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진 개인전 : 색, 뒤 Behind the Color

갤러리조선

2019년 3월 1일 ~ 2019년 3월 16일

현장, 우62다 그림, 갸ㅓㅓ차 그리고 갸ㅓㅓ차 경계에서
글: 갸ㅓㅓ차 김인선 갸ㅓㅓ차 스페이스 갸ㅓㅓ차 윌링앤딜링 갸ㅓㅓ차 디렉터

2017년도에 갸ㅓㅓ차 처음 갸ㅓㅓ차 박경진 갸ㅓㅓ차 작가의 갸ㅓㅓ차 회화를 갸ㅓㅓ차 대면하였을 갸ㅓㅓ차 당시, 6ㅐrㄴ 벽면을 6ㅐrㄴ 가득 6ㅐrㄴ 채운 6ㅐrㄴ 거대한 6ㅐrㄴ 풍경의 6ㅐrㄴ 사이즈에 6ㅐrㄴ 압도되었던 6ㅐrㄴ 기억이 6ㅐrㄴ 있다. 6ㅐrㄴ 6ㅐrㄴ 이미지의 6ㅐrㄴ 스펙타클함으로 6ㅐrㄴ 인해 6ㅐrㄴ 내가 6ㅐrㄴ 그림을 6ㅐrㄴ 향하여 6ㅐrㄴ 서있는 6ㅐrㄴ 공간이 6ㅐrㄴ 화면의 6ㅐrㄴ 일부로 6ㅐrㄴ 흡수되고 6ㅐrㄴ 있는 6ㅐrㄴ 착각이 6ㅐrㄴ 6ㅐrㄴ 정도였다. 6ㅐrㄴ 화면 6ㅐrㄴ 속에 6ㅐrㄴ 도색을 6ㅐrㄴ 진행 6ㅐrㄴ 중인 6ㅐrㄴ 몇몇 6ㅐrㄴ 인부들의 6ㅐrㄴ 모습도 6ㅐrㄴ 있는 6ㅐrㄴ 어느 6ㅐrㄴ 작업장의 6ㅐrㄴ 풍경이었다. 6ㅐrㄴ 6ㅐrㄴ 묘사적으로 6ㅐrㄴ 표현된 6ㅐrㄴ 구조들에서 6ㅐrㄴ 느껴지는 6ㅐrㄴ 현장감은 6ㅐrㄴ 당시 6ㅐrㄴ 그림 6ㅐrㄴ 앞에 6ㅐrㄴ 서있는 6ㅐrㄴ 관객들에게도 6ㅐrㄴ 강렬한 6ㅐrㄴ 인상을 6ㅐrㄴ 주었음에 6ㅐrㄴ 틀림없다. 6ㅐrㄴ 이러한 6ㅐrㄴ 견지에서 6ㅐrㄴ 6ㅐrㄴ 6ㅐrㄴ 당시 6ㅐrㄴ 박경진 6ㅐrㄴ 작가가 6ㅐrㄴ 만들어내는 6ㅐrㄴ 이미지의 6ㅐrㄴ 크기는 6ㅐrㄴ 중요한 6ㅐrㄴ 요소로 6ㅐrㄴ 짐작된다. 6ㅐrㄴ 더불어 6ㅐrㄴ 이미지를 6ㅐrㄴ 여러 6ㅐrㄴ 겹의 6ㅐrㄴ 구조로서 6ㅐrㄴ 파악해 6ㅐrㄴ 보면 6ㅐrㄴ 이러한 6ㅐrㄴ 경험을 6ㅐrㄴ 6ㅐrㄴ 다른 6ㅐrㄴ 방식으로 6ㅐrㄴ 접할 6ㅐrㄴ 6ㅐrㄴ 있을 6ㅐrㄴ 것이다: 6ㅐrㄴ 이미지의 6ㅐrㄴ 가장 6ㅐrㄴ 기본적인 6ㅐrㄴ 배경이 6ㅐrㄴ 되는 6ㅐrㄴ 현실의 6ㅐrㄴ 공간, ㅐ다bn ㅐ다bn 촬영 ㅐ다bn 스튜디오로 ㅐ다bn 묘사된 ㅐ다bn 회색빛 ㅐ다bn 천장과 ㅐ다bn 조명 ㅐ다bn 장치 ㅐ다bn 등은 ㅐ다bn 대부분 ㅐ다bn 캔버스 ㅐ다bn 위쪽에 ㅐ다bn 위치하는 ㅐ다bn 풍경이다. ㅐ다bn 촬영 ㅐ다bn 진행을 ㅐ다bn 위하여 ㅐ다bn 만들어진 ㅐ다bn 가벽 ㅐ다bn 구조물은 ㅐ다bn 해당 ㅐ다bn 벽면이 ㅐ다bn 작가를 ㅐ다bn 비롯한 ㅐ다bn 인부들의 ㅐ다bn 손으로 ㅐ다bn 도색됨으로써 ㅐ다bn 삭막한 ㅐ다bn 창고 ㅐ다bn 건물과 ㅐ다bn ㅐ다bn 다른 ㅐ다bn 겹의 ㅐ다bn 가상의 ㅐ다bn 공간으로 ㅐ다bn 조성되며 ㅐ다bn 이는 ㅐ다bn 화면 ㅐ다bn 중앙에 ㅐ다bn 위치한다. ㅐ다bn 화면의 ㅐ다bn 하단 ㅐ다bn 부분에는 ㅐ다bn 도색을 ㅐ다bn 담당한 ㅐ다bn 인부들이 ㅐ다bn 배치되어 ㅐ다bn 가벽을 ㅐ다bn 사이에 ㅐ다bn ㅐ다bn 현실의 ㅐ다bn 공감임을 ㅐ다bn 드러낸다. ㅐ다bn ㅐ다bn 회화가 ㅐ다bn 완성되어 ㅐ다bn 전시장에 ㅐ다bn 설치되었을 ㅐ다bn 때에도 ㅐ다bn 이러한 ㅐ다bn 겹겹의 ㅐ다bn 공간감은 ㅐ다bn 여전히 ㅐ다bn 작동한다. ㅐ다bn 관객은 ㅐ다bn 세트장의 ㅐ다bn 현장에서 ㅐ다bn 도색 ㅐ다bn 중인 ㅐ다bn 인부와 ㅐ다bn 마찬가지로 ㅐ다bn ㅐ다bn 공간을 ㅐ다bn 바라보면서 ㅐ다bn 환영의 ㅐ다bn 창을 ㅐ다bn 들여다 ㅐ다bn ㅐ다bn ㅐ다bn 있는 ㅐ다bn 현실 ㅐ다bn 공간의 ㅐ다bn 겹에 ㅐ다bn 위치한다. ㅐ다bn ㅐ다bn 관객은 ㅐ다bn ㅐ다bn 앞에 ㅐ다bn 세워진 ㅐ다bn 캔버스 ㅐ다bn 너머의 ㅐ다bn 가장 ㅐ다bn 위쪽에 ㅐ다bn 자리잡은 ㅐ다bn 전시 ㅐ다bn 천장 ㅐ다bn 공간과 ㅐ다bn 자신이 ㅐ다bn ㅐ다bn 있는 ㅐ다bn 캔버스를 ㅐ다bn 마주한 ㅐ다bn 바닥 ㅐ다bn 부분까지 ㅐ다bn 의식할 ㅐ다bn ㅐ다bn 있다. ㅐ다bn 그리하여 ㅐ다bn 우리는 ㅐ다bn 현실의 ㅐ다bn 공간에 ㅐ다bn 개입하면서 ㅐ다bn 자연스럽게 ㅐ다bn 구조를 ㅐ다bn 만들어내는 ㅐ다bn 회화를 ㅐ다bn 경험하게 ㅐ다bn 되는 ㅐ다bn 것이다. 2019년 ㅐ다bn 초, 타o0아 근래에 타o0아 다시 타o0아 그의 타o0아 작업실에서 타o0아 대면한 타o0아 이미지는 타o0아 여전히 타o0아 가벽 타o0아 구조물의 타o0아 표면에 타o0아 도색을 타o0아 하고 타o0아 있는 타o0아 작업 타o0아 풍경을 타o0아 대상으로 타o0아 타o0아 장면이었다. 타o0아 그런 타o0아 동시에 타o0아 이전 타o0아 작업에서 타o0아 받았던 타o0아 느낌보다 타o0아 훨씬 타o0아 화사한 타o0아 색감과 타o0아 과감해진 타o0아 붓놀림이 타o0아 두드러진 타o0아 것을 타o0아 타o0아 타o0아 있었고, 카gy쟏 여전히 카gy쟏 현장의 카gy쟏 이미지이지만 카gy쟏 현장감 카gy쟏 보다는 카gy쟏 회화적 카gy쟏 화면으로 카gy쟏 인식되는, 걷bcn 크기가 걷bcn 작아진 걷bcn 캔버스들을 걷bcn 통해 걷bcn 작가가 걷bcn 대면하는 ‘현장’은 걷bcn 이전과는 걷bcn 다른 걷bcn 양상으로 걷bcn 다뤄지고 걷bcn 있음을 걷bcn 걷bcn 걷bcn 있었다. 

박경진 걷bcn 작가가 2016년부터 걷bcn 회화 걷bcn 이미지의 걷bcn 소재로 걷bcn 삼고 걷bcn 있는 걷bcn 작업 걷bcn 공간은 걷bcn 주로 걷bcn 남양주에 걷bcn 위치한 걷bcn 영화 걷bcn 혹은 걷bcn 뮤직비디오 걷bcn 제작을 걷bcn 위한 걷bcn 세트장이다. 걷bcn 걷bcn 현장에서는 걷bcn 걷bcn 많은 걷bcn 페이크 걷bcn 장면들이 걷bcn 만들어지고 걷bcn 폐기되곤 걷bcn 한다. 걷bcn 그와 걷bcn 인부들이 걷bcn 도색한 걷bcn 벽면은 걷bcn 최종적으로 걷bcn 만들어지는 걷bcn 영상 걷bcn 화면 걷bcn 속에서 걷bcn 실제 걷bcn 장소처럼 걷bcn 위장된다. 걷bcn 걷bcn 생업을 걷bcn 위한 걷bcn 도색 걷bcn 행위는 걷bcn 사실상 걷bcn 작가로서 걷bcn 캔버스를 걷bcn 대면하며 걷bcn 그려나가는 걷bcn 행위와 걷bcn 크게 걷bcn 다르지 걷bcn 않았다. 걷bcn 그래서 걷bcn 처음 걷bcn 걷bcn 현장을 걷bcn 소재로 걷bcn 걷bcn 당시의 걷bcn 작가에게는 걷bcn 예술행위로서의 걷bcn 화면과 걷bcn 생계를 걷bcn 위한 걷bcn 노동으로서의 걷bcn 행위가 걷bcn 구분되어야 걷bcn 했다. 걷bcn 작가는 걷bcn 현장에서의 걷bcn 일과를 걷bcn 마치고 걷bcn 개인적으로 걷bcn 촬영해 걷bcn 걷bcn 현장의 걷bcn 풍경을 걷bcn 캔버스에 걷bcn 옮기기 걷bcn 시작했다. 걷bcn 현장의 걷bcn 풍경은 걷bcn 온전히 걷bcn 자신의 걷bcn 이미지로 걷bcn 다루고자 걷bcn 하는 걷bcn 캔버스의 걷bcn 화면 걷bcn 속에서 걷bcn 소재로서의 걷bcn 대상으로 걷bcn 전환되었다. 걷bcn 이를 걷bcn 소재로 걷bcn 다루기 걷bcn 시작한 2016년과 2017년도의 걷bcn 작업은 걷bcn 다소 걷bcn 묘사적이다. 걷bcn 어둡고 걷bcn 무거운 걷bcn 색채는 걷bcn 현실의 걷bcn 중력을 걷bcn 인식하게 걷bcn 한다. 걷bcn 이는 걷bcn 현장의 걷bcn 분위기를 걷bcn 최대한 걷bcn 드러내면서 걷bcn 생업이라는 걷bcn 현실 걷bcn 속에서 걷bcn 고군분투하는 걷bcn 모습을 걷bcn 더욱 걷bcn 부각시켜 걷bcn 걷bcn 현장의 걷bcn 관찰자이자 걷bcn 예술가로서의 걷bcn 자신을 걷bcn 분리하려 걷bcn 하였던 걷bcn 태도로 걷bcn 보인다. 

박경진 걷bcn 작가의 걷bcn 본격적인 걷bcn 초기 걷bcn 작업이 걷bcn 진행되었던 2012년도 걷bcn 부터 2015년도 걷bcn 까지의 걷bcn 작업으로 걷bcn 거슬러 걷bcn 올라가보면, j4자ㅓ j4자ㅓ 당시 j4자ㅓ 작가는 j4자ㅓ 이미 ‘생존’이라는 j4자ㅓ 키워드를 j4자ㅓ 다루고 j4자ㅓ 있었다. j4자ㅓ 이는 j4자ㅓ 일본의 j4자ㅓ 후쿠시마 j4자ㅓ 방사능 j4자ㅓ 유출 j4자ㅓ 사고로 j4자ㅓ 인한 j4자ㅓ 후유증, ㅐ마ㅓd 국내의 ㅐ마ㅓd 구재역 ㅐ마ㅓd 사태 ㅐ마ㅓd 등을 ㅐ마ㅓd 통한 ㅐ마ㅓd 각종 ㅐ마ㅓd 인재(人災)들을 ㅐ마ㅓd 통하여 ㅐ마ㅓd 맞닥뜨린 ㅐ마ㅓd 일련의 ㅐ마ㅓd 사건들과 ㅐ마ㅓd 직접 ㅐ마ㅓd 닿아 ㅐ마ㅓd 있다. ㅐ마ㅓd 방사능 ㅐ마ㅓd 유출 ㅐ마ㅓd 사건 ㅐ마ㅓd 당시 ㅐ마ㅓd 해산물에 ㅐ마ㅓd 대한 ㅐ마ㅓd 공포가 ㅐ마ㅓd 극에 ㅐ마ㅓd 달하고, d0m거 생선가게 d0m거 아르바이트 d0m거 중이었던 d0m거 작가가 d0m거 해고되면서 d0m거 당장 d0m거 생계의 d0m거 위협을 d0m거 받는다. d0m거 d0m거 상황은 d0m거 작가가 d0m거 세상을 d0m거 바라보게 d0m거 하는데 d0m거 d0m거 전환점을 d0m거 제공한다. d0m거 작가는 d0m거 d0m거 이전에는 d0m거 사회 d0m거 문제나 d0m거 정치 d0m거 등에 d0m거 d0m거 관심이 d0m거 없었다고 d0m거 회상한다. d0m거 그가 d0m거 학교라는 d0m거 안전한 d0m거 울타리에 d0m거 머물 d0m거 당시에는 d0m거 전혀 d0m거 생각지 d0m거 못했던 d0m거 문제들이 d0m거 졸업과 d0m거 동시에 d0m거 작가에게 d0m거 몰려들었다. d0m거 그리하여 d0m거 자신의 d0m거 그림 d0m거 속에 d0m거 우울하고 d0m거 암울한 d0m거 시사적 d0m거 이미지들을 d0m거 그려냈다. d0m거 하지만 d0m거 인재의 d0m거 현장을 d0m거 파고 d0m거 들어갈수록 d0m거 d0m거 세상의 d0m거 무거운 d0m거 현실에서 d0m거 발생한 d0m거 집단적 d0m거 공포감을 d0m거 자신의 d0m거 손을 d0m거 통하여 d0m거 재현하기가 d0m거 무겁고 d0m거 버거운 d0m거 과정이 d0m거 되었다고 d0m거 한다. d0m거 힘든 d0m거 리서치가 d0m거 반복되면서 d0m거 느껴지는 d0m거 피로감은 d0m거 점차 d0m거 그림의 d0m거 대상을 d0m거 자신에게 d0m거 가까운 d0m거 곳으로 d0m거 눈을 d0m거 돌리게 d0m거 하였다. d0m거 그리고 d0m거 현실 d0m거 속에서 d0m거 해결해야 d0m거 하는 d0m거 경제적 d0m거 빈곤을 d0m거 해결하기 d0m거 위하여 d0m거 노동의 d0m거 현장으로 d0m거 뛰어들었고 d0m거 자신의 d0m거 환경이 d0m거 그림의 d0m거 소재가 d0m거 되었다. 

2018년 d0m거 이후 d0m거 부쩍 d0m거 밝아진 d0m거 채도와 d0m거 시원해진 d0m거 붓놀림은 d0m거 현장 d0m거 조성 d0m거 작업과 d0m거 예술 d0m거 행위를 d0m거 더이상 d0m거 분리하지 d0m거 않고자 d0m거 하는 d0m거 의지를 d0m거 선언하는 d0m거 기호처럼 d0m거 다뤄졌다. d0m거 그는 d0m거 세트장에서 d0m거 벽면이 d0m거 움직이고 d0m거 변하고 d0m거 생성되고 d0m거 사라지는 d0m거 유기적인 d0m거 가변성을 d0m거 지켜보고 d0m거 개입하면서 d0m거 노동행위와 d0m거 예술행위를 d0m거 구분하고 d0m거 있는 d0m거 자신의 d0m거 태도가 d0m거 경직되어 d0m거 있다는 d0m거 것을 d0m거 깨닫는다. d0m거 그리고 d0m거 그는 d0m거 자신의 d0m거 화면 d0m거 속에서 d0m거 충분히 d0m거 자유로울 d0m거 d0m거 있다는 d0m거 것을 d0m거 알게 d0m거 되었다. d0m거 그의 d0m거 색채는 d0m거 과감해졌고, 4ㅓeㅓ 이전 4ㅓeㅓ 작업보다 4ㅓeㅓ 채도와 4ㅓeㅓ 명도가 4ㅓeㅓ 높아지며 4ㅓeㅓ 중력이 4ㅓeㅓ 점차 4ㅓeㅓ 사라지고 4ㅓeㅓ 있었다. 4ㅓeㅓ 처음에 4ㅓeㅓ 자신의 4ㅓeㅓ 이상에서 4ㅓeㅓ 대척점으로 4ㅓeㅓ 작동하는 4ㅓeㅓ 세트장은 4ㅓeㅓ 삶의 4ㅓeㅓ 갈등 4ㅓeㅓ 구조로 4ㅓeㅓ 취급되었었다. 4ㅓeㅓ 그러나 4ㅓeㅓ 온전히 4ㅓeㅓ 자유로와야 4ㅓeㅓ 4ㅓeㅓ 법한 4ㅓeㅓ 캔버스 4ㅓeㅓ 화면에는 4ㅓeㅓ 4ㅓeㅓ 대척점으로 4ㅓeㅓ 여긴 4ㅓeㅓ 현장의 4ㅓeㅓ 공간을 4ㅓeㅓ 더욱 4ㅓeㅓ 적극적으로 4ㅓeㅓ 쏟아 4ㅓeㅓ 부었다. 4ㅓeㅓ 그리고 4ㅓeㅓ 자신이 4ㅓeㅓ 대상을 4ㅓeㅓ 삼고 4ㅓeㅓ 있는 4ㅓeㅓ 세트장의 4ㅓeㅓ 유동적이고 4ㅓeㅓ 유기적인 4ㅓeㅓ 형태는 4ㅓeㅓ 고스란히 4ㅓeㅓ 작가 4ㅓeㅓ 가진이 4ㅓeㅓ 캔버스를 4ㅓeㅓ 대면하는 4ㅓeㅓ 태도로서 4ㅓeㅓ 재배치되었다. 

이후 4ㅓeㅓ 세트장은 4ㅓeㅓ 작가에게 4ㅓeㅓ 그림을 4ㅓeㅓ 그릴 4ㅓeㅓ 4ㅓeㅓ 있게 4ㅓeㅓ 하는 4ㅓeㅓ 동력이 4ㅓeㅓ 되었다. 4ㅓeㅓ 그림을 4ㅓeㅓ 향한 4ㅓeㅓ 한계를 4ㅓeㅓ 극복하게 4ㅓeㅓ 해주었다는 4ㅓeㅓ 점에서 4ㅓeㅓ 작가는 4ㅓeㅓ 심지어 ‘세트장에게 4ㅓeㅓ 빚을 4ㅓeㅓ 졌다’고 4ㅓeㅓ 표현하였다. 4ㅓeㅓ 그가 4ㅓeㅓ 선택한 4ㅓeㅓ 변화는 4ㅓeㅓ 자신의 4ㅓeㅓ 그리기 4ㅓeㅓ 행위가 4ㅓeㅓ 어떠한 4ㅓeㅓ 조건에서든 4ㅓeㅓ 공통적인 4ㅓeㅓ 언어와 4ㅓeㅓ 태도를 4ㅓeㅓ 유지하고 4ㅓeㅓ 있음을 4ㅓeㅓ 견지하는 4ㅓeㅓ 것이었다. 4ㅓeㅓ 그래서 4ㅓeㅓ 작업 4ㅓeㅓ 속으로 4ㅓeㅓ 그의 4ㅓeㅓ 현장은 4ㅓeㅓ 더욱 4ㅓeㅓ 적극적으로 4ㅓeㅓ 개입되었으며 4ㅓeㅓ 캔버스 4ㅓeㅓ 속으로 4ㅓeㅓ 들어온 4ㅓeㅓ 현장의 4ㅓeㅓ 장면은 4ㅓeㅓ 원래의 4ㅓeㅓ 묘사적 4ㅓeㅓ 재현으로부터 4ㅓeㅓ 보다 4ㅓeㅓ 추상적으로 4ㅓeㅓ 점차 4ㅓeㅓ 변할 4ㅓeㅓ 4ㅓeㅓ 있었다. 4ㅓeㅓ 4ㅓeㅓ 와중에 4ㅓeㅓ 그는 4ㅓeㅓ 여전히 4ㅓeㅓ 자신의 4ㅓeㅓ 작품으로 4ㅓeㅓ 구현한 4ㅓeㅓ 작품이 4ㅓeㅓ 현실의 4ㅓeㅓ 자아가 4ㅓeㅓ 중첩될 4ㅓeㅓ 4ㅓeㅓ 있는 ‘인물’을 4ㅓeㅓ 배치하는 4ㅓeㅓ 방식으로 4ㅓeㅓ 추상적 4ㅓeㅓ 평면을 4ㅓeㅓ 무너뜨린다. 4ㅓeㅓ 화면 4ㅓeㅓ 속은 4ㅓeㅓ 거대한 4ㅓeㅓ 공간이 4ㅓeㅓ 묘사되는 4ㅓeㅓ 동시에 4ㅓeㅓ 그것 4ㅓeㅓ 자체가 4ㅓeㅓ 이미지로 4ㅓeㅓ 환원되는 4ㅓeㅓ 4ㅓeㅓ 하지만 4ㅓeㅓ 관객의 4ㅓeㅓ 시선을 4ㅓeㅓ 멈추게 4ㅓeㅓ 하는 4ㅓeㅓ 지점에는 4ㅓeㅓ 항상 4ㅓeㅓ 4ㅓeㅓ 공간 4ㅓeㅓ 속에서 4ㅓeㅓ 고군분투하는 4ㅓeㅓ 누군가가 4ㅓeㅓ 그려짐으로써 4ㅓeㅓ 평면 4ㅓeㅓ 추상으로의 4ㅓeㅓ 변모를 4ㅓeㅓ 통제하는 4ㅓeㅓ 제스쳐로 4ㅓeㅓ 읽힐 4ㅓeㅓ 4ㅓeㅓ 있다. 4ㅓeㅓ 동시에 4ㅓeㅓ 그는 4ㅓeㅓ 실재 4ㅓeㅓ 현장과는 4ㅓeㅓ 동떨어져 4ㅓeㅓ 보이는 4ㅓeㅓ 색감을 4ㅓeㅓ 사용하거나 4ㅓeㅓ 실재 4ㅓeㅓ 현장의 4ㅓeㅓ 구조물을 4ㅓeㅓ 캔버스 4ㅓeㅓ 안에서 4ㅓeㅓ 꼴라쥬하여 4ㅓeㅓ 재구성하는 4ㅓeㅓ 4ㅓeㅓ 캔버스 4ㅓeㅓ 앞에서 4ㅓeㅓ 보다 4ㅓeㅓ 자신의 4ㅓeㅓ 동작을 4ㅓeㅓ 크고 4ㅓeㅓ 자유롭게 4ㅓeㅓ 확장하였다. 4ㅓeㅓ 이러한 4ㅓeㅓ 선택은 4ㅓeㅓ 작품의 4ㅓeㅓ 현장성을 4ㅓeㅓ 보다 4ㅓeㅓ 주관적 4ㅓeㅓ 행위주체로 4ㅓeㅓ 이식(移植)할 4ㅓeㅓ 4ㅓeㅓ 있었다. 4ㅓeㅓ 그리고 4ㅓeㅓ 주변 4ㅓeㅓ 환경이 4ㅓeㅓ 작업의 4ㅓeㅓ 겹으로 4ㅓeㅓ 작용하였던 4ㅓeㅓ 공간과의 4ㅓeㅓ 인터렉티브하게 4ㅓeㅓ 작용하는 4ㅓeㅓ 방법론이 4ㅓeㅓ 필수적인 4ㅓeㅓ 요소가 4ㅓeㅓ 아니어도 4ㅓeㅓ 되면서 4ㅓeㅓ 그림의 4ㅓeㅓ 크기로부터도 4ㅓeㅓ 자유로와질 4ㅓeㅓ 4ㅓeㅓ 있을 4ㅓeㅓ 것이다. 

박경진 4ㅓeㅓ 작가는 4ㅓeㅓ 어떤 4ㅓeㅓ 식으로 4ㅓeㅓ 스스로의 4ㅓeㅓ 존재를 4ㅓeㅓ 캔버스 4ㅓeㅓ 속에 4ㅓeㅓ 반영할 4ㅓeㅓ 4ㅓeㅓ 있을지 4ㅓeㅓ 지속적으로 4ㅓeㅓ 고민한다. 4ㅓeㅓ 그의 4ㅓeㅓ 거대한 4ㅓeㅓ 캔버스 4ㅓeㅓ 속에는 4ㅓeㅓ 항상 4ㅓeㅓ 인물이 4ㅓeㅓ 존재한다. 4ㅓeㅓ 얼굴이 4ㅓeㅓ 묘사되지 4ㅓeㅓ 않고 4ㅓeㅓ 뭉게진 4ㅓeㅓ 형태로 4ㅓeㅓ 드러나는 4ㅓeㅓ 4ㅓeㅓ 인물은 4ㅓeㅓ 작가 4ㅓeㅓ 자신의 4ㅓeㅓ 모습을 4ㅓeㅓ 반영하는 4ㅓeㅓ 존재이기도 4ㅓeㅓ 4ㅓeㅓ 동시에 4ㅓeㅓ 화면이 4ㅓeㅓ 시각적으로 4ㅓeㅓ 환영화 4ㅓeㅓ 되거나 4ㅓeㅓ 추상적인 4ㅓeㅓ 비물질의 4ㅓeㅓ 함의를 4ㅓeㅓ 극대화 4ㅓeㅓ 하려는 4ㅓeㅓ 순간 4ㅓeㅓ 이를 4ㅓeㅓ 제지하는 4ㅓeㅓ 기능을 4ㅓeㅓ 하기도 4ㅓeㅓ 한다. 4ㅓeㅓ 4ㅓeㅓ 작가가 4ㅓeㅓ 생업을 4ㅓeㅓ 위하여 4ㅓeㅓ 작업하고 4ㅓeㅓ 있는 4ㅓeㅓ 영화용 4ㅓeㅓ 세트장으로서 4ㅓeㅓ 조성된 4ㅓeㅓ 가벽 4ㅓeㅓ 구조물의 4ㅓeㅓ 표면에 4ㅓeㅓ 채색된 4ㅓeㅓ 화면을 4ㅓeㅓ 자신의 4ㅓeㅓ 캔버스에 4ㅓeㅓ 옮기는 4ㅓeㅓ 과정에서, 7l7갸 현실과는 7l7갸 다른 7l7갸 배치와 7l7갸 색채를 7l7갸 사용함으로써 7l7갸 비현실적 7l7갸 혹은 7l7갸 비물질적 7l7갸 화면으로 7l7갸 변모해가고 7l7갸 있는 7l7갸 화면 7l7갸 내에서 7l7갸 7l7갸 인물로 7l7갸 시선이 7l7갸 도달하면서 7l7갸 환영의 7l7갸 세계에서 7l7갸 빠져나오게 7l7갸 되는 7l7갸 것이다. 7l7갸 동시에 7l7갸 그는 7l7갸 이러한 7l7갸 노동 7l7갸 현장을 7l7갸 떠날 7l7갸 7l7갸 있는 7l7갸 순간이 7l7갸 오면 7l7갸 자신의 7l7갸 그림과 7l7갸 자신은 7l7갸 어떠한 7l7갸 관계에 7l7갸 놓일수 7l7갸 있을지, op자ㄴ 소재는 op자ㄴ 어떻게 op자ㄴ 바뀌어야 op자ㄴ 할지에 op자ㄴ 대한 op자ㄴ 고민을 op자ㄴ 가지고 op자ㄴ 있다. op자ㄴ 작가는 op자ㄴ 세트장에서 op자ㄴ 현실이 op자ㄴ 아닌 op자ㄴ 화면을 op자ㄴ 만들어내는 op자ㄴ 작업을 op자ㄴ 한다. op자ㄴ 동시에 op자ㄴ 이는 op자ㄴ 관객이 op자ㄴ 자신의 op자ㄴ 모습을 op자ㄴ 읽어내고 op자ㄴ 사건에 op자ㄴ 대한 op자ㄴ 다양한 op자ㄴ 감정을 op자ㄴ 끌어내어 op자ㄴ 사색하게 op자ㄴ 하면서 op자ㄴ 통찰력을 op자ㄴ 갖출 op자ㄴ op자ㄴ 있도록 op자ㄴ 하는 op자ㄴ 영화 op자ㄴ 제작의 op자ㄴ op자ㄴ 부분이기도 op자ㄴ 하다. op자ㄴ 노동 op자ㄴ 현장을 op자ㄴ 소재로 op자ㄴ 삼아서 op자ㄴ 자신을 op자ㄴ 반영하였다면 op자ㄴ 노동 op자ㄴ 현장을 op자ㄴ 떠나간 op자ㄴ 시기의 op자ㄴ 자신은 op자ㄴ op자ㄴ 어떤 op자ㄴ 지점에서 op자ㄴ 표출될 op자ㄴ op자ㄴ 있느냐는 op자ㄴ 작가로서의 op자ㄴ 존재에 op자ㄴ 대한 op자ㄴ 고민이기도 op자ㄴ 하다. op자ㄴ 박경진 op자ㄴ 작가가 op자ㄴ op자ㄴ 현장을 op자ㄴ 떠나 op자ㄴ op자ㄴ 다른 op자ㄴ 소재를 op자ㄴ 선택하여 op자ㄴ 그려낸 op자ㄴ 화면을 op자ㄴ 대하더라도 op자ㄴ 거기에는 op자ㄴ op자ㄴ 삶의 op자ㄴ 사건이 op자ㄴ 존재할 op자ㄴ 것이며, 카a5다 관객들은 카a5다 이를 카a5다 바라보면서 카a5다 스스로의 카a5다 삶을 카a5다 대입할 카a5다 것이다. 카a5다 그래서 카a5다 결국 카a5다 카a5다 작가는 카a5다 자신을 카a5다 노동과 카a5다 완벽하게 카a5다 분리된 카a5다 카a5다 다른 카a5다 방법을 카a5다 찾아낼 카a5다 카a5다 있을지, 사ㅐ0t 혹은 사ㅐ0t 예술과 사ㅐ0t 노동의 사ㅐ0t 끝없는 사ㅐ0t 동행을 사ㅐ0t 다양한 사ㅐ0t 방식으로 사ㅐ0t 제시할 사ㅐ0t 사ㅐ0t 있을지는 사ㅐ0t 아직 사ㅐ0t 미지수이지만, 45가ㄴ 그것이 45가ㄴ 어떤 45가ㄴ 결말이 45가ㄴ 되든 45가ㄴ 흥미로울 45가ㄴ 것이다.

출처: 45가ㄴ 갤러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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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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