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 Leandro Erlich: Both Sides Now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9년 12월 17일 ~ 2020년 6월 21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관장 백지숙)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개인전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를 오는 12월 17일부터 2020년 3월 31일까지 개최한다. 레안드로 에를리치(1973년생, 아르헨티나)는 주로 거울 등을 이용한 시각적 착시를 적용해 엘리베이터, 계단, 수영장 등 친숙한 공간을 소재로 한 설치 작품을 선보여 왔으며, 작품성과 동시에 대중성을 입증하며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현대미술 작가이다. 특히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물리적 체험이 가능한 그의 작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어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베니스 비엔날레(2001, 2005년), 휘트니 비엔날레(2000년) 등의 미술행사를 비롯해 PS1 MoMA(뉴욕), 바비칸 센터(런던), 모리미술관(도쿄), MALBA(부에노스 아이레스)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소개된 바 있다.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에서는 지금까지 작가가 주로 다루었던 ‘인식’이라는 주제에서 나아가 ‘주체’와 ‘타자’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허구와 실재의 공간이 공존하는 그의 설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이는 것이 실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며 ‘인식의 문제’와 ‘헤테로토피아’ 등 철학적 주제까지 아우른다. 이전의 전시가 우리가 보는 세계가 실재와 일치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환영과 실재’, ‘허구와 진실’ 등의 개념을 주로 드러냈다면, 이번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에서는 ‘나’(혹은 ‘주체’) 와 ‘타자’ 사이의 모호한, 비고정적인 경계에 주목한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성에 대한 이 같은 작가의 관심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해 상반된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남북한을 둘러싼 유동적인 정세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제3세계 국적을 가진 레안드로 에를리치에게 남한과 북한은 그 어느 쪽도 중립적인 대상으로 두 사회는 서로를 통해 각자의 성격과 정체성을 규정한다. 하나의 개별 주체의 의미와 본성은 주변 조건에 따라 변하며, 고정된 본성이나 실체는 없다. 역으로 타자의 의미와 본성 역시, 이를 인식하는 주체가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서로 다르다고 생각되었던 두 개의 대상을 구분 짓는 경계는 조건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가변적인 것이다. 주체와 타자 사이의 비고정적인 경계에 대한 이 같은 사유는 개별 존재에 대한 것으로 추상화되기도 하고,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되기도 하며 작가가 다루었던 인식의 불완전성에 새로운 층위를 더한다.   

총 4개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영화 포스터 13점으로 구성된 공간인 <커밍 순>으로 시작한다. <커밍 순>은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어린 시절 본인의 상상력과 영감을 키워주었던 영화들을 떠올리면 만들어낸 공간으로, 작품의 본래 맥락에서 벗어나 이미지에서만 출발해 자유롭게 이름 붙여진 영화 포스터들은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다음으로 작품마다 색다른 체험요소가 있는 <더 뷰>, <엘리베이터 미로>, <탈의실>, <잃어버린 정원> 등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탈의실, 정원, 엘리베이터 등 친숙한 공간 혹은 건축적 요소를 활용한 이들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관습적인 지각과 인식에 대한 동요를 경험하게 한다. 이어 만나게 되는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탑의 그림자>와 <자동차 극장> 등의 공간설치 작품으로 대형 스케일로 압도감을 선사한다.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탑의 그림자>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인기작인 <수영장>의 구조를 발전시킨 것으로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인 ‘무영탑’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히 제작한 신작이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이야기 속의 반영 이미지를 실제 물리적 공간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이러한 우리의 불완전한 인식의 투영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바깥에서 수면을 바라보았을 때와 작품 안에서 수면을 올려다볼 때 관람객이 경험하게 되는 시선의 교차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림자는 단순한 반영 이미지를 넘어 대상을 인식함에 있어서의 불완전함, 혹은 주체의 불완전한 인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타자나 외부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자동차 극장>은 모래 자동차 13대로 구성된 작품으로 영상 속 자동차와 모래 자동차 사이의 시선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 주체와 타자, 물질과 이미지 등에 대한 시선의 교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남한, 북한 지도를 모티브로 한 조각 작품 <구름(남한, 북한)>으로 전시를 마무리한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에서는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하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해진다. 이번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전은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특별한 전시로, 세계적인 수준의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구성 및 작품소개


커밍 순 Coming Soon, 가변설치 오일 페인팅, 나무 프레임, 카펫, 나무, 브라켓 조명, 문, 2019

<커밍 순>은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어린 시절 본인의 상상력과 영감을 키워주었던 영화들을 떠올리면 만들어낸 공간으로, 지금까지 대표 작품들의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영화 포스터 13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영화관 포스터로 그려낸 작업물을 ‘창조적인 과정 그 자체의 초상화’라 표현하며, 이것으로 작품의 본질이나 의미를 이야기하기보다, 관람객들이 보다 자유롭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대표작들을 이미지로 만날 수 있으며, 기존의 작품 맥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결합된 이미지와 글자를 통해 새로운 상상력이 파생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미로 Elevator Maze, 338 cm × 292 cm × 260 cm (W×D×H), 혼합재료, 2011


더 뷰 The View, 가변 크기, 비디오 설치, 55“ 모니터, 나무, 1997
MORI Art Museum, Tokyo, 2017. ©Hasegawa Kenta, courtesy Mori Art Museum

<엘리베이터 미로>는 엘리베이터의 구조물 4개를 붙여서 만든 설치 작품으로, <탈의실>과 같은 원리를 갖고 있다. 관람객은 거울일 것이라 생각한 면에서 다른 사람을 마주하게 되고,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엘리베이터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익숙한 공간에서 묘한 낯섦을 느끼게 하는 것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이다. <더 뷰>는 관람객에게 설치된 블라인드의 틈을 통해 마치 자신의 집에서 다른 집들을 훔쳐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히치콕의 영화 <이창(Rear Window)>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밤 풍경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집의 ‘창’은 마치 TV 화면처럼 우리의 공통된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은 빛의 상자가 된다.



잃어버린 정원 Lost Garden, 가변 크기, 거울, 목재, 벽돌, 인조식물, LED, 2009
HOW Art Museum, Shanghai, 2018
©David Ye, courtesy Galleria Continua, How Art Museum


탈의실 Changing Rooms, 가변 설치, 나무, 금색 프레임, 거울, 스툴, 커튼, 카펫, 조명, 2008
MORI Art Museum, Tokyo, 2017.© Hasegawa Kenta, courtesy Mori Art Museum 

전시실 1에서는 <탑의 그림자>의 수면 아래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고, 이후 <잃어버린 정원>, <탈의실>, <엘리베이터 미로>, <더 뷰>를 감상하게 된다. 건물의 중정을 연상시키는 <잃어버린 정원>은 거울을 이용해 실제와 다른 확장된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 관람객은 맞은편의 창문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공간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창문 너머 사각형으로 보이는 공간은 실은 두 장의 거울이 45도로 만나 만들어진 환영의 공간이다. 작가는 단순한 시각적 장치를 활용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익숙하게 여겨온 시각적 인식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탈의실>은  ‘탈의실’ 구조를 연결해 마치 미로와 같은 공간으로 만든 작품으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어느 것이 거울이고 뚫린 공간인지 헷갈리게 하며 시각적 혼란을 느끼게 만든다. 나의 모습이 거울 이미지로 보일 것이라 생각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타자와 마주치게 된다. 또한 어느 지점에서는 실제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나의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무엇을 만나게 될지 예상하지 못하는 이 작품에서 관람객은 서로 서로 관람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탑의 그림자 In the Shadow of the Pagoda, 920 cm × 560 cm × 900 cm (W×D×H), 혼합재료, 2019

<탑의 그림자>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인기작인 <수영장>의 구조를 발전시킨 것으로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인 ‘무영탑’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히 제작한 신작이다. 그림자라는 반영 이미지는 빛과 반영하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곧 사라질 이미지이다. 때문에 그림자는 반영하는 대상의 실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럼에도 그림자가 탑의 완성의 증거라 믿고 기다리다 끝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목숨을 끊은 석공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반영된 이미지, 우리의 시선이 투영되어 드러난 세계를 온전한 실재라 믿어버린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이야기 속의 반영 이미지를 실제 물리적 공간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이러한 우리의 불완전한 인식의 투영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바깥에서 수면을 바라보았을 때와 작품 안에서 수면을 올려다볼 때 관람객이 경험하게 되는 시선의 교차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수면을 기준으로 상하 대칭을 이룬 두 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탑의 그림자>에서는 무엇이 실재고 환영인지, 무엇이 주체고 객체인지 경계가 무의미하다.



자동차 극장 Car Cinema, 가변 크기, 모래 자동차, 비디오 프로젝터, 스피커, 2019

전시실 2에서는 이번 전시의 주요작이자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신작 <자동차 극장>과 <탑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자동차 극장>은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2018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선보인 소형 모래 자동차 작업 <중요함의 순서>의 실제 사이즈 버전으로 이번 전시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의 오픈 직전 2019 아트 바젤 마이애미 해변에서 선보인 66대의 모래 자동차로 구성된 <중요함의 순서>의 변형된 형태라 볼 수 있다. <자동차 극장>에서 13대의 모래 자동차가 바라보는 화면에서는 실제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들의 영상이 상영되고, 스피커를 통해 자동차의 소리가 들리며, 모래 자동차들의 이룰 수 없는 꿈을 보여준다. 동시에 모래라는 재료를 통해 생성과 소멸의 별개가 아님을 보여준다. 바위가 부서져 마지막에 갖게 된 모래라는 형태가 다시 생성의 재료가 되어 현대사회에 필요한 많은 것들(유리, 콘크리트, 반도체 등)을 만들어 낸다. 영상 속 자동차의 실사 이미지와 전시장에 자리한 모래 자동차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존재와 비존재, 실재와 반영 이미지, 물질과 표상 등에 대한 대비를 통해 이질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좌) 구름(남한), (우) 구름(북한) (L) The Cloud(South Korea), (R) The Cloud(North Korea)
(each) 205 cm × 67 cm × 199 cm (W×D×H), 유리에 세라믹 인쇄, LED 조명, 나무 비트린, 2019

전시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공간인 프로젝트 갤러리 2에서는 남한과 북한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조각 작품 <구름(남한, 북한)>을 선보인다. 남한과 북한의 지도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각각 열한 개의 프린트된 유리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실체의 ‘경계 없음’ 혹은 ‘무상함을 보여준다. 바람 따라 흩어졌다 모이며 형태가 만들어지는 구름처럼 개별 주체들의 의미와 본성도 주변 조건에 따라 변함을 의미한다. 남한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영향 받고, 사람들은 북한의 그것과 비교해 우리 사회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는 없으며 결국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사이의 경계는 희미하다.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레안드로 에를리치(1973년생)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설치작가로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18세가 되던 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Recoleta Culture Center에서 전시를 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한 후, 여러 지원을 받으며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Core Program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그곳에서 그의 대표적인 설치작품인 <수영장>과 <거실>을 발전시켰다. 
2000년에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49번째 베니스 비엔날레에 <수영장>을 선보였다. 최근 전시로는 2017년 일본 모리미술관, 2018년 중국 하우미술관, 2019년 중국 중앙미술대학미술관, 아르헨티나의 MALBA(부에노스아이레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19년 12월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66대의 모래 자동차를 설치한 대규모 설치 작품 <중요함의 순서>는 뉴욕타임스 등의 매체에 소개되며 행사 기간 동안 가장 주목받는 작품으로 꼽혔다. 


출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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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Leandro Er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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