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경 개인전 : U-Topos sequence

아트스페이스루

2019년 11월 12일 ~ 2019년 12월 9일

U-Topos Sequence 
김향숙(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겸임교수) 

박제경(Park Je-Kyoung)은 오랜 기간 동안 ‘U-Topos’ 시리즈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토리와 조형기법을 모색해왔다. ‘U-Topos’ 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플라톤의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즉, 아직 발견되지 않은 초월성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장소로서 관념의 공간을 의미한다.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을 연결하여 끊길 듯 끊이지 않는 영원성이 강조되어 있는 ‘U-Topos’는 유토피아를 향하는 화가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방식과 같은 의도로 제작된 작업이다. 우아한 여성성과 로맨틱한 장식성이 강조된 레이스(Lace)의 선적 묘사와 섬세하게 구멍 난 레이스의 겹친 선들은 열림과 닫힘, 유혹과 감춤의 동시성과 양면성의 모순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영원한 모순이 내재된 선적인 묘사가 ‘U-Topos’의 본질이다. 

U-Topos 시리즈 초기에는 ‘레이스(Lace) 기법’으로, 최근에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가 되었다.​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 

박제경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를 통해 선적 조형원리를 발견했으며 작업의 방향을 분명하게 할 수 있었다. ‘거미줄 잣기’ 시리즈의 조형적 특징은 유하면서도 파편화 없이 연연히 이어지는 삶의 미로와 같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은 반복되고 겹쳐지고 중첩되며, 선과 선이 얽히고 설키는 틈새로 간간이 속살이 드러난다.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화가의 사유를 정밀하고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속적인 거미줄의 반복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들뢰즈(Deleuze)의 주름이론을 환기시킨다. 들뢰즈의 주름은 서로의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생성 그 자체이다. 박제경의 무정형 거미줄 잣기의 지속성 역시 작가의 자율성과 생명력의 독창적 표현방식으로 선의 흐름으로 얽히는 관계의 조형을 생성하며 작가 고유의 상징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는 평면의 선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구타에(gutta)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돌출된 선묘로 묘사되었다. 구타에는 튜브(tube)형 안료로 짜서 사용해야 하므로 힘의 강약 조절이 요구되는데 표현의 극적인 순간에는 숨을 멈추고, 빠른 손놀림으로 원하는 조형을 구성해야 한다. 그 순간 박제경은 즉흥적인 자아의 몰입을 경험하며 드로잉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시간이 되고 작품과 함께 혼연일체의 온전한 모습으로 환상적인 ‘U-Topos’의 세계에 다다른다. 그리고 묘사된 그 세계는 어디에도 없는 우리들이 꿈꾸고 있는 유토피아 세계이다. 

U-Topos의 변주 

박제경의 캔버스를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거미줄 잣기의 리드미컬한 곡선의 시각적 이미지는 마음의 평화를 주며 시기 질투 다툼과 욕망으로부터 유토피아의 세계로 순화시킨다. 구체적인 스토리를 배제한 풍만하고 다채로운 선의 유희는 유토피아를 항한 손짓하며 비상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향한 조형적 상상력의 완성이다. 작품의 형식은 추상으로 보이지만 찬찬히 관조하면 감추어진 작은 형상들을 찾아 낼 수 있는데 이는 추상에서 나타나는 모호함과 긴장감을 우려하여 여유를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작가의 끊임없는 변주 가운데 하나이다. 유토피아의 세계를 향해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존재감이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없이 많은 상징적인 동물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숨은 보물찾기를 하는 인생과 연계되어 있어 찾아보는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게임과도 같다. 

‘U-Topos’ 시리즈에서 몽환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다채로운 색채는 화가만의 독특성으로 팔레트의 색들을 섞지 않고 본연의 색채를 유지한 채 감상자의 시각에 섞여 보이도록 고안했다. 직접적인 색채의 섞임보다 그러한 빛의 색채는 때로는 현란하게 혼재되어 신비로운 색으로 가득 차게 된다. 감상자들이 보고 있는 다양한 층위로 펼쳐진 환상적인 색채는 작가의 내면이 투사된 ‘혼합된 듯 보이나 섞이지 않은’ 상징적인 색채들의 향연이다. 

U-Topos의 양가성(Ambivalnz) 

박제경의 캔버스를 찬찬히 관조하면 구타에(gutta)의 분명한 선(line)작업 뒤로 흐리게 뭉개진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림자들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선과 함께 혼재되어 불분명함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화가의 불편한 양가적인 심리가 강하게 부각된 것이다. 양가성은 동일한 대상에 상반되는 두가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심리적 작용으로 U-Topos의 추상이 한편으로는 화가로서의 부드럽고 분명한 신념의 선으로 작용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표상하고 있다. 추상이론의 대가인 보링거(W.Worringer)에 의하면 추상은 자연스럽고 고요한 가능성이 깨질 때, 혼돈으로 빠질 때, 혹은 비어있거나 만족을 깨트리거나, 의미 없는 것들이 내면으로 들어올 때 창작이 발생한다. 박제경의 U-Topos추상은 분명한 선적조형에 초점을 맞춘 듯 하지만 혼재된 불확실성의 그림자기법은 내면의 심리적 깨트림을 투영하며 창작의 기대를 암시하고 있다. 예술이 신비로운 필연성을 표현하고자 열망하는 것이라면 박제경의 양가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예술가의 기대효과 이면의 불확실성을 반추하는 창작의 과정임을 예견 할 수 있다. 이는 작업 중 심리적 모순을 경험하며 신비로운 유토피아를 알레고리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표상되어 있고 변화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현시하고 있다.​

박제경의 ‘U-Topos’ 시퀀스는 무한한 작가적 독창성의 충만함으로 현재의 아우라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여전히 미래의 작업이 기대되고 있다.

출처: 아트스페이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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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박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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