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빅토리아 시대의 발명가 조셉 파버는 ‘유포니아(Euphonia)’라는 기이한 기계를 발명했다. 기계식 펌프로 노래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이 장치 앞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인형이 부착되었는데 이는 본래의 육중한 구조물을 숨기고 노래를 부르는 여인이라는 환상을 관객에게 씌우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당시의 관객들은 파버의 의도와는 달리 기계와 여성의 가면 사이에서 보이는 이상한 간극과 이를 가로지르는 기계 잡음에 주목하며 유포니아가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으스스하고 끔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포니아는 본래 그리스어 단어인 ‘좋은’이란 뜻의 ‘Eu’와 ‘소리’라는 뜻의 ‘Phony’를 붙여 만든 이름으로 ‘좋은 소리가 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셉 파버의 기계 유포니아는 도리어 텅 빈 채 박제된 ‘껍데기’로서 여성의 얼굴 이미지와 ‘내장’으로서 기능하는 기계의 소음이 내포한 균열을 강조한다. 이는 안과 밖이 뒤섞인, 내장의 소리가 표면으로 돌출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시 《유포니아 또는 얼굴 뒤 세계를 위한 노래》는 기계 ‘유포니아’의 실패 사례를 동시대 미디어 매체 속 여성 재현의 맥락 안에서 재해석하고 새로운 형태의 기계-여성의 모습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또한 이미지의 고정성에 내포된 폭력과 피사체가 된 여성의 혼란과 슬픔의 감각을 그려내기를 시도한다. 피사체를 향한 시각 매체의 폭력적 힘과 그 사이에 놓인 여성 간의 관계를 파고드는 영상은 오류의 존재들을 불러내어 불협화음의 노이즈를 생성하고, 폭력을 마주하는 여성적 발화의 침투 가능성을 모색한다.
3채널로 구성된 영상작업인 <얼굴 뒤 세계를 위한 노래>는 잠이 든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한다. 이미지 속 여자는 기이한 여정을 통해 피사체가 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얼굴 뒤 세계를 위한 노래>는 특히 여자의 ‘잠든 얼굴’ 너머의 것에 주목한다. 기이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든 여자가 꾸는 꿈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고통을 자신에게 절대로 상처입힐 수 없는 지점으로 떨어트린다. 단단하게 감긴 눈꺼풀 너머로 펼쳐지는 세계 속에는 기이한 슬픔과 힘이 우글거리는데 이는 아름다운 얼굴 뒤에 ‘좋은 소리’를 낼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하고 무덤가의 곡소리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뱉던 ‘유포니아’의 알 수 없는 힘과 닮아 있다.
<노래하는 자매들>은 <얼굴 뒤 세계를 위한 노래>가 상영되는 3개의 모니터를 기계 내장을 통해 연결하며 하나의 몸속 내부의 존재로 포섭한다. 마치 어머니의 탯줄처럼 서로 연결된 3대의 모니터는 합창하는 코러스 가수처럼 자신의 얼굴-모니터를 통해 돌림노래같이 반복되며 확장하는 시공간을 보여준다. 소음과 꿈을 내뱉는 기계-가수들의 얼굴은 탯줄/내장을 통해 홀로 놓인 영상 설치 구조물과 연결된다. 구조물 속 화면에는 뭔가를 중얼거리는 여성의 입이 재생되는데 마치 가면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입이 뱉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그녀 내부의 세계에서 흐르는 소리만이 그녀를 감싼다.
어두운 방구석에 숨겨져 있는 <춤추는 여자>는 <얼굴 뒤 세계를 위한 노래>의 시공간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 여성의 꿈속 장면 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미지일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앞선 작업에 대한 미미한 단서를 제공하거나 혹은 배신한다. 자신에게 닥칠 혹은 이미 닥쳐진 미래를 앞에 두고 해맑게 웃으며 춤을 추는 여자의 얼굴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폭력과 침입의 상황에서도 결코 깨지지 않을 어떤 견고한 세계와 미스테리한 희망을 유출한다.
박정연은 영상의 특수효과, CGI, 애니메이션 푸티지 등을 주재료로 하여 실재와 이미지 세계 간의 관계성과 이를 기반으로 여성 신체와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시각성의 문제를 탐구해왔다. 근래에는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카메라의 여러 특수 기능과 이와 연계된 디지털 이미지의 특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신화, 괴담, 장르 영화의 문법 등에 접목해 익숙한 감각을 비틀어보거나 이미지와 생산자, 소비자 간의 관계를 감각적 젠더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박정연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학사 과정과 Bauhaus Universität Weimar에서 미디어아트전공 교환학생 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유포니아 또는 얼굴 뒤 세계를 위한 노래》는 그의 첫 개인전으로 이전 주요 이력으로는 제19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퀴어 레인보우 섹션, 단체전 《Frankie》(갤러리 N/A)에 참여 등이 있다.
Credit
연출 및 촬영: 박정연
촬영 보조: 김예솔비
출연: 현호정, 하은빈, 우지안, 김예솔비
음악: CIFIKA
라텍스 조각: 전인
포스터 디자인: 오가영
도움을 주신 분: 김유자, 홍영주
후원: 문화로드맵, 서울시
출처: 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