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성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간, 시간, 기억과 그 안에서 총체적으로 형성되는 관계들에 주목한다. 그는 일상의 개인적인 소사(小史)를 감각적으로 재구성하고, 은유를 통해 하나의 새로운 서사로 시각화하는 영상 작업을 선보여왔다.
우리는 일상에 모든 방향에서 시공간 안에 포함되어있다. 우리의 존재는 시간 속에서 주어지므로 선형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그 안에 속해있는 공간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오제성은 글과 사진 등 일상의 기록을 통해 직선적인 시간의 지배에서 탈출하는 일종의 ‘시간 여행’을 제안한다.
작가의 시간 여행은 작가가 한국에서 우연히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여인상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경험에서 출발한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나타내는 생생한 브론즈 질감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는지 상경하게 느끼며, 그가 작품을 제작했을 스위스의 작업실이 그려졌다고 한다. 작품을 중심으로 감성적 교감을 느낀 그는 다른 시대의 다른 공간에 존재한 예술가와 공동의 시공간을 구축하게 된다.
자전적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광기의 시공간>(2018) 연작은 예술가, 비평가, 관람객이 만나는 전시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술 작업을 매개로 반복되는 단일 사건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점을 중첩된 시간여행으로 넘나든다. 작가는 그에게 익숙한 공간인 전시장을 소재로 한 이 작업을 통해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을 그가 형성한 서사의 한 부분으로 초대한다. <노광, 미노광>(2018) 3부작은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갈현1동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생태와 지역민들의 생활사를 보여준다. 주민들의 인터뷰를 재해석한 이 연작은 한 장소에서 세 개의 시간대로 전개된다. 70년대 도시 개발 시기에 만들어진 동네는 90년대를 지나며 새로운 이주민들이 터를 잡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난 예술가들로 인해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나 곧 재개발에 의해 쫓겨나는 지역민들의 삶을 1인칭 시점과 담담한 목소리로 서술한다. 관람객은 이들의 기억을 엿봄으로써 한 지역의 사회, 역사, 경제적 맥락을 되짚으며, 다면적으로 소외된 개인의 삶을 체험한다.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스틸 사진과 내레이션으로 구성된 두 영상작업은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의 실험 영화 <La Jetée>(1962)를 차용한 것으로 “필름의 화학적 시간성, 질감, 잔상” 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번 전시 “The Motion Lines”에서 오제성은 이전 작품들을 귀결하는 신작 <뼈와 피가 에이는 밤>(2019)을 선보인다. 앞선 작업과는 달리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렌즈를 교차적으로 사용한 영상과 극적인 배경음악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시간의 이상 현상”으로 한곳에 모이면서 글, 예술작품, 사진 등의 기록물을 통해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는 과정을 다차원적으로 묘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작업에서 인물의 동선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정지된 연속된 사진으로 엮인 두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영상이 포함된 이번 작품도 짧은 컷으로 편집해 인물 간의, 혹은 상황 간의 동선 파악이 까다롭다. 작가는 이와 같이 부재하는 연결고리를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하고자 한다.
오제성의 작업은 단지 일상의 기록 혹은 크리스 마커의 오마주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흘러가는 일상의 시공간을 시각적 언어로 붙잡고, 전시를 아우르는 모든 관계를 총체적으로 잇는 ‘시간여행’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의 이야기 안에서는 누가, 어디를 향해가는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을 초월한 배경과 순차적 인식이 어려운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서사는 보는 이의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시의 일부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작품과 교감할 때 관객들은 “시간 여행”을 통해 전시장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인연들을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정푸르나 ㈜ 로렌스 제프리스
출처: 송은아트큐브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