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올 줄 몰랐던 바라던 순간
손지훈은 2018년 10월을 시작으로 애뉴얼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예술행위 이어가기》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매일 6시에 일어나서 오전에는 예술과 관련 없는 회사에 출근하고 오후에는 아티스트런스페이스 쇼앤텔을 운영했다(그리고 개인 작업을 포함해서 60개가 넘는 전시를 만들고 복싱과 드럼을 배웠고 결혼도 했다). 공간 운영은 본인이 선택한 일이지만 1년에 한 번 하는 개인전조차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우는 모습을 보며 항상 들었던 생각은 ‘제발 일 크게 벌려서 스스로 힘들게 만들지 말고 예전처럼 너가 하고 싶은 거 그리면 좋겠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의견을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나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그냥 손지훈이 지금 하고 싶은 것(해야 하는 것)은 이런 건가 보다 생각하며 《예술행위 이어가기》의 협력자로 함께 해왔다. 어느새 나는 이 연례행사에 적응해서 늘 하던 대로 도움 요청을 수락했고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반갑고 놀라웠다. 5년간 지속해오던 예술행위 이어가기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잠시 쉬어가고 드로잉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말 때문이었다. 평생 지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안 좋은 의미로) 생각보다 빠르게 힘을 빼는(좋은 의미로) 시점이 찾아와서 놀랐고 항상 손지훈이 드로잉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반가웠다. 바라고는 있었지만 벌써 올 줄은 몰랐던 순간이다.
강렬한 존재감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모두를 위한 예술행위의 장소이자 모든 결과물의 아카이빙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그 동안 주로 사용한 보여주기 방식이었다. 항상 한 명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게 하려는 모습은 전시공간 운영자로서 손지훈의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예술행위의 수집과 가시화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몸집을 키우고 확장하던 전시들은 세번째 전시부터 조금씩 얇아지고 가벼워지고 단순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점차 부피를 차지하는 요소들을 배제하며 소리와 빛, 움직임 등의 무형적 요소들로 전시를 기획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런 변화는 2022년 1월 쇼앤텔 쇼룸에서 진행한 《space run artist ;사무의 바다를 달리는 공간》 전시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손지훈은 이 전시에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공간을 비워내고 비가시적 요소로 장소를 드러냈다.
손지훈이 순수하게 개인적 욕구/필요에 의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의 모습에서 타인/공익을 위한 전시를 탁월하게 만들어내는 슬픈 능력자로 변한 것처럼 쇼앤텔의 쇼룸은 6년간 전시사무공간으로 운영되며 개인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변모해왔다. 이 공간을 비우고 새로운 보여주기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공간의 변화만이 아닌 비가시적인 자아의 변화를 암시한다. 이번 전시의 부제 ‘시즌오프’ 처럼 손지훈은 자신만의 한 계절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우기 위해 비워내고 정리하려고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통을 전시하고 싶어하던 ‘보통의 전시’¹ 로 시작한 5년 동안의 내달림은 이제서야 진정한 ‘숨 고르기’² 에 들어선 것 같다. ‘라이트 하우스’³ 에서 중의적 의미로 단서처럼 드러난 ‘가볍고 빛나는’ 모습은 이제서야 ‘누구나 오갈 수 있고, 무엇이든 놓일 수 있는’⁴ 마음으로 자아에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오랜 바람대로 손지훈은 예전처럼 그리고 싶은 걸 그릴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좋은 의미로).
김준환(쇼앤텔 운영자4)
1 2018 《예술행위 이어가기1-1, 1-2 ; 보통의 전시》, 아티스트런스페이스 쇼앤텔 / 킵인터치 서울, 한국
2 2019 《예술행위 이어가기2-1, 2-2 ; 숨 고르기》, 레인보우큐브 갤러리 / 영등포 아트홀(야외), 한국
3 2020 《예술행위 이어가기3 ; 라이트하우스》, 별관(outhouse), 한국
4 2021 《예술행위 이어가기4 ; 누구나 오갈 수 있고 무엇이든 놓일 수 있는》, 아트랩반(artlab_ban), 한국
기획/진행: 손지훈
편집디자인: 남윤아
공간디자인: 김준환
사운드디자인: 류준
글: 김준환
주최: 공간:일리(SPACE:illi)
참여신청서: https://zrr.kr/bBzm
2018_1회차: https://zrr.kr/a5lw
2019_2회차: https://zrr.kr/eFai
2020_3회차: https://zrr.kr/1pHk
2021_4회차: https://zrr.kr/TRF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