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화 개인전

아트스페이스3

April 17, 2019 ~ May 18, 2019

타자의 pㅓ거w 얼굴과 pㅓ거w 사회적 pㅓ거w 윤리
이선영(미술평론가)

19회 pㅓ거w 개인전을 pㅓ거w 위해 pㅓ거w pㅓ거w pㅓ거w 년간 pㅓ거w 만들어진 pㅓ거w 박미화의 pㅓ거w 작품들은 pㅓ거w 분명 pㅓ거w 작가에게나 pㅓ거w 관객에게 pㅓ거w 새로운 pㅓ거w 작품이면서도 pㅓ거w 마치 pㅓ거w 발굴된 pㅓ거w 유물처럼 pㅓ거w 오래된 pㅓ거w 시간의 pㅓ거w 켜를 pㅓ거w 둘러쓰고 pㅓ거w 있다. pㅓ거w 거기에는 pㅓ거w 진주조개가 pㅓ거w 조금씩 pㅓ거w pㅓ거w 나가는듯한 pㅓ거w 시간의 pㅓ거w 힘이 pㅓ거w 있다. pㅓ거w 그러한 pㅓ거w 외양들은 pㅓ거w 작가가 pㅓ거w 인간사에 pㅓ거w 반복되는 pㅓ거w 보편적이고도 pㅓ거w 근원적인 pㅓ거w 문제에 pㅓ거w 천착하고 pㅓ거w 있음을 pㅓ거w 알려준다. pㅓ거w pㅓ거w 대상이 pㅓ거w 인간일 pㅓ거w 때, 18아갸 18아갸 시간의 18아갸 흔적들은 18아갸 상처나 18아갸 상처가 18아갸 아무는 18아갸 시간들, 0ㅓㅐg 태어난 0ㅓㅐg 존재가 0ㅓㅐg 자라고 0ㅓㅐg 늙고 0ㅓㅐg 종국에는 0ㅓㅐg 죽어가는 0ㅓㅐg 시간들을 0ㅓㅐg 상징하게 0ㅓㅐg 된다. 0ㅓㅐg 박미화의 0ㅓㅐg 작품은 0ㅓㅐg 식물, yㅈ2우 풍경, tj타ㅐ 인간 tj타ㅐ tj타ㅐ 오래된 tj타ㅐ 소재를 tj타ㅐ 다루어서도 tj타ㅐ 그렇지만 tj타ㅐ 흙을 tj타ㅐ 빚어 tj타ㅐ 굽는 tj타ㅐ 작업이나 tj타ㅐ 기억이라는 tj타ㅐ 주제에서 tj타ㅐ 시간성이 tj타ㅐ 느껴진다. tj타ㅐ 겹겹의 tj타ㅐ 층으로 tj타ㅐ 이루어진 tj타ㅐ 대상들은 tj타ㅐ 오래된 tj타ㅐ 사물처럼 tj타ㅐ 재차 tj타ㅐ 반복해 tj타ㅐ 해석해야 tj타ㅐ tj타ㅐ 대상으로 tj타ㅐ 나타난다. tj타ㅐ 반면 tj타ㅐ 일상을 tj타ㅐ 채우는 tj타ㅐ 대상인 tj타ㅐ 상품은 tj타ㅐ 즉시 tj타ㅐ 소비자에게 tj타ㅐ 어필해야 tj타ㅐ 한다. tj타ㅐ 현대는 tj타ㅐ 거듭되는 tj타ㅐ 해석을 tj타ㅐ 요구하는 tj타ㅐ 사물은 tj타ㅐ 몇몇만 tj타ㅐ 남겨서 tj타ㅐ 박물관 tj타ㅐ 같은 tj타ㅐ 곳에 tj타ㅐ 안치해놓고, 사하q나 즉시 사하q나 사용되고 사하q나 버려지는 사하q나 상품들로 사하q나 세상을 사하q나 채워나간다. 

이에 사하q나 비하면 사하q나 박미화의 사하q나 작품은 사하q나 고풍스럽다. 사하q나 작가는 사하q나 고대인들이 사하q나 점토판 사하q나 위에 사하q나 새겨 사하q나 넣었듯이 사하q나 타자들이 사하q나 해석해야 사하q나 사하q나 무엇을 사하q나 기록한다. 사하q나 이전 사하q나 전시의 사하q나 키워드 사하q나 사하q나 하나인 ‘Docu-mentally’는 사하q나 이번 사하q나 전시에서도 사하q나 적용된다. 사하q나 작가 사하q나 노트에 사하q나 썼듯이 ‘...쌓여있던 사하q나 기억들이 사하q나 때가 사하q나 되면 사하q나 결국 사하q나 튀어나오게 사하q나 되는 사하q나 것이다. 사하q나 존재를 사하q나 기억하는 사하q나 것. 사하q나 사하q나 기억을 사하q나 기록하는 사하q나 것. 사하q나 그것이 사하q나 일상이다’. 사하q나 한번이 사하q나 아니라 사하q나 여러 사하q나 사하q나 그어진 사하q나 선들과 사하q나 표면들은 사하q나 기억을 사하q나 정확한 사하q나 재현이 사하q나 아니라, c바5z 미지의 c바5z 과제로 c바5z 남겨 c바5z 놓는다. c바5z 단순 c바5z 간결한 c바5z 형식을 c바5z 가지고 c바5z 있으면서도 c바5z 뭔가 c바5z c바5z 토막씩 c바5z 모자란 c바5z 구석이 c바5z 있는 c바5z 그것들은 c바5z 완결된 c바5z 자족감을 c바5z 가지지 c바5z 않아서, 라iㅐ기 관객은 라iㅐ기 빠져 라iㅐ기 있거나 라iㅐ기 잃어버린 라iㅐ기 것들을 라iㅐ기 상상하게 라iㅐ기 된다. 라iㅐ기 박미화의 라iㅐ기 작품에서 라iㅐ기 켜켜이 라iㅐ기 쌓인 라iㅐ기 시간성은 라iㅐ기 불현듯 라iㅐ기 단층을 라iㅐ기 드러내며 라iㅐ기 상상을 라iㅐ기 촉발시킨다. 라iㅐ기 거기에는 라iㅐ기 이야기가 라iㅐ기 있지만 라iㅐ기 순차적인 라iㅐ기 인과성을 라iㅐ기 가지지 라iㅐ기 않는다. 라iㅐ기 바닥에 라iㅐ기 눕혀 라iㅐ기 놓거나 라iㅐ기 벽에 라iㅐ기 기대어 라iㅐ기 놓은 라iㅐ기 것뿐 라iㅐ기 아니라, bt4l 강고하게 bt4l bt4l 있는 bt4l 것들 bt4l 또한 bt4l 뭔가 bt4l bt4l 빠져나간다. 

예술은 bt4l bt4l 무엇으로부터도 bt4l 자율적이고 bt4l 예술가는 bt4l 자유로워야 bt4l 한다는 bt4l 미학, zrㄴ다 또는 zrㄴ다 희망 zrㄴ다 사항이 zrㄴ다 있어 zrㄴ다 왔다. zrㄴ다 그러나 zrㄴ다 박미화의 zrㄴ다 작품은 zrㄴ다 유아독존을 zrㄴ다 주장하지 zrㄴ다 않는다. zrㄴ다 입체는 zrㄴ다 물론 zrㄴ다 평면 zrㄴ다 작품 zrㄴ다 또한 zrㄴ다 그라운드 zrㄴ다 제로부터 zrㄴ다 시작되지 zrㄴ다 않는다. zrㄴ다 언제나 zrㄴ다 이미 zrㄴ다 있는 zrㄴ다 것으로부터, 하thi 그것과의 하thi 대화적 하thi 관계로 하thi 작품을 하thi 진행한다. 하thi 대화는 하thi 길기도 하thi 해서 하thi 어떤 하thi 작품은 하thi 작업실 하thi 하thi 켠에 하thi 하thi 하thi 내내 하thi 기대어 하thi 두고 하thi 재차 하thi 시도된다. 하thi 대화라는 하thi 것이 하thi 너무 하thi 능동형으로 하thi 다가온다면, p차카카 바탕에 p차카카 이미 p차카카 잠재해 p차카카 있는 p차카카 것을 p차카카 찾아내 p차카카 현실화한다고 p차카카 말해두자. p차카카 인간의 p차카카 근원적인 p차카카 문제를 p차카카 다루는 p차카카 작가의 p차카카 끊어질 p차카카 p차카카 이어지는 p차카카 대화에서 p차카카 굳이 p차카카 담아서는 p차카카 p차카카 p차카카 내용은 p차카카 없다. p차카카 자수 p차카카 설치, 자i가q 자i가q 조각, 9타r걷 평면 9타r걷 회화 9타r걷 작업등이 9타r걷 함께 9타r걷 하는 9타r걷 이번 9타r걷 전시는 9타r걷 다른 9타r걷 재료와 9타r걷 형식으로 9타r걷 이루어진 9타r걷 작품 9타r걷 간의 9타r걷 상호보충이 9타r걷 이루어지는 9타r걷 장(場)이다. 9타r걷 얼핏 9타r걷 어눌해 9타r걷 보이는 9타r걷 작품의 9타r걷 어법은 9타r걷 타자가 9타r걷 끼어들 9타r걷 여지를 9타r걷 두기 9타r걷 위한 9타r걷 여지로 9타r걷 다가온다. 9타r걷 전시장 9타r걷 바닥에 9타r걷 누워있는 9타r걷 동물은 9타r걷 사람의 9타r걷 얼굴처럼도 9타r걷 보인다. 9타r걷 자는 9타r걷 듯이 9타r걷 누워있지만, 9r다9 지상과 9r다9 닿을 9r다9 9r다9 없는 9r다9 9r다9 발목의 9r다9 부재는 9r다9 죽음을 9r다9 떠올린다. 

평면 9r다9 드로잉 9r다9 중에는 9r다9 개의 9r다9 겨드랑이에서 9r다9 개를 9r다9 껴안는 9r다9 듯한 9r다9 9r다9 팔이 9r다9 나온다. 9r다9 그것은 9r다9 자신의 9r다9 분신 9r다9 같은 9r다9 반려동물의 9r다9 죽음과 9r다9 관련되며, uxag 수년간 uxag 작가의 uxag 몸과 uxag 마음을 uxag 가득하게 uxag 했을, 으우e자 살아있는 으우e자 존재에게 으우e자 닥치는 으우e자 운명적 으우e자 만남과 으우e자 이별을 으우e자 표현한다. 으우e자 조형예술이 으우e자 말이 으우e자 없는 으우e자 형식이기도 으우e자 하지만, n하하바 전시장 n하하바 n하하바 벽을 n하하바 가득 n하하바 차지하는 300여개 n하하바 넘는 n하하바 비문들이나 n하하바 동식물, 쟏바zㅈ 대부분 쟏바zㅈ 입을 쟏바zㅈ 다물고 쟏바zㅈ 있는(또는 쟏바zㅈ 혼잣말을 쟏바zㅈ 하는 쟏바zㅈ 듯한) 쟏바zㅈ 인물상 쟏바zㅈ 등은 쟏바zㅈ 모두 쟏바zㅈ 침묵의 쟏바zㅈ 언어를 쟏바zㅈ 구사한다. 쟏바zㅈ 물론 쟏바zㅈ 작가가 쟏바zㅈ 한가하게 쟏바zㅈ 선문답을 쟏바zㅈ 하는 쟏바zㅈ 것은 쟏바zㅈ 아니다. 쟏바zㅈ 가령 쟏바zㅈ 비문이 쟏바zㅈ 있는 쟏바zㅈ 작품은 쟏바zㅈ 세월호를 쟏바zㅈ 비롯하여 쟏바zㅈ 가정폭력, b3o다 회사의 b3o다 갑질 b3o다 등으로 b3o다 희생된 b3o다 자들, e아갸카 그리고 e아갸카 실험 e아갸카 대상이 e아갸카 되었던 e아갸카 e아갸카 등, 3o아타 대부분 3o아타 사회의 3o아타 구조적 3o아타 폭력에 3o아타 의한 3o아타 희생자들을 3o아타 지시한다. 3o아타 가로 16x19열로 3o아타 배열된 304개의 3o아타 비문은 3o아타 세월호 3o아타 희생자 3o아타 수와 3o아타 일치하지만, 거ㅓfp 거ㅓfp 사건을 거ㅓfp 포함하여 거ㅓfp 지난 100 거ㅓfp 거ㅓfp 거ㅓfp 간의 거ㅓfp 역사 거ㅓfp 속에서 거ㅓfp 찾은 거ㅓfp 기록들로, w1ㅓㅐ 이름을 w1ㅓㅐ 알아볼 w1ㅓㅐ 관객에게 w1ㅓㅐ 각기 w1ㅓㅐ 다른 w1ㅓㅐ 강도로 w1ㅓㅐ 전달될 w1ㅓㅐ 비극적 w1ㅓㅐ 사연들이 w1ㅓㅐ 깔려있다. 

천위에 w1ㅓㅐ 수놓아진 w1ㅓㅐ 누런 w1ㅓㅐ 비문들은 w1ㅓㅐ 여러 w1ㅓㅐ 장소와 w1ㅓㅐ 시기를 w1ㅓㅐ 상징하듯, fpㄴ가 바랜 fpㄴ가 정도가 fpㄴ가 제각각이다. fpㄴ가 분필로 fpㄴ가 벽에 fpㄴ가 그려져 fpㄴ가 일시적으로만 fpㄴ가 존재하는 fpㄴ가 헌화처럼 fpㄴ가 천과 fpㄴ가 실로 fpㄴ가 fpㄴ가 비문은 fpㄴ가 그리 fpㄴ가 단단한 fpㄴ가 토대를 fpㄴ가 가지지 fpㄴ가 않는다. fpㄴ가 사연도 fpㄴ가 각각인 fpㄴ가 수많은 fpㄴ가 희생자들은 fpㄴ가 르네 fpㄴ가 지라르의 fpㄴ가 인류학적 fpㄴ가 가설처럼, 가uㅓd 인간 가uㅓd 사회의 가uㅓd 기원에 가uㅓd 가공할 가uㅓd 만한 가uㅓd 폭력이 가uㅓd 있었다는 가uㅓd 것, k타거히 k타거히 폭력이 k타거히 집중된 k타거히 희생이 k타거히 있었다는 k타거히 점을 k타거히 알려준다. k타거히 어쨌든 k타거히 비문들은 k타거히 k타거히 경악할만한 k타거히 폭력이 k타거히 일단 k타거히 지나갔으며 k타거히 현재 k타거히 진행형은 k타거히 아니지만, i다ㅓㅓ 빠져 i다ㅓㅓ 있는 i다ㅓㅓ 것과 i다ㅓㅓ 추가될 i다ㅓㅓ 것은 i다ㅓㅓ 얼마든지 i다ㅓㅓ 많은 ‘열린’ i다ㅓㅓ 작품이라는 i다ㅓㅓ 점에서 i다ㅓㅓ 결코 i다ㅓㅓ 평화롭지 i다ㅓㅓ 않다. i다ㅓㅓ 식물 i다ㅓㅓ 또한 i다ㅓㅓ 비극적 i다ㅓㅓ 이야기에 i다ㅓㅓ 동조한다. i다ㅓㅓ 회색 i다ㅓㅓ 전시장 i다ㅓㅓ 벽면에 i다ㅓㅓ 하얀 i다ㅓㅓ 분필로 i다ㅓㅓ 직접 i다ㅓㅓ 그린 i다ㅓㅓ 꽃다발은 i다ㅓㅓ 헌화를 i다ㅓㅓ 말한다. i다ㅓㅓ 다발로 i다ㅓㅓ 제시된 i다ㅓㅓ 꽃들, ㅐ거kㅓ 때로 ㅐ거kㅓ 말려진 ㅐ거kㅓ 모습으로 ㅐ거kㅓ 푸수수하게 ㅐ거kㅓ 나타나는 ㅐ거kㅓ 식물 ㅐ거kㅓ 또한 ㅐ거kㅓ 뿌리로부터 ㅐ거kㅓ 단절된 ㅐ거kㅓ 상태다. ㅐ거kㅓ 그러나 ㅐ거kㅓ 인류의 ㅐ거kㅓ 상상계에서 ㅐ거kㅓ 식물은 ㅐ거kㅓ 부활과 ㅐ거kㅓ 재생을 ㅐ거kㅓ 상징하면서 ㅐ거kㅓ 집단적 ㅐ거kㅓ 트라우마에 ㅐ거kㅓ 대한 ㅐ거kㅓ 치유의 ㅐ거kㅓ 시도를 ㅐ거kㅓ 보여준다. 

분필 ㅐ거kㅓ 벽화는 ㅐ거kㅓ ㅐ거kㅓ 전시의 ㅐ거kㅓ 어떤 ㅐ거kㅓ 대상과 ㅐ거kㅓ 결합하여 ㅐ거kㅓ 해석해도 ㅐ거kㅓ 무난하다. ㅐ거kㅓ 시멘트 ㅐ거kㅓ ㅐ거kㅓ 사이로도 ㅐ거kㅓ 자라는 ㅐ거kㅓ 잡초처럼 ㅐ거kㅓ 인공적 ㅐ거kㅓ 환경과 ㅐ거kㅓ 크게 ㅐ거kㅓ 어긋나지 ㅐ거kㅓ 않는다. ㅐ거kㅓ 그것은 ㅐ거kㅓ 방처럼 ㅐ거kㅓ 연출된 ㅐ거kㅓ 공간에 ㅐ거kㅓ 놓인 ㅐ거kㅓ 사물들을 ㅐ거kㅓ 잇는 ㅐ거kㅓ 적절한 ㅐ거kㅓ 맥락을 ㅐ거kㅓ 만들어준다. ㅐ거kㅓ 가로로 ㅐ거kㅓ ㅐ거kㅓ 전시장 ㅐ거kㅓ 벽에 ㅐ거kㅓ 걸린 ㅐ거kㅓ 나무판 ㅐ거kㅓ 위의 ㅐ거kㅓ 그림에서 ㅐ거kㅓ 확실한 ㅐ거kㅓ 도상은 ㅐ거kㅓ 풀이다. ㅐ거kㅓ 인근 ㅐ거kㅓ 공사장 ㅐ거kㅓ 등에서 ㅐ거kㅓ 버려진 ㅐ거kㅓ 합판은 ㅐ거kㅓ 자연물에서 ㅐ거kㅓ 생산품이 ㅐ거kㅓ ㅐ거kㅓ 이후에도 ㅐ거kㅓ 수많은 ㅐ거kㅓ 흔적들을 ㅐ거kㅓ 추가해왔는데, 바j기히 작가는 바j기히 바j기히 흔적들과 바j기히 자연스럽게 바j기히 대화하면서 바j기히 풍경을 바j기히 만들어 바j기히 나갔다. 바j기히 작업실 바j기히 마당 바j기히 바j기히 켠의 바j기히 개방된 바j기히 창고에서 바j기히 눈비를 바j기히 맞고 바j기히 있는 바j기히 나머지 바j기히 판넬들도 바j기히 언젠가 바j기히 불려 바j기히 나와 바j기히 대화를 바j기히 이어갈 바j기히 것이다. 바j기히 바j기히 작품은 바j기히 밑그림 바j기히 없이 바j기히 시작되고 바j기히 진행되었다. 바j기히 바j기히 작업은 바j기히 무너지지 바j기히 말아야한다는 바j기히 최소한의 바j기히 물리적 바j기히 요구가 바j기히 충족돼야 바j기히 하므로 바j기히 계획과 바j기히 정확한 바j기히 순서가 바j기히 중요하지만, 자n거l 이마저도 자n거l 회화적 자n거l 처리를 자n거l 통해서 자n거l 우연의 자n거l 요소를 자n거l 최대한 자n거l 품어낸다. 자n거l 박미화의 자n거l 작업에서 자n거l 재료와의 자n거l 상호관계는 자n거l 매우 자n거l 중요하다. 

작가 자n거l 말대로 ‘평면은 자n거l 자n거l 작업처럼, fwq쟏 도예는 fwq쟏 회화처럼’ fwq쟏 한다. fwq쟏 물감이나 fwq쟏 밀가루 fwq쟏 같은 fwq쟏 느낌을 fwq쟏 fwq쟏 젖은 fwq쟏 흙은 fwq쟏 도예가가 fwq쟏 아니더라도 fwq쟏 여성 fwq쟏 작가에게 fwq쟏 친숙한 fwq쟏 물질이다. fwq쟏 물질은 fwq쟏 작가의 fwq쟏 계획에 fwq쟏 완전히 fwq쟏 복종해야 fwq쟏 하는 fwq쟏 수동적 fwq쟏 대상이 fwq쟏 아니다. fwq쟏 살아있는 fwq쟏 재료인 fwq쟏 흙은 fwq쟏 물론이고, 다zuㅑ 스티로폼이나 다zuㅑ 합판같이 다zuㅑ 인공적인 다zuㅑ 재료도 다zuㅑ 예외는 다zuㅑ 없다. 다zuㅑ 객체를 다zuㅑ 제멋대로 다zuㅑ 하려는 다zuㅑ 주체의 다zuㅑ 의지야말로 다zuㅑ 역사상 다zuㅑ 수많은 다zuㅑ 폭력을 다zuㅑ 야기했던 다zuㅑ 원천 다zuㅑ 아닌가. 다zuㅑ 버려진 다zuㅑ 합판 다zuㅑ 위의 다zuㅑ 그림은 다zuㅑ 자연에 다zuㅑ 자연을 다zuㅑ 더한다. 다zuㅑ 그것은 다zuㅑ 다zuㅑ 위에서 다zuㅑ 무엇이 다zuㅑ 등장하거나 다zuㅑ 사라져도 다zuㅑ 이상할 다zuㅑ 것이 다zuㅑ 없는 다zuㅑ 융통성 다zuㅑ 있는 다zuㅑ 화면이 다zuㅑ 된다. 다zuㅑ 특별하게 다zuㅑ 처리되지 다zuㅑ 않은 다zuㅑ 부분은 다zuㅑ 여백처럼 다zuㅑ 보이는 다zuㅑ 잔잔한 다zuㅑ 화면에서 다zuㅑ 들판의 다zuㅑ 식물 다zuㅑ 줄기만큼은 다zuㅑ 바탕을 다zuㅑ 후벼 다zuㅑ 파듯이 다zuㅑ 강하다. 다zuㅑ 마치 다zuㅑ 상처와도 다zuㅑ 같은 다zuㅑ 깊은 다zuㅑ 균열이지만 다zuㅑ 거기에서도 다zuㅑ 새순이 다zuㅑ 나고 다zuㅑ 있다. 다zuㅑ 그것은 다zuㅑ 분필로 다zuㅑ 그려진 다zuㅑ 벽화 다zuㅑ 속의 다zuㅑ 식물 다zuㅑ 같은 다zuㅑ 메시지를 다zuㅑ 전달한다. 다zuㅑ 다zuㅑ 강력한 다zuㅑ 줄기의 다zuㅑ 선은 다zuㅑ 자잘한 다zuㅑ 소리를 다zuㅑ 뒤덮는 다zuㅑ 보다 다zuㅑ 강력한 다zuㅑ 소리 다zuㅑ 같은 다zuㅑ 역할을 다zuㅑ 한다. 다zuㅑ 그것은 다zuㅑ 덮여주는 다zuㅑ 것이다. 

작가에게 다zuㅑ 다zuㅑ 충격을 다zuㅑ 주었던 다zuㅑ 세월호 다zuㅑ 사건이 다zuㅑ 일어난 다zuㅑ 다zuㅑ 얼마 다zuㅑ 되지 다zuㅑ 않아 다zuㅑ 열렸던 다zuㅑ 이전 다zuㅑ 전시에 다zuㅑ 슬픔과 다zuㅑ 애도의 다zuㅑ 분위기가 다zuㅑ 강했다면, ㄴ기으h 이번 ㄴ기으h 전시는 ㄴ기으h ㄴ기으h 연장선상에 ㄴ기으h 있으면서도 ㄴ기으h 시간이 ㄴ기으h 흘렀음을 ㄴ기으h 알려준다. ㄴ기으h 확연한 ㄴ기으h 차이는 ㄴ기으h 이전보다 ㄴ기으h 초록색이 ㄴ기으h 많다는 ㄴ기으h 것이다. ㄴ기으h 박미화의 ㄴ기으h 최근작에서 ㄴ기으h 비중이 ㄴ기으h 높아진 ㄴ기으h 녹색 ㄴ기으h 식물은 ㄴ기으h ㄴ기으h ㄴ기으h 희망적이다. ㄴ기으h 이전 ㄴ기으h 전시를 ㄴ기으h 물들었던 ㄴ기으h 먹먹함은 ㄴ기으h 희망을 ㄴ기으h 향한다. ㄴ기으h 우리 ㄴ기으h 사회가 ㄴ기으h ㄴ기으h 비극을 ㄴ기으h 제대로 ㄴ기으h 기억하는 ㄴ기으h ㄴ기으h 비극은 ㄴ기으h 희망으로 ㄴ기으h 전환될 ㄴ기으h ㄴ기으h 있을 ㄴ기으h 것이다. ㄴ기으h 동물보다 ㄴ기으h 오래된 ㄴ기으h 존재로 ㄴ기으h 지구 ㄴ기으h 생태계를 ㄴ기으h 만들어왔던 ㄴ기으h 식물은 ㄴ기으h 여성 ㄴ기으h 친화적이다. ㄴ기으h 최초의 ㄴ기으h 식량인 ㄴ기으h 숲의 ㄴ기으h 열매를 ㄴ기으h 수집하고 ㄴ기으h 관리해온 ㄴ기으h 여성에 ㄴ기으h 대한 ㄴ기으h 이미지는 ㄴ기으h 신화에 ㄴ기으h ㄴ기으h 기록되어 ㄴ기으h 있다. ㄴ기으h 이듬해 ㄴ기으h 추운 ㄴ기으h 겨울을 ㄴ기으h 이기고 ㄴ기으h 다시 ㄴ기으h 싹을 ㄴ기으h 틔우는 ㄴ기으h 식물은 ㄴ기으h 인간으로 ㄴ기으h 하여금 ㄴ기으h 부활과 ㄴ기으h 재생에 ㄴ기으h 대한 ㄴ기으h 생각을 ㄴ기으h 하게 ㄴ기으h 했다. ㄴ기으h 마이클 ㄴ기으h 조던은 [초록 ㄴ기으h 덮개]에서 ㄴ기으h 네안데르탈인의 ㄴ기으h 유골과 ㄴ기으h 함께 ㄴ기으h 발견된 ㄴ기으h 수많은 ㄴ기으h 꽃가루는 ㄴ기으h 시신이 ㄴ기으h 꽃으로 ㄴ기으h 둘러싸여 ㄴ기으h 있음을 ㄴ기으h 추측하게 ㄴ기으h 한다고 ㄴ기으h 말한다. 

[초록덮개]에 ㄴ기으h 의하면, oㅓtg 빙하기의 oㅓtg 원시인들에게 oㅓtg 봄은 oㅓtg 정신적인 oㅓtg 부활이었고, ㅈ우of 자연에서 ㅈ우of 생명과 ㅈ우of 출산을 ㅈ우of 담당한 ㅈ우of 신, o4기t o4기t 위대한 o4기t 어머니 o4기t 여신이자 o4기t 하늘의 o4기t 여왕이 o4기t 신성한 o4기t 나무로 o4기t 상징되었다. o4기t 신화는 o4기t 고대인들이 o4기t 겨울과 o4기t o4기t 가뭄이 o4기t 이어지는 o4기t 시기에 o4기t 일어나는 o4기t 자연의 o4기t 죽음을 o4기t 어떻게 o4기t 설명했는지 o4기t 알려준다. o4기t 박미화의 o4기t 작품에서 o4기t 식물은 o4기t 원시시대부터 o4기t 탄생 o4기t o4기t 죽음과 o4기t 관련되었던 o4기t 다소간 o4기t 종교적 o4기t 분위기의 o4기t 소재임을 o4기t 드러낸다. o4기t 탄생에는 o4기t 재탄생 o4기t 또한 o4기t 포함된다. o4기t 종교학자 o4기t 미르치아 o4기t 엘리아데는 [종교사 o4기t 개론]에서 o4기t 고대부터의 o4기t 수목 o4기t 신앙을 o4기t 조명하면서 o4기t 식물은 o4기t 살아있는 o4기t 현실, 라dgk 주기적으로 라dgk 재생되는 라dgk 삶의 라dgk 표명이라고 라dgk 본다. 라dgk 그러면서 라dgk 우주도 라dgk 나무처럼 라dgk 주기적으로 라dgk 재생된다고 라dgk 해석한다. 라dgk 그에 라dgk 의하면 라dgk 모든 라dgk 재생은 라dgk 그때마다 라dgk 새로운 라dgk 탄생이며 라dgk 재생되는 라dgk 형태가 라dgk 처음으로 라dgk 나타난 라dgk 신화적 라dgk 시간으로의 라dgk 회귀이므로 라dgk 사람들은 라dgk 우주 라dgk 창조의 라dgk 원초적 라dgk 행위를 라dgk 반복한다. 라dgk 재생은 라dgk 여러 라dgk 차원에서 라dgk 동시적으로 라dgk 일어날 라dgk 것이다. 

물론 라dgk 그중에서 라dgk 박미화에게 라dgk 가장 라dgk 강력한 라dgk 것은 라dgk 다시 라dgk 작업하는 라dgk 삶의 라dgk 개화라고 라dgk 라dgk 라dgk 있다. 라dgk 그것은 라dgk 오랫동안 라dgk 잠재된 라dgk 상태로 라dgk 있던 라dgk 씨앗, qㅐm1 또는 qㅐm1 나뭇가지에서 qㅐm1 새로운 qㅐm1 싹을 qㅐm1 틔우는 qㅐm1 일을 qㅐm1 말한다. qㅐm1 작가가 qㅐm1 지금 qㅐm1 어느 qㅐm1 시절보다 qㅐm1 가까이 qㅐm1 하고 qㅐm1 있는 qㅐm1 대지와 qㅐm1 그것의 qㅐm1 환유(換喩)인 qㅐm1 흙은 qㅐm1 재생의 qㅐm1 기운을 qㅐm1 간직한 qㅐm1 잠재태로 qㅐm1 다가온다. qㅐm1 전시장 qㅐm1 벽과 qㅐm1 바닥에 qㅐm1 있는 qㅐm1 초록 qㅐm1 식물들은 qㅐm1 애도와 qㅐm1 기억의 qㅐm1 공간 qㅐm1 속에서 qㅐm1 희망의 qㅐm1 시간을 qㅐm1 암시한다. qㅐm1 혈맥 qㅐm1 같은 qㅐm1 굵은 qㅐm1 선들도 qㅐm1 보이는 qㅐm1 식물들은 qㅐm1 중간에 qㅐm1 뚝뚝 qㅐm1 잘린 qㅐm1 듯한 qㅐm1 형태가 qㅐm1 더욱 qㅐm1 강한 qㅐm1 생명력을 qㅐm1 표현한다. qㅐm1 무명씨의 qㅐm1 식물들은 qㅐm1 잡초처럼 qㅐm1 왕성하여, 파7a아 화분에서 파7a아 자라는 파7a아 식물의 파7a아 경우 파7a아 작은 파7a아 용기(容器)를 파7a아 벗어나 파7a아 왕성하게 파7a아 사지를 파7a아 뻗는 파7a아 괴물 파7a아 같은 파7a아 모습이다. 파7a아 동물이나 파7a아 식물에서 파7a아 인간이 파7a아 겹쳐진다면 파7a아 파7a아 반대도 파7a아 가능하다. 파7a아 바닥에 파7a아 놓여있거나 파7a아 파7a아 있는 파7a아 작품 파7a아 파7a아 인물들은 파7a아 죽거나 파7a아 죽은듯하지만 파7a아 살아있는 파7a아 형상들이다. 파7a아 아이 파7a아 같은 파7a아 천진한 파7a아 필법으로 파7a아 그려진 파7a아 얼굴이나 파7a아 파7a아 형태는 파7a아 어린 파7a아 시절의 파7a아 낙서장 파7a아 같다.

그것은 파7a아 직접적인 파7a아 언어적 파7a아 표현보다는 파7a아 머리와 파7a아 가슴에 파7a아 품고 파7a아 있는 파7a아 것이 파7a아 파7a아 많은 파7a아 상황을 파7a아 은유한다. 파7a아 앞뒤로 파7a아 나이 파7a아 차이가 파7a아 보이는 파7a아 파7a아 얼굴의 파7a아 여자는 파7a아 시간의 파7a아 흐름을 파7a아 알려준다. 파7a아 파7a아 위에 파7a아 행해진 파7a아 회화적 파7a아 처리에서 파7a아 겹겹의 파7a아 시간성이 파7a아 감지되는데, acpc 작가는 acpc acpc 몸통에 acpc acpc 얼굴의 acpc 공존을 acpc 통해 acpc 시간과 acpc 시간이 acpc 만들어내는 acpc 것, 카ph라 카ph라 이야기를 카ph라 시도한다. 카ph라 잘린 카ph라 한쪽 카ph라 카ph라 겨드랑이에서 카ph라 돋는 카ph라 푸른 카ph라 날개는 카ph라 트라우마 카ph라 이후의 카ph라 시간을 카ph라 기약한다. 카ph라 온전한 카ph라 팔과 카ph라 연결되어 카ph라 있는 카ph라 끈은 카ph라 희망일 카ph라 것이다. 카ph라 작가는 카ph라 전시장 카ph라 어딘가에 카ph라 그러한 카ph라 희망의 카ph라 상징인 카ph라 별을 카ph라 가져다 카ph라 놓았다. 카ph라 카ph라 끈과 카ph라 연결되어 카ph라 있을지 카ph라 모르는 카ph라 바닥의 카ph라 개는 카ph라 카ph라 카ph라 가까이에 카ph라 있지만, z4ic 별은 z4ic z4ic z4ic 멀리에 z4ic 있다. z4ic 소녀상이나 z4ic 푸른 z4ic 식물은 z4ic 모성이 z4ic 강하게 z4ic 드러나 z4ic 있던 z4ic 이전 z4ic 전시 z4ic 보다는 z4ic 젊은 z4ic 분위기지만, 마939 이번 마939 전시에서도 마939 모성을 마939 상징하는 마939 도상들이 마939 작지만 마939 있다. 마939 그중 마939 하나가 마939 피에타상이다. 마939 오래된 마939 시간의 마939 켜를 마939 둘러쓰고 마939 있는 마939 피에타상의 마939 하단부는 마939 가마에서 마939 폭발한 마939 흔적을 마939 그대로 마939 살렸다.

철망과 마939 철심으로 마939 지지 마939 마939 피에타상은 마939 폐허에서 마939 다시 마939 구축되는 마939 듯한 마939 구조로 마939 마감되었다. 마939 한쪽 마939 날개가 마939 뽑힌 마939 마939 바닥을 마939 응시하는 마939 어미 마939 마939 또한 마939 아이의 마939 상처에 마939 자신도 마939 상처받는 마939 모습으로 마939 나타난다. 마939 날지 마939 못하는 마939 새는 마939 취약하고 마939 무거운 마939 존재이다. 마939 마939 모양의 마939 동체는 마939 마939 크기도 마939 크거니와 마939 갑옷같이 마939 단단한 마939 모양새로 마939 기념비적인 마939 형상을 마939 이룬다. 마939 그러나 마939 마939 안이 마939 마939 비어있어 마939 강함 마939 속의 마939 약함, 으ㅈcj 또는 으ㅈcj 약함 으ㅈcj 속의 으ㅈcj 강함이라는 으ㅈcj 양면성을 으ㅈcj 가진다. 으ㅈcj 여성 으ㅈcj 또는 으ㅈcj 모성의 으ㅈcj 상징이라고 으ㅈcj 해야 으ㅈcj 으ㅈcj 가슴이 으ㅈcj 없는 으ㅈcj 옷/몸은 으ㅈcj 아마존의 으ㅈcj 여전사 으ㅈcj 같은 으ㅈcj 모습이면서도 (여자)아이의 으ㅈcj 모습을 으ㅈcj 가지고 으ㅈcj 있다. 으ㅈcj 표면의 으ㅈcj 회화적 으ㅈcj 처리는 으ㅈcj 줄줄 으ㅈcj 흐르는 으ㅈcj 물감의 으ㅈcj 흔적을 으ㅈcj 그대로 으ㅈcj 살렸는데, 아wg9 아wg9 몸통에도 아wg9 중력을 아wg9 거슬러 아wg9 꼿꼿이 아wg9 아wg9 있는 아wg9 상의의 아wg9 끈과는 아wg9 다른 아wg9 방향이다. 아wg9 강함과 아wg9 약함, ㅓ파mㅑ 단단함과 ㅓ파mㅑ 부드러움이 ㅓ파mㅑ 공존하는 ㅓ파mㅑ ㅓ파mㅑ 이중적 ㅓ파mㅑ 모습은 ㅓ파mㅑ 예술하는 ㅓ파mㅑ ㅓ파mㅑ ㅓ파mㅑ 자체에 ㅓ파mㅑ 요구되는 ㅓ파mㅑ 필요충분조건이다. ㅓ파mㅑ ㅓ파mㅑ 점에서 ㅓ파mㅑ ㅓ파mㅑ 전시의 ㅓ파mㅑ 인물상들은 ㅓ파mㅑ 자소상이라 ㅓ파mㅑ 할만하다. 

오래된 ㅓ파mㅑ 창가 ㅓ파mㅑ 옆의 ㅓ파mㅑ 여인상에서 ㅓ파mㅑ 양팔의 ㅓ파mㅑ 의상이 ㅓ파mㅑ 다른 ㅓ파mㅑ 여인은 ㅓ파mㅑ 작가를 ㅓ파mㅑ 닮았다. ㅓ파mㅑ 그것은 ㅓ파mㅑ 여성/작가라면 ㅓ파mㅑ 수행하는 ㅓ파mㅑ ㅓ파mㅑ 역할을 ㅓ파mㅑ 하는 ㅓ파mㅑ 여성을 ㅓ파mㅑ 상징하는 ㅓ파mㅑ 것일까? ㅓ파mㅑ ㅓ파mㅑ 팔은 ㅓ파mㅑ 화분에 ㅓ파mㅑ 가려져 ㅓ파mㅑ 있고, 6마히g 다른 6마히g 6마히g 팔은 6마히g 푸른 6마히g 6마히g 소매에서 6마히g 나오는 6마히g 손이 6마히g 있는 6마히g 재생의 6마히g 이미지이다. 6마히g 재생되는 6마히g 손은 6마히g 일상의 6마히g 삶을 6마히g 재생산하기 6마히g 위해 6마히g 요구되는 6마히g 노동과 6마히g 다른 6마히g 작업의 6마히g 의미를 6마히g 암시한다. 6마히g 물론 6마히g 인간의 6마히g 삶에서 6마히g 재생산이든 6마히g 생산이든 6마히g 어렵지 6마히g 않은 6마히g 6마히g 없다. 6마히g 그러나 6마히g 6마히g 둘을 6마히g 6마히g 수행하는 6마히g 것은 6마히g 어렵다. 6마히g 박미화의 6마히g 작품에는 6마히g 여성/작가라면 6마히g 반드시 6마히g 해결하고 6마히g 넘어가야 6마히g 6마히g 6마히g 관계가 6마히g 녹아 6마히g 있다. 6마히g 머리 6마히g 위에서 6마히g 식물이 6마히g 나오는 6마히g 여인 6마히g 상반신을 6마히g 표현한 6마히g 작품은 6마히g 스스로를 6마히g 양분 6마히g 삼아 6마히g 자라는 6마히g 존재, 쟏z9걷 쟏z9걷 예술하는 쟏z9걷 삶의 쟏z9걷 고통을 쟏z9걷 사슴의 쟏z9걷 뿔처럼 쟏z9걷 내보인다. 쟏z9걷 수사슴의 쟏z9걷 뿔이 쟏z9걷 왕관 쟏z9걷 같은 쟏z9걷 것이라면, 45쟏자 박미화의 45쟏자 작품에서 45쟏자 얼굴 45쟏자 위의 ‘뿔’은 45쟏자 희생이나 45쟏자 재생을 45쟏자 은유한다. 45쟏자 씨앗처럼 45쟏자 죽어야 45쟏자 사는(피어나는) 45쟏자 작가로서의 45쟏자 삶은 2015년 45쟏자 강화도에 45쟏자 작업실을 45쟏자 마련하면서부터 45쟏자 본격화 45쟏자 되었다. 45쟏자 45쟏자 작업은 45쟏자 보기에는 45쟏자 소박해도 45쟏자 만들려면 45쟏자 공간의 45쟏자 제약이 45쟏자 크기 45쟏자 때문이다. 

늦게 45쟏자 다시 45쟏자 시작한 45쟏자 작업이기 45쟏자 때문에 45쟏자 서울과 45쟏자 강화도를 45쟏자 오가며 45쟏자 작업하는 45쟏자 삶의 45쟏자 여정은 45쟏자 아직도 45쟏자 설렘이 45쟏자 가득하다. 45쟏자 한번 45쟏자 가면 2박 3일, 3박 4일을 pㅐ타파 머무르는 pㅐ타파 작업실에서의 pㅐ타파 일정은 pㅐ타파 그곳에서 pㅐ타파 보내는 pㅐ타파 시간 pㅐ타파 자체가 pㅐ타파 소중하다. pㅐ타파 여기에서는 pㅐ타파 동식물을 pㅐ타파 비롯한 pㅐ타파 자연 pㅐ타파 pㅐ타파 자신과의 pㅐ타파 대화만이 pㅐ타파 있다. pㅐ타파 침묵 pㅐ타파 pㅐ타파 타자와의 pㅐ타파 대화에는 pㅐ타파 마치 pㅐ타파 성(聖)과 pㅐ타파 속(俗)을 pㅐ타파 오가는 pㅐ타파 의례의 pㅐ타파 행위를 pㅐ타파 떠오르게 pㅐ타파 한다. pㅐ타파 삶은 pㅐ타파 작업 pㅐ타파 또한 pㅐ타파 노동 pㅐ타파 못지않은 pㅐ타파 육체 pㅐ타파 에너지가 pㅐ타파 들어가지만, chwㅐ 차이는 chwㅐ 미지의 chwㅐ 것에 chwㅐ 대한 chwㅐ 설렘이 chwㅐ 아닐까. chwㅐ 나에게서 chwㅐ 나온 chwㅐ chwㅐ 아닌 chwㅐ 무엇, 차uk다 차uk다 타자적인 차uk다 것. 차uk다 나로부터 차uk다 비롯된 차uk다 타자적인 차uk다 것으로 차uk다 타자들과 차uk다 소통하는 차uk다 것. 차uk다 앞마당에 차uk다 각종 차uk다 꽃나무들이 차uk다 심어져 차uk다 있고 차uk다 동네 차uk다 고양이들이 차uk다 노니는 차uk다 누구도 차uk다 부러워할만한 차uk다 작업실을 차uk다 짓게 차uk다 차uk다 계기는 차uk다 죽음에 차uk다 근접한 차uk다 체험이었다. 차uk다 차가 차uk다 완파될 차uk다 정도의 차uk다 차uk다 교통사고를 차uk다 당했는데 차uk다 몸은 차uk다 하나도 차uk다 다치지 차uk다 않았던 차uk다 기적 차uk다 같은 차uk다 일을 차uk다 체험하고 차uk다 다시 차uk다 태어나는 차uk다 마음으로 차uk다 마음 차uk다 차uk다 켠에 차uk다 미루어뒀던 차uk다 일을 차uk다 저질렀다. 차uk다 죽음의 차uk다 직시는 차uk다 삶을 차uk다 보다 차uk다 밀도 차uk다 있게 차uk다 살아야 차uk다 함을 차uk다 촉구한다. 

죽음이라는 차uk다 그림자는 차uk다 삶을 차uk다 차uk다 환하게 차uk다 비추는 차uk다 것이다. 차uk다 차uk다 차uk다 차uk다 사이의 차uk다 작품은 차uk다 작가의 차uk다 일상적이고 차uk다 실존적 차uk다 체험에 차uk다 무고한 차uk다 이들의 차uk다 죽음을 차uk다 낳았던 차uk다 사회적 차uk다 사건에 차uk다 대한 차uk다 의식이 차uk다 합쳐진 차uk다 결과이다. 차uk다 세월호 차uk다 사건을 차uk다 비롯해서 차uk다 우리 차uk다 사회 차uk다 구성원이면 차uk다 알아볼 차uk다 차uk다 있는 차uk다 시사적인 차uk다 사건들이 차uk다 등장하지만, sㅈqy 박미화의 sㅈqy 작품은 sㅈqy 그것들을 sㅈqy 보다 sㅈqy 근본적인 sㅈqy 차원으로 sㅈqy 가라앉힌다. sㅈqy 그런 sㅈqy 후에 sㅈqy 다시 sㅈqy 떠올린다. sㅈqy 기억되는 sㅈqy 것만이 sㅈqy 표현될 sㅈqy 가치가 sㅈqy 있다. sㅈqy 작품은 sㅈqy 개인적이든 sㅈqy 사회적이든 sㅈqy 작가의 sㅈqy 몸을 sㅈqy 통과한 sㅈqy 것들이다. sㅈqy 소녀부터 sㅈqy 중년까지 sㅈqy 다양한 sㅈqy 나이대로 sㅈqy 등장하는 sㅈqy 여성은 sㅈqy 어딘가 sㅈqy 작가를 sㅈqy 닮았긴 sㅈqy 하지만 sㅈqy 똑같지는 sㅈqy 않은 sㅈqy 얼굴이다. sㅈqy 남성이 sㅈqy 아닌 sㅈqy 여성 sㅈqy 화자(話者)는 sㅈqy 전시의 sㅈqy 모든 sㅈqy 초상들이 sㅈqy 작가의 sㅈqy 은유임을 sㅈqy 암시한다. sㅈqy 여성 sㅈqy 작가이기에 sㅈqy 여성상이 sㅈqy 기본이 sㅈqy 되는 sㅈqy 것이다. sㅈqy 수백년 sㅈqy 미술의 sㅈqy 역사 sㅈqy 속에서 ‘왜 sㅈqy 위대한 sㅈqy 여성 sㅈqy 미술가는 sㅈqy 없었는가’를 sㅈqy 물으면서 sㅈqy 숨겨진 sㅈqy 여성 sㅈqy 작가들을 sㅈqy 발굴하려 sㅈqy 노력한 sㅈqy 페미니즘 sㅈqy 미술사가들은 sㅈqy 여성이 sㅈqy 공식적 sㅈqy 아카데미에서 sㅈqy 누드를 sㅈqy 배울 sㅈqy 기회를 sㅈqy 박탈당한 sㅈqy 사실을 sㅈqy 지적하곤 sㅈqy 한다. sㅈqy 그것은 sㅈqy 인간의 sㅈqy 보편적 sㅈqy 상징, 라0으c 라0으c 나아가 라0으c 만물의 라0으c 척도로 라0으c 규정되곤 라0으c 하던 라0으c 인간이 라0으c 남성적 라0으c 주체임을 라0으c 떠올릴 라0으c 라0으c 그리 라0으c 불행한 라0으c 것만은 라0으c 아니다.

케네드 라0으c 클락은 [누드의 라0으c 역사]에서 라0으c 이성의 라0으c 상징인 라0으c 남성누드가 라0으c 감각적인 라0으c 여성누드로 라0으c 방점이 라0으c 옮아가는 라0으c 미술의 라0으c 역사에서 라0으c 누드의 라0으c 퇴락을 라0으c 읽었다. 라0으c 그러나 라0으c 여성이든 라0으c 남성이든 라0으c 현대의 라0으c 작가는 라0으c 누드를 라0으c 배웠다가도 라0으c 잊어버려야만 라0으c 하는 라0으c 상황에 라0으c 처한다. 라0으c 국내외에서 라0으c 정식 라0으c 미술교육을 라0으c 받은 라0으c 박미화 라0으c 또한 라0으c 편향된 라0으c 기준을 라0으c 벗어나기 라0으c 위해 라0으c 조형의 라0으c 기본문법을 라0으c 잊어버린다. 라0으c 유일한 라0으c 남성상은 라0으c 이전 라0으c 작품에 라0으c 라0으c 라0으c 나타나는데, l타y으 그것도 l타y으 성인 l타y으 남성은 l타y으 아니고 l타y으 l타y으 근처에 l타y으 어머니가 l타y으 함께 l타y으 있는 l타y으 남자아이의 l타y으 상이었다. l타y으 작가의 l타y으 무의식적 l타y으 선택에서도 l타y으 메시지는 l타y으 있다. l타y으 작품 l타y으 l타y으 인물은 l타y으 자신의 l타y으 비유이지만 l타y으 자신과 l타y으 완전히 l타y으 동일시되지는 l타y으 않는다. l타y으 그것은 l타y으 자기 l타y으 안의 l타y으 타자 l타y으 또는 l타y으 타자에 l타y으 감정이입되는 l타y으 자신이다. l타y으 개인적이고도 l타y으 사회적인 l타y으 차원의 l타y으 죽음을 l타y으 전시의 l타y으 l타y으 주제로 l타y으 삼고 l타y으 있는 l타y으 작가에게 l타y으 타자의 l타y으 얼굴은 l타y으 영감이 l타y으 발산/ l타y으 수렴하는 l타y으 지점으로 l타y으 다가온다. l타y으 얼굴은 l타y으 죽은 l타y으 l타y으 누워있는 l타y으 개부터 l타y으 고전적인 l타y으 피에타상까지 l타y으 아우른다. l타y으 전시장 l타y으 l타y으 l타y으 가득한 l타y으 비문들은 l타y으 얼굴을 l타y으 대신하여 l타y으 이름이 l타y으 새겨져 l타y으 있다. l타y으 물론 l타y으 잡초에 l타y으 비견될 l타y으 만한 l타y으 무명씨도 l타y으 있다.

사회적 l타y으 차원에 l타y으 접한 l타y으 박미화의 l타y으 작품은 l타y으 타자에 l타y으 대한 l타y으 윤리를 l타y으 암시하는데, ㅓ파x히 ㅓ파x히 방식은 ㅓ파x히 계몽적이기보다는 ㅓ파x히 심미적, k거51 또는 k거51 종교적이다. k거51 그러나 k거51 초월적이지는 k거51 않고 k거51 내재적이다. k거51 그것은 k거51 타자의 k거51 얼굴로부터 k거51 윤리를 k거51 암시하는 k거51 철학자 k거51 에마뉘엘 k거51 레비나스의 k거51 철학을 k거51 떠오르게 k거51 한다. k거51 레비나스의 k거51 책 [신, 다히6h 죽음 다히6h 그리고 다히6h 시간]의 다히6h 편집자 다히6h 자크 다히6h 롤랑은 다히6h 다른 다히6h 인간의 다히6h 얼굴 다히6h 속에서 다히6h 나에게 다히6h 건네지는 다히6h 질문인 다히6h 타자의 다히6h 질문, 43jo 이것이 43jo 43jo 책의 43jo 한결같은 43jo 핵심이라고 43jo 정리한다. 43jo 레비나스에 43jo 의하면 43jo 윤리는 43jo 타인과의 43jo 관계, ㅈjmu 이웃과의 ㅈjmu 관계이다. ㅈjmu 타인은 ㅈjmu 곧장 ㅈjmu 아무런 ㅈjmu 보호도 ㅈjmu 없이 ㅈjmu 비참한 ㅈjmu 자로 ㅈjmu 다가오며 ㅈjmu 단번에 ㅈjmu 내게 ㅈjmu 맡겨진다. ㅈjmu 레비나스에게 ㅈjmu 타인은 ㅈjmu 무엇보다도 ㅈjmu 얼굴로 ㅈjmu 다가온다. ㅈjmu 그것은 ㅈjmu ㅈjmu 얼굴의 ㅈjmu 은총 ㅈjmu 속에서가 ㅈjmu 아니라 ㅈjmu ㅈjmu 살의 ㅈjmu 벌거벗음과 ㅈjmu 비참함 ㅈjmu 속에서 ㅈjmu 맞아 ㅈjmu 들여진 ㅈjmu 타인이다. ㅈjmu 이러한 ㅈjmu 관점은 ‘인간을 ㅈjmu 단순히 ㅈjmu 육화한 ㅈjmu 혹은 ㅈjmu 개별화한 ㅈjmu 보편적 ㅈjmu 이성이 ㅈjmu 아니라, ㅐ다p갸 고유한 ㅐ다p갸 얽힘과 ㅐ다p갸 단절로 ㅐ다p갸 인식하는 ㅐ다p갸 것’(레비나스)이다. ㅐ다p갸 ㅐ다p갸 타자와 ㅐ다p갸 마주한 ㅐ다p갸 주체는 ㅐ다p갸 결코 ㅐ다p갸 자율적이지 ㅐ다p갸 않다. 

물론 ㅐ다p갸 주체와 ㅐ다p갸 타자는 ㅐ다p갸 완전히 ㅐ다p갸 동일시되지는 ㅐ다p갸 않는다. ‘가깝지만 ㅐ다p갸 다른 ㅐ다p갸 것으로 ㅐ다p갸 남아 ㅐ다p갸 있어야’(레비나스) ㅐ다p갸 한다. ㅐ다p갸 주체와 ㅐ다p갸 타자의 ㅐ다p갸 관계의 ㅐ다p갸 비대칭적인 ㅐ다p갸 것이다. ㅐ다p갸 레비나스는 ㅐ다p갸 타인과의 ㅐ다p갸 관계 ㅐ다p갸 속에 ㅐ다p갸 타율성이 ㅐ다p갸 있다고 ㅐ다p갸 본다. ㅐ다p갸 그러나 ㅐ다p갸 이러한 ㅐ다p갸 타율성은 ㅐ다p갸 소외도 ㅐ다p갸 노예화된 ㅐ다p갸 ㅐ다p갸 유일성의 ㅐ다p갸 상실도 ㅐ다p갸 아닌 ㅐ다p갸 달라짐이다. ㅐ다p갸 박미화의 ㅐ다p갸 작품이 ㅐ다p갸 여러 ㅐ다p갸 장르를 ㅐ다p갸 아우르면서 ㅐ다p갸 설치의 ㅐ다p갸 방식을 ㅐ다p갸 가지는 ㅐ다p갸 것은 ㅐ다p갸 타자와의 ㅐ다p갸 관계에 ㅐ다p갸 대한 ㅐ다p갸 작가의 ㅐ다p갸 생각이 ㅐ다p갸 반영된 ㅐ다p갸 것이다. ㅐ다p갸 알맹이인 ㅐ다p갸 몸이 ㅐ다p갸 빠진 ㅐ다p갸 옷의 ㅐ다p갸 동체, 차거kd 날개가 차거kd 차거kd 차거kd 뽑힌 차거kd 새, ㅓnvi ㅓnvi 쌍을 ㅓnvi 이루지 ㅓnvi 못하는 ㅓnvi 사지들, 파436 그리다 파436 만듯한 파436 그림 파436 등은 파436 자족적이지 파436 않다. 파436 그것은 파436 얼마 파436 떨어지지 파436 않은 파436 곳에 파436 위치한 파436 것들과 파436 보이지 파436 않는 파436 연결망을 파436 이루며 파436 메시지를 파436 발신한다. 파436 박미화의 파436 작품에서 파436 대화는 1대 1의 파436 관계는 파436 아니다. 파436 가령 파436 동물, cgb8 식물, fkxe 죽은 fkxe 자들과의 fkxe 작가는 fkxe 대등하지 fkxe 않다. fkxe 여기에는 fkxe 차별이 fkxe 아닌 fkxe 차이가 fkxe 있다. fkxe 절대적 fkxe 차이의 fkxe 상징일 fkxe fkxe 또한 fkxe 근처에 fkxe 있다. fkxe fkxe 번에 fkxe 그어진 fkxe 선의 fkxe 형태로 fkxe 만들어진 fkxe 별은 fkxe 자체의 fkxe 무게감으로 fkxe 기우뚱하다. fkxe 별처럼 fkxe 초월적일 fkxe fkxe 있는 fkxe 소재를 fkxe 박미화가 fkxe 다루는 fkxe 방식은 fkxe 흥미롭다. 

그것 fkxe 역시 fkxe 돌처럼 fkxe 보인다. fkxe 우리 fkxe fkxe 지구처럼 fkxe 말이다. fkxe 박미화의 fkxe 주재료인 fkxe 흙은 fkxe 작가가 fkxe 자연과 fkxe 더불어 fkxe 살아야겠다고 fkxe 하면서 fkxe 작업실을 fkxe 옮겼을 fkxe fkxe 더욱 fkxe 의미 fkxe 깊은 fkxe 재료로 fkxe 다가왔을 fkxe 것이다. fkxe 그것은 fkxe 대지의 fkxe 상징이다. fkxe 대지는 fkxe 만물이 fkxe 나오기도 fkxe 하지만 fkxe 돌아가는 fkxe 곳이기도 fkxe fkxe 양면성을 fkxe 가진다. fkxe 레비나스는 fkxe 같은 fkxe 책에서 fkxe 대지는 fkxe 원래의 fkxe 바탕이 fkxe 되는 fkxe 곳, ㅐm사f 안정된 ㅐm사f 바탕을 ㅐm사f 가리킨다고 ㅐm사f 말한다. ㅐm사f 그에 ㅐm사f 의하면 ㅐm사f 매장은 ㅐm사f 바탕으로의 ㅐm사f 복귀로 ㅐm사f 해석되며 ㅐm사f 대지의 ㅐm사f 바탕은 ㅐm사f 존재의 ㅐm사f 바탕으로 ㅐm사f 해석된다. ‘세계 ㅐm사f 속에서 ㅐm사f 우리는 ㅐm사f 세계로 ㅐm사f 오고, 나2mj 세계 나2mj 속에서 나2mj 우리는 나2mj 세계를 나2mj 떠난다. 나2mj 세계 나2mj 속에서 나2mj 우리는 나2mj 이미 나2mj 세계의 나2mj 지평에 나2mj 포섭되어 나2mj 있다. 나2mj 해방은 나2mj 없다.’(레비나스) 나2mj 박미화의 나2mj 작품에 나2mj 등장하는 나2mj 분열된 나2mj 얼굴이나 나2mj 절단된 나2mj 사지, kbㅓ사 그리고 kbㅓ사 피에타로 kbㅓ사 대변되는 kbㅓ사 고통의 kbㅓ사 정점은 kbㅓ사 그것들이 kbㅓ사 굳이 kbㅓ사 대지의 kbㅓ사 재료로 kbㅓ사 만들어진 kbㅓ사 것이 kbㅓ사 아니더라도 kbㅓ사 곧장 kbㅓ사 삶의 kbㅓ사 불가분한 kbㅓ사 짝패인 kbㅓ사 죽음을 kbㅓ사 떠올린다. kbㅓ사 또한 kbㅓ사 죽음은 kbㅓ사 삶의 kbㅓ사 타자이다. kbㅓ사 불안과 kbㅓ사 공포, ㅓㅑa거 우울은 ㅓㅑa거 죽음 ㅓㅑa거 가까이 ㅓㅑa거 있는 ㅓㅑa거 정조(情操)이다. ㅓㅑa거 개인적이면서 ㅓㅑa거 사회적인 ㅓㅑa거 재난 ㅓㅑa거 이후의 ㅓㅑa거 작가는 ㅓㅑa거 대지와 ㅓㅑa거 자연이라는 ㅓㅑa거 가장 ㅓㅑa거 안정되어 ㅓㅑa거 보이는 ㅓㅑa거 소재들 ㅓㅑa거 또한 ㅓㅑa거 낯선 ㅓㅑa거 정조로 ㅓㅑa거 물들인다.

출처: ㅓㅑa거 아트스페이스3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박미화

현재 진행중인 전시

이응노의 zㅐ9파 사계 The Four Seasons of Lee Ungno

Jan. 19, 2021 ~ April 1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