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아트스페이스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2025년 12월 2일부터 2026년 2월 20일까지, 안성하 의 <The Still Point of Seeing>展을 개최한다. 안성하는 일상의 사물에서 출발해 무심히 지나쳤던 대상을 새로운 시각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전업 작가로 20년 이상 서울을 중심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해온 그는 부산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자 소울아트스페이스 개관 20주년 기념전을 위해 ‘사탕’시리즈 전체를 신작으로 준비했다. 20여점의 새로운 ‘사탕’과 함께 또 다른 대표 연작 ‘담 배’, ‘코르크’, ‘비누’ 대작도 각 1점씩 선보이며, 특별히 안성하에게 있어 회화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프로세스가 되는 사진 작업이 전시장 한 섹션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T.S. 엘리엇의 <Four Quartets-네 개의 사중주> 중 첫 번째 시에 등장하는 구절, ‘The Still Point of the Turning World-회전하는 세계의 정지된 지점’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영원의 순간을 뜻한다. 엘리엇이 언어로 사유한 ‘시간 속의 영원’을 안성하는 시각적 언어로 다시 바라보며 〈The Still Point of Seeing-보는 것의 고요한 지점〉으로 전시제목을 정했다. 항상 흘러가고 변화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시간을 초월한 중심, 과거·현재·미래가 교차 하는 지점이란 마치 외부는 빠르게 돌아가지만 중심은 잠잠한 팽이처럼 바쁜 일상과 지속되는 움직임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깊은 고요와 통찰의 순간을 의미한다. 누구나 한 번쯤 손에 쥐고 맛봤을 작은 사탕을 응시하며 시간성과 감각의 잔상을 탐구한 작업이 바로 안성하의 ‘사탕’시리즈이다.
캔버스 가득 펼쳐진 달콤한 색채와 광택은 순간의 쾌락과 유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만, 빛 나는 질감 아래에는 소멸 직전의 아름다움, 사라짐의 시간성이 함께 놓여있다. 그 흐름 속에서 발견되는 영원의 한 점(the still point)은 안성하의 사탕과 깊이 맞닿아 있으며, 그의 회화가 가진 본질적 매력이다. 사탕은 제법 단단한 질감으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녹아사라질 존재이기에 시각적 묘사 이상의 감정을 유발한다. 화면 속 근경의 사탕은 선명하게 표현되었고, 원경의 사탕은 유리 너머 깊은 심도를 보여주며 자연스러운 원근감을 형성하지만 사실적으로 보이던 사물들은 근접할수록 흐릿하고 모호해진다. 안성하가 나타내는 사물의 양면성과 모순된 감정의 지점은 ‘사탕’을 비롯한 모든 시리즈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작가는 단순히 삶의 덧없음과 공허를 말하는 것이 아닌 소멸되는 존재의 의미, 삶의 순환과 반복 속에서의 자기 인식, 고통으로 정화되는 성 장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환기한다.
사탕이 담긴 투명한 유리잔의 굴절과 반사는 화면 속 공간에 한층 깊이감을 더한다. 작가는 어느 날 유리에 담긴 담배꽁초를 보며 그것이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사물과 자신 사이의 감정적 거리를 드러내는 매개임을 깨달았다. 대상을 보호하면서도 멀어지게 만들고 닿을 것 같지만 닿을 수 없는 간극을 형성하는 미묘한 거리, 빛의 굴절과 반사로 인해 사물의 형태가 왜곡되지만 오히려 그 본질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에게 유리는 투명하나 온전히 보이지 않는,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숨겨지는 모순적 공간이다. 사탕과 유리는 닮아있지만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 오브제이다. 강렬한 컬러에 달콤하지만 금세 녹아버리는 사탕은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우며 불완전하다. 반면 무기물인 유리는 투명한 형태를 유지하는 지속성과 보호의 구조를 가지지만 한 번 깨지면 되돌릴 수 없는 취약점이 있다.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에서 사라지는 찰나처럼, 그의 색 면에는 존재의 허무와 감각의 영속이 공존한다. 안성하는 상반된 물성의 조합을 통해 사라져가는 감정이 유리잔 속에 잠시 머무는 듯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사탕’ 신작에는 기존보다 더욱 확대 혹은 클로즈업되었거나, 녹고 있는 사탕을 그려낸 화면도 보인다. 블루베리에 가까운 농도 짙은 컬러의 사탕은 빈 유리용기와 쌍을 이루며 연결된 소품 4 점과 함께 놓였다. 사탕이 변색, 변질되는 과정을 한 달 간 지켜보며 그것을 덜어냈을 때 형태를 잃고 색채와 흔적만 유리에 남은 장면은 사라지는 감정, 휘발되는 기억, 시간 속에서 치환되는 정서를 보여준다. 안성하는 오브제의 선명한 현실감을 얻기 위해 사진 레퍼런스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왔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도 광학적 정확성이 요구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사진작업을 공개하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다. 작업 특성상 사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오랜 프로세스를 공유하며 향유자와 밀도 있는 소통을 원하는 의지도 포함되었다. 화면은 대체로 맑고 고요하며, 미세한 정서적 결을 따라 작품을 읽어나가게 된다. 20년간 모인 수많은 사진 중 선별된 컷들을 통해 작업과정에서 일종의 설치도 병행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The Still Point of Seeing〉은 안성하의 회화가 지닌 시각적·정서적 본질을 압축한 전시타이틀이다. 유리병에 담긴 사탕, 손때 묻은 작은 물건, 소비의 흔적으로 남은 조각들로 주변부에 머무르던 소재들은 그의 캔버스에서 낯설 만큼 선명하게 존재의 질감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사물 자체의 물성에 대한 깊은 탐구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확대된 대상이 지닌 잠재적 의미를 새롭게 비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접근은 관람자가 기억·감각·정서의 층위를 환기하도록 이끌며, ‘현존’과 ‘비가시성’이 교차하는 독특한 회화적 경험을 제시한다. 색면의 중첩, 느린 붓질의 리듬, 사라질 듯 머무는 공간들은 외부 세계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내면의 미세한 흔들림을 동시에 품고 있으면서도 화면 한가운데 조용히 응축되는 고요한 순간을 포착하도록 이끈다.
안성하(1977~)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 졸업,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정통 회화 기반을 다졌다.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동아미술제 특선,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었고, 이후 가나아트 전속작가로 활동하며 미술계 신예로 일찍이 자리매김했다. 서울을 비롯한 뉴욕과 파리, 마드리드에서 개인전을, 도쿄, 홍콩, 스톡 홀롬, 필라델피아 등에서 단체전을 가졌으며, 네덜란드, 싱가폴, 타이베이, 쾰른 등 국제적인 아트 페어에도 다수 소개되었다. 안성하의 작업은 일상의 오브제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그것의 달콤함과 독성, 위안과 중독 등의 이중성과 현대인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방식은 보이는 것 너머의 의미를 드러내며, 관객이 사물을 새로운 감각과 해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에 는 비누 연작을 통해 물성, 감각, 잔영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보다 확장된 회화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정교한 기술 위에 깊은 상징성과 감정적 여운을 남기며, 개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하는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참여작가: 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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