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 스페셜 2021: 감정의 지도 Dureraum Summer Special 2021 : Map of the Emotion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2021년 8월 3일 ~ 2021년 9월 2일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감정이 아주 단순해진 것을 느낍니다. 여름 여행인 ‘서머 스페셜 2021’은 ‘감정의 지도’라는 제목으로 꾸려 봤습니다. 영화는 기차가 달려오고 도착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놀람과 흥분, 두려움과 공포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기들이 밥을 먹다 서로 다투는 장면과 한창 물을 뿌리는 정원사의 호스를 밟고 있는 소년의 개구진 미소와 눈 오는 날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멀리서 자전거가 달려오다 미끄러지는 장면에선 슬며시 웃게 됩니다. 

‘감정의 지도’는 희로애락만으로 담을 수 없는, 우리가 모르는 새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 길이 생겨나고야마는, 세미한 정서가 켜켜이 쌓여 가는 영화들을 모았습니다. 반짝이고 퇴색되고 떠돌다 이내 사라지는 감정과 정서가 깃든 시간을 모아 본들 영화의 길잡이가 되어 줄 지도가 만들어지진 않겠지만, 일단 첫발을 떼려고 합니다. 

멜로드라마에는 상실의 순간에 흐르는 빛나는 눈물 한 방울과 어찌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앓는 자의 슬픔과 고통과 한숨이 고여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1936)는 폐허를 딛고 일어나 노래를 부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골든 보이>(1939)는 바이올린과 권투, 명성과 돈, 사랑 앞에서 길을 찾으려는 청년과 노련하고 성숙한 여성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향락의 길>(1940)에선 매춘과 알코올 중독이 일상이 된 소녀가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뮤리엘 박스의 <길모퉁이>(1953)는 여성 경찰 세 명의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를 다큐멘터리적인 터치로 보여 줍니다. 박스의 세심한 시선에 담긴 당시 영국인의 삶에서 우리의 일상과 생성되고 소멸하는 감정들을 길어 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뮤지컬은 대공황을 겪는 미국인들에게 웃음과 기쁨과 희망을 건네주었습니다. 걸출한 서사극과 성극의 대가 세실 B. 드밀이 만든 <마담 사탄>(1930)은 그의 주특기가 반영된 괴작(당시엔 실패작)입니다. 화려하지만 과장된 볼거리와 군무의 진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950년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정교하게 세공했던 더글라스 서크의 <사랑으로의 초대>(1949)는 그의 멜로드라마 이전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커플은 언제나 우아하고 유려합니다. <쾌활한 이혼녀>(1934)에서 그들이 원을 그리며 미끄러지듯 움직일 때 우리는 아름다움의 일부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발랄하고 사랑스런 춤과 노래는 <내가 사랑한 멜빌>(1953)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생기발랄>(1958)은 귀여운 세 할머니만으로도 재미있고 포근합니다. 여기에 냉전 시기라서 일어난 사건과 영국식 유머와 노래가 더해지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자 너무 재미있어 웃음이 멈추지 않는 코미디를 보고 싶어졌습니다. <미녀와 교수>(1941), <레이디킬러>(1955)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가 하워드 혹스와 영국 코미디의 산실 일링 스튜디오라는 이름만으로 마음이 설렙니다. <뛰지 말고 걸어라>(1966)는 1964년 도쿄 올림픽 기간에 일어난 소동을 담고 있습니다. 우아한 제스처와 걸음걸이, 능청스런 표정과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지닌 캐리 그랜트는 마지막 출연작에서도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서부극은 다양한 풍광과 지형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르입니다. 우리는 적막한 사막과 험난한 산이나 이제 막 생성되는 마을에서 갈등하고 투쟁하고 토론하고 때론 사랑에 빠지는 인물들을 보게 됩니다. 동부에서 온 사나이의 서부 정착기인 <거대한 서부>(1958)와 말론 브란도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애꾸눈 잭>(1961),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의 시나리오를 써서 일약 스타가 된 로버트 벤튼의 데뷔작 <배드 컴퍼니>(1972)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제러마이아 존슨>(1972)은 <미녀와 교수>와 더불어 언어의 의미와 소통의 가능성에 대해 사고하도록 인도합니다. 아울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환대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이라면 언제든 서부의 숨결과 서부이기에 가능한 정서의 반응을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박인호

상영작(21편)

마담 사탄 (1930, 세실 B. 드밀)
쾌활한 이혼녀 (1934, 마크 샌드리치)
샌프란시스코 (1936, W. S. 반 다이크)
스텔라 댈러스 (1937, 킹 비더)
골든 보이 (1939, 루벤 마물리언)
코미디를 위한 시간은 없어 (1940, 윌리엄 케일리)
향락의 길 (1940, 그레고리 라 카바)
미녀와 교수 (1941, 하워드 혹스)
옥스보우 사건 (1943, 윌리엄 A. 웰먼)
유령과 뮤어 부인 (1947, 조셉 L. 맨케비츠)
사랑으로의 초대 (1949, 더글라스 서크)
분노의 강 (1952, 앤서니 만)
내가 사랑한 멜빈 (1953, 돈 와이스)
길모퉁이 (1953, 뮤리엘 박스) 
레이디킬러 (1955, 알렉산더 맥켄드릭)
생기발랄 (1958, 시릴 프랑켈)
거대한 서부 (1958, 윌리엄 와일러)
애꾸눈 잭 (1961, 말론 브란도)
뛰지 말고 걸어라 (1966, 찰스 워터스)
배드 컴퍼니 (1972, 로버트 벤튼)
제러마이아 존슨 (1972, 시드니 폴락)


출처: 영화의전당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리지아 파페 개인전

2024년 3월 22일 ~ 2024년 5월 25일

fe,yi

2024년 3월 26일 ~ 2024년 4월 23일

MIE OLISE KJÆRGAARD: GAMECHANGER

2024년 3월 22일 ~ 2024년 5월 11일

이혜승 개인전: 머무는 듯 흐르는 Still in Flux>

2024년 3월 15일 ~ 2024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