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아 개인전 - THE MEMORY CATCHER ; 기억의 이진법

레인보우큐브갤러리

2020년 10월 9일 ~ 2020년 10월 31일

세로로 긴 동공을 가진 미래 인류에게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1927)〉에서 지하 깊은 곳에는 노동자의 도시가 있고, 지상에는 부르주아를 위한 도시로 나뉘어져 존재합니다. 100여 년 작은 영화 한 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구분선은 지금까지 유효한 것 같습니다. 아니 되려 건물이 끝없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지상에서 그 구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력벽돌로도 충분히 높은 층의 건물을 쌓을 수 있었지만,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 건축에 도입한 철골은 소위 말하는 마천루로 나아갈 기반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도움닫기를 한 건물은 지금의 모습처럼 하늘에 닿는 집이 됩니다. “진화라고 일컫는 ‘흐름’의 과정에서 고층 상업 건물은 땅값 압력에서, 땅값은 인구 압력에서, 인구 압력은 외부의 압력에서, 인구 압력은 외부적 압력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 그도 고층 빌딩 높이에 따라 층마다 ‘땅’값이 바뀔 것이라 예상 했을까요.[1]

어딘가에서 시작한 압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위로 향하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압력은 사실 설리번이 말한 듯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계속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에 가까워지려는 바벨탑부터 시작해서 파노라마를 감상하기 위한 로툰다, 마천루에 하나씩은 있는 전망대까지. 이들은 실제로 위로 오르지 못하면 그 경관이라도 보기 위한 장치들이기도 했습니다. 층마다 ‘땅’값이 바뀌는 것은 정확하게는 ‘뷰’ 값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키를 훌쩍 넘은 높이에서 넓게 펼쳐진 뷰를 보면서 발아래 있는 것은 손쉽게 잊을 수 있습니다. 계단의 단차들도, 엘리베이터의 미끄러짐도, 심지어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도 말이죠. 

사람의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프리미엄 뷰에는 푸른 하늘과 녹지, 도시 풍경이 혼재되어 등장합니다. 남윤아 작가는 마천루가 아닌 휴먼-스케일human-scale에서 프리미엄 뷰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포착합니다. 그것은 마천루가 놓지 않으려던 풍경을 조각내 가져갈 수 있게 한 뒤, 개인이 선택한 풍경의 장면을 다시 수집하는 행위이기도(〈Roof Garden〉), 휴먼-스케일을 압도하는 마천루가 눈앞의 뷰에서 사라질 때까지 걸어가면서 대응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Distancing’ 연작). 거대 빌딩이 도시에서 늘 해오던 랜드마크landmark의 역할을 잃고 땅land으로 갈 때까지 말입니다. 

프리미엄 뷰는 더 ‘좋은’ 풍경일수록 그것을 찾는 이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평당 가격이 높아지고, 마천루를 의미 있게 만듭니다. 여기서 ‘좋은’ 풍경은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실내에 많은 빛이 유입되는 조건입니다. 조망하는 풍광은 사람들이 찾던 ‘프리미엄’ 뷰가 되고, 빛을 머금은 공간은 ‘좋은’ 거주지가 됩니다. 실제로 그 프리미엄 뷰의 면적당 가격으로 한 평 위에 배치된 빛들을 각자의 손에 담을 수 있습니다(〈Sun-catcher〉). 붙잡은 그곳은 빈 공간으로 남고, 머금었던 빛은 “신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신이 보는 풍경을 보고 싶었는지” 물어보는 작가의 질문과 함께 금세 흩뿌려지지만 말입니다. 

문득, 백여 년 뒤도 아닌 몇십여 년 이후에, 어느 도시에나 비슷하게 보이는 마천루가 이곳에 엄청난 밀도로 가득 차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계속해서 위를 바라보고 올라가겠죠. 지상에서 마천루를 바라보는 이들도, 높은 곳에서 프리미엄 뷰를 보는 이들도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에 둘러싸인 모습일 것입니다. 동공은 마천루를 닮아 점점 더 긴 직사각형이 되고, 그렇게 미래의 인류는 도시를 ‘잘’ 읽을 수 있게 진화하겠지요. 그렇다면, 이 전시를 빌어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세로로 긴 그 동공은 마천루와 사람을 함께 담을 수 있는지.

철강 사업을 하는 그 회사 빌딩의 이름처럼 ‘세상은 아름답게’ 되었는지. 

[1] Louis Sullivan, “Retrospect,” The Autobiography of an Idea, NY: Press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inc., 1924, p. 310


참여작가: 남윤아
기획: 남윤아
글: 김맑음
디자인: 손지훈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작가웹사이트: http://www.yunayunarang.com/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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