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형 개인전: 1종의 물결

예술공간 의식주

2021년 11월 23일 ~ 2021년 12월 5일

# 익숙한 좌표
기록은 내일을 향한다. 내일의 나와 내일의 타인을 위해 오늘의 사람, 사건, 생각을 담는다. 과거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지만 적어도 가장 강렬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선택하여 담아 둘 수 있다. 누구나 유년시절 일정한 표가 그려진 노트에 그림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기는 과거의 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우리에게 기억의 단편을 저장하고 꺼내 볼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날짜와 날씨, 제목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는다. 상대적으로 언어 표현이 부족한 유년시절의 일기에는 하나의 매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과 이야기를 그림과 글, 두 가지 매체를 사용해 자신이 가진 최선의 방법을 사용해 담아낸다. 준형의 작업도 표면적으로는 그림일기와 유사성을 지닌다. X축과 Y축의 틀 안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부여하고 시간에 따른 자신의 물리적 비물리적 경로를 드로잉 한다. 영상편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임라인’과 닮아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편적으로 경험했던 일기, 일종의 에세이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유가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마치 이미지가 텍스트를 흡수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 자신만이 경험한 단 하나의 시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그리고 공간의 한계에서 반복되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지점에 자신의 깃발을 꽂아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나열되는 사적 도상들
화면에 등장하는 기호들은 작가가 만들어 내거나 재생산된 이미지들이다. 그의 생활반경, 아니, 우리 대부분의 생활패턴에서 흔히 표류하는 도상이 나오기도 한다. 미디어와 브랜드처럼 자본의 달콤함으로 대변되는 기호, 혹은, 대중교통의 기호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담겨있는 일기지만,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들이 표류하고 있기에 작가의 작업은 우리의 일상을 대변하기도 한다. 미디어가 발전될수록 우리에게 기다리는 시간은 점차 축소된다. 이것이 자본의 이면일지는 모르지만, 수많은 미디어 플랫폼은 우리가 영화관에 가는 시간을 점차 줄어들게 했으며, 사회의 여러 가지 뉴스거리를 손가락 터치 하나만으로 얻을 수 있게 했다. 물리적 거리가 축소되고 기다림이 사라지는 공간에서 준형은 한 발 더 다가가서 고개를 직접 움직여야만 보이는 것을 그린다. 그리고 그곳에 사적시간이 녹아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바로 어제, 바로 직전의 우리가 보낸 시간의 형태를 돌아보게 한다. 그의 시공간과 함께하는 대중교통, 미디어플랫폼, 다양한 생활패턴을 상징하는 기호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은 이미 오늘의 우리가 많은 것들이 축소되는 효율성의 좌표 위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 보편적인 공간과 개별적인 시간의 사이, 그 어디쯤
기호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일정한 그룹과 문화에서 읽힐 수 있어야 하며, 개인에게만 통용되는 기호는 기호로 역할 할 수 없다. 기호도 언어이며, 정착된 기의로 작용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 담긴 기호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생활패턴에서 발생하는 동선, 혹은 그날 먹은 음식, 기분, 방문한 장소들이 나열된다. 반복되는 시간에 있지만 소소하게 변화되는 공간이 있고, 일정한 공간의 틀에 있지만, 매번 다른 시간이 그려진다. 보편성이라고 하는 넓은 바다에 독립성이라는 잔잔한 바람을 일으켜 누군가의 시공간의 미세한 움직임과 진동, 일종의 물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작품 안에 있는 속도와 리듬이다. 격정적이거나 적막한 분위기, 큰편차의  파고가 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일정한 간격과 담담한 태도로 그려낸 시간의 리듬은 보편과 독립이 충돌되고 교차하는 잔잔한 파고를 만들어낸다.

참여작가: 박준형
글/기획: 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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