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유령 G

레이프로젝트 서울

2024년 8월 23일 ~ 2024년 9월 6일

전시 "베테랑 유령 G(중략)”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는 유령의 존재를 탐구한다. 노혜지, 신동민, 이지구는 유령을 과거의 잔여물이나 시공간의 틈새, 시스템의 오류, 미결의 순간 등 사회적, 문화적인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흔적으로 다루고 있다. 오랫동안 ‘유령’의 등장이 수없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하나의 고정된 형상을 그려내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세 작가는 쌓아 올리지만 구축되 지 않는 것들, 구축되지 않기에 사라지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곁을 내주고, 그것을 감지하는 데에 집중한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이들은 유령이 각자의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유영하는지, 유령과 유령이 아닌 것의 경계는 무엇인지, 유령은 언제 태어나고 왜 사라지는지 등 평소 가지고 있었던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의문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유령의 시야로 세계를 반투명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노혜지는 디지털 도구를 다루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예측 불가능한 오류와 그에 대한 관심을 영상,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구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매 순간 함께 해온 디지털 도구의 작동 원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매끄럽게 다루는 본인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고 그 원인에 주목한다. 신작 해변 위 깃털과 뼈로 보이는 새의 일부, 깃털의 색은 검은색과 갈색(2024)은 오래전 찍어두고 잊어버린 사진을 발견한 것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촬영할 당시의 기억과 동기가 사라져 낯설게 변해버린 이미지에 흥미를 느끼고 표백된 이미지의 원형이 과연 유효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작가는 이미지의 모든 정보를 0과 1의 이진수 형태로 전환시킨다. 얼핏 디지털 도구의 연산 과정과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134,512의 이진수를 종이에 하나하나 물리적으로 타공함으로써 디지털 도구가 포착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함께 기록한다. 작가는 이처럼 다른 매체로 전환하는 수행적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잔여물의 정체를 감지하고 그 안에서 숨겨진 유령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신동민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것,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들, 미완의 그리기와 무의식의 순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그는 직관적으로 써 내려간 문장으로부터 발견한 유령의 흔적을 스스로의 몸을 탈것 삼아 추적한다. 전시의 시발점이 된 <내 몸의 소리없는 모습에 눈물이 흘렀 다>(2023)는 유령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순간, 유령의 윤곽과 잔재를 상상하며 그린 목탄 드로잉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유령을 그려내기 위해 상황에 맞추어 재료와 태도를 바꾸고 여러 검정(목탄 드로잉, 흑연으로 그린 벽화, 문장, 점토)으로 미묘한 층 위를 구성한다. 작업들은 희미하게 간섭하고 때로는 지지하며 서로가 미완의 상태로 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지구는 틈새에서 발생하는 일탈을 원단에 바느질로 기록한다. 절단되고 봉합된 형상, 수 많은 미세한 자국들, 장면들을 잇는 미세한 점선, 소재를 넘나들며 뒤엉키는 작업 방식은 현실과 꿈, 실재와 가상, 다른 차원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기존의 세계를 확장하고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수 많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완성한 4m에 달하는 대형 패브릭 작업 <둥지가 있다면, 유령의 일을 하겠어>(2024)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말끔해 보이는 현실의 풍경 이면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건의 면면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지구는 특유의 느리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건들을 꼼꼼하게 응시하고 재봉틀로 천천히 새겨나간다. 이렇게 연결한 여러 겹의 패브릭 조각 사이 사이에는 작가가 감춰둔 이야기와 유령의 온기들로 가득하다.

전시는 유령에 대한 개념적 탐구의 여정이 아닌 유령이라는 원형에 대한 노혜지, 신동민, 이지구의 울퉁불퉁한 시도와 오역을 담고있다. 세 작가는 서로가 가진 매체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익숙함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세계의 부분들을 재조명하고 유령이 각자의 내부에 어떠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지 가늠해본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것들을 포개어 겹치다 보면 손에 쥘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던 유령의 끝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신동민


참여작가: 노혜지, 신동민, 이지구

출처: 레이프로젝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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