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 찍고 그 이미지를 보관할 수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과거에는 재능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대상과 비슷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레티나 스크린에 띄워진 고화질 이미지와 3D 스캐너와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된 입체물의 생생함에 우리가 얼마나 감탄하는지를 떠올린다면, 오래전 사람들이 원본과 닮은 이미지를 보고 느꼈을 경이로움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재현은 마치 마술 같은 신비로운 기술이며, 화가와 마법사의 구분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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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매직 프린터>는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과정, 마술을 시연하는 무대에 낀 연기 너머로 흐릿하게 드러나는 마법사, 제작자, 예술가의 정체와 역할에 관심을 둔다. 이미지는 주술적, 비논리적인, 초자연적인 소망에서 비롯되지만, 이미지를 빗어내는 주체는 신이나 절대자도,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기술도 아니다. 현실과 소망의 세계, 논리와 비논리의 세계를 중계하는 마법사, 다름 아닌 예술적 주체의 활동이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개인이거나 집단일 수 있는 예술적 주체는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재현할지 선택하고 판단하며 그 과정에 그들의 의지와 욕망을 불어넣는다. 그들은 종교적이거나 문화적 도상을 만들기도 하고, 보이는 외부 세계를 재현하는 형식을 창안하고,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심리나 개념적인 세계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원본과 닮은 이미지가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대로’라는 표현에 의구심을 갖고 그 의미를 들여다본다면, 이미지를 재현하는 마법사인 예술적 주체를 만나고 그가 꺼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글: 최혜경
참여작가: 장파, 박상아, 최혜경
출처: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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