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 Lau, gh-; Nothing Needs to be a Tragedy

원앤제이갤러리

Feb. 25, 2021 ~ April 11, 2021

원앤제이 0우v2 갤러리에서는 0우v2 오는 2월 25일부터 4월 11일까지 0우v2 그룹전 《웃, 거9나7 음-; 거9나7 이것은 거9나7 비극일 거9나7 필요가 거9나7 없다》 거9나7 거9나7 개최한다. 거9나7 박경률, w아i1 최하늘, 바s자f 홍승혜 바s자f 바s자f 명의 바s자f 작가가 바s자f 참여하여 바s자f 회화 (박경률), 거ㅑ0다 조각(최하늘), 차ㅐ8다 사진(최하늘), fz1사 영상(홍승혜), 66ze 설치(홍승혜) 66ze 작품을 66ze 선보일 66ze 예정이다. 66ze 전시는 66ze 작가들이 66ze 탐구해오고 66ze 있는 66ze 66ze 매체의 66ze 전통성과 66ze 현대성, k바우사 매체특성성과 k바우사 매체 k바우사 불완전성 k바우사 사이에 k바우사 작품들을 k바우사 위치시키고, ‘농담’과 ‘희극성’의 i자ㄴf 맥락 i자ㄴf 안에서 i자ㄴf 소개한다. 

전시 《웃, o6vp 음-; o6vp 이것은 o6vp 비극일 o6vp 필요가 o6vp 없다》 o6vp o6vp 예술에 o6vp 대한 o6vp 믿음이 o6vp 사라진 o6vp 시대에 o6vp 작가들의 o6vp 취하는 o6vp 전략으로서의 o6vp 유머와 o6vp 희극성을 o6vp 단순히 o6vp 즐거운 o6vp 관람, ㅓ자jx 또는 ㅓ자jx 온순하고 ㅓ자jx 일시적인 ㅓ자jx 통합을 ㅓ자jx 위한 ㅓ자jx 것으로만 ㅓ자jx 치부할 ㅓ자jx ㅓ자jx 없음을 ㅓ자jx 전제한다. ㅓ자jx 또한 ㅓ자jx 희극이 ㅓ자jx 규범을 ㅓ자jx ㅓ자jx 기반으로 ㅓ자jx 삼고 ㅓ자jx 있다는 ㅓ자jx 점을 ㅓ자jx 상기하며. ㅓ자jx ㅓ자jx 작가의 ㅓ자jx 작품에서 ㅓ자jx 보여지는 ㅓ자jx 유머는 ㅓ자jx 그들이 ㅓ자jx 다루고 ㅓ자jx 있는 ㅓ자jx 매체 ㅓ자jx 규범 ㅓ자jx 바깥에서 ㅓ자jx 읽힐 ㅓ자jx ㅓ자jx 없다는 ㅓ자jx 점에 ㅓ자jx 주목한다. ㅓ자jx 작가들에 ㅓ자jx 의해 ㅓ자jx 놀이처럼 ㅓ자jx 다뤄지고 ㅓ자jx 있는 ㅓ자jx 극대화되고 ㅓ자jx 비틀어진 ㅓ자jx 매체의 ㅓ자jx 역사, ㅓmxm 또는 ㅓmxm 매체의 ㅓmxm 견고한 ㅓmxm 성격들은 ㅓmxm 유희로 ㅓmxm 읽히는 ㅓmxm 것을 ㅓmxm 너머, xk나e 예술의 xk나e 의미 xk나e 전환 xk나e 시기에 xk나e xk나e 좌표와 xk나e 방향을 xk나e 모색하는 xk나e 제스쳐로 xk나e 읽혀야 xk나e 한다. xk나e 또한 xk나e 작가들의 xk나e 전략으로 xk나e 사용하는 xk나e 유머는 xk나e 실효성을 xk나e 상실한 xk나e 아방가르드 xk나e 예술의 xk나e 위치, jㅓ타o 또는 jㅓ타o 한세기 jㅓ타o jㅓ타o 동안 ‘전복'이라는 jㅓ타o 거창한 jㅓ타o 믿음으로 jㅓ타o 지속되어 jㅓ타o jㅓ타o 예술의 jㅓ타o 힘의 jㅓ타o 쇠락을 jㅓ타o 외면하거나 jㅓ타o 숨기지 jㅓ타o 않고, ㅑ26k 정면으로 ㅑ26k 마주보고자 ㅑ26k 하는 ㅑ26k 태도이기도 ㅑ26k 하다. ㅑ26k 전시는 ㅑ26k 그러한 ㅑ26k 관점에서 ㅑ26k ㅑ26k ㅑ26k 작가의 ㅑ26k 작품을 ㅑ26k 통해 ㅑ26k 그들에게서 ㅑ26k 보여지는 ㅑ26k ㅑ26k 전략이 ㅑ26k 유효한지, 4e갸x 그리고 4e갸x 그로부터 4e갸x 어떠한 4e갸x 예술 4e갸x 정의의 4e갸x 전환을 4e갸x 모색해 4e갸x 4e갸x 4e갸x 있을지 4e갸x 살펴보고자 4e갸x 한다.

전시 4e갸x 서문

1990년대, 우1b아 예술의 우1b아 아방가르드 우1b아 전략의 우1b아 실패와 우1b아 팝아트의 우1b아 고급화를 우1b아 목격한 우1b아 비평가들은 우1b아 현대예술의 우1b아 상황을 ‘위기’로 우1b아 진단하기에 우1b아 이른다. 우1b아 그러나 우1b아 이브 우1b아 미쇼(Yves Michaud, 1944~)는 나u카n 이러한 나u카n 진단에 나u카n 대해 나u카n 현대 나u카n 예술의 나u카n 위기는 나u카n 예술 나u카n 나u카n 자체의 나u카n 위기가 나u카n 아니며, 바ㄴㅓb 현대 바ㄴㅓb 예술 바ㄴㅓb 관념의 바ㄴㅓb 위기, 나s가바 그것에 나s가바 기대어진 나s가바 믿음의 나s가바 위기일 나s가바 뿐이라고 나s가바 반박한다. 나s가바 그에 나s가바 따르면 나s가바 나s가바 세기 나s가바 나s가바 동안 나s가바 나타난, ‘독특한’ 쟏vp아 믿음이었던 쟏vp아 아방가르드 쟏vp아 계보의 쟏vp아 시대가 쟏vp아 이제 쟏vp아 저물어가고 쟏vp아 있으며, ㅓms카 이제 ㅓms카 우리는 ㅓms카 기존의 ㅓms카 페러다임을 ㅓms카 벗어난 ㅓms카 예술이 ㅓms카 등장을 ㅓms카 기다린다. (그것을 ㅓms카 형성해야만 ㅓms카 한다.)

그로부터 ㅓms카 약 30년이 ㅓms카 지난 ㅓms카 지금,  7쟏53 현대 7쟏53 예술을 7쟏53 관통하던 7쟏53 페러다임은 7쟏53 완전히 7쟏53 뒤바뀌지도, z6th 온전히 z6th 남아 z6th 있지도 z6th 않은 z6th z6th 보인다. z6th 예술이 z6th 사회, 아f아히 정치 아f아히 변화의 아f아히 주동자였던 아f아히 시절을 아f아히 경험해보지 아f아히 못한 아f아히 세대가 아f아히 예술계 아f아히 전반을 아f아히 차지하고 아f아히 있는 아f아히 현재의 아f아히 우리는 아f아히 때때로 아f아히 아f아히 시절에 아f아히 대한 아f아히 막연한 아f아히 동경을 아f아히 가지면서 아f아히 동시에 아f아히 연민을 아f아히 느끼기도 아f아히 한다. 아f아히 단일한 아f아히 유토피아에 아f아히 대한 아f아히 믿음 아f아히 아래 아f아히 지속되어 아f아히 왔던 아f아히 현대미술은 아f아히 자신이 아f아히 비판하던 아f아히 권위와 아f아히 제도로 아f아히 포섭되어 아f아히 시장의 아f아히 환호를 아f아히 받는 아f아히 예술상품으로 아f아히 전락해 아f아히 버린지 아f아히 오래고, ㅓ마oㅓ 그에 ㅓ마oㅓ 대한 ㅓ마oㅓ 비평은 ㅓ마oㅓ 담론을 ㅓ마oㅓ 형성해내기도 ㅓ마oㅓ 전에 ㅓ마oㅓ ㅓ마oㅓ 다음의 ㅓ마oㅓ 비평에게 ㅓ마oㅓ 자리를 ㅓ마oㅓ 빼앗긴다. ㅓ마oㅓ 더이상 ㅓ마oㅓ 지속적이고 ㅓ마oㅓ 보편적으로 ㅓ마oㅓ 유의미한 ㅓ마oㅓ 비평의 ㅓ마oㅓ 전략을 ㅓ마oㅓ 세울 ㅓ마oㅓ ㅓ마oㅓ 없게 ㅓ마oㅓ ㅓ마oㅓ 예술은 ㅓ마oㅓ 유토피아의 ㅓ마oㅓ 환각에서 ㅓ마oㅓ 벗어나, 38lz 이제 38lz 자신의 38lz 위치 - 38lz 또는 38lz 역사 -를 38lz 위태하게 38lz 만드는 38lz 조소와 38lz 익살을 38lz 전략으로 38lz 삼는다. 38lz 그리고 38lz 38lz 전략 38lz 역시 38lz 다시 38lz 거대하고 38lz 방대한 38lz 제도 38lz 안에 38lz 슬며시 38lz 녹아버리고 38lz 만다. 38lz 예술가는 38lz 더이상 38lz 사회변화를 38lz 이끄는 38lz 변혁가가 38lz 아닌 ‘노동자'라는 38lz 일원이 38lz 되고, mㅓㄴb 작품은 mㅓㄴb 예술가의 mㅓㄴb 삶이 mㅓㄴb 바쳐진 mㅓㄴb 지성의 mㅓㄴb 결정체가 mㅓㄴb 아닌 mㅓㄴb 대중들의 mㅓㄴb 지적 mㅓㄴb 취향에 mㅓㄴb 맞춰진 mㅓㄴb 예술상품으로 mㅓㄴb 조정된다.

전시 《웃, 차ㅈ다w 음-; 차ㅈ다w 이것은 차ㅈ다w 비극일 차ㅈ다w 필요가 차ㅈ다w 없다》 차ㅈ다w 차ㅈ다w 이러한 차ㅈ다w 시대에 차ㅈ다w 작가들의 차ㅈ다w 취하는 차ㅈ다w 전략으로서의 차ㅈ다w 유머와 차ㅈ다w 희극성을 차ㅈ다w 단순히 차ㅈ다w 즐거운 차ㅈ다w 관람, p갸2ㅓ 또는 p갸2ㅓ 온순하고 p갸2ㅓ 일시적인 p갸2ㅓ 통합을 p갸2ㅓ 위한 p갸2ㅓ 것으로만 p갸2ㅓ 치부할 p갸2ㅓ p갸2ㅓ 없음을 p갸2ㅓ 전제한다.  p갸2ㅓ 또한 p갸2ㅓ 희극이 p갸2ㅓ 규범을 p갸2ㅓ p갸2ㅓ 기반으로 p갸2ㅓ 삼고 p갸2ㅓ 있다는 p갸2ㅓ 점을 p갸2ㅓ 상기한다면, 2w카가 2w카가 2w카가 작가의 2w카가 작품에서 2w카가 보여지는 2w카가 유머는 2w카가 그들이 2w카가 다루고 2w카가 있는 2w카가 매체 2w카가 규범 2w카가 바깥에서 2w카가 읽힐 2w카가 2w카가 없다는 2w카가 점에 2w카가 주목한다. 2w카가 작가들에 2w카가 의해 2w카가 놀이처럼 2w카가 다뤄지고 2w카가 있는 2w카가 극대화되고 2w카가 비틀어진 2w카가 매체의 2w카가 역사, ㄴ아쟏d 또는 ㄴ아쟏d 매체의 ㄴ아쟏d 견고한 ㄴ아쟏d 성격들은 ㄴ아쟏d 유희로 ㄴ아쟏d 읽히는 ㄴ아쟏d 것을 ㄴ아쟏d 너머, w기o거 예술의 w기o거 의미 w기o거 전환의 w기o거 시기에 w기o거 w기o거 좌표와 w기o거 방향을 w기o거 모색하는 w기o거 제스쳐로 w기o거 읽혀야 w기o거 한다. w기o거 또한 w기o거 작가들의 w기o거 전략으로 w기o거 사용되는 w기o거 유머는 w기o거 실효성을 w기o거 상실한 w기o거 아방가르드 w기o거 예술의 w기o거 위치, t아ox 또는 t아ox 한세기 t아ox t아ox 동안 ‘전복'이라는 t아ox 거창한 t아ox 믿음으로 t아ox 지속되어 t아ox t아ox 예술의 t아ox 힘의 t아ox 쇠락을 t아ox 외면하거나 t아ox 숨기지 t아ox 않고, 6xㅑn 정면으로 6xㅑn 마주보고자 6xㅑn 하는 6xㅑn 태도이기도 6xㅑn 하다. 6xㅑn 전시는 6xㅑn 그러한 6xㅑn 관점에서 6xㅑn 6xㅑn 6xㅑn 작가의 6xㅑn 작품을 6xㅑn 통해 6xㅑn 그들에게서 6xㅑn 보여지는 6xㅑn 6xㅑn 전략이 6xㅑn 유효한지, o기w기 그리고 o기w기 그로부터 o기w기 어떠한 o기w기 예술 o기w기 정의의 o기w기 전환을 o기w기 모색해 o기w기 o기w기 o기w기 있을지 o기w기 살펴보고자 o기w기 한다. 

박경률;
박경률은 o기w기 회화탐구의 o기w기 무거움을 o기w기 플레이풀한 o기w기 놀이로 o기w기 전복시킨다. o기w기 그가 o기w기 그려내는 o기w기 여러 o기w기 오브제들을 o기w기 살펴보면, m걷kㅈ 여러 m걷kㅈ 근대 m걷kㅈ 회화사조들의 m걷kㅈ 특성이 m걷kㅈ 빈번하게 m걷kㅈ m걷kㅈ 화면에 m걷kㅈ 뒤섞여 m걷kㅈ 나타나고 m걷kㅈ 있는 m걷kㅈ 것을 m걷kㅈ m걷kㅈ m걷kㅈ 있다. m걷kㅈ 초현실주의, qt쟏2 구축주의적 qt쟏2 형상과 qt쟏2 형태들, 카dzn 그리고 카dzn 인상주의적 카dzn 색채 카dzn 표현과 카dzn 입제주의적 카dzn 구성이 카dzn 카dzn 화면에 카dzn 등장하고, 타tme 때때로 타tme 그래피티와 타tme 팝아트적 타tme 요소들까지 타tme 등장한다. 타tme 그는 타tme 이전의 타tme 회화가 타tme 표현하고자 타tme 했던 타tme 기호와 타tme 상징, tㅐc라 추상과 tㅐc라 구상의 tㅐc라 특성들을 tㅐc라 한번에 tㅐc라 tㅐc라 드러내면서 tㅐc라 그것에 tㅐc라 어떤 tㅐc라 서사도 tㅐc라 담지 tㅐc라 않는다. tㅐc라 서사가 tㅐc라 삭제된 tㅐc라 회화 tㅐc라 양식의 tㅐc라 혼합물, zl거j 또는 zl거j 혼합체는 zl거j 하나의 zl거j 아이디얼한 zl거j 양식을 zl거j 추구했던 zl거j 역사에 zl거j 대한 zl거j 스터디이자 zl거j 그것들을 zl거j 소재로 zl거j zl거j 작가의 zl거j 위트, ㅐ갸1m 또는 ㅐ갸1m 놀이이다. 
작가의 ㅐ갸1m 이러한 ㅐ갸1m 놀이는 ㅐ갸1m 이전 ㅐ갸1m 양식들이 ㅐ갸1m 가지고 ㅐ갸1m 있던 ㅐ갸1m 위대함과 ㅐ갸1m 진지함을 ㅐ갸1m 물러나게 ㅐ갸1m 하고 ㅐ갸1m 그것을 ㅐ갸1m 가볍고 ㅐ갸1m 오락적으로 ㅐ갸1m 만든다. ㅐ갸1m 작가는 ㅐ갸1m ㅐ갸1m 사이를 ㅐ갸1m 과감한 ㅐ갸1m 붓질로 ㅐ갸1m 지나거나, r19t 그것들을 r19t 덮어버리면서 r19t 회화의 r19t 역사라는 r19t 무겁고 r19t 오래된 r19t 짐을 r19t 덜어낸다. r19t 동시에 r19t 작가는 r19t 최근 r19t 작품들을 r19t 통해 r19t 회화가 r19t 설치에서 r19t 조건적으로 r19t 입체를 r19t 두드러지게 r19t 하거나, 쟏iㅓ아 쟏iㅓ아 제작에서 쟏iㅓ아 물리성을 쟏iㅓ아 강조하지 쟏iㅓ아 않더라도, (회화의 기타dㅈ 매체적 기타dㅈ 특성으로 기타dㅈ 여겨지는) 기타dㅈ 평면성을 기타dㅈ 기타dㅈ 자체로도 기타dㅈ 돌파할 기타dㅈ 기타dㅈ 있음을 기타dㅈ 보여준다. 기타dㅈ 그는 기타dㅈ 그동안 기타dㅈ 회화의 기타dㅈ 조건으로 기타dㅈ 여겨진 기타dㅈ 바가 기타dㅈ 없으나 기타dㅈ 회화의 기타dㅈ 제작 기타dㅈ 과정에서 기타dㅈ 필연적으로 기타dㅈ 맞닥뜨리게 기타dㅈ 되는, ㅓ마사카 퍼포먼스, y자나기 공간성, 라pq7 시간성을 라pq7 회화적 3차원성 (또는 4차원성)으로 라pq7 제시하며, ‘평면’이라는 9갸je 허구에 9갸je 기대어진 9갸je 믿음 9갸je 역시 9갸je 간단하게 9갸je 뒤엎는다. 9갸je 좌측으로 9갸je 한걸음 9갸je 옮겨진 9갸je 회화에 9갸je 대한 9갸je 그의 9갸je 관점은 9갸je 기존 9갸je 회화에 9갸je 대한 9갸je 인식을 9갸je 가볍게 9갸je 전복하고 9갸je 농담처럼 9갸je 던져진다. 

최하늘;
전통적인 9갸je 조각이 9갸je 9갸je 매체적 9갸je 특성으로 ‘남성성’을 9갸je 지니고 9갸je 있음은 9갸je 여러 9갸je 차례 9갸je 비판의 9갸je 대상으로 9갸je 다뤄졌다. 9갸je 조각사에서 9갸je 거의 9갸je 마지막 9갸je 사조로 9갸je 보여지는 9갸je 미니멀리즘 9갸je 역시 ‘설치’ 9갸je 또는 ‘장소특정적 9갸je 조각’으로 9갸je 확장되면서 9갸je 9갸je 남성성을 9갸je 더욱 9갸je 공고히 9갸je 과시할 9갸je 뿐이었고, 2ㅐ마다 그에 2ㅐ마다 대한 2ㅐ마다 비판은 2ㅐ마다 개별적이고 2ㅐ마다 산발적으로 2ㅐ마다 나타났으며, q자차c 종래에 q자차c 미술시장에서 q자차c 높은 q자차c 수준의 q자차c 가치를 q자차c 획득하며 q자차c 최하늘은 q자차c 이러한 q자차c 모더니즘 q자차c 조각의 q자차c 특성들을 q자차c 이용하고 q자차c 비트는 q자차c 데에 q자차c 퀴어적 q자차c 특성과 q자차c 유머를 q자차c 전략으로 q자차c 삼는다. q자차c 그는 q자차c 김종영의 q자차c 조각을 q자차c 희화하하여 ‘단단함/단일함’이라는 q자차c 특성을 q자차c 시각/촉각적으로 q자차c 배신하는 q자차c 장치들을 q자차c 만들어 q자차c 혼종의 q자차c 조각 – q자차c 그러나 q자차c 같은 q자차c 뿌리를 q자차c 가진 – q자차c 들을 q자차c 만들어내거나, 나ㅓlㅐ 아예 나ㅓlㅐ 공간 나ㅓlㅐ 안에서의 나ㅓlㅐ 가구나 나ㅓlㅐ 인테리어의 나ㅓlㅐ 부분으로 나ㅓlㅐ 자신의 나ㅓlㅐ 조각을 나ㅓlㅐ 밀어 나ㅓlㅐ 넣어 나ㅓlㅐ 버린다. 나ㅓlㅐ 그것은 나ㅓlㅐ 조각의 나ㅓlㅐ 역사에 나ㅓlㅐ 대한 나ㅓlㅐ 희극이자 나ㅓlㅐ 조각가로서의 나ㅓlㅐ 자신의 나ㅓlㅐ 위치에 나ㅓlㅐ 대한 나ㅓlㅐ 희극이 나ㅓlㅐ 되는데, 6n5ㄴ 작가는 6n5ㄴ 이러한 6n5ㄴ 희극성을 6n5ㄴ 강조하듯 6n5ㄴ 값싼 6n5ㄴ 재료들 - 6n5ㄴ 가볍고 6n5ㄴ 내구성이 6n5ㄴ 떨어지는 6n5ㄴ 산업적 6n5ㄴ 재료들을 6n5ㄴ 사용하고 6n5ㄴ 정제되어 6n5ㄴ 보이는 6n5ㄴ 매끈함을 6n5ㄴ 지양하며 6n5ㄴ 퀴어적 6n5ㄴ 감성을 6n5ㄴ 그의 6n5ㄴ 미학으로 6n5ㄴ 들여온다. 
이번 6n5ㄴ 전시에서 6n5ㄴ 그가 6n5ㄴ 만든 6n5ㄴ 조각들은 6n5ㄴ 조각적 6n5ㄴ 엄숙함을 6n5ㄴ 흉내내는 – 6n5ㄴ 또는 6n5ㄴ 흉내내는 6n5ㄴ 6n5ㄴ 하는 - 6n5ㄴ 비체(abject)1들의 6n5ㄴ 군상이다. 6n5ㄴ 6n5ㄴ 대디(Daddy)조각은 6n5ㄴ 스폰지나 6n5ㄴ 스티로폼과 6n5ㄴ 같은 6n5ㄴ 조각에서 6n5ㄴ 6n5ㄴ 다뤄지지 6n5ㄴ 않는 6n5ㄴ 가벼운 6n5ㄴ 산업재료지만, ㅓehㅓ 자신의 ㅓehㅓ 속성을 ㅓehㅓ 숨긴 ㅓehㅓ 채, t0라x 돌이나 t0라x 철과 t0라x 같은 t0라x 고전적인 t0라x 조각의 t0라x 재료의 t0라x 모습을 t0라x 하고 t0라x 사진 t0라x 속에서 t0라x 자태를 t0라x 뽐낸다. t0라x t0라x t0라x 조각의 t0라x 해체와 t0라x 혼합, ㅓㅓ바하 재조합으로 ㅓㅓ바하 만들어진 ㅓㅓ바하 자식조각들은 ㅓㅓ바하 딸, q하3q 아들이라는 q하3q 이름을 q하3q 붙였으나 q하3q 기형적이며, ㅈ나바사 또는 ㅈ나바사 적당한 ㅈ나바사 이름을 ㅈ나바사 붙일 ㅈ나바사 수도 ㅈ나바사 없을 ㅈ나바사 만큼 ㅈ나바사 규범에서 ㅈ나바사 벗어난다. ㅈ나바사 ㅈ나바사 군상의 ㅈ나바사 형태적인 ㅈ나바사 ㅈ나바사 역시 ㅈ나바사 퀴어적인데, 5갸tㅐ 특히 5갸tㅐ 자식조각들은 5갸tㅐ 방향성과 5갸tㅐ 중심을 5갸tㅐ 상실하고 5갸tㅐ 갈지자로 5갸tㅐ 걸어가는 5갸tㅐ 듯한 5갸tㅐ 느낌마저 5갸tㅐ 준다. 5갸tㅐ 마치 5갸tㅐ 곱사춤이 5갸tㅐ 불편함과 5갸tㅐ 우스꽝스러움을 5갸tㅐ 동시에 5갸tㅐ 전달하듯, wofw wofw 조각들은 wofw 규범 wofw 밖의 wofw 감각을 wofw 이끌어내면서 wofw 기이하면서도 wofw 희극적인 wofw 모양을 wofw 취하는 wofw 것이다. wofw 앞서 wofw 말했듯 wofw 농담은 wofw 규범을 wofw 기반으로 wofw 한다. wofw 그리고 wofw 최하늘의 wofw 잘리고 wofw 다시 wofw 붙여진 wofw 모던 wofw 조각의 wofw 자식들은 wofw 아버지들을 wofw 자르고 wofw 해체한 wofw wofw 우스꽝스러운 wofw 동세를 wofw 취함으로써 wofw 자조적인 wofw 농담이 wofw 된다. 

홍승혜;
추상이 wofw 기하학이라는 wofw 정신성의 wofw 너머로 wofw 읽혀지는 wofw 것과 wofw 상반되게 wofw 디지털 wofw 코드들은 wofw 이면의 wofw 어떤 wofw 것도 wofw 없는, 자ㅐg우 일대일 자ㅐg우 상응으로 자ㅐg우 단순히 자ㅐg우 어떤 자ㅐg우 것을 자ㅐg우 상징하는 자ㅐg우 기호다. 자ㅐg우 홍승혜는 자ㅐg우 그러한 자ㅐg우 기호들을 자ㅐg우 주요 자ㅐg우 요소로 자ㅐg우 삼아 자ㅐg우 추상 자ㅐg우 작품들을 자ㅐg우 제작하며 자ㅐg우 추상의 자ㅐg우 정신성을 자ㅐg우 희화화한다. 
그는 자ㅐg우 실재와 자ㅐg우 본질의 자ㅐg우 추구에 자ㅐg우 있어 자ㅐg우 정신적인 자ㅐg우 것을 자ㅐg우 강조하며, 히타거ㅐ 형이상학적인 히타거ㅐ 차원의 히타거ㅐ 궤도를 히타거ㅐ 그려갔던 히타거ㅐ 추상에 히타거ㅐ 디지털 히타거ㅐ 기호의 히타거ㅐ 특성들을 히타거ㅐ 덧입힌다. 히타거ㅐ 원과 히타거ㅐ 사각, lcㅐh 검정이라는, ㅓgy거 추상화에 ㅓgy거 있어 ㅓgy거 절대적 ㅓgy거 차원으로 ㅓgy거 여겨지던 ㅓgy거 요소들은 ㅓgy거 작가의 ㅓgy거 의해 ㅓgy거 하나의 ㅓgy거 픽셀이 ㅓgy거 되어, h거0m 화장실 h거0m 표지판에서 h거0m h거0m h거0m 같은 h거0m 기호로 h거0m 전락한다. h거0m 작가는 h거0m 이에 h거0m 유머를 h거0m 더하여 h거0m 어린아이들과도 h거0m 소통이 h거0m 가능할 h거0m 법한 h거0m 원초적 h거0m 언어로서의 h거0m 이미지를 h거0m 만들어내고 h거0m 그것에 h거0m 움직임과 h거0m 음악을 h거0m 곁들여 h거0m 아예 h거0m 춤을 h거0m 추도록 h거0m 만든다. h거0m 추상에 h거0m 덧씌워진 h거0m 무거운 h거0m 정신성을 h거0m 탈피하고 h거0m 가볍게 h거0m 춤을 h거0m 추는 h거0m 홍승혜의 h거0m 디지털 h거0m 추상 h거0m 작업들은 h거0m 그렇게 h거0m 현대적 h거0m 감각의 h거0m 해학으로 h거0m 읽힌다. h거0m 디지털이 h거0m h거0m 이상 h거0m 일상과 h거0m 분리될 h거0m h거0m 없을 h거0m 정도로 h거0m 삶의 h거0m 많은 h거0m 부분을 h거0m 차지하게 h거0m h거0m 우리에게 h거0m 그것이 h거0m 가진 h거0m 추상성은 h거0m 본능적일 h거0m 지언정, 785f 고매한 785f 정신활동의 785f 결과물이 785f 되지 785f 않으며, 쟏아3바 오히려 쟏아3바 그것을 쟏아3바 비웃고 쟏아3바 장난스러운 쟏아3바 놀이의 쟏아3바 대상으로 쟏아3바 삼는 쟏아3바 것이다. 쟏아3바 그럼에도 쟏아3바 그것이 쟏아3바 원초적인 쟏아3바 어떤 쟏아3바 것을 쟏아3바 건드리고 쟏아3바 있다는 쟏아3바 점은, ㅓ쟏사h 해학과 ㅓ쟏사h 유머가 ㅓ쟏사h 자신의 ㅓ쟏사h 농담으로 ㅓ쟏사h 삼는 ㅓ쟏사h 대상과 ㅓ쟏사h ㅓ쟏사h 뿌리를 ㅓ쟏사h 같이하고 ㅓ쟏사h 있음을 ㅓ쟏사h 상기시키기도 ㅓ쟏사h 한다. ㅓ쟏사h 기호와 ㅓ쟏사h 의미가 ㅓ쟏사h 어떤 ㅓ쟏사h 상관성도 ㅓ쟏사h 없으며, 다any 그것이 다any 사회 다any 패러다임 다any 안의 다any 소통을 다any 위한 다any 약속이라는 다any 점에서도 다any 홍승혜의 다any 유머가 다any 우리의 다any 상징체계의 다any 언어에 다any 기반을 다any 두고 다any 있음을 다any 추론해볼 다any 다any 있다. 
그러한 다any 작가의 다any 유머가 다any 단지 다any 농담으로만 다any 읽힐 다any 다any 없는 다any 이유는, 마거다마 작가가 마거다마 취하고 마거다마 있는 마거다마 기하학적 마거다마 형태들이 마거다마 그것이 마거다마 놓인 마거다마 공간 마거다마 안에서 마거다마 강렬하고 마거다마 기이하게, lhp다 자신의 lhp다 모습을 lhp다 드러내고자하기 lhp다 때문이다. lhp다 기하학적 lhp다 형태들은 lhp다 부분이 lhp다 이탈되더라도 lhp다 보는 lhp다 이의 lhp다 시감각을 lhp다 훔쳐 lhp다 자신의 lhp다 형태를 lhp다 완결시키거나, 마44ㅓ 주변이 마44ㅓ 번잡하고 마44ㅓ 어지럽더라도 마44ㅓ 은밀하도 마44ㅓ 뚜렷하게 마44ㅓ 자신을 마44ㅓ 드러내고야 마44ㅓ 만다. 마44ㅓ 이는 마44ㅓ 남성적이고 마44ㅓ 정신적인 마44ㅓ 추상의 마44ㅓ 역사에 마44ㅓ 농담과 마44ㅓ 해학으로 마44ㅓ 틈을 마44ㅓ 벌리고, t가라1 t가라1 안에 t가라1 다시 t가라1 깊숙이 t가라1 자신의 t가라1 관점을 t가라1 침투시키는, o차걷마 즐거운 o차걷마 운동(movement)이자 o차걷마 게임이 o차걷마 된다.

한편 o차걷마 홍승혜의 o차걷마 조각은 o차걷마 바닥에 o차걷마 납작하게 o차걷마 드러눕거나 o차걷마 디지털로 o차걷마 평면화되는 o차걷마 대신 o차걷마 음악과 o차걷마 운동이라는 o차걷마 다른 o차걷마 요소들로 o차걷마 인해 o차걷마 다시 o차걷마 구축적 o차걷마 성격을 o차걷마 드러내며 o차걷마 조각스러운 o차걷마 것, ‘디지털 차ㅓ하x 조각’, ‘디지털 80마r 구축’이라는 80마r 개념을 80마r 조각의 80마r 성질로 80마r 들여온다. 80마r 홍승혜의 80마r 조각은 80마r 견고하게 80마r 발을 80마r 딛고 80마r 서있는 80마r 성격에서 80마r 벗어나 80마r 공기 80마r 안에서 80마r 리듬에 80마r 맞춰 80마r 움직이며, 6qbk 디지털 6qbk 시공간에서의 6qbk 구축적 6qbk 성격으로 6qbk 그만의 6qbk 조각성을 6qbk 드러낸다. 

《웃, 09카i 음-; 09카i 이것은 09카i 비극일 09카i 필요가 09카i 없다》 09카i 라는 09카i 전시 09카i 타이틀은 09카i 불필요한 09카i 문장부호들을 09카i 음절 09카i 사이에 09카i 넣어, 다luu 읽는 다luu 이가 다luu 마음 다luu 편히 다luu 웃도록 다luu 허락하지 다luu 않는다. 다luu 그리고 다luu 강조된 다luu 부정어법은 다luu 오히려 다luu 상황을 다luu 비극적으로 다luu 환기 다luu 시킨다. 다luu 그럼에도 다luu 전시는 ‘농담'과 ‘희극성'이 다luu 다luu 비극을 다luu 정면으로 다luu 마주보고 다luu 틈을 다luu 내기 다luu 위한 다luu 방법이 다luu 다luu 다luu 있음을 다luu 역설한다. 다luu 아감벤이 다luu 말했듯이 다luu 권력에 다luu 의해 다luu 주조된 다luu 장치들은 다luu 다만 다luu 제도에만 다luu 국한되지 다luu 않는다. 다luu 언어를 다luu 포함한 다luu 나를 다luu 나로 다luu 구성하게 다luu 하는 다luu 모든 다luu 것이 다luu 권력에 다luu 의한 다luu 장치다. 다luu 또한 다luu 다luu 장치는 다luu 완벽하게 다luu 구별될 다luu 다luu 없는 다luu 타자와 다luu 나의 다luu 사이, 27ㅑ나 서로 27ㅑ나 상보관계인 27ㅑ나 나의 27ㅑ나 안과 27ㅑ나 밖에, 아가j파 인식하기도 아가j파 어려울 아가j파 만큼 아가j파 엮여있을 아가j파 것이다. “희극성이란 아가j파 즉각적인 아가j파 교정을 아가j파 요하는 아가j파 개인적이거나 아가j파 집단적인 아가j파 결함을 아가j파 드러내는 아가j파 것이며, 걷우a바 웃음은 걷우a바 바로 걷우a바 이것을 걷우a바 교정하는 걷우a바 것이다". 걷우a바 그리고 걷우a바 웃음은 걷우a바 쉽게 걷우a바 드러나지 걷우a바 않는 걷우a바 장치를 걷우a바 일시적으로 걷우a바 깨고 걷우a바 나오는 걷우a바 파열음이다. 걷우a바 무엇인가를 걷우a바 대항하기 걷우a바 위한 걷우a바 결연함에는 걷우a바 숨을 걷우a바 걷우a바 겨를이 걷우a바 없다. 걷우a바 그러나 걷우a바 농담과 걷우a바 유머에는 걷우a바 대안과 걷우a바 여력을 걷우a바 만드는 걷우a바 숨의 걷우a바 틈이 걷우a바 있다. 걷우a바 숨을 걷우a바 잠시 걷우a바 멈추었다가 걷우a바 다시 걷우a바 무겁고 걷우a바 길게 걷우a바 내쉬게 걷우a바 하면서도, ㅐ라거가 전시는 ㅐ라거가 당신이 ㅐ라거가 ㅐ라거가 농담에 ㅐ라거가 맞장구 ㅐ라거가 치며 ㅐ라거가 웃어주기를 ㅐ라거가 바란다.

1. https://ko.wikipedia.org/wiki/%EB%B9%84%EC%B2%B4

참여 ㅐ라거가 작가: ㅐ라거가 박경률, 기g4타 최하늘, s갸1b 홍승혜
기획: s갸1b 안민혜

출처: s갸1b 원앤제이갤러리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블랙 t차ㅐ2 워터멜론 BLACK WATERMELON

April 15, 2021 ~ May 7, 2021

내가 3ㅓ거3 3ㅓ거3 위성 The Satellite That I Shoot Up

Feb. 18, 2021 ~ July 25, 2021

Man은 걷히ㅈ가 어디서 걷히ㅈ가 왔는가

April 18, 2021 ~ May 16,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