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완 개인전 : 싱거운 제스처들

공간 가변크기

2018년 11월 15일 ~ 2018년 11월 28일

텁텁한 화면이 말하는 싱거운 역설들

박노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둔탁한 풍경들을 본다. 그는 어떤 것의 모양이 아름답거나 조화로운 상태일 때 보다 그 반대일 때, 즉 사물이 너무 조악하게 만들어져 있거나 탈진한 듯 널브러져 있을 때,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보일 때 사진을 찍어둔다. 그는 이것들이 보기 싫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이 가는, 피하고 싶지만 슬며시 맡게 되는 구릿한 발냄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주로 싸구려 캐릭터 이미지나 과장된 광고 문구, 길에 내버려진 물건 등이 선택적으로 기록되는데, <싱거운 제스처들>에서 선보이는 작업들 역시 식당 앞에 뜬금없이 서있는 호객용 마네킹의 얼굴, 눈이 몰려 흡사 카레맨처럼 보이는 미키 마우스, PC방 모니터 메뉴판에서 발견한 삶은 계란 사진 따위를 그린 것이다. 이것들을 기록하게끔 추동하는 힘은 대상에 대한 기피감과 혐오감 사이에서 기묘하게도 작가를 실소하게끔 하는 지점 어딘가에 있다.

채집해 둔 장면은 캔버스 위에서 선명하게 그려지기보다 흐리고 탁하게 드러나며, 세부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어 있다. 작가는 특별한 구도랄 것이 없이 하나의 사물이나 상황을 프레임 안에 가득 차게 구겨 넣고는 붓으로 그려진 이미지를 계속해서 문지르거나 고무액으로 마른 물감을 녹여낸다. 따라서 그리는 것의 명암은 모호하고, 배경과 주제의 구분 역시 의미가 없어져 형상 자체가 텅 빈 공간의 일부가 되어간다. 이 방식은 본인의 회화에 조화로운 구성, 균형 잡힌 형태, 생동감 있는 색채 등의 미사여구가 달라붙는 것을 다소 불편해하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최대한 덜 작위적인 언어로 무던하게 화면을 완성하려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세운 조건에 따라 의식적으로 화면을 운용해 나간다. 즉 어느 정도 그려놓은 대상 위에 흰색을 섞어가며 채도를 낮추거나 얼룩을 내어 형태의 선명함을 덜어낸다는 임시적인 룰을 설정하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본인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상태의 이미지를 획득하고자 한다. 동시에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내는 회화가 견고한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데, 붓에 긁힌 흔적들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가 캔버스와 마주했을 짧지 않은 시간을 증명하는 수많은 붓자국들이 텁텁한 공백을 가득 메우고 있고, 이것들이 표면에 제법 단단하게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자 하면서도 지우고자 하는 양가적인 욕구가 화면 안에서 한데 엉겨있는 상태가 작품의 외적인 완성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박노완이 대상을 선택하는 태도와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 사이에 모종의 일관성이 기반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일상의 틈바귀에 끼어있는 엉터리 풍경들에서 불쾌함을 느끼다가도 문득 드는 기시감과 자기 동일시 같은 감정에 이끌려 이를 기록해두는 것. 자신이 세운 규칙에 따라 조형적인 언어를 다루며 무엇인가를 재현하려는 욕망에 순응하다가도 완결된 형상이 쉬이 드러나거나 의미가 규정되는 것을 기피하는 것. 그는 스스로가 마주하는 것들과 적확한 언어로 관계를 정의하는 것을 유보하며 끊임없이 거리를 조정하려 한다. 요컨대 오늘 전시장에서 보게 되는 일곱 점의 작품들은 그가 한 개인으로서 일상과의 관계, 또 작가로서 회화와의 관계를 확언하기를 잠시 유예한 지점에서 멈춘 물리적인 기착지이다. 뭉개진 모습으로 평면에 옮겨진 수집된 단상들은 한편으로 싱거운 역설과 과장으로 가득한 세상을 대하는 한 개인의 예민한 반응이면서, 동시에 이 행위가 단순한 악취미 이상의 어떤 다층적인 의미(그것이 사회적이건 개인적이건)를 획득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한 작가의 고민이 일시적으로 고정된 형태를 갖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주변과의 거리를 또다시 조율할 가까운 미래에, 잠시 말랐던 물감의 흔적들을 녹여내며 이리저리 모양새를 바꾸어갈 것임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다. / 박지형(페리지갤러리 큐레이터)

출처: 공간 가변크기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박노완

현재 진행중인 전시

2024 금호영아티스트 1부 KUMHO YOUNG ARTIST 1

2024년 3월 22일 ~ 2024년 4월 28일

한국근현대미술 흐름 : 시대 울림

2024년 3월 7일 ~ 2024년 6월 9일

박형지 개인전: 무용한 발명 Futile Talk

2024년 3월 13일 ~ 2024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