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피부 Fluid Skin》는 피부를 시간과 사회, 기억과 감각이 교차하는 장으로 바라본다. 신체의 가장 바깥을 감싸는 껍데기로 보이지만, 피부는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경계인 동시에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 개인과 세계를 끊임없이 매개한다. 인체에서 가장 큰 감각기관으로서 피부는 통증과 촉각과 같은 물리적 감각을 수용한다. 시간은 색소와 주름으로 피부에 축적되고, 피부에 각인된 상흔은 기억의 증거가 된다. 피부는 현재를 감각하는 동시에 누적된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편,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피부는 권력과 욕망이 작동하는 상징적 장이 된다. 피부색은 타자화와 배제를 뒷받침하고 인종적 차이를 즉각적으로 드러낸다. 매끈하게 보정되고 의복으로 변형된 피부는 현대 소비사회의 욕망과 규율을 반영한다. 본 전시는 클레어 선호 이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몸과 유아연의 파편화되고 확장된 신체를 통해, 오늘날 몸의 표면에 형성되는 여러 긴장관계를 조명한다.
클레어 선호 이는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시간이 충돌하는 몸의 표피를 기록하며, 신체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백혈병을 앓았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동안 겪었던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flashback)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포착한다. 배에 닿는 차가운 젤, 살갗을 뚫는 바늘, 멍으로 얼룩진 살결과 같은 몸의 순간들을 정교하게 재현한다. 이러한 신체적 트라우마는 피부 위에 (비)가시적인 자국을 형성하고, 이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공간으로 거듭해 호출한다. 그의 작업에서 피부는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고, 기억과 의식이 교차하는 감각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유아연은 범람하는 소비주의 속에서 몸이 해체되고, 변형되고, 재생산되는 양상을 관찰한다. 자본주의 논리 아래에 피부는 독립된 신체가 아니라, 소비적 욕망과 사회적 이상이 투영되는 표면으로 전락한다. 유아연은 개인의 신체와 자본주의 제도 사이에서 변화하는 피부에 주목한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확대하고 조망하며, 시장에서 신체가 가공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가시화한다. 이때 의복은 피부의 연장선에서, 신체를 조각 내고 부풀려 소비를 자극하는 스펙터클로 재구성한다. 동시에, 디지털 환경에는 극대화된 욕망의 집합체로서의 인공적 신체가 만연하고, 이는 다시 알고리즘에 힘입어 유통된다. 유아연의 작업은 개인의 몸에 밀착해 있으면서 자본주의 가치와 사회의 욕망에 따라 쉼 없이 모양새를 바꾸는 피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기획자 소개
이가현(Kahyun Lee)은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기획, 연구, 비평 분야에서 활동한다. 기획을 통해 동시대의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대안적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기획: 이가현
작가: 유아연, 클레어 선호 이