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의 변용과 한국주택의 기복 문양
나는 5년 만의 국내 개인전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해 온 한국의 주택에 관한 연구를 ‘실용과 기복’이라는 타이틀로 정리하고 발표한다. 집은 사람들의 행위와 문화가 쌓이는 공간이자 삶의 형태를 만드는 또는 강제하는 틀(구조)이다. 조선의 개항 이후, 과거 우리의 주거 양식과 다른 외래 근대주택 양식은 대부분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이는 근대가 우리에게 유입된 통로이자 축이 다른 문화가 상호 충돌, 융합하는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일식 가옥은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군정 소유가 된다. 적의 재산, 즉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 불리는 이 주택은 미군정,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한국인에게 불하되었고, 이후 70여 년 동안 시대적 필요와 개인의 욕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적산가옥은 이념과 정치 언어로 호명되지만, 식민지 시기 일본인이 만든 뼈대에, 그 속은 한국인들의 행위와 문화의 결이 채워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인이 집을 이념, 역사, 국가를 넘어 ‘실용’을 가장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살아왔다는 것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집이 시간과 행위가 축적된 역사를 상징하는 것을 넘어 역사가 만들어 낸 삶의 형태가 무엇인지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인류가 성공적인 사냥, 수렵, 농사를 위해 하늘에 복을 기원하던 ‘기복’ 행위는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궁 추녀마루 위의 어처구니, 한옥의 귀면망와, 집 내부 등에 걸어 놓던 십장생도 등은 집에 들어오는 악재를 막고 가족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기복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전통 한옥 이후 근대화한 주택(양옥, 빌라, 상가주택 등)의 내·외부에 확장, 전이되는데 특히 대문, 현관문, 담벼락, 주차장 셔터 등에 십장생, 십이지 문양을 기본으로 주물, 모르타르 방식으로 자리한다. 흥미롭게도 이 문양은 불교, 도교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도 있고 아르누보, 모스크 사원, 그리스 신전, 한국, 일본,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모티브를 차용하고 조합해 만들었다. 개인 또는 가족의 기복을 위해 종교, 국가, 시대를 넘어 ‘신성한’ 많은 것을 융합해 만든 경계 없는 기복 문화라 할 수 있다. 이는 민족, 전통이라는 딱딱한 틀을 넘어, 문화가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끊임없이 변화하는지를 조망할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고향 인천의 일식 가옥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부산, 김해, 진해, 대구, 광주, 군산, 정읍, 목포, 서울 등의 타 도시와의 연결점을 찾아 그 맥락을 확장해 왔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주택의 실용에 대한 연구는 일식가옥에서부터 산업단지 인근 노동자 주택 등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갔다. 일식가옥의 변용 또한 한반도 남, 북의 온도와 환경 그리고 지역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변화상이 다름을 알게 됐다. 다양한 기복 문양이 담긴 목형을 제작했던 장인, 이름 없는 지역의 건축가, 주민의 손을 통해 그 다양성과 실험성을 목도할 수 있었고 지역적 특성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보다 적극적 기복 행위가 보이는 지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용’과 ‘기복’이 한국의 주택을 온전히 설명하는 단어가 아닐 수 있지만, 이 두 축은 우리의 역사와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오석근)
주최, 주관: 오석근
협업기획: 시청각 랩
디자인: 신신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출처: 시청각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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