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지

OCI미술관

2020년 10월 22일 ~ 2020년 12월 19일

적당히 의기투합
김영기 OCI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작가들의 광채를 쬐고 즐기는 마음 일광욕, 어쩌면 그게 전시 아닐까 싶습니다. ‘색상 대비’라는 용어가 있지요. 빛깔 선명한 작가들이 서로 마주하면, 각자 따로 볼 때 미처 몰랐던 색다른 면모가 보다 또렷해지고 서로 한층 돋보일 것입니다. 본 전시에서 작가들은 각자 왼손 혹은 오른손이 되어 짝과 둘씩 마주 어우러집니다. 깍지 끼는 모양새도 제각각입니다. 팽팽하게 맞서다 때론 기대어 서고, 엇갈리며 덮고, 비좁은 틈으로 엿보듯 다가갑니다. 때론 과감히 섞고, 거미줄로 두루 얽고, 꼬치에 꿰어 돌고, 또 작품 속에 작품을 품습니다. 대상과 방식은 달라도 겉과 속 곳곳에 접점이 있습니다. 넌지시 이어지는 시각적 박자 속에, 저마다 무언가 확장하고 뛰어넘는 ‘초월 얼개’를 심지처럼 품습니다. 영 딴판이면서도 어딘가 자못 통하는 다섯 쌍의 작가들. 의기투합 깍지 끼고 쭉 뻗어 서로 밀어주는 양손을, OCI미술관을 빛낸 ‘금손’들을 다시 만납니다.

도입부를 여는 두 작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현란한 색상과 통통 튀는 형태, 신출귀몰한 전개가 떠오릅니다. "새하얀 얼굴에 반했지. 용기를 내어 보라색을 건넸어." 박경종 작가는 빈 캔버스와의 설레는 만남으로 작업과의 연애담을 시작합니다. 창작 과정에 오가는, 그림과의 생생한 투닥임을 움직대는 그림으로 들려줍니다. 또한 그렇게 장성한 그림이 장소와 세대, 플랫폼을 넘나들며 소비되는 이미지 생태에 주목합니다. 지희킴 작가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몸'의 경계, 그리고 그것이 낳은 기준에 도전합니다. 규범과 본보기의 틀을 넘어 몸은 자유롭게 흐릅니다. 형태는 말랑거리고 흥겹게 분절하며 색상은 맥동합니다. 서로의 작업을 큼직한 꼬치에 한데 꿰어 돌려가며 굽고, 높이 6m에 이르는 벽면을 주거니 받거니 합심해 채웁니다. 소문에 의하면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벽화를 썰어서 나눠주는, 이미지 공유/소비 생태 실험으로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고 합니다. 저도 한 점쯤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려우면 참지 말고 긁어야지요. 이들의 그림에는 ‘구시렁’이 들립니다. 배윤환 작가는 삶의 애매모호하고 떨떠름한, 때론 부조리한 낯을 모르쇠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 칼날을 스스로에게 겨눴습니다. 온갖 상념과 잡동사니가 뒤엉켜 바다를 오염합니다. 창작은 사실 ‘작품으로 세상을 더럽히는 짓’이 아닐는지, 바다거북과 등대지기의 일침 속에 작가의 의구심과 다짐을 함께 엿봅니다. ‘쩌렁쩌렁한 그림’ 본 적 있나요? 신민 작가의 그림은 들립니다. 서비스업 표준형 검정 머리망으로 꼼꼼히 마무리한 올림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마스크 너머로 이글거리는 열세 쌍의 눈초리를 온몸으로 마주하면, 공간 가득 그들의 성난 목소리가 보입니다. 소시민 여성으로 거대 자본에 몸과 마음을 끼워 맞추며 버티는 우툴두툴 생존 투쟁을, 거친 스트로크로 전시장에 부르짖습니다.

전시장 2층에 들어서면 농장과 정원이 열립니다. 최수진 작가는 창작 농장 주인입니다. 숨을 캐고 색을 거둡니다. 거미가 먹이를 채듯, 그물로 생각을 낚습니다. 땀 냄새가 보이는 화면을 마주하면, 의지와 창작열 말고도 통제 바깥의 수많은 친구들이 그림에 힘을 보태는 걸 깨닫습니다. 김수연 작가는 사물의 색다른 면, 숨은 거리감을 들춥니다. 모네의 화가 인생을 줄곧 수놓은 ‘꽃’. 꽃을 꽃답게 하는 것은 색깔일까요 향기일까요. 색도 향도 벗고, 홀로 꽃이 핍니다. 빛바랜 초상처럼, ‘꽃’ 대신 이름으로 각자 기억될 수 있을까요. 직접 땅을 일궈, 꿈꾸던 색과 향을 키우고 그려낸 모네. 화장을 지운 꽃들은 이제, 모네의 정원 옆에 수연의 정원을 꾸립니다.

개념에도 초상이 있습니다. 홍승혜 작가가 벽면에 떨군 픽셀은 둥글게 맞잡고 가지런히 늘어서며 사람이나 사연을 닮습니다. 이윽고 벽을 비집고 공간으로 돌출하며 그림자를 얻고, ‘만질 수 있는 관념’으로 자랍니다. 비로소 ‘1픽셀’은 현실 세상과 회로를 잇습니다. 참, 예술 논리에도 생김새가 있습니다. 강서경 작가는 ‘큼’, ‘짧음’, ‘넓음’, ‘얇음’을 걸고 ‘우뚝’, ‘기우뚱’, ‘주르륵’, ‘대롱대롱’을 세웁니다. 격자로 공간을 오리고, 선이 선을 떠받치고, 허공의 색깔로 구멍을 채웁니다. 왕골을 휘감은 실낱에 캔버스의 까슬함이 나폴대고, 조각의 반듯한 피부에 물감의 고소함이 감돕니다. 회화는 몸무게를 얻고 기하학은 체온을 품습니다. 비로소 ‘두 작가가 세우고 걸어둔 건 물체만이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통 크게 썰어 둔 전시장 여백이 볼수록 선명합니다.

나무 바닥이 도드라지는 전시장 3층 한복판, 책가도 장식장처럼 얼기설기 방을 짰습니다. 기껏해야 두 사람이나 들어앉을까 싶은 이 단칸방도 권인경 작가에겐 하등 비좁을 게 없습니다. 선반을 따라 산자락을 얹고 계단을 놓고, 동네 어귀를 겁니다. 세월을 바르고 기억을 두르며 거듭 키운 방은,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담을 만큼 넉넉합니다. 공간은 어느덧 ‘장소’로 철들고, ‘그냥 방’은 비로소 ‘각자의 방’이 됩니다. 그런 장소에는 근처만 가도 사연 냄새가 솔솔 납니다. 킁킁! 라오미 작가의 코는 이 냄새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방문을 열고 바다 내음을 따라, 인천을 지나 단둥, 압록, 두만, 요코하마로 나섭니다. 물과 뭍이 깍지 낀 곳들 마디마디 떠도는 풍경 조각을 줍습니다. 다시 빚어낸 세상의 외모는, 눈앞의 물리적 실선보다, 시대상과 사연과 그 시절의 눈, 코, 입, 귀가 모여 찍어내는 아련한 점선에 가깝습니다.

본 전시의 리듬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은 ‘적당히 의기투합意氣投合’입니다. 내용, 형식, 기운 삼면으로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결실이 바로 《깍지》입니다. 작가는 짝의 아이디어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즉흥적으로, 또한 딱 적당한 만큼 반응했습니다. 각자의 색깔과 그 사이의 시너지가 ‘밀당’을 반복하며 팽팽할수록 보는 사람이 즐겁습니다. 유일한 제 당부는 ‘협의하되 합의하지 말라’였습니다. 반응이 꼭 친절하고 호의적일 필요도 없지요. 구르든 기든 자기 걸음걸이로 알아서 전진하는 게 작가입니다. 서로 갈고 부딪다 흠집처럼 새로이 돋은 연마 절삭면, 기대고 포개며 드리우는 뜻밖의 그림자를 이끌어 내려 합니다. 어째서 이들이 깍지인지, 한 손바닥일 때 보이지 않던 어떤 면모가 고개를 드는지 번갈아 살핍시다. 작가 각자에게 따라붙던 기존의 꼬리표며 수식어를 주저 없이 싹둑! 자르고, 저마다 새로 달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참여작가
강서경, 권인경, 김수연, 라오미, 박경종, 배윤환, 신민, 지희킴, 최수진, 홍승혜

작가와의 대화
11. 11 (수) 7PM
12. 5  (토) 3PM

출처: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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