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현 개인전 : 시작의 불

복합문화공간에무

March 5, 2019 ~ April 3, 2019

진화 2ㄴg차 혹은 2ㄴg차 퇴행에 2ㄴg차 관하여
- ‘시작의 2ㄴg차 불’을 2ㄴg차 중심으로 -

불은 2ㄴg차 대개 2ㄴg차 고체가 2ㄴg차 아니라 2ㄴg차 그저 2ㄴg차 뜨거운 2ㄴg차 온도와 2ㄴg차 빨간 2ㄴg차 빛이라고 2ㄴg차 단순하게 2ㄴg차 인지되곤 2ㄴg차 한다. 2ㄴg차 그런데 2ㄴg차 정말 2ㄴg차 불은 2ㄴg차 그렇게 2ㄴg차 명확한 2ㄴg차 것인가. 2ㄴg차 명약관화. 2ㄴg차 즉 ‘불 2ㄴg차 보듯 2ㄴg차 뻔하다’라는 2ㄴg차 말도 2ㄴg차 있지만 2ㄴg차 인간에게 2ㄴg차 있어 2ㄴg차 불은 2ㄴg차 무언가 2ㄴg차 정의할 2ㄴg차 2ㄴg차 없는 2ㄴg차 것이다. 2ㄴg차 안종현은 2ㄴg차 2ㄴg차 기체적 2ㄴg차 현상이 2ㄴg차 가진 2ㄴg차 미디어적 2ㄴg차 속성에 2ㄴg차 도전하고 2ㄴg차 있다. 2ㄴg차 사진이 2ㄴg차 가진 2ㄴg차 성격이 2ㄴg차 그와 2ㄴg차 비슷하다는 2ㄴg차 것을 2ㄴg차 그는 2ㄴg차 오랫동안 2ㄴg차 생각해왔다.

인류의 2ㄴg차 태동과 2ㄴg차 함께 2ㄴg차 밤과 2ㄴg차 낮은 2ㄴg차 자연의 2ㄴg차 가장 2ㄴg차 2ㄴg차 제약 2ㄴg차 2ㄴg차 하나였고, 타ㅐ으아 지금도 타ㅐ으아 그렇다. 타ㅐ으아 여기에 타ㅐ으아 균열을 타ㅐ으아 내기 타ㅐ으아 시작한 타ㅐ으아 것을 타ㅐ으아 찾는다면, ㅓg으c 인간이 ㅓg으c 불을 ㅓg으c 사용하고 ㅓg으c 통제할 ㅓg으c ㅓg으c 있는 ㅓg으c 상황을 ㅓg으c 만들어왔다는 ㅓg으c 점을 ㅓg으c 빼놓을 ㅓg으c ㅓg으c 없다. ㅓg으c 그러나 ㅓg으c 불에 ㅓg으c 대한 ㅓg으c 인간의 ㅓg으c 몰이해와 ㅓg으c 욕망은 ㅓg으c 스스로를 ㅓg으c 통제 ㅓg으c 불가능한 ㅓg으c 상황으로 ㅓg으c 만들어왔다. ㅓg으c 그것도 ㅓg으c 여러 ㅓg으c 차례나, ev가2 인간은 ev가2 스스로 ev가2 불의 ev가2 심판을 ev가2 받고 ev가2 사라질 ev가2 뻔했다. ev가2 이것은 ev가2 단지 ev가2 바람이 ev가2 부는 ev가2 대로 ev가2 가는 ev가2 것이어서 ev가2 방향을 ev가2 예측하기 ev가2 어렵다는 ev가2 생활 ev가2 과학 ev가2 수준에서의 ev가2 불에 ev가2 대한 ev가2 예측 ev가2 불가능성 ev가2 차원이 ev가2 아니다. ev가2 오히려 ev가2 그 ‘바람’이라는 ev가2 욕망의 ev가2 실체는 ev가2 무엇인가에 ev가2 대한 ev가2 본질적인 ev가2 불분명성에 ev가2 대한 ev가2 이야기이다. ev가2 그러므로 ev가2 ev가2 문제의식을 ev가2 시각적으로 ev가2 다루는 ev가2 작업은 ev가2 맘대로 ev가2 흩어지고 ev가2 있는 ev가2 불을 ev가2 허깨비처럼 ev가2 잡아내고자 ev가2 하는 ev가2 유아적인 ev가2 카메라 ev가2 놀이에서 ev가2 찾지 ev가2 않는 ev가2 편이 ev가2 좋을 ev가2 것이라는 ev가2 생각을 ev가2 하게 ev가2 된다. ev가2 안종현의 ‘시작의 ev가2 불’은 ev가2 ev가2 시작이 ev가2 바라보거나 ev가2 혹은 ev가2 이미 ev가2 초래되고 ev가2 있는 ev가2 끝에 ev가2 주목한다.

그가 ev가2 주목하고 ev가2 있는 ev가2 끝은 ev가2 불이 ev가2 자연과 ev가2 인간의 ev가2 경계에서 ev가2 어떻게 ev가2 경계를 ev가2 허물어왔는지에 ev가2 대한 ev가2 천착이다. ev가2 ev가2 경계는 ev가2 잿더미가 ev가2 ev가2 화재 ev가2 현장이기도 ev가2 하고, bog3 불을 bog3 찾는 bog3 행위를 bog3 시뮬라끄르적으로 bog3 구현한 bog3 게임적 bog3 상황으로 bog3 재현되기도 bog3 한다. bog3 설치된 bog3 홀로그램 bog3 팬이 bog3 보여주고 bog3 있는 bog3 불빛은 bog3 드디어 bog3 기계로서의 bog3 발전에 bog3 박차를 bog3 가하기 bog3 시작한 bog3 카메라와 bog3 비슷한 bog3 시기에 bog3 발명된 bog3 성냥을 bog3 중요한 bog3 오브제로 bog3 환기하기도 bog3 한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bog3 bog3 가지 bog3 모티프에 bog3 관하여」를 bog3 통해 19세기 bog3 중반 bog3 성냥의 bog3 발명은 bog3 동작 bog3 bog3 번으로 bog3 가능하게 bog3 하는 bog3 기술혁신을 bog3 대표하며, 차다나n 카메라의 ‘찰칵Knipsen’ 차다나n 동작 차다나n 역시 차다나n 이와 차다나n 유사하다고 차다나n 밝혀둔 차다나n 차다나n 있다. 차다나n 특히 차다나n 여기서 차다나n 우리는 “카메라가 차다나n 사건이 차다나n 벌어진 차다나n 순간에 차다나n 가한, nuㅐ쟏 이른바 nuㅐ쟏 사후적 nuㅐ쟏 충격”이라는 nuㅐ쟏 점에 nuㅐ쟏 주목해볼 nuㅐ쟏 필요가 nuㅐ쟏 있다. nuㅐ쟏 우리의 nuㅐ쟏 인식은 nuㅐ쟏 이러한 nuㅐ쟏 진술을 nuㅐ쟏 만나는 nuㅐ쟏 순간 nuㅐ쟏 카메라가 nuㅐ쟏 가진 nuㅐ쟏 속보성이라는 nuㅐ쟏 뉴스 nuㅐ쟏 저널리즘의 nuㅐ쟏 기능으로 nuㅐ쟏 가볍게 nuㅐ쟏 편입되는 nuㅐ쟏 경향이 nuㅐ쟏 있기 nuㅐ쟏 때문이다. nuㅐ쟏 안종현의 nuㅐ쟏 잿더미가 nuㅐ쟏 nuㅐ쟏 산불 nuㅐ쟏 현장은 nuㅐ쟏 뉴스보다는 nuㅐ쟏 르포르타주적인 nuㅐ쟏 방식에 nuㅐ쟏 가깝다. nuㅐ쟏 가치중립적인 nuㅐ쟏 nuㅐ쟏 하면서 nuㅐ쟏 자꾸만 nuㅐ쟏 도덕성을 nuㅐ쟏 입으려고 nuㅐ쟏 하는 nuㅐ쟏 다큐멘터리 nuㅐ쟏 쪽과도 nuㅐ쟏 거리가 nuㅐ쟏 있다.

망원렌즈를 nuㅐ쟏 쓰지 nuㅐ쟏 않고 nuㅐ쟏 바로 nuㅐ쟏 앞에서 nuㅐ쟏 표준 nuㅐ쟏 화각으로 nuㅐ쟏 작업을 nuㅐ쟏 진행해온 nuㅐ쟏 안종현은 nuㅐ쟏 군, g0다r 붉은 g0다r 방, h갸6x 미래의 h갸6x 땅, ㅓ57사 통로, 마ㅐqㅐ 풍경 마ㅐqㅐ 시리즈로 마ㅐqㅐ 이어지며 마ㅐqㅐ 본질적으로는 마ㅐqㅐ 마ㅐqㅐ 현장에 마ㅐqㅐ 잿더미처럼 마ㅐqㅐ 남아있는 마ㅐqㅐ 무언가를 마ㅐqㅐ 찍으려 마ㅐqㅐ 했다는 마ㅐqㅐ 생각이 마ㅐqㅐ 문득 마ㅐqㅐ 들었다. 마ㅐqㅐ 마ㅐqㅐ 시리즈인 ‘군’(2007)의 마ㅐqㅐ 당시 마ㅐqㅐ 사진들을 마ㅐqㅐ 만나자마자 마ㅐqㅐ 느꼈던 마ㅐqㅐ 것은 ‘차가운 마ㅐqㅐ 뜨거움’이었다. 마ㅐqㅐ 훈련 마ㅐqㅐ 중인 마ㅐqㅐ 군인은 마ㅐqㅐ 결코 마ㅐqㅐ 식은땀을 마ㅐqㅐ 흘리지 마ㅐqㅐ 않는다. 마ㅐqㅐ 식고 마ㅐqㅐ 있는 마ㅐqㅐ 뜨거운 마ㅐqㅐ 땀을 마ㅐqㅐ 흘린다. 마ㅐqㅐ 그것은 ‘냉전’이라는 마ㅐqㅐ 오랜 마ㅐqㅐ 정치적 마ㅐqㅐ 상황과도 마ㅐqㅐ 관련이 마ㅐqㅐ 있다. 마ㅐqㅐ 화력이 마ㅐqㅐ 응집되어 마ㅐqㅐ 있는 마ㅐqㅐ 군부대에서의 마ㅐqㅐ 나날은 마ㅐqㅐ 긴장감과 마ㅐqㅐ 방만함을 마ㅐqㅐ 오간다. 마ㅐqㅐ 그러나 마ㅐqㅐ 다시 마ㅐqㅐ 사회로 마ㅐqㅐ 나온 마ㅐqㅐ 전역자 마ㅐqㅐ 중심의 마ㅐqㅐ 담론은 마ㅐqㅐ 그것을 ‘추억’이라는 마ㅐqㅐ 무력함으로 마ㅐqㅐ 전승한다. 마ㅐqㅐ 안종현의 마ㅐqㅐ 사진에는 마ㅐqㅐ 그런 마ㅐqㅐ 것들이 마ㅐqㅐ 없다. 마ㅐqㅐ 그가 마ㅐqㅐ 기록한 마ㅐqㅐ 과거는, y3ㅐㅓ 그러나 y3ㅐㅓ 마치 y3ㅐㅓ 전시 y3ㅐㅓ 상황의 y3ㅐㅓ 전투 y3ㅐㅓ 전야처럼 y3ㅐㅓ 긴장되어 y3ㅐㅓ 있다. y3ㅐㅓ 폐기 y3ㅐㅓ 직전의 y3ㅐㅓ 탄약들이 y3ㅐㅓ 가진 y3ㅐㅓ 마지막 y3ㅐㅓ 가능성은 y3ㅐㅓ 그래서 y3ㅐㅓ 더더욱 y3ㅐㅓ 무서웠다. y3ㅐㅓ 그런가 y3ㅐㅓ 하면 ‘붉은 y3ㅐㅓ 방’(2011)은 100년간 y3ㅐㅓ 주인이 y3ㅐㅓ 계속 y3ㅐㅓ 바뀌며 y3ㅐㅓ 병참기지 y3ㅐㅓ 노릇을 y3ㅐㅓ 해온 y3ㅐㅓ 서울의 y3ㅐㅓ 노른자 y3ㅐㅓ y3ㅐㅓ 용산의 y3ㅐㅓ 가장 y3ㅐㅓ 음습한 y3ㅐㅓ 치부의 y3ㅐㅓ y3ㅐㅓ 떠버린 y3ㅐㅓ 시공을 y3ㅐㅓ 마주하고 y3ㅐㅓ 있다. y3ㅐㅓ 매일 y3ㅐㅓ y3ㅐㅓ 불장난 y3ㅐㅓ 같은 y3ㅐㅓ 욕망과 y3ㅐㅓ 불쏘시개로 y3ㅐㅓ 전락한 y3ㅐㅓ 여인들의 y3ㅐㅓ 기운마저 y3ㅐㅓ 사라진 y3ㅐㅓ y3ㅐㅓ y3ㅐㅓ 다른 y3ㅐㅓ 개발을 y3ㅐㅓ 기다리고 y3ㅐㅓ 있던 y3ㅐㅓ 잿더미 y3ㅐㅓ 위에서 y3ㅐㅓ 안종현은 y3ㅐㅓ 그것을 y3ㅐㅓ 할퀴고 y3ㅐㅓ y3ㅐㅓ 흔적들에 y3ㅐㅓ 우리를 y3ㅐㅓ 서성이게 y3ㅐㅓ 했다. y3ㅐㅓ 또한 y3ㅐㅓ 화석 y3ㅐㅓ 연료 y3ㅐㅓ 중심의 y3ㅐㅓ 근현대가 y3ㅐㅓ 보여준 y3ㅐㅓ 자본주의의 y3ㅐㅓ 속성을 y3ㅐㅓ 보여준 ‘미래의 y3ㅐㅓ 땅’(2013) y3ㅐㅓ 역시 y3ㅐㅓ 이제는 y3ㅐㅓ 식어버려 y3ㅐㅓ 무관심 y3ㅐㅓ 속에 y3ㅐㅓ 고체화된 y3ㅐㅓ 영월 y3ㅐㅓ 상동을 y3ㅐㅓ 조명함으로써 y3ㅐㅓ y3ㅐㅓ y3ㅐㅓ y3ㅐㅓ 지피지 y3ㅐㅓ 않고 y3ㅐㅓ 과거로부터 y3ㅐㅓ 미래였던 y3ㅐㅓ 현재가 y3ㅐㅓ 어떤 y3ㅐㅓ 모습을 y3ㅐㅓ 하고 y3ㅐㅓ 있는가를 y3ㅐㅓ 보여준다. y3ㅐㅓ y3ㅐㅓ 시간의 y3ㅐㅓ 무상함은 y3ㅐㅓ 다시 y3ㅐㅓ 전통의 y3ㅐㅓ 중심인 y3ㅐㅓ 종로를 y3ㅐㅓ 향한다. ‘통로’(2014)는 y3ㅐㅓ 과거의 y3ㅐㅓ 영광이 y3ㅐㅓ 우리의 y3ㅐㅓ 일상에 y3ㅐㅓ y3ㅐㅓ 말을 y3ㅐㅓ 잃고 y3ㅐㅓ y3ㅐㅓ 있는 y3ㅐㅓ 낯선 y3ㅐㅓ 풍경으로서 y3ㅐㅓ 잡아낸 y3ㅐㅓ 것이며, ‘풍경’(2017)은 아쟏xo 아쟏xo 그대로 아쟏xo 풍경이라는, 5마eㅈ 그래서 5마eㅈ 가장 5마eㅈ 가치중립적인 5마eㅈ 것으로 5마eㅈ 이해되는 5마eㅈ 자연으로 5마eㅈ 풀어낸 5마eㅈ 일종의 5마eㅈ 도전이었다. 5마eㅈ 인류의 5마eㅈ 역사와 5마eㅈ 반대편에 5마eㅈ 표백된 5마eㅈ 5마eㅈ 5마eㅈ 있을 5마eㅈ 5마eㅈ 같으면서도 5마eㅈ 계속해서 5마eㅈ 생성과 5마eㅈ 소멸을 5마eㅈ 해온 5마eㅈ 자연의 5마eㅈ 이중성은 5마eㅈ 안종현에게 5마eㅈ 있어 5마eㅈ 더욱 5마eㅈ 적극적으로 5마eㅈ 다가가고자 5마eㅈ 5마eㅈ 무엇이었다. 5마eㅈ 그리고 5마eㅈ 이제 5마eㅈ 전작들이 5마eㅈ 가지고 5마eㅈ 있는 5마eㅈ 반어법들은 5마eㅈ 잿더미로 5마eㅈ 변해버린 5마eㅈ 산이 5마eㅈ 가진 5마eㅈ 생명력으로 5마eㅈ 우리 5마eㅈ 앞에 5마eㅈ 5마eㅈ 있다. 5마eㅈ 여기서도 5마eㅈ 역시 5마eㅈ 안종현은 5마eㅈ 불을 5마eㅈ 그대로 5마eㅈ 보여주지는 5마eㅈ 않는다. 5마eㅈ 하지만 5마eㅈ 자신이 5마eㅈ 5마eㅈ 5마eㅈ 있는 5마eㅈ 만큼 5마eㅈ 뜨겁게 5마eㅈ 결합하고 5마eㅈ 태워버린 5마eㅈ 이후에 5마eㅈ 주목함으로써 5마eㅈ 5마eㅈ 경계의 5마eㅈ 모호함을 5마eㅈ 우리에게 5마eㅈ 던지고 5마eㅈ 있다. 5마eㅈ 안종현이 5마eㅈ 말하고자 5마eㅈ 하는 5마eㅈ 불이란 5마eㅈ 진화인가, h거라우 아니면 h거라우 퇴행인가. h거라우 양립하기 h거라우 어려울 h거라우 h거라우 같은 h거라우 h거라우 기제를 h거라우 모두 h거라우 수행하고 h거라우 있는 h거라우 카메라를 h거라우 통해 h거라우 불은 h거라우 여러 h거라우 의미와 h거라우 형태의 h거라우 시각적인 h거라우 것이 h거라우 되었다.

따라서 h거라우 그가 h거라우 주목해온 h거라우 소멸은 h거라우 이미 ‘현재’라는 h거라우 시점을 ‘보통’이라고 h거라우 고체화했던 h거라우 태도와도 h거라우 닮아 h거라우 있다고할 h거라우 h거라우 있다. h거라우 안종현은 “좋은 h거라우 의미든 h거라우 나쁜 h거라우 의미든 h거라우 생명 h거라우 있는 h거라우 피사체는 h거라우 피해를 h거라우 입게 h거라우 된다.”고 h거라우 말하는데, 으ㅓw우 그것을 으ㅓw우 굳이 으ㅓw우 윤리와 으ㅓw우 도덕의 으ㅓw우 법정으로 으ㅓw우 회부하지 으ㅓw우 않아도 으ㅓw우 되는 으ㅓw우 것은 으ㅓw우 그의 으ㅓw우 카메라가 으ㅓw우 우리를 으ㅓw우 으ㅓw우 고체화된 으ㅓw우 현장 으ㅓw우 앞에 으ㅓw우 세우기 으ㅓw우 때문이다. 으ㅓw우 우리는 으ㅓw우 그의 으ㅓw우 사진을 으ㅓw우 보며 으ㅓw우 굳이 으ㅓw우 소멸이 으ㅓw우 문드러지고 으ㅓw우 있는 으ㅓw우 무언가로, bㅐi다 또는 bㅐi다 기억의 bㅐi다 저편으로 bㅐi다 넘어가고 bㅐi다 있는 bㅐi다 슬픔으로 bㅐi다 보지 bㅐi다 않아도 bㅐi다 되게 bㅐi다 되었다. bㅐi다 물론 bㅐi다 현대인들에게 bㅐi다 있어 bㅐi다 죽음을 bㅐi다 극히 bㅐi다 자연스러우며 bㅐi다 거역할 bㅐi다 bㅐi다 없는 bㅐi다 것으로 bㅐi다 받아들이려 bㅐi다 하지 bㅐi다 않고 bㅐi다 끔찍하고 bㅐi다 부당한 bㅐi다 재앙이라고만 bㅐi다 받아들이는 bㅐi다 사회가 bㅐi다 되었다는 bㅐi다 점에서 bㅐi다 수전 bㅐi다 손택이 「사진에 bㅐi다 관하여」를 bㅐi다 통해 bㅐi다 제기한 bㅐi다 bㅐi다 있는 bㅐi다 문제는 bㅐi다 여전히 bㅐi다 유효하지만, 거90으 그의 거90으 사진에서는 거90으 어쩐지 거90으 슬픔의 거90으 끝에 거90으 거90으 있는 거90으 시작의 거90으 새로움도 거90으 거90으 송이 거90으 거90으 따위의 거90으 작위 거90으 없이 거90으 느껴진다. 거90으 오히려 거90으 불에 거90으 거90으 무덤 거90으 거90으 기가 거90으 말없이 거90으 거90으 생명의 거90으 역설에 거90으 말을 거90으 보탠다.

안종현은 ‘미래의 거90으 땅’ 거90으 작업에서 거90으 보여준 거90으 테크니션으로서의 거90으 정점으로부터 거90으 힘을 거90으 빼고 거90으 자연의 거90으 일부로서의 거90으 불이 거90으 현재 거90으 어디에 거90으 거90으 있는가를 거90으 탐구함으로써 거90으 자신이 거90으 다루고 거90으 있는 거90으 카메라의 거90으 속성을 거90으 동시에 거90으 보여주고 거90으 있다. 거90으 거90으 분명할 거90으 거90으 하면서도 거90으 결코 거90으 분명할 거90으 거90으 없는 거90으 시각의 거90으 본성을 거90으 보기 거90으 위해 거90으 우리가 거90으 얼마나 거90으 멍청한 거90으 뜨거움 거90으 위를 거90으 달려왔는지, pk기z 그래서 pk기z pk기z 끝에 pk기z 부서져 pk기z 있는 pk기z 차갑고 pk기z 숙연한 pk기z 오늘은 pk기z 어떤 pk기z 진화 pk기z 혹은 pk기z 퇴행을 pk기z 이성이라는 pk기z 이름으로 pk기z 말하고 pk기z 있는지를 pk기z 보여주고 pk기z 있는 pk기z 것이다. pk기z 그렇다면 pk기z 그것을 pk기z 보자마자 pk기z 느끼게 pk기z 되는 pk기z 우리의 pk기z 직관은 pk기z 무엇인가. pk기z 감성인가? pk기z 아니면 pk기z pk기z 역시 pk기z 분석할 pk기z pk기z 있는 pk기z 이성의 pk기z 것인가. pk기z 불은 pk기z 꺼져 pk기z 재가 pk기z 되었지만, a으마u 아직 a으마u 꺼지지 a으마u 않은 a으마u 것들이 a으마u 있다. a으마u 새로운 a으마u 논의를 a으마u 시작해보자.
글 / a으마u 배민영 (갤러리서울 a으마u 대표, 0우jㅓ 취향관 0우jㅓ 편집장)

출처: 0우jㅓ 복합문화공간 0우jㅓ 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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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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