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나 개인전 : 적정거리

문화공간양

2018년 7월 3일 ~ 2018년 7월 28일

방향전환 이미지

박한나 작가는 파악되어야 할 의미를 제공하거나 제거한다(뺀다). 작가의 가공은 어떤 대상에 쓰여 있거나 잠재해 있는 이야기를 독해 가능한 증언으로 만들거나, 쉽사리 의미를 통과시키지 않는 순수한 이미지 덩어리로 만든다. 그 가공 안에서 리얼리티는 미디어 이미지로 변환되고, 리얼리티와 이미지는 서로 같으면서 서로 다르게 상이한 방식으로 묶인다. 이 관계 속에서 이미지의 의미들은 철회되고 재형성된다. 그리고 다시 철회된다. 

최근 그의 작업들은 여러 연출기법과 표현방식들이 다양하게 산개되어 있다. 이번 《적정거리》(2018)展에서도 두 개의 영상 이미지들을 병치하거나 알파(Alpha)값을 이용한 단편한 디졸브, 혹은 컴퓨터 조작, 편집연출, 영상들의 중첩 등 여러 시각적, 시간적 조형성과 조작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연출 방식을 보여주는 작가의 방법이 그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관통하는 다채로운 매개들이자 언어들로 체계화될지는 시간이 흘러 좀 더 단단해진 뒤에 두고 볼 일이다. 지금은 그보다 표현적인 것 이전에 전제되는, 그가 촬영한 영상들의 사용방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사용방식 안에서 작동되는 중단(stoppage)과 반복(repetition)의 과정이 만들어내는 의미 산출, 예술실천을 주목한다. 이 텍스트는 이후에 돌아볼 때, 그의 작업 안에서 발견될 한 카테고리에 관한 단서 내지, 파편을 제시하는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적정거리》展을 전후로 하여 주목이 가는 부분은 가공을 전제로 한, 혹은 가공 이전의 영상 이미지들의 서사화나 의미화를 지연시키는 일종의 ‘무딘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 방식이다(물론 의미를 지연화시키는 ‘장치' 안에서는 가공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조작들이다).

작가는 마음에 가거나 특정한 사건 혹은 대상을 우선적으로 찍어 놓는다. 어떤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닌 일종의 자료, 정보, 혹은 습관의 일환처럼. 그리고 자신의 컴퓨터 하드 안에 쌓아 저장해 놓는데, 이 촬영본들은 마치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클립들처럼 저장되어 있고 언제든 사용가능하다. 작가는 촬영본을 과거에 찍은 푸티지(footage)와 같이 들척거리며 서로 간에 관계가 있는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상관없는 씬(scene)들을 새롭게 재조합, 재편집, 재가공하여 몽타주 영상 작업으로 출력한다. 촬영본을 잠시 묵혀 두었다 특정 이미지를 추출하는 과정은 촬영 당시 혹은 영상의 본래 맥락으로부터 특정 이미지를 뽑아내고 다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만으로 촬영할 당시의 맥락들은 자연스레 무마되곤 한다. 작가는 이 촬영본들을 맞대보면서 여러 조합들을 만들어내는데, 선택된 상이한 이미지들은 특정 이미지를 산출하고, 동시에 본래의 의미는 유예되며, 그 이미지의 기술적, 형태적, 미학적 요소는 드러난다. 일종의 내러티브의 힘으로부터 떼어내기가 되는데, 가령 <0/4, ZERO QUARTER>(2017)에서의 푸티지들은 2015년 이태원, 2016년 제주도, 2018년 경기도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서로 떨어진 이미지들을 연결시켜 새로운 몽타주들을 만든다. 재배치의 과정 안에서 각각의 맥락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의 사슬을 구성한다. 이와 동시에 이미지들을 데칼코마니처럼 중첩시키거나, 패턴화시키는 일종의 편집놀이(?)를 병행함으로써 폐가, 철거, 개발 안에서 인식되는 사회적 맥락들을 희석시킨다. 오히려 관람객에게 이미지 상상이라는 의식 상태의 운동성을 부여하며, 영상 안의 네러티브적 읽기가 아닌 영상자체를 가리키는 매체적 접근을 제시한다. <적정거리>(2018)에서도 마찬가지로 제주도와 거제도(대부분이 제주도)에서 각각 촬영한 푸티지들을 새롭게 연결시키고 있다. 2010년도부터 2018년도 사이에 촬영한 각각의 이미지들을 재배치하고 기존 이미지에 존재하지 않는 사운드를 입힌다. 이러한 몽타주 방법론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에 관해 언급한 부분을 떠오르게 한다. “이미지는 과거가 지금-시간과의 불꽃 속에서 모여 성좌(constellation)을 이루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정지 상태의 변증법(dialectics at a standstill)이다.” 작가의 수집과 재배열의 기법은 벤야민적인 의미의 ‘성좌’를 구성하는 과거 자료들의 변증법적 병치와 등가적인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작가는 같은 푸티지들을 다른 작업들에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Saudade>(2015)에 사용된 버스 장면이 작동시키는 정서의 의미는 <적정거리>(2018)에서 스크린이라는 대상으로 전환되었고, <Another way of seeing>(2011)에서의 나무가 <적정거리>에서의 나무를 넘는 ‘피사체’ 그 자체로, <0/4, ZERO QUARTER>에서 편집기법으로 새롭게 구상한 조형물이 <Untitled>에서의 아파트 공사 전경으로 변환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반복은 이미지의 숨어있는 가능성들을 제안한다. 하나는 쓰여 있거나 잠재해 있는 혹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의미들을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영상들의 의미를 산출해 내는 작동기재 혹은 장치를 드러나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과정으로 이 소스들로 하여금 이미지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포획되고 스펙터클로서의 대상으로 가시화되는 작동들을 흐트려 놓는다. 각기 다른 종류의 여러 개의 퍼즐을 한 곳에 쏟아 붓는 격이다. 각각의 완성된 퍼즐들을 상상하기보다는 퍼즐 그 자체를, 혹은 또 다른 과정으로 완성되는 퍼즐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무수히 미리 찍어 놓은 클립들의 이러한 사용 방식은 당시 카메라가 찍은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순전히 ‘소스’ 자체를 지시하는 이미지로서 사용되거나, 새로운 조합으로 말미암아 의미의 방향전환 내지 표류하는 무의미의 의미를 지향한다. 

물론 작가가 동시에 제시하는 명확함 역시 공존한다. 영상 이미지 안에서 작가는 사운드와 텍스트, 컴퓨터 작업과 편집 조작을 이용하여 어떤 것의 이미지가 되기 위해 선명하고도 명확하게 이미지의 의미작용을 구현화 시킨다. 흥미롭게 보게 되는 부분은 영상작업에서 느끼는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네러티브의 작동과 수동적이고 중지된 이미지의 작동, 서사 연쇄를 구축하거나 관계없는 관계로서 구축하는 양가적인 표현체제들이 혼성적으로 공존하며 보여지고 인식되는 영상 이미지의 독해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관람객들은 촬영한 대상을 보는 것과 스크린을 통해 나오는 '영상매체' 내지 촬영자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포괄해서 인지하게 하는 어떤 장치들을 파악해가는 과정 속에서, 이미지 자체 혹은 이미지 내의 새로운 의미의 벡터(방향성)들을 발견해 나간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작업뿐이 아닌 공사현장을 수집한 사진들과 설치 작업을 같이 전시한다. 작가는 어떤 도덕적 가치나 사회적, 문화적 코드로 치환된 이미지의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이를 중지하고 반복적으로 재배치하면서 이미지가 만드는 본래 목적에 귀속되지 않으려 한다. 이는 단일의 작품뿐만이 아닌, 작품들과의 사이관계로 말미암아 작품 간의 몽타주적 읽기로써 전시가 어떤 특정한 주제로 단편적으로 묶이지 않게끔 하는 기획으로 확장하고 있다. 작업 안에서 이미지들이 이미지 이후의 읽기를 고려하듯이, 전시공간 안에서의 작업 이후의 읽기를 제안하려 한다. 최형우 (독립큐레이터)

기획: 문화공간 양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재단

출처: 문화공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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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박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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