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영화를 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2년 10월 28일 ~ 2022년 12월 18일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2003)에서 “문학, 그것도 세계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며,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라고 비유했다. 문학처럼 영화 역시 우리가 속한 시공간을 넘어선 다른 현실과 공간으로 시야를 확장해 주는 매체다.

포루그 파로흐자드, 차학경, 마르그리트 뒤라스, 수전 손택은 20세기에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시와 소설, 에세이 등의 출판물을 발표한 ‘글을 쓰는’ 이들이었다. 시작한 경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카메라를 들고 이미지와 사운드가 결합된 영상으로 독특하고 실험적인 형식의 작품을 발표했다. MMCA필름앤비디오의 2022년 하반기 프로그램인 «영화로, 영화를 쓰다»는 영상을 또 다른 언어로 사용한 4명의 예술가가 만들어낸 낯선 형식의 영화를 소개한다.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이란 여성의 억압적인 삶과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시로 잘 알려진 이란의 시인이자 영화감독이다. 그녀의 시는 이란 여성의 삶을 주제로 미술/영화를 제작하는 쉬린 네샤트의 사진 연작 및 전시 명에 사용되는 등 후대의 예술가 및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시인으로 활동하던 중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한센병 환자들의 병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검은 집›(1962)을 남겼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신체가 괴사된 환자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 이어 수업을 듣고, 기도하는 일상의 풍경이 이어진다. 우리 역시 코로나로 인한 전염병과 그에 따른 사회적 격리와 차별을 일시적으로 경험한 바 있듯이, 회복도 치유도 없는 전염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이어져갔는지를 파로흐자드는 관찰자로서 기록한다. 이 작품은 이란 내에서는 발표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1963년 독일 오버하우젠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관객의 행동을 촉구하거나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지만, 담담하고 정직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파로흐자드의 태도는 일상적 단어로 이루어진 그녀의 시 쓰기와 이어진다.

차학경은 미술과 비디오 아트, 아티스트 북 사이를 오가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을 발표했다. 1982년 일찍 세상을 떠난 차학경의 영화는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 등 서로 다른 언어와 스틸 이미지/무빙 이미지를 교차하는 실험적인 표현 기법을 사용했다. 영상 작품 ‹입에서 입으로›(1975), ‹치환›(1976) 등에서 차학경은 언어와 의미, 발화된 말과 발화되지 못한 말의 관계를 다루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 속에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고 반영했던 차학경의 작품은 문학이나 미술, 영화의 고전적인 문법을 파괴한다. 그 결과 작가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학과 미술 영역 모두에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이수진, 미영 등이 차학경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와 영상작품을 제작했으며, 문학에서도 낭독회와 관련 학술 논문 등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1992)의 원작자로 잘 알려졌지만, 자신의 소설에서 출발한 ‹갠지스 강의 여인›(1974), ‹인디아 송›(1975), ‹캘커타 사막의 베니스라는 그의 이름›(1976)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의 대화와 내레이션이 계속되며, 등장인물 없이 카메라가 건축물의 내외부를 탐험하기도 한다. 수 분간 움직임 없는 화면에 목소리만 이어지고, 동일한 사운드 트랙을 서로 다른 두 편의 영상에 적용하기도 한다. 뒤라스의 영화와 소설, 대담과 같은 관련 텍스트들은 상호 작용하며 뒤라스의 세계를 써나간다. 뒤라스의 영상 속에서 이미지와 사운드, 등장인물과 공간, 화면 속 인물과 화면 밖의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이 느껴진다.

『사진에 관하여(1977)를 비롯한 비평 활동으로 잘 알려진 예술비평가이자 저술가인 수전 손택은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되어 직접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던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 체류하면서 개인 간의 심리적 긴장 관계를 다룬 ‹식인종을 위한 이중주›(1969), ‹형제 칼›(1971) 등을 제작했으며, 욤 키푸르 전쟁을 소재로 한 ‹약속의 땅›(1974), 베니스를 찾은 관광객의 심리와 긴장을 담은 ‹안내 없는 여행›(1983) 등을 발표했다. 적극적으로 미국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 글을 썼던 수전 손택은 영화에서도 자신이 천착한 주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광범위한 관심사를 종횡무진 횡단했던 손택의 행보처럼, 영화의 주제 역시 개인이 처한 심리적 위기와 관계의 파국에서부터 미국의 위선과 반유대주의 같은 정치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또 영화를 통해서 익숙한 사고와 문법을 의도적으로 깨고 적극적으로 위반하고자 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의 취약함, 즉 나약하고 무력한 맨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을 폭발하는 인물을 지켜보는 관찰 행위의 공모자가 되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문드러진 몸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지어보인 웃음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공간, 언어, 사회, 관계 속을 따라가다 보면 좀더 확장된 생각과 감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작가: 포루그 파로흐자드, 차학경, 마르그리트 뒤라스, 수전 손택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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