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 스페셜 2025: 뉴 멕시칸 시네마와 이란 영화 걸작선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2025년 8월 7일 ~ 2025년 8월 27일

2025년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의 ‘서머 스페셜’은 뉴 멕시칸 시네마와 이란 뉴 웨이브의 전설이 된 거장들의 명작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환상과 잔혹성의 미학, 격정적인 드라마로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매직 리얼리즘. 시적인 영상, 동화 같은 서사로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지우는 네오리얼리즘.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시대정신, 예술 운동이라 여겼던 뉴 웨이브가 지구의 대척점에 서 있는 멕시칸 시네마와 이란 시네마에서는 아직도 현재형입니다. 침략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에서, 종교와 정치가 사람들의 일상을 억압하는 곳에서 여전히 “새로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탐욕과 사회적 부조리, 정치적 부패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고, 참혹한 현실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며 세계 어느 지역 영화보다 뛰어난 예술적 영감과 능수능란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합니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가 4K로 복원되어 25년 만에 칸 클래식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본 <아모레스 페로스>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기다렸던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며 이냐리투 감독은 칸이 배출한 신인 감독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귀국길에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심플 엑시던트>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처럼 1995년 칸 영화제에서 <하얀 풍선>으로 글로벌 데뷔를 한 파나히 감독의 새로운 영상 미학과 강해진 저항 의식, 용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시작되는 이란 네오리얼리즘과 뉴 웨이브 작품들, 그리고 펠리페 카잘스의 <카노아: 부끄러운 기억>과 멕시칸 시네마의 쓰리 아미고의 수작들, 동시대 감독들의 작품을 부산에서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커졌습니다.

뉴 멕시칸 시네마의 쓰리 아미고와 매직 리얼리즘

‘멕시칸 쓰리 아미고’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를 말합니다. 세 감독은 공동 작업으로 오랜 우정을 쌓고 할리우드에서 거둔 대중적 성공과 화려한 영화제 수상 연보로 뉴 멕시칸 시네마를 이끌었습니다. 루이스 부뉴엘과 더불어 전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인 펠리페 카잘스가 만든 <카노아: 부끄러운 기억>은 정치적 비판으로서 멕시칸 네오리얼리즘의 전통을 세우며 이전 멕시코에서는 영화가 할 수 없었던 사회적 저항을 보여 주었습니다. 델 토로는 <카노아>를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만나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칭송했습니다. 쓰리 아미고의 작품 세계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 과거의 기억을 현재와 미래로 연결합니다. 델 토로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호러 <크로노스>와 고딕 스릴러 <악마의 등뼈>는 뛰어난 장르적 변주로, 스페인 내전이 남긴 역사적 기억, 어른들의 탐욕에 희생되는 아이들, 악몽과 신화를 차용하는 초현실주의적 멕시칸 매직 리얼리즘의 진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은 2027년의 런던, 아이들이 사라진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액션 스릴러로, 기적에 대한 은유, 종교적 상징성이 <로마>에서 만개하는 감독 특유의 네오리얼리즘과 매직 리얼리즘이 융화된 재현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2010년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이냐리투 감독의 <비우티풀>은 바르셀로나에 모여든 글로벌 ‘불법’ 이주 노동자들, 죽어 가면서도 아이들을 돌보는 아버지, 가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 겪는 잔인한 현실을 그린 매직 리얼리즘계 작품입니다.

이들과 결이 다른 알폰소 아라우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대표적인 멕시칸 매직 리얼리즘 영화로, 로맨틱 드라마, 음식 영화의 정수입니다.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초월적 영화 미학의 선구자들을 잇는 대표적 작가로 소개되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하폰>은 슬로 시네마입니다. 슬로 시네마는 롱 테이크와 최소한의 서사, 대사보다는 정적, 느린 시간 흐름을 특징으로 합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와 <클로즈업>, 그리고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차이 밍량, 라브 디아즈, 벨라 타르 같은 감독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하폰>은 광활한 풍경과 자연의 소리를 활용하여 존재의 본질과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사 로페즈 감독의 <호랑이는 겁이 없지>는 마약 카르텔에 엄마를 잃은 한 소녀와 친구들이 죽음과 폭력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매직 리얼리즘 범죄 드라마입니다.

시네필을 위한 이란 영화의 보석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스스로를 국경에 갇히지 않는 예술가, “영화의 시민, citizen of cinema”이라고 했습니다. 이란 영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관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작품 속 동심은 사회를 보는 창이고, 길은 관객들을 후미진 곳으로 이끌어 상처받고 버려진 아이들에게 말을 걸게 합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의 주인공은 화면을 구비구비 가로지르는 산길을 따라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온종일 쫓아다니는 소년입니다. <클로즈업>은 한 남자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사칭해 일어나는 범죄 사건의 실제 재판 상황부터 석방되는 과정에 픽션을 더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흥미로운 조합입니다. 도심의 길과 오토바이가 등장합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이국적인 장례식을 촬영하기 위해 외딴 마을에 도착한 베흐자드가 지프를 타고 달리는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 아이러니한 결말을 맞는 주인공의 여정을 화면에 가득 담습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가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사람들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한다면, 여동생과 신발을 나눠 신어야 하는 소년 알리의 상처받은 동심을 그린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시각 장애아 코르시드가 월세를 못 내는 어머니를 돕고, 전쟁으로 러시아에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모습을 담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고요>는 이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합니다. 하지만 은유와 비유, 상징으로 숨긴 사회 비판이 정부의 검열을 피하지 못해 상영 금지가 되기도 합니다. 

파나히 감독 역시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강렬하게 저항했습니다. 키아로스타미가 각본을 쓴 <하얀 풍선>을 시작으로 <거울>과 <세 개의 얼굴들>은 현실 속의 소녀, 여성이 경험하는 가부장주의적 질서, 사회적 부조리를 드러내며 영화와 정치의 경계를 허뭅니다. 정부는 파나히 감독의 작품 상영 및 제작은 이란 사회의 안전과 이슬람 문화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압수, 금지하고, 가택 연금과 구금으로 국내에 묶어 두려고 했지만, 파나히 감독은 숨어서 만든 작품을 쉬지 않고 해외 영화제에 출품했습니다. 아들인 파나흐 파나히 감독의 <힛 더 로드>에도 그 저항 의식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어바웃 엘리>와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보다 노골적으로 가부장 중심의 이란 사회가 묵인하는 남성 폭력, 그 희생자인 여성을 그린 가족 드라마로, 파르하디 감독은 이란 뉴 시네마의 기수가 되어 글로벌 예술 영화의 정점으로 나아갑니다.

동심의 스크린과 공동체적 영상 미학

뉴 멕시칸 시네마와 이란 영화 걸작선은 지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대척점에 선 예술가들의 다르면서도 이어지는 스타일과 철학을 보여 줍니다. 동심의 스크린은 이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부조리한 현실과 억압적인 정치를 시적이고 철학적인 내면 탐구로 몽환적이고 격렬한 삶의 현장으로 그리며, 정치적 검열을 피해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공동체적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들입니다. 그 뛰어난 영상과 놀라운 이야기꾼들이 전하는 깊은 감동을 다시 한번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이향진 Hyangjin Lee

출처: 영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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