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새겨진 시간의 흔적, 그리고 징후들
산산조각 난 차창, 부서진 사이드 미러를 간신히 붙들어 맨 낡은 테이프, 크고 작은 충격이 남기고 갔을 흠집들. 방치된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주인 모를 차에는 실내에 쌓인 뽀얀 먼지의 무게만큼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 다른 공간으로 걸음을 옮기면 유구한 자연의 시공간을 가르고 당당하게 자리한 주유소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근 5년 만에 열리는 목정욱의 두 번째 개인전 ‘Fearless’는 근 10여 년간 작가가 국내외 도시를 다니며 경험한 시공간의 풍경 속에서 마주하게 된 미묘한 감정의 충돌지점을 자동차와 주유소를 소재로 한 사진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목정욱은 그동안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적 관점에서 도시의 지형 변화 속에서 마주한 인간 감정의 여러 형태들을 이야기해 왔다. 이전의 <Urban Topography Research>시리즈는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폭파공법으로 붕괴되는 건물의 이미지를 담은 사진 작업으로, 작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생성과 소멸,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변화무쌍한 도시의 지형적 변화에 관심을 갖고, 대상의 부재와 그로 인한 시공간 속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 상실감의 문제를 다뤘다. ‘두려움 없는’, ‘용감한’ 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도시의 지형 혹은 도시의 풍경을 이루는 보다 작은 단위들에 집중하면서, 그 대상을 낮과 밤의 시간 속에 마주하며 느꼈던 섬세한 감정의 흐름 안에서 조명한 작업들로 구성된다.
굉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도시의 건축물에서 작가 개인의 기억을 비롯한 집단과 사회의 기억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는 아주 작은 단위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찾을 수 있는 시간의 흔적들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 대상에 대한 기억,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감정의 문제를 다룬다. 먼저 <Car>연작(2006-2017)에서 드러난 자동차의 내외부의 풍경 속에는 다소 강렬하고, 파괴적인 흔적에서부터 가볍게 스쳐지나간 흔적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경험했을 다양한 사건과 사고, 기억의 자취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Urban Topography Research>연작(2009-2010)에서 먼지와 함께 증발해 버린 기억과 달리, 차체의 표면 위에 새겨진 오랜 흔적들은 순차적으로 누적되어 지나간 시간의 기억과 감정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바로 새것으로 교체되거나 수리되지 않고,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남겨진 것들은 어쩌면 찰나의 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거대한 도시의 풍경에 비해 지극히 미미할지 모르나, 그것보다 더욱 질기고 단단하게 개인의 기억과 소소한 역사, 크고 작은 감정의 덩어리들을 붙들어 매놓는다.
<Car>연작과 함께 이번 전시의 한 축을 이루는 <Gas Station>연작(2006-2017)은 자연의 시공간 속을 비집고 들어온 듯, 이질적인 대상으로 화면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인공의 구조물에 대한 생각들을 담았다. 주유소는 낮과 밤의 시간에 따라, 주변의 풍광이나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마치 영화 속 세트처럼 화면 중앙에 힘 있게 자리한다. 오랜 시간의 흐름을 유연하게 버텨온 자연이나, 화려하지는 않으나 나름의 역사를 간직해 온 지역의 풍경과 달리, 이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한시적으로 머물다 사라질 인공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수직수평의 단단한 구조와 브랜드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간판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구름의 부드러운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굳건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원근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어둠 속에서도 눈부시도록 밝게 빛난다. 빛과 어둠, 자연과 인공, 중심과 주변의 충돌과 대비는 시공간 속 이미지에 대한 감정의 층위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요소들이며, 이것은 또한 도시 공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변화의 징후들을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련의 특징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목정욱은 도시 풍경 속에 숨겨져 있던 정서가 서로 긴밀하게 충돌하는 지점들을 감각적인 색채와 구도의 사진 작업을 통해 이야기한다. 마치 도시 공간의 관찰자(urban observer)처럼 그는 공간을 표류하듯 움직이고, 수집하고 기록하며, 예리한 시선으로 평범했던 일상의 풍경을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순간으로 만든다. 그렇게 개인의 지난 기억과 흘러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공간, 그리고 자연의 흐름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한 오늘의 도시 풍경은 ‘두려움 없이’ 저마다의 솔직한 모습으로 지금, 눈앞에 서 있다. 황정인 큐레이터
츌처 : 스튜디오콘크리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2025년 4월 15일 ~ 2026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