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 1970~)은 중요한 동시대 영화감독이자 현대미술 작가로, 꿈과 현실, 기억과 시간,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무의식을 교차시키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쳐왔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는 대신,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작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소장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작품들을 한 데 모은 자리로,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두르미엔테 & 에이싱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잿가루>, 울산시립미술관 소장 <불꽃(아카이브)> 등 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각 작품은 제작시기와 맥락을 달리하지만, 단순한 영상미나 실험적 형식을 너머 기억과 망각,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대한 사유를 공유한다. 정해진 줄거리나 명확한 메시지가 없는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여운을 남기며, 이는 기억과 무의식 속에서 존재하는 진실은 단순한 언어로 설명될 수 없다는 작가의 믿음에 기인한다. 관람객은 아피찻퐁이 구축한 몽환적인 장면들 속을 걷고, 침묵 속의 울림을 듣고, 자신의 감각을 통해 무언가를 기억하게 된다. 꿈꾸는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억으로써 저항하는 아피찻퐁의 예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하게 한다.
아피찻퐁은 태국 북동부의 콘캔 지역에서 성장했으며, 콘캔 대학교에서 건축을, 이후 시카고 예술대학(SAIC)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그가 자라온 지역은 꿈, 전생, 영혼 등 전통적인 민속신앙과 미신에 대한 믿음이 일상 속에 깊이 스며있는 곳으로, 이러한 지역적·문화적 배경은 그의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분위기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그는 태국의 정치적 현실과 검열의 문제에 대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강한 정치적 함의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태국은 2006년 쿠데타 이후 군부에 의한 장기적인 권위주의 체제가 유지되면서 표현의 자유 역시 위축되어왔다. 이는 실험적 형식의 작업을 영상작품으로서 미술관에서 전개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아피찻퐁의 작품들은 시적인 형식과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억압된 기억과 지워진 서사를 되살림으로써 조용하지만 깊은 저항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출처: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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