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SeMA 소장작품 기획전 《도시·도시인》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7년 북서울미술관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로서 ‘주변성’, ‘경계성‘에 대한 고찰로 시작하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 좀비로 은유되는 것들과 그것이 태어나는 사회 배경에 주목하였다. ‘소외된 노동의 확산’과 ‘사회적 불안’ 같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경험이 ‘자기 자신일 수 없고’ 또 ‘배제되는’ 존재를 양산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들을 선별하였다. 특히 SeMA 소장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시대, 장르, 양식 같은 분류 방식보다는, 작년 천만이 넘는 영화 관객들을 동원하며 많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하나의 사회 문화적 상징으로 등극한 좀비를 문고리로 삼아 작품들을 꿰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좀비로 은유되는 평범한 대다수가 더 나은 삶을 향해가기 위해, 기존의 틀을 깨나가기 위해 필요한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
이에 따라 전시는 세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욕구충족을 위해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태어나는 경계적 존재를 다룬다.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수행되는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끝에서 우리는 때로 소비하기 위해 스스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일하거나(영원한 노예), 사회적인 성찰이나 문제의식보다 개인적인 욕구만을 추구(욕구만 남은 몸)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집단적 경험은 반복적인 노동이나 나만 살면 된다라는 코드로 치환되어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속에서 반복적인 뻘짓을 흉내 내며 이를 풍자하거나, 소비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시각화하고, 욕구의 대상에 지배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문제를 가시화한다. 또한 사회 조건 속에서 인간들만큼이나 구조화된 경계적 사물에 대해 고찰한 작품들을 함께 배치하였다.
두 번째는 사회의 불안과 욕망이 드러나는 장소로서 주변적 집단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배제되고 또 감춰지곤 했던 소수(보이지 않는 사람들)는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권력이나 주류에 의해 억압당했으나 잊혀 지지 않고 기억으로나마 끊임없이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애를 써도 쉽사리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청년들(편의점 인간)은 웹툰, 소설 등을 통해 배제된 자들을 분신으로 내세우면서도 서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그 고리를 끊어내고자 한다. 이에 작품들은 익숙한 것이 낯설게 돌아오는 순간을 파고들어가거나, 사회적 인식과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 등으로 조응한다.
전시 구성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희망적 파괴에 좀 더 집중하는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일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리석음을 깨나가고, 사회적 틀에 맞추어 굴레 씌우지 않으며,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들이다.
우리가 겪어온 세계적인 경제 위기, 각종 재난(원전사고, 지진, 메르스 사태 같은), 테러 등은 더욱 더 일상적인 불안과 공포가 되어간다. 각종 재난을 다룬 영화들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전시된 작품들은 말하자면 이전부터 이러한 징후를 포착하고 해석해 왔던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가 어렵게만 느껴졌던 현대미술에 공감하고 우리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시 구성
영원한 노예 Eternal Slaves
욕구충족을 위해 의미 없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태어나는 경계적 존재를 다룬다.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수행되는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끝에서 우리는 때로 소비하기 위해 스스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쇼핑몰을 배회한다.
김준의 <bird land-lacoste>는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물신화된 기호들이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념과 신념을 살갗 위 문신으로 표현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적 욕망을 보여준다. 이천표의 <중국폭포>는 지폐계수기를 계단 모양으로 쌓은 것으로, 가장 위에 놓인 계수기에 1달러를 삽입하면 지폐가 말 그대로 ‘돈 폭포’처럼 아래로 흘러내린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지폐계수기로 상징되는 시장경제 체제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가치생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유비호의 <검은 질주>는 개인들이 태양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듯 숨이 차오르도록 제자리 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집단문화에 속한 개인의 내면 상태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사회 조건 속에서 인간들만큼이나 구조화된 경계적 사물에 대해 고찰한 작품들을 배치하였다. 위영일의 <쓸모없는 것을 증명하는데 쓸모 있는 것>은 '예술이란 늘 미래적 형태여야 한다'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낯선 재료'를 사용하여 '다각도로 표현'한 정체불명의 사물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생산을 위한 생산’처럼 단지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쓸모없는 것이자, 쓸모없는 것을 증명하는데 쓸모 있을 뿐인 존재이다.
욕구만 남은 몸 Bodies Laden with Desire
사회적인 성찰이나 문제제기보다는 ‘나만 살면 된다’는 개인적인 욕구만 남은 존재들을 다루는 작품들이다. 욕구의 대상에 지배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문제를 가시화하거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함양아의 <Adjective Life - Out of Frame>은 유명한 큐레이터의 초콜릿 두상에 달려드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통해 달콤한 권력에 반응하는 개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2>는 고깃덩어리 얼굴을 그린 회화 작품으로써 동물로서의 본질을 망각한 채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가하면 노순택은 군사페스티벌의 모순을 지적한다. 폭력과 살인의 상징인 무기들이 그것의 실제적인 의미는 휘발된채 단순한 구경거리이자 유희의 대상이 되는 장면을 포착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Invisible People
사회의 불안과 욕망이 드러나는 장소로서 주변적 집단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배제되고 또 감춰지곤 했던 소수는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권력이나 주류에 의해 억압당했으나 잊혀 지지 않고 기억으로나마 끊임없이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작품들은 익숙한 것이 낯설게 돌아오는 순간을 파고들어가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사회의 영향을 깨닫게 한다.
임흥순의 <비념>은 제주 4.3사건 (1948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만든 작품으로, 한국 근현대사가 제도적으로 망각시킨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현재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 중첩되는 접점들을 더듬는다. 조습의 <파도>는 버려진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 죽어서 고통 받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밝고 유쾌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서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구멍을 내고 그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주체에 주목하게 한다. 빛이 없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촬영한 <일식>연작 작품으로 어둠 속에서 우리의 낮과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에 대해 반문하고 있다.
편의점 인간 Convenience Store Human
한국에서 좀비는 외국과는 다르게 한국적으로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자신, 내 가족, 내 친구들을 투사하는 대상으로서 부패한 주류보다 더 인간적으로 묘사되고 희망의 단초가 된다. 특히 애를 써도 쉽사리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청년들은 웹툰, 소설 등을 통해 배제된 자들을 분신으로 내세우면서도 서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그 고리를 끊어내고자 한다. 이에 작품들은 사회적 인식과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 등으로 조응한다.
이지양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견디고 있는 외부적인 힘, 압력을 시각화한다. 다양한 직업군의 유니폼을 입은 이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사진을 찍은 것이다. 거꾸로 매달렸지만 똑바로 서있는 듯이 포즈를 취해야 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와 함께 각자가 가진 고유한 힘으로 외부적인 힘(중력이자 사회적 조건)을 견뎌내고 있음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김상돈의 <머리꼬치>는 “토템 시리즈”의 하나로 일상의 오브제들을 쌓아올려 동시대인들이 찾는 ‘숭배대상’의 실체를 구성하고 현대사회의 물신주의를 비판한다. 모자와 쟁반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관직을 은유하며 이 시대 젊은이들의 인식, 그 밑바닥에 억눌려있는 욕망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희망적 파괴 Hopeful Destruction
좀비는 우리를 위협하고 공격하는 존재를 넘어 우리 자신,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존의 틀을 깨나가는 존재가 된다. 이에 따라 여기서는 자기 자신일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리석음을 깨나가고, 사회적 틀에 맞추어 굴레 씌우지 않으며,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고승욱의 <말더듬>은 언어의 경계에 있다는 의미로서, 확정적 담론을 벗어나 진짜의 존재와 가까이 가고자 한다. 또한 종교적, 생태적 해석의 가능성 아래서 인간의 불완전함과 불가능성을 깨우쳐주는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희망을 보여준다.
도슨트 시간 11:00, 15:00 서울 포커스전과 통합설명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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