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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its interior rise quiet whispers,
Is it … the womb of winds?
A poem by Bai Juyi.
In「Kernel of Energy, Bone of Earth : the rock in Chinese art」
기민정의 신작 전시 《안개와 뼈》에서 전개하는 작업은 괴석에 대한 오래된 시에서 발견한 바람에 대한 감각에서 시작한다. 오랜 동아시아 문화에서 괴석은 ‘세상의 뼈’처럼 견고한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작가는 그 구멍 사이로 흐르는 바람을 주목한다. 그리고 여기서 동아시아 회화의 ‘골육(骨肉)’개념과 연결짓는다. 골(骨)은 붓의 용필법 중 선, 육(肉)은 색을 뜻하며, 화면속 뼈(선)와 살(색)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완하는 회화적 사유를 보여준다. 고전의 백묘(白描)는 선의 힘으로 대상을 세우고, 몰골(沒骨)은 색과 번짐만으로 형태를 드러낸다. 겉으로는 대립하는 듯하지만, 두 방식 모두 선과 색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는 오랜 회화적 모델이다.
이 지점에서 기민정은 묻는다. 뼈를 그리는 법과 안개를 그리는 법은 분리되는가? 작가에게 뼈는 견고한 핵이 아니라 흩어지는 가루이며, 안개와 바람, 구름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생성의 순간을 품은 밀도다. 뼈는 더 이상 중심을 지키는 구조가 아니며, 안개는 주변에서 흩어지는 장식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뼈를 그리듯 구름을 그리고, 흩어지는 얼룩 같은 뼈를 오린다. 선이 색이 되고, 색이 선이 되는 순간, 골육의 교차가 화면 위에서 살아나며, 잔여의 조각들은 한층 선명하게 떠오른다.
금 속성 판 위에 오려 붙인 화선지는 이러한 감각적 대비를 물질적으로 드러낸다. 부드러운 종이와 차가운 금속이 동시에 존재하며, 빛과 공기가 표면 위를 미묘하게 진동하며 스며든다. 금속의 회색은 주변의 빛에 반응하며 중간 지대가 되고, 그 위를 감싸는 종이와 먹의 번짐은 유연한 흔적을 남긴다. 단단한 금속과 부드러운 종이, 절단과 번짐, 공백과 잔여가 동시에 공존하는 표면은 정적인 화면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호흡을 가진 장면으로 변모한다.
작가는 그간 화선지와 유리를 지지체로 삼아, 투명한 여백 속에 대기감을 머물게 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여백은 단순히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기체처럼 고여있는 밀도의 자리이며, 금속성 재료를 통한 이번 실험은 여백의 응결을 새로운 물질적 은유로 변환한다. 투과의 매체였던 유리에서 반사의 표면으로 이동하면서, 빛과 흔적은 더 직접적으로 표면 위에서 충돌하고 공존한다.
유리 위에 흩어지는 가루를 뿌리고 칼로 새긴 글씨, 칼로 오려낸 종이와 남은 조각, 깨진 유리 조각과 종이의 이어짐은 구조와 흐름, 원형과 잔여, 응축과 확산, 단단함과 기체적 감각이 맞물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가 화면 안에서 시도하는 충돌과 변형의 감각은 형태와 비형태가 공존하는 시각적 사건으로 응집되며, 전시 제목 《안개와 뼈》가 교차하며 진동하는 세계를 관객에게 체험하게 한다.
참여작가: 기민정
주최, 주관: 기민정
운영: MO BY CAN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2025년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디자인: 유현선
촬영: 안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