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회관기획 2018 기억공작소Ⅳ 오인환 : 나는 하나가 아니다/I Am Not One

봉산문화회관

Oct. 19, 2018 ~ Dec. 30, 2018

기억공작소 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ydg사 예술을 ydg사 통하여 ydg사 무수한 ‘생’의 ydg사 사건이 ydg사 축적된 ydg사 현재, 3h기ㄴ 이곳의 3h기ㄴ 가치를 3h기ㄴ 기억하고 3h기ㄴ 공작하려는 3h기ㄴ 실천의 3h기ㄴ 자리이며, k쟏마ㅓ 상상과 k쟏마ㅓ k쟏마ㅓ 재생을 k쟏마ㅓ 통하여 k쟏마ㅓ 예술의 k쟏마ㅓ 미래 k쟏마ㅓ 정서를 k쟏마ㅓ 주목하려는 k쟏마ㅓ 미술가의 k쟏마ㅓ 시도이다. k쟏마ㅓ 예술이 k쟏마ㅓ k쟏마ㅓ 인간의 k쟏마ㅓ 삶과 k쟏마ㅓ 동화되어 k쟏마ㅓ 생명의 k쟏마ㅓ 생생한 k쟏마ㅓ 가치를 k쟏마ㅓ 노래하는 k쟏마ㅓ 것이라면, pip차 예술은 pip차 또한 pip차 pip차 기억의 pip차 보고寶庫이며, 라9아s 지속적으로 라9아s 라9아s 기억을 라9아s 새롭게 라9아s 공작하는 라9아s 실천이기도 라9아s 하다. 라9아s 그런 라9아s 이유들로 라9아s 인하여 라9아s 예술은 라9아s 자신이 라9아s 탄생한 라9아s 환경의 라9아s 오래된 라9아s 가치를 라9아s 근원적으로 라9아s 기억하게 라9아s 되고 라9아s 라9아s 재생과 라9아s 공작의 라9아s 실천을 라9아s 통하여 라9아s 환경으로서 라9아s 다시 라9아s 기억하게 라9아s 한다. 라9아s 예술은 라9아s 생의 라9아s 사건을 라9아s 가치 라9아s 있게 라9아s 살려 라9아s 내려는 라9아s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라9아s 멈추어 라9아s 돌이켜보고 라9아s 기억하라! 라9아s 둘러앉아 라9아s 함께 라9아s 생각을 라9아s 모아라. 라9아s 우리가 라9아s 인간으로서 라9아s 지금껏 라9아s 우리 라9아s 자신들에 라9아s 대해 라9아s 가졌던 라9아s 전망 라9아s 중에서 라9아s 가장 라9아s 거창한 라9아s 전망의 라9아s 가장 라9아s 위대한 라9아s 해석과 라9아s 라9아s 라9아s 다른 라9아s 가능성의 라9아s 기억을 라9아s 공작하라!
그러고 라9아s 나서, 643갸 그런 643갸 전망을 643갸 단단하게 643갸 붙잡아 643갸 643갸 가치와 643갸 개념들을 643갸 잡아서 643갸 그것들을 643갸 미래의 643갸 기억을 643갸 위해 643갸 제시할 643갸 것이다. 643갸 기억공작소는 643갸 창조와 643갸 환경적 643갸 특수성의 643갸 발견, ㅐ99u 그리고 ㅐ99u 그것의 ㅐ99u 소통, 쟏ㄴㅐ사 미래가 쟏ㄴㅐ사 쟏ㄴㅐ사 현재로 쟏ㄴㅐ사 바뀌고 쟏ㄴㅐ사 다시 쟏ㄴㅐ사 기억으로 쟏ㄴㅐ사 남을 쟏ㄴㅐ사 다른 쟏ㄴㅐ사 역사를 쟏ㄴㅐ사 공작한다.

차이, 4ㅓw하 정체성
전시장에는 ‘나는 4ㅓw하 하나가 4ㅓw하 아니다’라는 4ㅓw하 글자와 4ㅓw하 대형스크린에 4ㅓw하 투사된 4ㅓw하 여성의 4ㅓw하 얼굴 4ㅓw하 영상, 쟏6거ㅑ 다림질하는 쟏6거ㅑ 장면이 쟏6거ㅑ 담긴 3개의 쟏6거ㅑ 모니터가 쟏6거ㅑ 있다. 쟏6거ㅑ 여기에는 쟏6거ㅑ 심미적審美的이거나 쟏6거ㅑ 문학적 쟏6거ㅑ 서사敍事와 쟏6거ㅑ 형상의 쟏6거ㅑ 재현再現으로서 쟏6거ㅑ 미술은 쟏6거ㅑ 없다. 쟏6거ㅑ 대신에 쟏6거ㅑ 전시된 쟏6거ㅑ 작업들이 쟏6거ㅑ 작동하여 쟏6거ㅑ 의미를 쟏6거ㅑ 산출하는 쟏6거ㅑ 방식으로서 쟏6거ㅑ 구조構造, 거ㅓed 거ㅓed 오인환이 거ㅓed 설계한 거ㅓed 문화 거ㅓed 비판적 거ㅓed 성격의 거ㅓed 동시대미술이 거ㅓed 이곳에 거ㅓed 있다.
일반적으로 거ㅓed 미적美的 거ㅓed 형상을 거ㅓed 형성시키는 거ㅓed 인간의 거ㅓed 창조創造 거ㅓed 활동이 거ㅓed 미술작업이라면, ㅑ바ㅓ다 ㅑ바ㅓ다 창조 ㅑ바ㅓ다 행위는 ㅑ바ㅓ다 차이差異로부터 ㅑ바ㅓ다 가능하고, guㅑt 차이는 guㅑt 정체성Identity의 guㅑt 담론에서 guㅑt 구할 guㅑt guㅑt 있다. guㅑt 오인환은 guㅑt 이러한 guㅑt 정체성의 guㅑt 문제에서부터 guㅑt 시작하여, 나o거ㅓ 자신의 나o거ㅓ 미술작업을 나o거ㅓ 지배적인 나o거ㅓ 주류문화가 나o거ㅓ 허용하지 나o거ㅓ 않는 나o거ㅓ 다양한 ‘문화적인 나o거ㅓ 사각지대’ 나o거ㅓ 찾기로 나o거ㅓ 설정하고, 아바거ㅓ 퀴어 아바거ㅓ 입장에 아바거ㅓ 서서 아바거ㅓ 당연하게 아바거ㅓ 여겨지는 아바거ㅓ 기존의 아바거ㅓ 사회 아바거ㅓ 문화적 아바거ㅓ 규범을 아바거ㅓ 비판하고 아바거ㅓ 도전하는 아바거ㅓ 개념적 아바거ㅓ 미술작업으로 아바거ㅓ 기억된다. 아바거ㅓ 전시장 아바거ㅓ 바닥에 아바거ㅓ 아바거ㅓ 도시의 아바거ㅓ 게이바 아바거ㅓ 이름을 아바거ㅓ 아바거ㅓ 가루로 아바거ㅓ 쓰고 아바거ㅓ 태우는 “남자가 아바거ㅓ 남자를 아바거ㅓ 만나는 아바거ㅓ 곳(2001)”, 64ㅓㅓ 초청한 64ㅓㅓ 남성 64ㅓㅓ 참여자의 64ㅓㅓ 옷을 64ㅓㅓ 세탁해서 64ㅓㅓ 돌려주는 “나의 64ㅓㅓ 아름다운 64ㅓㅓ 빨래방 64ㅓㅓ 사루비아(2002)”, 사3kv 친구와 사3kv 공통적으로 사3kv 소유한 사3kv 물건을 사3kv 촬영해서 사3kv 관계를 사3kv 드러내는 “우정의 사3kv 물건(2000)”, onㅓs 주간신문에 onㅓs 자신을 GKM(게이 onㅓs 한국 onㅓs 남성)으로 onㅓs 소개하고 ‘진짜 onㅓs 백남준’ onㅓs onㅓs 작가를 onㅓs 찾는 onㅓs 광고를 onㅓs 게재한 “퍼스널 onㅓs 애드(1996)”, CCTV가 g기cㅐ 감시하지 g기cㅐ 못하는 g기cㅐ 전시 g기cㅐ 구역에 g기cㅐ 핑크색 g기cㅐ 테이프를 g기cㅐ 붙여 g기cㅐ 사각지대를 g기cㅐ 시각화한 “사각지대 g기cㅐ 찾기(2015)” g기cㅐ 등이 g기cㅐ 그것이다.

하나가 g기cㅐ 아닌 g기cㅐ 이름, 거87ㅓ
관객이 거87ㅓ 거87ㅓ 번째로 거87ㅓ 만나는 거87ㅓ 작품은 거87ㅓ 철판으로 거87ㅓ 만든 거87ㅓ 입체조각 거87ㅓ 문자의 거87ㅓ 후면에 거87ㅓ 화려하게 거87ㅓ 변하는 거87ㅓ 색상의 LED배경조명을 거87ㅓ 설치한 “나는 거87ㅓ 하나가 거87ㅓ 아니다”이다. 거87ㅓ 전시의 거87ㅓ 제목이기도한 거87ㅓ 거87ㅓ 작업에서 거87ㅓ 작가는 거87ㅓ 개인의 거87ㅓ 정체성이 ‘복수plural’라는 거87ㅓ 의미라기보다는 거87ㅓ 개인의 거87ㅓ 정체성이 ‘단일한’ 거87ㅓ 또는 ‘공통의 거87ㅓ 것’임을 거87ㅓ 강조하는 거87ㅓ 한국사회의 거87ㅓ 보편적인 거87ㅓ 인식을 거87ㅓ 반전시켜 거87ㅓ 거87ㅓ 또는 거87ㅓ 우리의 거87ㅓ 정체성은 ‘다층적’이고 거87ㅓ 고정되지 거87ㅓ 않는 거87ㅓ 유동적인 거87ㅓ 상태임을 거87ㅓ 전달하고, h8바i 나아가 h8바i 하나로 h8바i 귀결되는 h8바i 보편적 h8바i 삶의 h8바i 방식 h8바i 너머에 h8바i 있는 h8바i 타자의 h8바i 경험들을 h8바i 확장하여 h8바i 표준화된 h8바i 일상과 h8바i 문화적 h8바i 규범을 h8바i 탈고정화 h8바i 시킬 h8바i 가능성을 h8바i 제시하려는 h8바i 작가의 h8바i 의도를 h8바i 함축하고 h8바i 있다.

전시장 h8바i 안으로 h8바i 들어서면 h8바i 천장에 h8바i 매달린 h8바i 가로3.36×세로1.93m의 h8바i 스크린에 h8바i 투사되는 h8바i 영상을 h8바i 만난다. 2012년 h8바i 일본 h8바i 교토아트센터에서의 h8바i 레지던스 h8바i 기간에 h8바i 시작한 h8바i 작업, ‘나의 25ㄴs 이름들’ 25ㄴs 중의 25ㄴs 하나인 25ㄴs 25ㄴs 영상에서 25ㄴs 작가는 25ㄴs 개인의 25ㄴs 정체성을 25ㄴs 드러내는 25ㄴs 기호로서 25ㄴs 이름에 25ㄴs 주목한다. 3명의 25ㄴs 여성이 25ㄴs 등장하는 25ㄴs 25ㄴs 영상은 25ㄴs 이름(성姓surname)을 25ㄴs 여러 25ㄴs 25ㄴs 변경했던 25ㄴs 일본 25ㄴs 여성들과의 25ㄴs 인터뷰이다. 25ㄴs 이름을 25ㄴs 변경했던 25ㄴs 경험을 25ㄴs 소개할 25ㄴs 때마다 25ㄴs 인터뷰이 25ㄴs 여성의 25ㄴs 자리는 25ㄴs 변하지 25ㄴs 않지만 25ㄴs 장면이 25ㄴs 전환되며 25ㄴs 인물의 25ㄴs 배경이 25ㄴs 달라지는 25ㄴs 화면처리는 25ㄴs 특히 25ㄴs 주목해야할 25ㄴs 시각적 25ㄴs 장치이다. 25ㄴs 이름은 25ㄴs 25ㄴs 사람을 25ㄴs 대표하는 25ㄴs 기호이지만, 타f나사 자신의 타f나사 이름은 타f나사 스스로 타f나사 선택할 타f나사 타f나사 있는 타f나사 것이 타f나사 아니라 타f나사 부여받는 타f나사 것이다. 타f나사 타f나사 대부분의 타f나사 문화권에서와 타f나사 마찬가지로 타f나사 일본에서도 타f나사 자녀는 타f나사 부모의 타f나사 성(주로 타f나사 아버지의 타f나사 성)을 타f나사 이어받는다. 타f나사 그리고 타f나사 일본에는 타f나사 여성이 타f나사 결혼을 타f나사 하면 타f나사 남편의 타f나사 성을 타f나사 따라야하는 타f나사 관습을 타f나사 유지하고 타f나사 있다. 타f나사 인터뷰에 타f나사 참여한 타f나사 여성들이 타f나사 자신이나 타f나사 부모의 타f나사 결혼과 타f나사 이혼에 타f나사 의해 타f나사 자신의 타f나사 이름을 타f나사 여러 타f나사 타f나사 바꿀 타f나사 수밖에 타f나사 없었던 타f나사 경험은 타f나사 가부장제 타f나사 문화가 타f나사 그녀들에게 타f나사 부여한 타f나사 타자로서의 타f나사 위치를 타f나사 드러낸다. 타f나사 하지만 타f나사 작가는, 0ㅈ5z 그녀들에게 0ㅈ5z 있어서 0ㅈ5z 타자의 0ㅈ5z 위치는 ‘나를 0ㅈ5z 대표하는 0ㅈ5z 하나의 0ㅈ5z 이름은 0ㅈ5z 존재하는가?’라는 ‘질문하기’를 0ㅈ5z 가능케 0ㅈ5z 하고, 거6걷ㅓ 부여된 거6걷ㅓ 정체성을 거6걷ㅓ 당연하게 거6걷ㅓ 수용하기 거6걷ㅓ 보다는 거6걷ㅓ 능동적으로 거6걷ㅓ 자신의 거6걷ㅓ 정체성을 거6걷ㅓ 숙고熟考할 거6걷ㅓ 거6걷ㅓ 있는 거6걷ㅓ 열린 거6걷ㅓ 조건이 거6걷ㅓ 거6걷ㅓ 거6걷ㅓ 있음을 거6걷ㅓ 읽어낸다. 거6걷ㅓ 억압의 거6걷ㅓ 구조 거6걷ㅓ 속에서 거6걷ㅓ 타자가 거6걷ㅓ 스스로를 거6걷ㅓ 피해자로 거6걷ㅓ 인식하기보다 거6걷ㅓ 거6걷ㅓ 억압의 거6걷ㅓ 구조를 거6걷ㅓ 오히려 거6걷ㅓ 자기발견의 거6걷ㅓ 조건으로 거6걷ㅓ 재설정하는 거6걷ㅓ 사례로서 ‘나의 거6걷ㅓ 이름들’의 거6걷ㅓ 인터뷰 거6걷ㅓ 영상은 거6걷ㅓ 거6걷ㅓ 개인을 거6걷ㅓ 하나로 거6걷ㅓ 고정시키는 거6걷ㅓ 문화적 ‘당연성’을 거6걷ㅓ 해체할 거6걷ㅓ 거6걷ㅓ 있는 거6걷ㅓ 대안적 거6걷ㅓ 타자성을 거6걷ㅓ 제시하고 거6걷ㅓ 있다.

반대편 거6걷ㅓ 공간에 거6걷ㅓ 설치된 3개의 거6걷ㅓ 모니터 거6걷ㅓ 작업은 ‘나의 거6걷ㅓ 이름들’의 거6걷ㅓ 인터뷰 거6걷ㅓ 참여자들이 거6걷ㅓ 소개한 거6걷ㅓ 이름들을 거6걷ㅓ 작가가 거6걷ㅓ 다림질을 거6걷ㅓ 이용해서 거6걷ㅓ 쓰고 거6걷ㅓ 지우기를 거6걷ㅓ 반복하는 거6걷ㅓ 퍼포먼스의 거6걷ㅓ 영상기록이다. 거6걷ㅓ 작가의 거6걷ㅓ 설명에 거6걷ㅓ 의하면, r우마d 지속적으로 r우마d 변경된 r우마d 이름들을 r우마d 쓰고 r우마d 지우는 r우마d 다림질하기는 ‘이름’이라는 r우마d 것이 r우마d 고정된 r우마d 것이 r우마d 아니라 r우마d 변화될 r우마d r우마d 있는 r우마d 기표임을 r우마d 시각화하고, mㅓ8거 현재의 mㅓ8거 이름으로 mㅓ8거 호명되는 mㅓ8거 나의 mㅓ8거 정체성 mㅓ8거 역시 mㅓ8거 결정적인 mㅓ8거 것이 mㅓ8거 아니라 mㅓ8거 변화하는 mㅓ8거 과정의 mㅓ8거 일부임을 mㅓ8거 드러낸다. mㅓ8거 즉, 갸카다다 하나의 갸카다다 이름으로 갸카다다 대표될 갸카다다 갸카다다 있는 ‘하나의 갸카다다 나’는 갸카다다 없음을 갸카다다 시각화 갸카다다 한다.

이번 갸카다다 전시 “나는 갸카다다 하나가 갸카다다 아니다”에서 갸카다다 오인환은 갸카다다 지금까지 갸카다다 그러했듯이, 다v3나 개인의 다v3나 정체성을 다v3나 규범적으로 다v3나 강화하는 다v3나 일상적인 다v3나 활동과 다v3나 고정화된 다v3나 관행에 다v3나 작동하는 다v3나 문화적 다v3나 구조를 다v3나 재해석하고 다v3나 해체하는 다v3나 문화 다v3나 비판적인 다v3나 발언으로서 다v3나 미술을 다v3나 시도하며, uoㅐ9 이러한 uoㅐ9 문화비판적인 uoㅐ9 미술을 uoㅐ9 실천하기위한 uoㅐ9 조건으로 uoㅐ9 자신의 uoㅐ9 작업이 uoㅐ9 미술상품으로 uoㅐ9 전용되지 uoㅐ9 않도록 uoㅐ9 물질적인 uoㅐ9 결과를 uoㅐ9 최소화하거나 uoㅐ9 남기지 uoㅐ9 않는 uoㅐ9 방식으로 uoㅐ9 관객에게 uoㅐ9 온전히 uoㅐ9 경험적으로 uoㅐ9 감상되도록 uoㅐ9 하려는 uoㅐ9 설계자이다. uoㅐ9 그의 uoㅐ9 미술행위는 uoㅐ9 지금, 아기n사 여기 아기n사 현실사회의 아기n사 구조에 아기n사 대한 아기n사 비판적 아기n사 관심과 아기n사 미적 아기n사 사유를 아기n사 바탕으로 아기n사 개념과 아기n사 미술작업이 아기n사 작동하는 아기n사 구조를 아기n사 드러내는 아기n사 것이며, 0ㅓ3a 작가에 0ㅓ3a 의해 0ㅓ3a 작품의 0ㅓ3a 의미가 0ㅓ3a 고정되어 0ㅓ3a 전달되기보다는 0ㅓ3a 협업자로서 0ㅓ3a 관객이 0ㅓ3a 선택 0ㅓ3a 혹은 0ㅓ3a 감상의 0ㅓ3a 차이에 0ㅓ3a 의해 0ㅓ3a 의미의 0ㅓ3a 다양성을 0ㅓ3a 허용하는 0ㅓ3a 설계의 0ㅓ3a 실천이다. 0ㅓ3a 그리고 0ㅓ3a 0ㅓ3a 전시는 0ㅓ3a 주류나 0ㅓ3a 보편적인 0ㅓ3a 문화 0ㅓ3a 체계에 0ㅓ3a 상반되는 0ㅓ3a 타자의 0ㅓ3a 입장이나 0ㅓ3a 차이의 0ㅓ3a 공간이 0ㅓ3a 지니는 0ㅓ3a 가능성을 0ㅓ3a 드러내어 0ㅓ3a 교감하려는 0ㅓ3a 태도에 0ㅓ3a 관한 0ㅓ3a 것이고, 타쟏기나 현실 타쟏기나 삶이 타쟏기나 예술과 타쟏기나 관계하는 타쟏기나 지점의 타쟏기나 예술적 타쟏기나 장치에 타쟏기나 관한 ‘공감’의 타쟏기나 기억으로서 타쟏기나 우리 타쟏기나 자신의 타쟏기나 태도들을 타쟏기나 환기시켜준다./ 타쟏기나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타쟏기나 정종구


작가노트

전시 타쟏기나 제목 “나는 타쟏기나 하나가 타쟏기나 아니다”는 타쟏기나 개인의 타쟏기나 정체성이 타쟏기나 하나로 타쟏기나 규정될 타쟏기나 타쟏기나 없는 ‘복수’라는 타쟏기나 것을 타쟏기나 의미하기 타쟏기나 보다는 타쟏기나 정체성은 타쟏기나 고정되지 타쟏기나 않는 타쟏기나 유동적인 타쟏기나 상태임을 타쟏기나 함축한다. 타쟏기나 정체성을 타쟏기나 포함하여 타쟏기나 단일하고 타쟏기나 고정된 타쟏기나 것이란 타쟏기나 결론이 타쟏기나 아니라 타쟏기나 다원적인 타쟏기나 해석을 타쟏기나 수용해야 타쟏기나 하는 타쟏기나 대기 타쟏기나 상태일 타쟏기나 것이다. 타쟏기나 이번 타쟏기나 개인전에서 타쟏기나 선보일 타쟏기나 작품들은 타쟏기나 유동적이거나 타쟏기나 보편화되지 타쟏기나 않은 타쟏기나 타자의 타쟏기나 경험을 타쟏기나 통해 타쟏기나 정체성과 타쟏기나 타쟏기나 수행이 타쟏기나 고정되지 타쟏기나 않는 타쟏기나 변화의 타쟏기나 과정임을 타쟏기나 제시하고, 0r하거 나아가 0r하거 주체와 0r하거 달리 0r하거 상대적이거나 0r하거 불안정하기까지 0r하거 0r하거 타자의 0r하거 상황이 0r하거 오히려 0r하거 개인을 0r하거 규범화하는 0r하거 문화 0r하거 구조를 0r하거 자각할 0r하거 0r하거 있는 0r하거 긍정적인 0r하거 조건이 0r하거 0r하거 0r하거 있음을 0r하거 드러내고자 0r하거 한다. / 0r하거 오인환


출처: 0r하거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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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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