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윤 개인전 : 자르고 맞추기

공간 가변크기

2019년 1월 17일 ~ 2019년 1월 31일

아슬아슬한 균형: 신지윤 그림의 어떤 동적 평형 상태 

화면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검정과 흰색 색면 그리고 하단부에 슬쩍 걸쳐져 있는 체크 패턴. <crop check>(2018)는 한 번에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색면 추상인가 생각하기에는 체크 패턴의 주름이 너무 실제적이고, 단색조 색면의 형태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암시를 강하게 풍긴다. 한참을 갸우뚱하며 바라보다 문뜩 퍼즐이 맞춰진다. 이것은 끈으로 된 검정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오른쪽으로 늘어뜨린 젊은 여성의 모습이다. 눈을 돌려 다른 작업을 보면 이미지 생성 원리가 다른 경우에도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5점의 연작으로 구성된 <check flat shoes>(2018)는 체크 패턴의 플랫 슈즈를 신은 여성의 발을 여러 각도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이며,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된 <살>(2018) 연작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연인의 뒷모습을 잘라낸 장면들이다. 신지윤이 그리는 대상은 언제나 인물 및 주변의 일부다. 검정 팬티를 입고 비스듬히 누운 여성의 뒷모습(<검은 팬티 하얀 이불>(2018)),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깍지를 끼고 있는 인물(<줄무늬 티셔츠>(2017)), 슬릿이 있는 청치마 틈으로 보이는 허벅지(<청치마>(2017)) 등 《자르고 맞추기》(2018)전 이전에도 그녀가 선택한 대상은 항상 인물, 그 중에서도 특정 상황에서 우연히 형성되는 인물의 형태(shape)와 질감 및 양감의 측면에서 주변의 사물과 대비되어 두드러지는 사람의 피부였다.

신지윤은 왜 인물의 형태와 피부에 끌리는가. 보통 피부에 매혹된다 함은 생기를 지닌 육체의 물성에 대한 반응인 경우가 많다. 신지윤이 그린 하얗고 매끈한 여성들의 피부에 탐미적인 요소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신체에 대한 육체적 탐닉이라고 보기에는 그녀의 피부들은 너무 납작하다. 다시 말해 살이 지니는 촉각적 물성이 거의 없다. 이 지점이 신지윤의 그림이 지니는 독특한 중간성 중 하나다. 그녀의 그림들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흔들린다. 구체적 대상에서 출발하되 이미지는 단순화를 거쳐 서로 다른 속성의 색면들로 추상화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인물의 피부는 완전한 추상이 되는 것을 제지하는 보루기도 하다. <check flat shoes>에서 신발의 체크 패턴은 각기 완전히 단일한 색면으로 칠해진 반면, 드러난 발등의 피부는 푸르고 붉고 노란 색조들이 섬세하게 조율되어 미세하나마 입체감을 전달한다. 절반쯤은 추상이고 절반쯤은 구상인 신지윤 그림 특유의 중간성은 일차적으로는 인물의 처한 상황을 제거해 불필요한 맥락을 없애는 잘라내기(cropping)의 소산이고, 이차적으로는 옷이나 구두 같은 사물의 평면성과 인체의 평면성의 정도를 차별화해 다른 상태를 공존시키는 추상화의 조절에서 온다. 이때 작품의 제목은 작가가 주목한 지점을 알려주는 한편 알아보기 힘든 이미지를 해독하는 힌트로 작용해왔다. <빨간 가방>(2018), <청치마>, <검정 반바지>(2017)처럼 대상을 지시하는 캡션은 이미지의 모호성을 붙잡아매는 닻의 역할을 하지만, 언어의 지나치게 명료한 의미 규정이 정교하게 유지되던 이미지 내부의 긴장감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지시성을 덜어낸 이번 전시 출품작들의 제목은 이미지의 이중성에 훨씬 잘 어울리는 톤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구상을 추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신지윤이 활용하는 장치는 다양하다. 대상의 일부를 확대해 사물의 표면을 강조하기도 하고(<구겨진>(2018)), 그림자 혹은 빛을 이용해 형상의 일부를 지우기도 한다(<후레쉬>(2017), <프로젝터>(2018)). 그 중에서도 모든 작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제일 중요한 방법론은 잘라내기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작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잘라내기는 “표면적인 것이 두드러지도록” 특정 상황의 맥락을 제거하는 수단이다. <crop check>가 인물임을 단번에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인물의 머리카락과 드러난 어깨, 슬리브리스 티셔츠가 비슷한 비중으로 화면을 분할하게끔(그래서 색면으로 인지되도록) 화면을 구성한 잘라내기의 역할이 크다. 잘라내기의 리듬이 가장 경쾌하게 적용된 것은 <check flat shoes> 연작일 것이다. 모본인 <check flat shoes 0>을 다양한 각도에서 확대 및 잘라낸 파생물들(<check flat shoes 1~4>)은 같은 이미지를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시각적 리뉴얼이자 서로가 서로를 받고 넘기는 조형적 리듬을 형성한다. 여기서 화면구성의 중추로 작동하는 잘라내기는 본래 카메라의 시선이다. 원근법에 따른 프레이밍을 보여주는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1982)처럼 화가가 대상을 화폭에 담을 때도 잘라내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상의 형태를 파괴하면서 ‘광학적 무의식’이라 부르는 이질적인 보기를 제공하는 것은 역시 사진에 이르러서다. 사진 탄생 200년을 향해 가는 지금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이미 사진적 시선이 체화되어 있다. 우리가 보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카메라를 통과한 것들이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는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끊임없이 잘라내기가 적용된 이미지들이 흐른다.

신지윤의 그림에 사진적 시선이 여러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동시대 회화 이미지에 사진적 관점이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잘라내기는 작가가 소재를 고를 때부터 작용한다. 신지윤은 대상을 볼 때 자신의 눈을 끈 부분을 자동적으로 잘라내 기억한다고 말한다. 프레이밍이 이미 소재 포착 단계에서부터 작동하는 것이다. 구성에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확대(blow up)와 잘라내기지만 이번 전시의 경우 연사(連射)도 부가된다. 세 점의 연작 <crop check>는 상하좌우로 미세하게 프레임을 이동해 같은 대상을 포착한 연속 이미지다. <crop check 1>의 이미지에서 앵글을 약간 아래로 내리면 <crop check 2>가 되고,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crop check 3>가 된다. 작품 크기를 달리해 리듬감이 강화된 <살> 연작의 경우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모양이 다르므로 연사는 아니지만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앵글을 움직이며 화면을 잘라낸 방식은 전형적인 카메라의 시선이다. 하지만 내가 신지윤의 시선이 사진적임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소재를 발견하는 방식에 있다. 작가에게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상의 지극히 사소한 세부다. 꾸깃꾸깃 접히고 접힌 점퍼의 주름, 피부 위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의 촉감, 살과 살이 겹치는 질감, 화면에 틈입하며 생동감을 주입하는 빨간 핸드백은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이자 그림의 출발점이다. 창작자의 마음에 꽂히는 지극히 하찮은 세부는 정확히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punctum)이라 부른 어떤 동요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다음 질문은 사진적 포착이 회화적 속성과 어떻게 어우러지느냐다. 신지윤의 최종 결과물은 사진이 아니라 회화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구상인 사진의 속성은 대상의 부피감을 최소화한 회화적 변형으로 추상화된다. 작가는 회화 표면을 최대한 균일하게 처리해 색면을 매끈한 평면으로 만든다. 물감이 덩어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작은 붓을 사용하고 붓 자국을 없애려고 매끈하게 발라 펴는 후처리를 한다. 물감을 얇게 얹는 편임에도 아크릴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마음에 찰 때까지 완벽한 매끄러움을 만들기 위해서다. 한편 기본적으로 취하기(taking)가 아니라 만들기(making)라 사진에 비해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화면 구성 역시 회화적 개입이다. 이때 작가가 선호하는 방식은 대비되는 요소의 병치를 통해 화면에 생동감과 긴장을 부여하는 것이다. 패턴이 세밀하게 밀집된 부분과 단순한 하나의 색면, 컬러감이 있는 부분과 무채색으로 표현된 부분, 보다 평면적인 부분과 구상적 측면이 남아 있는 부분을 공존시켜 일시적 균형을 창출한다. 빠르게 휘몰아치는 악장과 느리게 완상하는 악장이 공존하는 실내악처럼, 대비되는 요소는 조화로움이라는 전제 아래 하나로 어우러진다. 색면의 비율, 패턴의 밀도, 추상의 정도 등 모든 요소는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찾기 위해 조율된다. 신지윤의 그림이 고전적인 안정감을 품어내는 이유는 그림의 모든 요소가 공간적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균형은 요소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지윤의 그림은 특정 조건 하에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동적 평형 상태와도 같다. 끊임없는 유동의 과정 중 발생한 일시적 조화를 잠시 멈춰 포착한 상태. 이 상태를 붙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작가의 시도는 그리는 자에게는 날 선 긴장일 수 있으나, 톤이 조율되고 구성이 조화로운 화면은 보는 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가라앉힌다. 글을 쓰기 위해 신지윤의 그림을 보는 경험이 바로 그러했다. 이런저런 사념들로 복잡한 머리가 그림 표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서서히 차분하게 정돈되는 느낌. 회화에는 개념도, 형식도, 내용도 존재하지만, 결국 그것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에게 어떤 효과를 야기하는가가 그림이 지닌 힘일 것이다. 신지윤의 그림은 고전적인 조화로 내게 잠깐의 숨 쉴 틈을 열어 주었고, 그 조우가 준 작은 위안은 잔잔한 여운으로 남았다. / 문혜진(미술비평)

출처: 공간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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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신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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