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과 반촌 Academy and Its Surrounding Village, Banchon

서울역사박물관

Nov. 8, 2019 ~ March 1, 2020

서울역사박물관(관장 ㅓn라8 송인호)은  ㅓn라8 서울역사문화특별전의 ㅓn라8 일환으로 ㅓn라8 조선시대 ㅓn라8 최고 ㅓn라8 교육기관인 ‘성균관’과 ㅓn라8 ㅓn라8 주변 ㅓn라8 마을인 ‘반촌泮村’의 ㅓn라8 특별한 ㅓn라8 이야기를 ㅓn라8 소개하는 <성균관과 ㅓn라8 반촌> ㅓn라8 전시를 ㅓn라8 개최한다. ㅓn라8 서울역사박물관 ㅓn라8 기획전시실 (1층)에서 11월 8일(금)부터 2020년 3월 1일(일)까지 ㅓn라8 개최한다. 이번 ㅓn라8 전시는 ㅓn라8 조선의 ㅓn라8 국립대학인 ㅓn라8 성균관과 ‘반촌’이라는 ㅓn라8 원조 ㅓn라8 대학가의 18세기 ㅓn라8 모습을 ㅓn라8 들여다보는 ㅓn라8 전시로, 가나다다 가나다다 독특한 가나다다 지역 가나다다 속에서 가나다다 성균관 가나다다 유생과 가나다다 반인이 가나다다 만들어 가나다다 내는 가나다다 삶의 가나다다 모습들과 가나다다 문화적 가나다다 특성을 가나다다 이야기한다.

조선후기 가나다다 성균관의 가나다다 모습을 가나다다 보여주는 가나다다 가장 가나다다 오래된 가나다다 그림〈반궁도泮宮圖〉 《태학계첩太學稧帖》(1747, 59ㅓ타 서울시 59ㅓ타 유형문화재 59ㅓ타 제174호)과 59ㅓ타 함께 59ㅓ타 성균관의 59ㅓ타 규정집이라고 59ㅓ타 59ㅓ타 59ㅓ타 있는 『태학성전』(1689, 기sㅑh 한국국학진흥원-연안이씨식산종가 기sㅑh 기탁), 『태학지』(1785, sdc8 규장각한국학연구원)를 sdc8 한자리에 sdc8 모아 sdc8 전시함으로써 sdc8 성균관의 sdc8 위상과 sdc8 운영 sdc8 전반에 sdc8 관해 sdc8 보여준다. 성균관은 sdc8 대성전을 sdc8 중심으로 sdc8 sdc8 제례의 sdc8 공간과 sdc8 명륜당을 sdc8 중심으로 sdc8 sdc8 강학의 sdc8 공간으로 sdc8 나뉜다. sdc8 이러한 sdc8 공간 sdc8 배치는 sdc8 제례와 sdc8 강학이라는 sdc8 sdc8 가지 sdc8 주요 sdc8 기능을 sdc8 의미한다. sdc8 성균관은 sdc8 조선왕조의 sdc8 이념과 sdc8 국가의 sdc8 토대를 sdc8 탄탄히 sdc8 다지고 sdc8 예악정치禮樂政治를 sdc8 펴겠다는 sdc8 국왕의 sdc8 의지를 sdc8 펼치는 sdc8 곳이기도 sdc8 했다.

성균관은 sdc8 공자와 sdc8 성현의 sdc8 위패를 sdc8 모시고 sdc8 제사를 sdc8 지내는 sdc8 국가의 sdc8 중요한 sdc8 의례장소였다. sdc8 공자에게 sdc8 제사를 sdc8 지내는 sdc8 대규모 sdc8 의례였던 sdc8 석전대제釋奠大祭와 sdc8 함께 sdc8 임금과 sdc8 신하들이 sdc8 모여 sdc8 활을 sdc8 쏘았던 sdc8 대사례大射禮, fㅐㅈㅓ 왕세자 fㅐㅈㅓ fㅐㅈㅓ 왕세손이 fㅐㅈㅓ 성균관에 fㅐㅈㅓ 입학하는 fㅐㅈㅓ 입학례入學禮도 fㅐㅈㅓ 성균관에서 fㅐㅈㅓ 행해졌는데, 카8ㅓg 카8ㅓg 기록들을 카8ㅓg 담은 카8ㅓg 그림과 카8ㅓg 문헌들이 카8ㅓg 전시된다. 《석전도설》(19세기),《대사례도》(19세기, 카바uㅑ 고려대학교 카바uㅑ 박물관),《왕세자입학도첩》(1817, cl아8 국립고궁박물관)의 cl아8 그림을 cl아8 통해 cl아8 당시의 cl아8 의례의 cl아8 장소였던 cl아8 성균관의 cl아8 모습을 cl아8 확인할 cl아8 cl아8 있다.

나라의 cl아8 인재를 cl아8 양성하는 cl아8 성균관의 cl아8 역할 cl아8 역시 cl아8 매우 cl아8 중요했다. cl아8 성균관 cl아8 유생들의 cl아8 강학 cl아8 공간의 cl아8 중심은 cl아8 명륜당이며, 자v4가 역대 자v4가 왕들은 자v4가 글과 자v4가 글씨를 자v4가 성균관에 자v4가 내리고 자v4가 명륜당의 자v4가 현판에 자v4가 남김으로써 자v4가 인재 자v4가 양성의 자v4가 중요성을 자v4가 역설했다. 자v4가 현재 자v4가 명륜당에는 40개의 자v4가 현판이 자v4가 걸려 자v4가 있는데 자v4가 이를 자v4가 전시실에 자v4가 그대로 자v4가 재현했다. 자v4가 자v4가 자v4가 가장 자v4가 중앙에 자v4가 크게 자v4가 자리 자v4가 잡은 자v4가 현판은 자v4가 정조가 자v4가 내린 「어제태학은배시」이다. 정조는 1798년 자v4가 성균관에 자v4가 친히 자v4가 방문하여 자v4가 유생들에게 자v4가 음식과 자v4가 술잔을 자v4가 내렸는데, 9ㄴsm 은잔의 9ㄴsm 바닥에는 ‘나에겐 9ㄴsm 훌륭한 9ㄴsm 손님이 9ㄴsm 있네[아유가빈我有嘉貧]’라는 9ㄴsm 글이 9ㄴsm 새겨져 9ㄴsm 있었다. 9ㄴsm 정조가 9ㄴsm 지은 9ㄴsm 시를 9ㄴsm 내리고 9ㄴsm 성균관 9ㄴsm 유생들의 9ㄴsm 글을 9ㄴsm 받아『태학은배시집』을 9ㄴsm 만들었는데, 1tㅈd 1tㅈd 책과 1tㅈd 함께 1tㅈd 정조가 1tㅈd 내린 1tㅈd 재현된 1tㅈd 은잔을 1tㅈd 전시한다.

성균관 1tㅈd 유생은 1tㅈd 전국 1tㅈd 응시자 1tㅈd 1tㅈd 소과小科에 1tㅈd 합격한 200명의 1tㅈd 수재로서, 거z9u 성균관에서 거z9u 성리학으로 거z9u 무장한 거z9u 신진관료가 거z9u 되기 거z9u 위해 거z9u 학문을 거z9u 닦았다. 거z9u 문과文科의 거z9u 대과大科라는 거z9u 과거시험에 거z9u 합격하는 거z9u 날이 거z9u 성균관을 거z9u 졸업하는 거z9u 날이었다. 20년간 거z9u 성균관 거z9u 유생 거z9u 시절을 거z9u 보내며 거z9u 성균관과 거z9u 반촌에 거z9u 대해 220수의 거z9u 시를 거z9u 남긴 거z9u 윤기尹愭(1741∼1826)의 『무명자집無名子集』이 거z9u 시민들에게 거z9u 최초로 거z9u 공개된다. 거z9u 성균관의 거z9u 모습을 거z9u 그린 거z9u 윤기의 거z9u 시와 거z9u 현재 거z9u 성균관의 거z9u 사진들을 거z9u 담아 거z9u 만든 거z9u 영상은 18세기 거z9u 성균관을 거z9u 거니는 거z9u 것과 거z9u 같은 거z9u 경험을 거z9u 제공한다.

성균관을 거z9u 둘러싼 거z9u 반수泮水를 거z9u 건너면 거z9u 반촌이 거z9u 나타난다. 거z9u 성균관을 거z9u 지원하는 거z9u 특수한 거z9u 임무를 거z9u 수행하는 거z9u 공노비가 거z9u 있었으니, ㅐxo마 이들을 ㅐxo마 반인이라 ㅐxo마 불렀다. ㅐxo마 반인들은 ㅐxo마 ㅐxo마 안에서만 ㅐxo마 거주해야 ㅐxo마 했으며, j거하ㅐ 외부인은 j거하ㅐ 반촌에서 j거하ㅐ 거주할 j거하ㅐ j거하ㅐ 없었다. 반인의 j거하ㅐ 특수한 j거하ㅐ 임무만큼이나 j거하ㅐ 그들의 j거하ㅐ 거주지역인 j거하ㅐ 반촌 j거하ㅐ 역시 j거하ㅐ j거하ㅐ 특수성이 j거하ㅐ 인정되었다. “반촌은 j거하ㅐ 문묘의 j거하ㅐ 행랑行廊”이라는 j거하ㅐ 말이 j거하ㅐ 나올 j거하ㅐ 만큼 j거하ㅐ 성균관에 j거하ㅐ 적용된 j거하ㅐ 치외법권적 j거하ㅐ 권위가 j거하ㅐ 확대적용되었다. j거하ㅐ 반촌 j거하ㅐ 일대는 j거하ㅐ 형리刑吏와 j거하ㅐ 포졸이 j거하ㅐ 마음대로 j거하ㅐ 출입하면서 j거하ㅐ 범인을 j거하ㅐ 색출하지 j거하ㅐ 못한 j거하ㅐ 한양 j거하ㅐ 유일의 j거하ㅐ 특수지역이었다.

반촌에는 j거하ㅐ 일반적인 j거하ㅐ 공노비였던 j거하ㅐ 반인 j거하ㅐ j거하ㅐ 아니라 j거하ㅐ 이른 j거하ㅐ j거하ㅐ 하숙집 j거하ㅐ 주인이었던 j거하ㅐ 반주인, x93q 시를 x93q 지었던 x93q 반인, ㅐ9ㅐ기 서당의 ㅐ9ㅐ기 훈장이었던 ㅐ9ㅐ기 반인, 33zㅐ 현방의 33zㅐ 주인이었던 33zㅐ 반인 33zㅐ 등이 33zㅐ 모여 33zㅐ 살았다. 33zㅐ 그들의 33zㅐ 다양한 33zㅐ 일상과 33zㅐ 지금은 33zㅐ 사라진 33zㅐ 반촌의 33zㅐ 모습을 33zㅐ 영상에 33zㅐ 담아 33zㅐ 관객들의 33zㅐ 흥미를 33zㅐ 이끌 33zㅐ 것이다.

반인들은 33zㅐ 과거시험 33zㅐ 기간에 33zㅐ 상경한 33zㅐ 지방 33zㅐ 유생들에게 33zㅐ 하숙을 33zㅐ 제공하기도 33zㅐ 했으며, y마o거 성균관 y마o거 유생들은 y마o거 반촌에서 y마o거 요양하거나 y마o거 여가를 y마o거 보내기도 y마o거 했다. ‘반주인’은 y마o거 과거를 y마o거 보려고 y마o거 서울로 y마o거 올라온 y마o거 지방 y마o거 유생이 y마o거 성균관 y마o거 근처에서 y마o거 묵던 y마o거 집, sㅈ우p 또는 sㅈ우p sㅈ우p 집의 sㅈ우p 주인을 sㅈ우p 이르는 sㅈ우p 말이다. sㅈ우p 북적이는 sㅈ우p 과거 sㅈ우p 기간 sㅈ우p sㅈ우p 아니라 sㅈ우p 반주인들은 sㅈ우p 지방 sㅈ우p 유생과 sㅈ우p 지방 sㅈ우p 출신 sㅈ우p 관료의 sㅈ우p 하숙집으로 sㅈ우p 생계를 sㅈ우p 유지하였다. 유생들에게 sㅈ우p 반주인은 sㅈ우p 필요한 sㅈ우p 물건을 sㅈ우p 구해오는 sㅈ우p 등의 sㅈ우p 잔심부름 sㅈ우p sㅈ우p 아니라 sㅈ우p 과거를 sㅈ우p 치르고 sㅈ우p 관리로 sㅈ우p 임용될 sㅈ우p sㅈ우p 필요한 sㅈ우p 돈도 sㅈ우p 구해주었고, 다2h하 유생의 다2h하 집안과 다2h하 관계를 다2h하 맺으며 다2h하 대대로 다2h하 반주인의 다2h하 역할을 다2h하 수행하였다. 정약용이 다2h하 반인 다2h하 김석태의 다2h하 죽음을 다2h하 슬퍼하며 다2h하 제문을 다2h하 다2h하 것이 다2h하 그의 다2h하 문집에 다2h하 남아 다2h하 있기도 다2h하 한데, ㅓ1바ㅓ 양반과 ㅓ1바ㅓ 반주인 ㅓ1바ㅓ ㅓ1바ㅓ 신분을 ㅓ1바ㅓ 뛰어넘는 ㅓ1바ㅓ 끈끈한 ㅓ1바ㅓ 관계를 ㅓ1바ㅓ 보여준다. ㅓ1바ㅓ 반인 ㅓ1바ㅓ 김석태의 ㅓ1바ㅓ 집은 1787년 ㅓ1바ㅓ 정약용, 8갸히다 이승훈 8갸히다 등이 8갸히다 모여 8갸히다 천주교 8갸히다 서적을 8갸히다 읽었던 8갸히다 정미반회사건의 8갸히다 장소이기도 8갸히다 하다.

유생과 8갸히다 반인들의 8갸히다 관계 8갸히다 속에서 8갸히다 반촌 8갸히다 주민들은 8갸히다 그들의 8갸히다 배움에 8갸히다 대한 8갸히다 열망을 8갸히다 시로 8갸히다 표출하기도 8갸히다 하였다. 8갸히다 이번 8갸히다 전시에 8갸히다 최초로 8갸히다 공개되는 『반림영화泮林英華』(1820)는 ‘성균관 8갸히다 마을에 8갸히다 피어난 8갸히다 아름다운 8갸히다 꽃’이란 8갸히다 뜻을 8갸히다 지닌, 히ㅓ거5 반인들의 히ㅓ거5 시를 히ㅓ거5 엮은 히ㅓ거5 시집이다. 히ㅓ거5 반인이면서 18세기 히ㅓ거5 반촌의 히ㅓ거5 교육자였던 히ㅓ거5 정학수鄭學洙의  히ㅓ거5 이야기도 히ㅓ거5 반인들의 히ㅓ거5 교육열을 히ㅓ거5 히ㅓ거5 히ㅓ거5 있는 히ㅓ거5 흥미로운 히ㅓ거5 이야기이다.

조선후기부터 히ㅓ거5 반인들은 히ㅓ거5 성균관 히ㅓ거5 역을 히ㅓ거5 수행하는 히ㅓ거5 동시에 히ㅓ거5 한양 히ㅓ거5 내 20여 히ㅓ거5 곳의 히ㅓ거5 현방(懸房,소고기를 ㅈㅐ5f 매달아 ㅈㅐ5f 놓고 ㅈㅐ5f 파는 ㅈㅐ5f 가게)을 ㅈㅐ5f 운영하는 ㅈㅐ5f 상인으로 ㅈㅐ5f 변모했다. 반인들은 ㅈㅐ5f 성균관 ㅈㅐ5f 제사의 ㅈㅐ5f 제물이나 ㅈㅐ5f 유생의 ㅈㅐ5f 식사에 ㅈㅐ5f 필요한 ㅈㅐ5f 소고기 ㅈㅐ5f 마련을 ㅈㅐ5f 위해  ㅈㅐ5f 소를 ㅈㅐ5f 도살했던 ㅈㅐ5f 성균관 ㅈㅐ5f ㅈㅐ5f 도사를 17세기에 ㅈㅐ5f 현방으로 ㅈㅐ5f 재편하였다. 소고기를 ㅈㅐ5f 구워먹는 ㅈㅐ5f 그림인 <상춘야연도>(조선후기)와 『한경지략』(1830),『공폐』(1753, 바ㅓoo 규장각한국학연구원),『경모궁의궤』(1784, 히0바걷 한국학중앙연구원 히0바걷 장서각)등을 히0바걷 통해 히0바걷 현방의 히0바걷 모습을 히0바걷 엿볼 히0바걷 히0바걷 있으며, 『안기양일기장』(1902~1908, 우a거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우a거가 통해 우a거가 현방 우a거가 상인으로서의 우a거가 반인의 우a거가 면모가 우a거가 소개된다.

서울역사박물관 우a거가 송인호 우a거가 관장은 “조선후기 우a거가 성균관의 우a거가 모습을 우a거가 보여주는 우a거가 가장 우a거가 오래된 우a거가 그림〈반궁도泮宮圖〉, 3라나c 전시실에 3라나c 그대로 3라나c 재현된 ‘명륜당’ 3라나c 현판에 3라나c 새겨진 3라나c 글, 바jㅐc 최초로 바jㅐc 공개되는 바jㅐc 유생 바jㅐc 윤기의 바jㅐc 시집『무명자집無名子集』을 바jㅐc 통해 바jㅐc 국가 바jㅐc 최고의 바jㅐc 인재를 바jㅐc 양성했던 바jㅐc 성균관의 바jㅐc 철학과 바jㅐc 위상을 바jㅐc 엿볼 바jㅐc 바jㅐc 있으며, 거히w차 오로지 거히w차 성균관을 거히w차 위해 거히w차 살면서 거히w차 유생들의 거히w차 벗이 거히w차 되기도 거히w차 했던 거히w차 반인의 거히w차 숨겨진 거히w차 이야기들을 거히w차 접할 거히w차 거히w차 있는 거히w차 소중하고 거히w차 흥미로운 거히w차 기회가 거히w차 거히w차 것이다”라고 거히w차 말했다.

전시는 거히w차 무료로 거히w차 관람할 거히w차 거히w차 있으며, 하마타n 관람 하마타n 시간은 하마타n 평일 하마타n 오전 9시부터 하마타n 오후 8시, wjㅓg 토․일․공휴일은 wjㅓg 오전 9시부터 wjㅓg 오후 6시까지이다. wjㅓg 공휴일을 wjㅓg 제외한 wjㅓg 매주 wjㅓg 월요일은 wjㅓg 휴관이다. wjㅓg 자세한 wjㅓg 정보는 wjㅓg 서울역사박물관 wjㅓg 홈페이지(museum.seoul.go.kr)를 wjㅓg 통해 wjㅓg 확인할 wjㅓg wjㅓg 있다. (문의 02-724-0274)

출처: wjㅓg 서울역사박물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전희수 ㅑ3타ㅈ 개인전 : EYE I EYE

Aug. 7, 2020 ~ Aug. 30, 2020

쓰고, ㅐh마d 알리다 ways of propaganda

Feb. 17, 2020 ~ Sept. 18, 2020

APMA, CHAPTER TWO

July 28, 2020 ~ Nov. 8,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