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희 : 연속성의 마무리 Shin Sung Hy : Solution de Continuité

현대화랑

2019년 9월 24일 ~ 2019년 10월 31일

갤러리현대는 9월 24일부터 10월 31일까지 <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전을 개최한다. 신성희(1948-2009)는 국내외 미술계에 ‘누아주(Nouage, 엮음)의 작가’로 알려졌다. 그는 화가로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성찰하며, 이를 독창적으로 유희하고, 해결 및 극복하는 일련의 연작을 발표했다.   

회화의 본질을 향한 신성희의 연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1970년대 초반 시작한 일명 ‘마대 위의 마대’ 연작에서 작가는 캔버스 대신 마대를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 마대의 씨실과 날실, 그 음영 등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재현했다. 그 시각적 특징은 당대 한국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한 모노크롬 회화와 유사해 보인다. 작가는 이 연작에서 “대상과 그림, 사실과 착각, 실상과 허상 사이의 차이 혹은 대비”(작가의 말)를 고민하며, “그림은 착각이다”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1980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떠나 ‘나그네’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 미술계와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미학적 테제를 찾는 데 몰두한다.   

1980년대 전개한 일명 ‘콜라주 회화’는 다채로운 색으로 칠한 종이(판지)를 찢고 접어 “멍석을 엮듯”(작가의 말) 무작위로 잇대고 겹쳐 붙여 이것을 한 화면으로 만드는 연작이다. 작가는 콜라주 회화가 “그리는 행위와 그것을 받쳐 주는 지지체를 분리하여 실험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초반에는 투명한 아크릴판을 지지체로 삼았지만, 1985년 이후부터 아크릴판 없이 종이를 잇댄 화면 자체가 지지체가 되도록 했다. 이어 붙인 종이와 종이 사이에 형성된 화면 곳곳의 구멍은 이후 전개될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인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신성희는 1990년대 초반 다시 캔버스로 돌아간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캔버스 접기라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채색한 캔버스 천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띠로 만들어 서로 잇대고 박음질해 완성한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색 띠를 엮어 화면에 ‘그물망’을 구축하는 ‘누아주’ 연작으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갤러리현대는 신성희의 작고 10주기를 기념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 총 33점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연작만을 살피는 첫 전시로 작가의 미술사적 성취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갤러리현대는 신성희의 개인전을 1988년부터 2016년까지 6회에 걸쳐 개최하며, 시대에 따라 변화한 그의 작품 세계를 한국 미술계에 알려 왔다. 1988년 첫 전시에는 콜라주 회화를, 1994년에는 콜라주,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 오브제 작업을, 2001년과 2010년에는 마대, 콜라주, <연속성의 마무리>, ‘누아주’ 연작, 오브제 작업을, 2005년에는 ‘누아주’를 선보였다. 2016년에는 마대와 캔버스 뒷면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초기 작품을 엄선한 바 있다.  

‘박음질 회화’로 통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제목처럼 색을 칠한 띠가 한 화면에 수직과 수평으로 연속해서 배치된 작업이다. ‘연속성의 해결’ 정도의 의미를 지닌 원제 ‘Solution de Continuité’를 평론가 이일이 ‘연속성의 마무리’로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다. 작가가 1980년대에 전개한 콜라주 회화가 유희성과 우연성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작업이라면,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집을 짓거나 맞춤옷을 재단하듯 캔버스 뒷면을 기준으로 띠의 길이와 배치, 구조와 밀도 등을 완벽히 계산해야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다. <연속성의 마무리>는 천에 유채와 아크릴 물감으로 색 점을 찍고 얼룩을 뿌리는 추상적인 ‘그림 그리기’ 과정에서 출발한다. 그는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캔버스 천을 잘라 해체하고, 1~10cm 등 다양한 길이의 띠 형태로 접는다. 띠의 가장자리 끝을 뜯어내 캔버스 질감이 살아나도록 한다. 이렇게 만든 띠를 서로 마주 보게 한 다음 재봉틀로 박음질을 해서 색 띠를 조합한다. 이를 ‘연속’해서 캔버스에 이어 붙여 색 띠들이 화면을 뚫고 자라난 새싹처럼 솟아오르게 ‘마무리’한다. 이때 부조처럼 돌출된 띠들은 캔버스에 미세한 그림자를 형성하는데, 작가가 평생에 걸쳐 고민한 “회화를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평면 작업에만 머물지 않는”(작가의 말) 공간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의 시기별 변화는 물론, 작업 과정의 치밀한 설계와 섬세한 변주를 확인하는 자리다. 많은 관객에게 익숙한 ‘누아주’ 연작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해당하는 색 띠를 잇대는 동시에 엮은 후기 작품으로 전시가 시작한다. “누워있는 것은 죽은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가로와 세로로만 작업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의 제약에서 벗어나 ‘누아주’라는 구축적 회화로 나아가는 흥미로운 변화를 체크할 수 있다. 1층 안쪽 전시실에서는 콜라주 회화에서 <연속성의 마무리>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양상의 대형 작품을, 2층 전시실에서는 색 띠의 조합과 배치, 화면의 형태와 크기, 여백 등을 밀도 있게 실험한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작품을 감상한다.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에는 “캔버스에 생명을 부여하자!”는 문장을 작가의 소명으로 삼고, 회화의 평면성을 해체하며 다차원적 공간을 창조한 신성희만의 예술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프랑스의 전설적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을 두고 “놀라운 개혁! 혁신! 고백하건대 나는 이 진동하는 캔버스의 천 가장자리를 바라보며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의 커다란 설렘을 갖는다”(1994)라고 고백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평면이라는 회화의 절대성에 ‘놀라운 개혁’을 선사하고, “우리를 바람이 오가는 공간의 문을 열게”(작가의 말) 한 신성희 작품의 진면목을 재확인할 수 있다.  
 

작가 노트

회화란 알고 보면 물질공간이지만 자연공간과 정신공간을 포용하는 화면이기를 나는 소망한다. 이는 내안에 있는 또 다른 엄격한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1983)

나의 작품은 찢어지기 위하여 그려진다.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것이 접히며 묶여지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공간은 나로 하여금 평면을 포기하게 한다. 포기해야 새로워진다는 것을 믿게 한다. (...) 묶여진다는 것은 결합이다. 너와 나, 물질과 정신, 긍정과 부정, 변증의 대립을 통합하는 시각적 언어이다. 색의 점, 선, 면, 입체가 공간의 부피 안에서 종합된 사고로 증명하는 작업. 평면은 평면답고, 공간은 공간다운 화면에서 일하기 위하여, 나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 (2001)

우리는 입체가 되고져 하는 꿈을 갖고 평면에서 태어났다. 평면의 조직과 두께는 공간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하였다. 희망은 가두었던 껍질을 벗고 틀의 중력을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세워지기 위하여 작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였다. 누워있는 것은 죽은 것이다. 우리들은 일으켜 세워지기 위하여 접히고 중첩되었다. 찢기고 다시 묶여졌다. 해체와 건설, 혼돈과 질서, 압축과 긴장, 당김과 뭉쳐짐의 실험들은 평면에서 입체의 현실로 변화되어 우리를 바람이 오가는 공간의 문을 열게 하였다.” (2005)

작가 생애  

신성희는 1948년 안산에서 태어나, 2009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한다. 대학생 시절이던 1968년 신인예술상전 신인예술상을, 196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홍익대 회화과를 1년 휴학하고 드라마센터에 다니며 연극에 몰두하고, 복학 이후에도 홍익 연극반에서 연극을 즐긴다. 1971년 초현실주의 화풍의 <공심(空心)> 3부작으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받는다. 동구여상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한 그는 1973년 김창열(작가의 서울예술고등학교 스승)의 초청으로 첫 파리 여행을 떠난다. 1974년 홍익대 공예과 전공의 정이옥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둔다. 1974년 첫 ‘마대’ 작업을 시도한다. 1970년대 한국 화단의 “단색조 화풍에 숨이 막힐 듯”했던 작가는 1979년 김창열의 도움으로 프랑스 그랑 쇼미에르 아카데미의 입학 허가서를 받는다. 마침내 1980년 32살에 가족과 함께 파리행을 택하고 2009년까지 그곳에서 활동한다. 학생 비자를 받고 낮에는 불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김창열 작가의 작업을 도우며 생활을 이어간다. 이후 채색한 판지를 찢어 화면에 붙이는 ‘콜라주’ 연작(1983-92),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잘라내고 그것을 박음질로 이어붙인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1993-97), 그리고 ‘누아주’ 연작(1997-2009)을 이어간다. 프랑스 엘랑꾸르트화랑(1983), 그랑 팔레(1981, 1980), 보두앙 르봉(1997, 2000, 2016), 갤러리 꽁베흐정스(1998), 미국 시그마갤러리(1993),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1999, 2002), 스위스 갤러리 프로아르타(2000, 2003, 2006, 2009, 2013), 일본 도쿄도 미술관(1976), INAX 갤러리(2002), 한국 환기미술관(1994), 소마미술관(2009), 단원미술관(2015)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와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갤러리현대는 1988년 그의 콜라주 작업을 모아 선보인 이후, 2019년까지 총 7회의 개인전을 함께 했다. 그의 작품은 파리 유네스코 본부, 프랑스현대미술수장고(FNAC),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환기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1992,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162 x 115cm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1993,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183 x 259cm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1993,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73 x 60.5cm(앞면)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1993,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73 x 60.5cm(뒷면)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1995,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181 x 291cm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연속성의 마무리 Solution de continuité, 1995,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92 x 73cm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출처: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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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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