이 보이고, 고비를 넘긴 뒤 잠시 숨을 고르는 풀들이 보인다. 이들의 몸은 사건을 겪은 몸이라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군데군데 긁히고 심지어 꿰뚫리기까지 했다. 전에 없던 이상한 무늬가 생겨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우당탕퉁탕” 지나온 삶이다. 

바람은 다시 불어오고, 삶은 계속된다. 어떠한 위기도 풀들의 존엄을 해치지 못한다. 찬란한 생명의 노래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골짜기마다 메아리 친다. 풀 한 포기에 깃든 기운이 파동처럼 번져 나간다. 하나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사방으로 확장된다. 각자 흔들리며, 주변의 흐름에 올라탄다. 서서히 형성된 연결망 위에서 희망이 움튼다. 다시 한번, 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김행숙, 「인간의 시간」, 『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사, 2014, 11쪽.
**본 전시명은 위 책에서 빌려 왔다. 

글: 홍예지


참여작가: 김효진
기획: 홍예지
그래픽: 디자인 조현열
사진: 이강욱 
설치: 정진욱, 현대 운송
도움: 황효덕, 백승연, 배성한
후원: 수림문화재단 

출처: 김희수아트센터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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