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면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온도나 결은 종종 형상보다 먼저 다가온다. 송승은의 회화는 바로 그 미세한 감각의 떨림에서 비롯된다. 화면 속 요소들은 특정한 서사를 재현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감각의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포개어지는 방식으로 놓인다. 오래된 회화의 일부, 소설 속 장면, 애니메이션의 조각,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의 잔상들이 느슨하게 엮이며 하나의 장면을 이루지만, 그 장면은 어떤 완결 지점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형태를 고정하려 하기보다, 그것들이 머물고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진동의 밀도를 탐색한다. 회화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멈추지 않고 흔들린다.
작업의 출발은 명확한 문장이 아니라, 어떤 감각이 남겨놓은 잔향이다. 작가는 그 흔적을 붙잡기 위해 여러 층위의 이미지 조각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섬세하게 결합해 콜라주로 구성한다. 이 콜라주는 잠정적으로 고정된 평면으로써, 여전히 ‘납작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작가는 이 이미지를 곧바로 캔버스로 옮기지 않는다. 이미지의 표면에 갇히는 일, 즉 콜라주가 만들어낸 즉각적 인상과 표면적 서사에 작업이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그 장면을 목탄화로 다시 구성하며, 그 안에 숨어 있는 빛의 구조와 밀도를 천천히 더듬어 나간다. 목탄의 흑과 백은 화면에 스며드는 빛의 방향과 밀도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다. 납작했던 이미지는 이 과정에서 깊이를 얻고, 어둠이 스며드는 경계와 밝음이 밀려드는 공간이 서로 맞물리며 다시 호흡을 시작한다. 송승은에게 목탄화는 밑그림이 아니라 회화의 숨을 되돌리는 과정이다. 빛과 질감의 관계를 조율하며, 회화의 본질적 리듬을 복원하는 일이다.
작가는 이후 목탄화를 기반으로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쌓는다. 색은 화면을 채우기 위한 요소가 아니라, 빛이 남긴 감각의 흔적을 다시 번역하는 언어처럼 다뤄진다. 물감의 두께, 닦임과 긁힘의 결, 붓질의 방향이 층을 이루고, 화면은 살결처럼 조밀한 밀도를 얻는다. 작가는 색이 스스로 앞서거나 감각을 압도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색과 빛이 서로의 자리를 잠식하지 않고, 얇은 호흡을 유지한 채 공존하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완성을 향한 직선적인 과정이 아니라, 이미지의 구조와 감각의 구조가 서로를 속이지 않기 위해 거치는 순환이다. 이 순환 속에서 화면은 세계를 재현하는 창이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하나의 구조로 남는다.
최근 작업에서 그는 물질을 다루는 방식을 더욱 확장한다. 붓질의 결, 천으로 문질러 남겨진 반투명한 흔적, 긁힘이 만들어내는 자국들을 서로 다른 감각의 두께로 화면에 쌓는다. 표면의 흔적들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라 감각의 리듬으로 작동하며, 면과 선, 질감과 여백이 서로 스며들며 생성되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화면은 고요하지만 쉼 없이 움직이며, 느리게 가라앉고 다시 떠오른다.
전시 제목〈나의 무겁고 부드러운 팔 My heavy fluffy arms〉은 이러한 감각적 구조를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무거움’은 단순한 침잠이 아니고, 작업의 구조 자체에 스며 있는 감각, 시간, 망설임, 미완의 움직임이 쌓여 만들어진 농도이며, ‘부드러움’은 그 무게를 지탱하고 풀어내는 방식이다. 특히 fluffy가 지시하는 감각은 표면적 포근함을 넘어서, 오래된 이불의 공기층처럼 미세하게 흔들리고 천천히 퍼져나가며 형태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촉각적 구조에 가깝다. 작가는 이 양가적 감각을 하나의 운동성으로 이해한다. 아래로 늘어지는 팔, 한 뼘 떠 있는 발, 침대의 무게와 아침의 빛이 동시에 머무는 순간 등이 지닌 이 반대 방향의 힘들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고, 오히려 번지(bungee)처럼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하는 리듬을 만든다. 그 진동 속에서 장면들은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무게와 부드러움이 교차하며 잠시 머무는 감각의 사건으로 존재한다.
송승은의 작업 안에서 사물과 인물, 공간은 하나의 서사로 합쳐지지 않고, 감각의 흐름에 따라 각기 부유한다. 그의 작업에 종종 등장하는 떠다니는 물방울,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스크(혹은 유령상幽靈像), 오롯이 자리한 새 등은 모두 서사를 채우기보다 비워두기의 매개로 기능한다. 그것들은 서사를 가진 대상이기 이전에 감각으로 존재하고, 기억의 조각처럼 호흡한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흘러온 장면들이 화면 안에서 얽히고, 시간의 결들이 포개어지며 하나의 느린 장면을 이룬다. 이때 기억은 재현이 아니라 감각적 구조로 남고, 완전히 붙잡히지 않지만 그 불안정한 흔들림 자체가 세계를 이루는 질서가 된다. 결국〈무겁고 부드러운 팔〉은 이러한 회화적 진동의 기록이다. 감각이 눌렸다가 다시 떠오르는 움직임,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이동하는 손의 속도, 그 사이에서 남겨진 미세한 떨림이 화면 위에 겹겹이 쌓인다. 이렇듯 송승은의 회화는 언제나 그 중간 지점에 머문다. 완전한 형태에 도달하지 않지만, 그 미완의 상태로 충만하게. 그 무게는 가라앉지 않고,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화면을 밀어 올린다.
참여작가: 송승은
출처: 눈 컨템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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