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얼굴과 재-현

미디어극장 아이공

2019년 4월 18일 ~ 2019년 5월 10일

불가능한 얼굴과 재-현

재현의 시각장에는 재현될 수 없는 재현이 불가능한 얼굴이 있다. 재현의 시각장은 재현 가능한 권력자들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체의 죽음(The death of subject)’을 논의하며 재현이 불가능했던 수많은 ‘얼굴’에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재현될 수 없는 ‘사람들’, ‘유령화’된 사람들이 재현의 시각장 너머에 존재한다. 

안정윤, 김혜이는 ‘재현의 시각장(The visual field of representation)’ 너머에서 풍문으로 읽혀지는 ‘불가능한 얼굴’을 시각장에 올려놓는다. 푸코는 권력체계에 의해 이성과 진리라는 장치로 재현의 시각장에 놓일 수 있는 몸과 그렇게 할 수 없는 몸으로 분리되고 그렇지 못한 몸은 경계너머 혐오의 대상으로, 또는 존재의 가치를 전혀 알 수 없는 무화(無化)의 몸으로 남아있음을 제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어화되지 못한 몸’은 주체 중심의 오염된 언어로 재현의 시각장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미학적 재-현(re-presentation)에서 그 가능성이 있음을 제기한다. 권력체계에 의해 재현의 시각장이 오염되어있다면, 기존의 재현성과 다른 ‘미학적 재-현’에서 그 방법론을 모색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현의 시각장에서 재현 체계에 균열을 내고 블가능한 몸을 가능한 몸으로 출현시키는 데는 두 가지의 제약이 따른다. 기존의 재현 체계, 즉 언어 체계에서 벗어난 미학적 재-현이 과연 읽혀질 수 있는가. 다른 한 가지는 새로운 재-현이 읽혀졌을 때 재현의 시각장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스피박은 불가능한 얼굴은 실패를 전제한 채 미학적 재-현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불확정성을 지닌 얼굴임을 알면서 끊임없이 시도해야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시도는 ‘윤리성’을 근거로 제시되어야 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논의에서 윤리적 재현은 모든 얼굴이 불확정성을 지녔다는 물음에서부터 접근한다. 생존자의 얼굴, 피해자의 얼굴, 가해자의 얼굴로 확정된 얼굴은 사실은 불확정성을 지닌 수많은 얼굴에서 한 가지로 표상화된 얼굴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윤리적 재현은 재현될 수 없는 ‘얼굴’에 대한 물음이다. 

안정윤, 김혜이는 표상화된 ‘얼굴’없이 재-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 흔적들(traces)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흔적의 기록이 역사화되지 못한 ‘얼굴’의 역사가 되고 기록될 수 있음을 제기한다. 흔적은 재현의 시각장이 가진 얼굴의 기표성/대표성에 대한 확정성을 해체한다. 안정윤의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는 ‘현숙’의 시선으로 본 흔적들을 관객과 공유하며,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에서는 하늘로 뭉게뭉게 떠오르는 검은 구름을 통해 ‘불가능한 얼굴’을 한 애도의 대상에 다가간다. 김혜이의 <이야기의 얼굴>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학적 지표화를 시도한다. 아무도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의 ‘동공, 상반신의 움직임, 심박수, 피부전도’ 등 자잘한 몸짓들을 미학적으로 지표화하여 개체화한다. 김혜이는 불가능한 얼굴의 목소리와 몸짓을 세상에서 하나밖에 생성될 수 없는 그림으로 완성한다. 이 전시는 안정윤과 김혜이의 흔적의 기록을 통해 우리의 ‘얼굴’에 대해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 김장연호 (미디어극장 아이공 디렉터)


작품소개

안정윤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어요>
video, 2018, 20min, HD, color, sound
미선은 12년 전 동생 현숙을 자살사고로 잃었다. 정윤과 미선은 유품이 된 현숙의 사진들을 함께 보며 대화한다. 정윤은 현숙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보다 현숙의 시선이 담긴 사물과 사람들의 사진에 관심이 간다. 현숙의 시선 너머에는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있었을까, 왜 저 순간을 붙잡고 싶었을까.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video, 2017, 19min 24sec, HD, color, sound
희수의 취미는 영화 포스터 수집이다. 그는 작가에게 포스터를 모으는 방법과 기준, 포스터 속에 담긴 이미지를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한편, 자신의 취미를 쓸데없는 짓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모순된 태도에는 누이의 죽음이 얽혀있다.

김혜이

<이야기의 얼굴>
two channel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8
이 작품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려는 시도이며, 인터랙션 시스템을 통해 화자의 감정 상태가 반영된 이야기의 초상을 그려보려는 실험이다.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 화자에게 나타나는 동공의 떨림, 상반신의 움직임, 심박수와 피부전도도 등의 신체변화는 여러가지 센서를 통해 수집되고, 이 데이터들은 미리 짜여진 코드에 의해 실시간으로 시각화된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는 채널1에 재생된다. 채널2는 인터뷰이가 직접 고르고 촬영한 영상, 자료사진, 글, 그림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화자의 존재는 얼굴이 제외된 세 가지 정보(보이스 – 채널1:인터랙션영상 – 채널2:화자가 고르고 촬영한 이미지)의 구조 안에서 증명된다. 이번 전시에는 조현병 환자 아홉 명과 환자 가족 한 명의 인터뷰가 담겼으며, 관객은 나열된 열장의 이야기의 얼굴을 보고 선택하여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 약력

안정윤 Jeongyoon Ahn (1971~)은 죽음과 대면한 이들을 만난다. 다가오는 죽음과 이미 일어난 죽음,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 무엇으로 그려지고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 대화하고 생각하고 자신의 문법으로 재구성하는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공화국찬가(2009)>는 2010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상영,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신진작가상을 수상했다. <구경꾼(2016)>은 2016년 서울국제실험영화제 Korean EXiS Award 수상, 한국영상자료원 우수독립영화수집사업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김혜이 Hei Kim (1988~)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만들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고 듣고 싶어서 작업을 한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것, 외부에서 오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의 작업을 주로 해왔다. 현재는 인터렉티브/미디어아트로 작업 영역을 확장시켜가는 중이다. 이야기와 이미지의 관계, 현실세계에서 카메라를 통과해 만들어진 이미지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가상에서 생성되는 이미지 사이의 괴리와 상호작용에 대해 고민한다. 2018년에 개인전 <이야기의 얼굴> PlanB Project Space/Seoul와 단체전 <Image, Soundm Play> Space Can/ Seoul 의 전시에 참여했다.


매칭토크
2018년 5월 3일(금) 오후 6시 30분
이선영(미술평론가), 안정윤, 김혜이

주최: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주관: 미디어극장 아이공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출처: 미디어극장 아이공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안정윤
  • 김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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